‘페니’가 왔다.
황지은
오스틴 공항에 내려 마중 나온 사위 차를 탔습니다. 곧고 길게 뻗은 도로에 아지랑이가 아른거리고 저 멀리 빌딩 숲이 신기루인 양 어렴풋이 보입니다. 딸은 집에서 저녁 준비를 한다고 합니다. 반가운 마음을 식사 준비에 쏟고 있나 봅니다. 운전석 옆자리에 앉아 사위와 도란도란 얘기 나누는 시간이 정겨웠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손자가 맨발로 달려와 내 품에 쏙 안겨듭니다. 얼굴을 부비며 반가워 어쩔 줄을 모릅니다. 찰싹 붙어서 안 떨어집니다. 아기 때부터 돌봐 준 손자여서 무척 반갑고 귀합니다.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하는 딸 곁에 낯선강아지가보였습니다. 처음 보는데도 짖지 않고 인사하듯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딸이 전화로 집에 새 식구가 들어왔다고 하였던 바로 그 강아지입니다. 진도견과 레트리버종 사이에서 태어났다 합니다. 눈동자가 순하고 영리해 보입니다. 이름이 ‘페니‘인데 손자는 자기가 지었다며 어깨를 으쓱해 보입니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오니 페니가 꼬리를 흔들며 나를 졸졸 따라다닙니다. 영리해서 금방 가족임을 알아채고 따르니 살포시 정이 갑니다. 식탁에 모여 앉았습니다. 정성 들인 반찬에 조기와 미역국도 있습니다. 외국에서 푸짐한 한식 밥상을 받으니 가슴이 따뜻하였습니다. 그날 저녁은 페니 이야기도 보태어져 맛깔스러운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아래층으로 가니 페니가 반깁니다. 뒷마당으로 가는 출입문 옆에 놓인 차임벨을 발로 밟고 나를 빤히 쳐다봅니다. 문득 어제 딸이 일러주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엄마, 페니가 벨을 누르면 뒷마당에 나가고 싶다는 신호이니 문 열어주세요.”
아마도 페니는 밤사이 용무를 참고 기다린 듯합니다. 문을 열어주니 쏜살같이 뛰어나갔습니다. 페니는 뒷마당 잔디밭에서 장난감을 물고 신나게 뛰어다니며 놉니다. 그때 벨 소리에 잠이 깬 딸이 나왔습니다. 페니가 반갑게 달려와 딸의 얼굴을 핥으며 꼬리가 떨어져라 흔듭니다. 딸은 간지럽다고 깔깔거리며 함께 끌어안고 뒹굴면서 놉니다. 평화로운 모습을 봅니다. 타국에 사는 딸에 대한 염려로 웅크러져 있던 마음이 사르르 풀립니다.
페니가 가족이 된 것은 페니의 선택이었다고 합니다. 유기견 분양센터에 알아보니 직원이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굳이 집으로 오겠다고 했답니다. 같이 태어난 세 마리를 데리고 와서 고르라고 하여 다른 강아지에 눈길을 주고 있는데, 페니가 꼬리를 흔들며 사위 앞으로 다가오더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강아지를 선택하지 않고 강아지가 사람을 선택한 것이었지요. 그렇게 하여 새 가족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곳 마을은 서로앞마당을 개방하여 잔디를 잘 가꾸어놓습니다. 그러나 울타리로 막아놓은 뒷마당이 가족 쉼터입니다. 수영장, 놀이기구, 바베큐 시설 등이 뒷마당에 있습니다. 사생활 보호가 철저합니다. 창문은 항시 블라인드로 가려져 웬만해선 열지 않습니다. 이웃집에 경찰과 구급차가 요란하게 와도 나와 볼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창문에 내려진 블라인드 틈 사이로 살짝 엿보기만 합니다.
마을에 샘솟는 물이 흐르고 숲이 많아 경치가 좋은 곳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개를 데리고 그곳으로 갑니다. 나도 페니와 함께 갔습니다. 모르는 사람과도 반갑게 인사합니다. 적응이 안 될 정도입니다. 날씨 인사로 시작하여 반려견과 관련된 대화라도 섞이면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경험을 공유하며 즐거워하고 마음이 맞으면 특별한 유대관계를 맺기도 합니다. 마치 개가 사람하고 사이를 소통시키는 연결고리 같아 보입니다. 딸이 강아지를 키운다고 하여 ‘힘들겠구나.’ 생각했는데, 막상 와서 보니 웃음이 많아지고 생활에 활기가 가득했습니다. 딸은 페니와 산책하면서 알게 된 이웃이 여럿 생겼다고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낯선 곳에 살면서 외롭지 않아 보이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목욕은 어떻게 시키는지를 궁금해 하니, 개 놀이 공원으로 가보자고 합니다.
개 놀이공원이 따로 있다니 흥미롭습니다. 다음날 페니가 미리 알고 서두릅니다. 못 기다리겠다는 듯 먼저 자동차 앞에 가서 앉아있는 것을 보고, 우리는 한바탕 웃었습니다. 공원은 개의 크기별로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페니는 익숙한 듯 중간 울타리 안으로 뛰어갑니다. 다른 개들과 둘씩 셋씩 짝을 지어가며 달립니다. 시합하듯이 귀를 눕히고 쌩쌩 달리니 ‘우사인 볼트’는 저리가라입니다. 마냥 순둥이로 보였는데 저리도 힘찬 에너지를 갖고 집안에서 얌전히 지내려니 답답했겠습니다. 헤엄칠 수 있는 냇물과 인공으로 만든 작은 폭포까지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여서 담소하고, 반려견은 수시로 주인에게 달려와 한껏 어리광을 부려놓고 다시 또 달려갑니다. 분양할 때 암컷. 수컷 기능을 없이하여 섞여서 놀아도 괜찮습니다. 관리인이 따로 없고 언제든지 와서 마음껏 이용만 하면 되는 곳입니다. 출입구 바로 옆에 샤워장에서 페니를 깨끗하게 씻기고 보송보송 말리기까지 했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페니는 언제 그랬냐는 듯 얌전한 순둥이로 앉아있습니다. 참 신기합니다. 집에 도착하여 페니와 사람이 차례대로 내립니다. 페니도 당연하게 거실로 들어가서 안방도, 서재도 사람하고 똑같이 자유롭게 출입합니다. 아무래도 저도 사람인 줄로 착각하고 살 것만 같습니다. 개들의 천국처럼 보입니다. 보는 관점이 다르다면 아닐 수도 있겠지요. 딸은 페니를 새 식구로 데려오기를 정말 잘했다고 여러 번 말합니다. 손자와 사위가 귀가하면 페니가 함께 반기는 모습이 그림 같은 정경입니다. 페니는 딸네 집에서 소중한 가족의 일원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동안 강아지를 식구로 받아들일 용기가 없었습니다. 함께 지내보니 편견은 조금씩 사라졌습니다. 귀국하면 페니 같은 강아지가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자라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