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암초등학교 주변의 마을들
◇ 당암리
지 명 : 막은골(속칭 망골)〔마을〕
내 용 [위치] : 막은골(망골) 북동쪽.
[유 래] : 마을을 산이 둘러싸서 막은 것처럼 되어 있어, 막은골 또는 杜谷(두곡)이라 불렀다. 변해서 망골이라고 불렀다.
지 명 : 부기동(부귀동)〔마을〕
내 용 [위치] : 막은골(망골) 서쪽.
[유 래] : 옛날 이 지역에 부자가 터를 잡고 살았는데, 그 터에서 기와장이 발견 되어 그 설을 입증해왔다. 그래서 부기동이라고 했다.
지 명 : 불무고개(일명 풀무고개)〔고개〕
내 용 [위치] : 부기동에서 당골 및 제천으로 넘어가는 고개.
[유 래] : 이 지역에서 불을 피울 때 연기가 잘 빠지는 것을 돕기 위해 불목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불목이 고개를 통해 연기를 내 보내서 불무고개라고 했다.
지 명 : 불탄터〔터〕
내 용 [위치] : 부기동과 막은골(망골) 사이의 작은 마을.
[유 래] : 일설 불무고개에서 불을 지피고 나면 부기동을 지나게 되어 재(숯)가 남게 되는데, 이 재를 처리하게 되는 곳을 가리켜 불탄터라고 한다. 1960년대에는 동쪽 언덕으로 사기를 굽던 흔적이 있기도 했다.
지 명 : 선돌〔마을〕
내 용 [위치] : 엄고개 남서쪽.
[유래] 마을에 선돌이 있어 선돌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선돌 대신 문관형의 장승이 마을 양쪽에 있는데, 한쪽 장승은 최근에 잃어 버렸다. 동제는 없고, 개인적인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 명 : 소골(솟골)〔마을〕
내 용 [위치] : 당암초등학교 아래 도로.
[유 래] : 지형이 마치 소가 누워 있는 형국이라 하여 소골이라 불렀는데, 속칭 솟골이라고도 불렀다. 솟골에서는 소를 키워야 부촌이 된다 해서 소를 많이 키우던 마을이다. 또한 이 마을을 龍岩 또는 龍岩里라고도 불렀는데, 마을 뒷산에 바위가 있어 그 바위를 龍岩이라 부르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다. 唐岩里의
지 명 : 언고개(엄고개)〔고개〕
내 용 [위치] : 응달마을(음담말)과 당암초등학교 사이.
[유 래] : 마을과 마을 사이에 얹혀 있다는 뜻으로 언고개라 하였으며, 상당히 높게 경사져 있어 마을에서 장남평야 들판이 한눈에 보였다.
지 명 : 왕박골〔마을〕
내 용 [위치] : 소골 위 (북쪽).
[유 래] : 조선시대 某 임금(어느 왕인지는 알 수 없음)이 이곳을 거쳐 가다 숙박을 하게 되었는데, 왕이 숙박했다 하여 왕박골이라 전한다.
지 명 : 횟골〔마을〕
내 용 [위치] : 막은골 아래쪽.
[유 래] : 옛날에 석회가 나온 마을이라 횟골이라 부른다.
지 명 : 띠울〔마을〕
내 용 [위치] : 엄고개에서 종촌으로 가는 왼쪽 산기슭 마을.
[유 래] : 띠풀이 많았던 곳으로 짐작된다.
◇ 제천리
지 명 : 각시골, 가서골〔마을〕
[유 래] : 각시골이 아닌 가서골로 알려져 있고, 그 지역에는 아카시아나 가시나무가 많아 가서골 또는 가시골이라 부른다.
지 명 : 다파니고개〔고개〕
[유 래] : `다 판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현재 이곳의 흙을 파서 다른 용도로 쓰고 있어 조만간 그 흙이 다 파이게 되었는데 고개의 이름과 같게 되었다.
지 명 : 산제당(山祭堂)〔제당〕
내 용 [위치] : 음지말 백호쪽 산위.
[유 래1] : 마을에서 산제를 지내는 산제당인데 마을에서 大事가 있을 때 제향을 올리는 산제당이다.
[유 래2] : 마을에서 산제를 지내는 산제당으로 마을에 큰일이나 중요행사에 제향을 올리던 곳이다. 현재는 음력 11월 1일에 마을 주민이 모인 가운데 제를 올리고 있다.
지 명 : 상봉산(上峯山)〔산〕
내용 [위치] : 양지말 뒤에 있는 산.
[유 래] : 산이 영하여 이 산에서 아들을 못 가진 아낙네가 아들을 얻기 위해 정성을 드리면 아들을 얻는다고 전해 오는 산이다.
지 명 : 아랫마을〔마을〕
내용 [위치] : 진해마을 옆.
[유 래] : 크게 중간, 아래 마을로 나뉠 때 아랫마을에 해당되며, 햇빛이 잘 들어 양지 말, 양달말, 양촌이라 불렀다.
지 명 : 양미골〔마을〕
[유 래] : 양양부사 임목의 산소가 있는 마을을 가리키며, 현재 비석이 놓여져 있다.
지 명 : 양양산〔마을〕
내용 [위치] : 제천리 남서쪽.
[유 래] : 襄陽府使(양양부사) 林穆(임목)의 산소가 있는 마을이다. 양양산, 양미라 부르는 마을이다. 임목은 扶安人(부안인)으로서 林蘭秀(임난수)의 아들이다. 양양부사로 있을 때 학교를 倡興(창흥)하여 治績(치적)이 매우 컸다. 벼슬을 버린 후 獨樂亭(독락정) 집으로 돌아와 살았다.
지 명 : 양지말(陽地말)〔마을〕
내용 [위치] : 제천리 양달쪽.
[유 래] : 양지 바른 곳에 마을이 있다 해서 양지말, 양달말 또는 양촌이라 부른다.
지 명 : 음지말〔마을〕
내용 [위치] : 제천리 응달진 곳.
[유 래] : 응달진 곳에 있다 하여 음지말, 음달말 또는 음촌이라 한다.
지 명 : 줄박골〔바위〕
내용 [위치] : 상봉산 서쪽.
[유 래] : 옛날 돌무더기가 일렬로 줄줄이 늘어 서 있어서 줄박골이라 했으며, 지금도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옆편에는 주락골이 위치하고 있다. 그 유래는 돌무더기가 떨어져 나와 그 형상이 마치 사람이 서 있는 모습과 같다 하여 주락골이라 한다.
지 명 : 진해〔마을〕
내용[위치] : 양미골 동쪽.
[유 래] : 임진왜란(1492) 당시 다른 마을을 지나쳐 간 왜군이 유독 이 마을만은 해하지 않고 갔다 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 송원리
이 지역은 원래 산과 계곡에 소나무가 많았고 서원이 즐비하게 많아서 송원리(松院里)라 하였다 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 공주군 장기면에 편입되었다가 1973년 7월 1일에 연기군 남면에 편입되었다.
지명 : 원터
송원리 <머레> 북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금호서원의 터가 있다고 하여 <원터>라 부르며 <새터> <원촌>이라고도 부른다. 또한 옛날 조선 때 전라도 사람들이 한양 가는 길에 여기를 지나다가 서원이 많이 있는 것을 보고 여기가 한양이냐고 물을 정도로 서원이 많이 있었다고 하여 <원촌>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지명 : 송계동
송원리 <원촌>북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큰 소나무가 많이 있는 마을이라 해서 송계동<松溪>라고 부른다.
지명 : 원호(源湖)
송원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원터>에서 멀리 떨어지고 금강가에 있는 마을인데 마을이 마치 먼 곳에 보이는 호수가의 마을이라 해서 원호라 부르며 속칭 <머레>라고도 부른다.
◇ 나성리
신라 때 신라군에 의해 축조된 성이 있다고 하여 <나성> <나리재>라 불렀다.
지명: 나리재
나성리에 있는 토성을 <나리재>라고 부르고 그 주변에 있는 마을도 <나리재>라고 불렀다. <나성>이라고도 부르며 큰 들을 지나 금강가에 있는 높이 45m되는 외딴산에 토성을 쌓았는데 백제 때엔 농성이었다고 한다. 여기 성안에 임씨 가묘가 있고 기슭에 독락정이라는 이름의 정자가 있다.
지명 : 참샘골
나성리에 있는 찬샘이 있는 마을이다. <찬샘골>이라 부른다. 지금으로부터 이백여 년 전부터 산 계곡에 자연수가 흘러나와 오고가는 사람들이 옹달샘을 파놓은 것이 처음이었다고 하는데 물이 계절에 관계없이 차고 피부병에도 약효가 있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는 샘으로 <약수터>로도 통한다.
첫댓글 정겨운 이름들
그러나 지금은 다 없어져 사라진 마을들
그 이름이라도 다시불러볼 수 있어 고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