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씨 쫄지 마세요 ◈
대선 승리 기대감에 부푼 미 공화당 인사들이
요즘 자주 꺼내는 이야기가 있어요
“선거 이후 당 모습을 예측하려면 스티브 배넌을 다시 주목하라.”
한때 트럼프의 오른팔, 책사(策士)로 불렸던 인물이지요
미 주류 언론들은 그를 트럼프 1기 이후 ‘끈 떨어진’ 인물로 여기고 있어요
그러나 당 지지자들 사이에선 선거가 다가올수록
그의 존재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했지요
그 뒤로 그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워룸(war room)’을 많은 사람들이 자주 듣고 있어요
“정말 한심합니다.”
최근 방송에서 배넌이 게스트로 나온 공화당 한 의원에게 이렇게 꾸짖었지요
당장 바이든을 탄핵하고 아들은 감옥에 보내야 하는데
왜 손놓고 있느냐는 훈계가 한참 이어졌어요
누가 의원인지 방송 진행자인지 헷갈리지요
‘매운맛’ 진행에도 그의 방송에 출연하려는 공화당 실력자들이 줄을 섰어요
배넌이 이끄는 극성 팬덤의 지지를 얻게 되기 때문이지요
시청자들로부터 후원금도 두둑하게 챙길 수 있어요
부통령 유력 후보인 JD 밴스 상원의원, 짐 조던 하원 법사위원장 등
수십 명의 유력 정치인이 그의 교시(敎示)를 품고 돌아갔지요
방송엔 백신이 자폐를 유발하고,
지하 조직이 전 세계를 전복하려고 한다는 괴담과 음모론이
수시로 튀어나오고 있어요
작년 브루킹스연구소가 3만 개가 넘는 정치 방송을 전수 조사했지요
그중 ‘가짜 뉴스’를 가장 많이 살포한 방송이 워룸이었어요
그런데 배넌은 조사 결과가 “명예로운 훈장”이라고 했지요
애초에 사실(事實)이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지요
반대 진영의 손가락질을 ‘내 편’의 결집으로 이용하는 법을
그는 잘 알고 있었어요
1·6 의회 난입, 하원의장 축출 사태 모두
배후에서 유도한 인물이 배넌이지요
공격적인 지지자들, 강경파 의원들에게 “당장 행동하라”고 재촉해
이들을 움직였어요
그랬던 배넌이 최근엔 바이든 행정부 인사들에 대한
‘보복 수사’를 1순위로 언급하고 있지요
대선 결과가 어떻게 되든 ‘혼돈’을 부추기는 그의 발언 수위는
더욱 독해질 것이지요
그 결과가 무엇으로 돌아올지 두려워요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이와 유사한 사람이 있어요
배넌을 생각하면서 김어준씨가 여러 번 겹쳐 보였지요
최근 한국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민주당의 ‘탄핵 쇼’도
김씨 방송에서 논의되고 결정됐어요
‘검사 탄핵안’ 발의 수개월 전부터 그는 여러 번
“이 사람(검사)들 탄핵해야 한다”고 했지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청문회 추진 계획을 민주당이 공식화한 것도
그의 방송에서였어요
이념의 양 끝에 있지만 증오와 대립을 자양분 삼는
‘극단 정치’에 기대 먹고 산다는 점에서 둘은 처지는 같았지요
배넌은 이달 초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나는 ‘저널리스트’가 아니다”라고 했어요
이념을 앞세워 극렬 지지층을 움직이는 ‘선동가’임을 숨기지 않았지요
김씨 또한 하는 일이 다를 게 없어요
그런데 김씨는 자신을 ‘언론인’이라고 하지요
사실을 좇고 진실을 따지는 언론인을 자처하면서
근거 없는 풍문, 교묘하게 조작된 허위 사실을 방류하고 있어요
어느 쪽이 더 위험한가요?
김어준이 한술 더 뜨고 있지요
정말 몹쓸 인간들 이지요
그런데 김어준(56)씨는 지난달 18일 서울북부지법에서 열린
이동재씨 명예훼손 재판에 피고인 신분으로 출석했어요
김씨는 2020년 4~10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채널A 기자였던 이씨가
이철 전 신라젠 대표에게 접근해 ‘유시민에게 돈을 줬다고 하라’고
협박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혐의를 받고 있지요
이날 법정엔 김씨 재판을 취재하려는 기자들이 10여 명 몰려들었어요
‘허위 사실 유포 인정하느냐’
‘이동재씨에게 하고 싶은 말 있느냐’ 같은 질문이
재판 전후 9개나 쏟아졌지만 김씨 답변은 단 한마디였지요
“할 말 있을 때 하겠다.”
이날 김씨는 왼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걸으며 취재진 질문을 받았어요
재판 태도도 성실하다고 하긴 어려웠지요
거의 매일 진행되는 김씨의 유튜브 방송은 2시간 30분 안팎이지요
박장대소하며 반대 세력을 비웃거나 비속어를 내뱉는 일이 다반사인데
그렇게 웃고 떠들기를 좋아하던 김씨가 이날 법정에서 한 말은
딱 한마디였어요.
판사가 사건에 대한 입장을 묻자
“(변호인 의견서) 거기에 다 담겨있다”고 했지요
김씨 변호인은 “최강욱이 게시한 페이스북 게시물이
사실이라고 믿었고 최강욱의 지위를 생각했을 때
그럴 가능성이 상당했다”고 했어요
2020년 4월 3일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 신분이었던 최강욱씨는
이동재씨가 이철씨에게 “당신이 살려면 유시민에게 돈을 줬다고 해라.
우리 방송이 쓰면 온 나라가 발칵 뒤집어진다.
유시민의 인생은 종 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주장했지요
김씨가 이런 허위 사실을 말한 것은 맞지만,
당시 국회의원 후보 신분의 최씨 말을 진실로 믿을 만한
상당성이 있었다는 취지의 변론이었어요
김씨 변호인은 김씨의 활동을 두고
“언론인으로서 개인적 비평”이라고 했지요
사실 확인을 본업(本業)으로 삼는 언론인을 자처했지만,
김씨가 최씨 발언의 진실성을 알아보려
어떤 추가 취재를 했는지는 언급하지 않았어요
이동재씨는 “허위 사실 유포는 당당하게 해 놓고
이제 와서 최강욱 탓을 하다니 상당히 겁이 많은 사람 같다”고 했지요
사실 김씨의 ‘거짓 정보 살포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요
2021년 오세훈 서울시의 코로나 역학조사 태스크포스가
해체됐다고 말했지만 이런 조직은 있지도 않았던 것으로 나타나
언론중재위 정정 보도 결정이 났어요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한 적이 없다”
“이태원 참사가 난 골목은 과거엔 일방통행 조치를 했는데
이번엔 안 했다” 같은 발언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허위로 판단돼
제재 등을 받은 바 있지요
물론 김씨가 살포해온 ‘아니면 말고’식 음모론은 이 밖에도 수도 없이 많아요
김씨는 “쫄지 마!”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지요
그의 어느 저서엔 ‘정면 돌파 매뉴얼’이란 문구가 붙었어요
허위 사실 유포 혐의도 남 탓 하지 말고, 쫄지도 말고,
소신대로 정면 돌파하시기를 바랄께요
그게 김어준 답지 않나요?
-* 언제나 변함없는 조동렬 *-
▲ 트럼프의 책사로 불리는 스티브 배넌(왼쪽 사진)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지난 1일 동부 코네티컷주에 있는 교도소 앞에서 발언하고 있어요
그는 의회 모욕죄로 4개월의 유죄 판결을 받고 이날 수감됐지요.
오른쪽 사진은 방송인 김어준씨가 지난달 서울북부지법에서 열린 이동재 전 기자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
명예 훼손 재판에 피고인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는 모습.
▲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부통령)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JD 밴스(왼쪽) 상원의원이 작년 11월 스티브 배넌의 방송에 출연한 모습. 배넌 방송 시청자 수는 백만명이 넘어요
▲ 김어준씨가 지난 5월 자신이 진행하는 방송에서 이재명 민주당 전 대표와 관련된 사건을 수사한
검사들을 탄핵해야 한다고 발언하고 있는 모습.
이로부터 약 2개월 뒤인 지난 2일 민주당은 실제로 검사 4명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