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理事)를 겸전한 우리 시대의 선지식
玄峰勤日|부석사 주지
시여삼십봉(是與三十棒)
비여삼십봉(非與三十棒)
거래무간섭(去來無干涉)
우과초자청(雨過草自靑)
봉황산 주봉에 구름이 서리어 왔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말짱한 푸른 하늘이 나타났다. 번번히 구름이 비가 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날씨가 좀 가물려나 보다.
이곳 태백산과 소백산이 갈라지는 분기점 봉황산. 천년 고찰 부석사 안양루에 올라서 저 드넓은 아랫 들녘을 굽어보면, 뭇 산의 봉우리들이 마치 남쪽 다도해 푸른 물결 일망무제에 점점이 떠 있는 섬처럼 옹기종기 정겹기가 그지없다. 아마도 펄쩍 뛰면 건너갈 것 같은 가까운 거리감 때문이리라.-그 옛날 여기에 이 절을 지으신 의상 조사도 내 마음과 같았을까!-
이곳 안양루에 올라 방랑시인 김삿갓의 시를 가만히 읊조려 보면 흘연히 인생이 조감되어 온다. 옛 성현이 인생이 잠깐이기는 아침이슬 같다고 하더니만 그 말씀이 조금도 과장이 아님을 안양루에 오를 때마다 새삼 깨닫는다. 이와 같이 그동안 몰랐던 인생의 공공연한 비밀을 비로소 느끼는 것은 어느새 나도 나이가 들어감 때문일 것이다. 자고로 나이는 가장 큰 인생의 스승이라고 했던가!
얼마 전 도솔산 도피안사 주지 송암화상으로부터 스승이신 금하당 광덕 대선사에 대한 인연담을 써다라고 하는 청탁과 개산법회 설법 초청을 받고, 며칠 동안 도량 안에서나 밖에서나 나도 모르는 사이 줄곧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아마 대선사에 대한 나만의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내 나이 이십대 후반 무렵, 공부에 불이 붙어 기름을 지고 불에 뛰어들어가는지, 쇠붙이를 등에 지고 물에 뛰어들어가는지를 분간하지 못하고 오직 공부에만 목숨 걸고 열렬하게 지낼 때, 나는 그 당시 눈밝았던 당대의 선지식들 회중에서 살았다.
통도사 극락암 경봉스님, 해인사 선방 성철스님, 인천 주안 용화사 전강스님 등등, 여러 선지식들을 역참하며 선방의 일과만으로는 양이 차지 않아서 가행정진과 용맹정진을 번갈아 대장부가 될 기백으로 낮밤을 지새웠다. 돌아보면 참으로 가상했던 시절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분발하다가도 해제가 되면 바짝 당기고 있던 정진의 끈을 잠시 늦추고 지대방 모서리에 기대앉아서 두어해 전쯤 광덕스님의 번역으로 나온 중국 명나라 운서주굉 스님의 『선관책진』을 읽었다. 읽고 또 읽어도 새롭고 매번 무궁한 이치가 그대로 드러나고 궁극적인 현로(玄路)가 손에 잡히는 듯 큰 기쁨을 느끼곤 했다. 이런 까닭에 해제 기간 내내 거의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지냈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 선(禪)에 대한 투철한 안목으로 설파해 놓은 광덕스님의 『선관책진』 번역은 오히려 원본을 능가하는 지혜의 힘을 느끼게 하여 선방 수좌들을 용맹정진으로 몰고 가는 지남침이나 채찍과 같은 역할을 했다.
이처럼 광덕 큰스님에 대해 모두가 익히 아는 바와 같이 큰스님께서는 말 그대로 이사(理事)를 겸전한 이 시대의 선지식이었다. 그 사실이 『선관책진』을 통해 명료하게 세상에 드러나 광덕스님은 선지(禪旨)를 갖춘 눈푸른 이판이었음과 아울러 오늘의 통합종단의 토대를 이룩한 행정 능력으로 보면 원력 높은 보현보살, 즉 사판이었음에 증명되었다. 그야말로 이사를 겸전한 미래의 모든 수행자들에게 모델이 될 만한 두루두루 잘 갖춘 큰 선지식이었다. 큰스님은 일상의 생활(威儀와 待戒)에서도 조금도 소홀함이 없어서 참으로 모든 불자(출가.재가)의 사표로 우러를 현대인에게 이정표 같은 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자주 찾아뵙지는 못했지만 정신적으로는 의지처였던 큰스님께서 입적하셨다는 슬픈 소식을 접하고, 나는 가장 먼저 공부에만 전념하던 시절, 손에 들고 다녔던 『선관책진』을 생각했고 그때의 환희심과 감사함을 다시 상기했다. 평소에 내가 시를 쓰거나 문학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문득 글을 쓰고 싶었다. 아마도 큰스님을 잃은 너무나 큰 아쉬움과 허전한 마음 때문이었으리라. 여기에 옮겨 이 글의 말미로 삼는다.
고고봉정용상운(高高峰頂湧上雲)
광명만고조건곤(光明萬古照乾坤)
덕후도심금하당(德厚道深金河堂)
삭발염의성본사(削髮染衣成本事).
광덕스님 시봉일기 7권 사부대중의 구세송 중에서- 글 송암지원, 도피안사
첫댓글 이사(理事)를 겸전한 우리 시대의 선지식이신 큰스님!
큰스님 생각하며 고잘미섬공으로 마음 다집니다.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큰스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 미안합니다..마하반야바라밀._()()()_
이사를 겸비한 큰스님회상에서 공부할 수 있음은 행복입니다.
고잘미섬공으로 이사를 통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고맙습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