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십 년 만에 찾은 친구
나 어릴 적, 새벽녘 우물가에는 늑대가 자주 울었다. 우우우~ 주린 배를 채우고자 팔공산에 내려왔으리라. 늑대가 울어대면 나도 덩달아 칭얼댔다. 어머니는 외동아들을 달래고자 장롱 속에 감춰둔 곶감을 손에 쥐여주었다. 소년의 울음은 곶감을 건졌지만, 늑대는 무엇을 얻었는지. 수탉이 홰치고 교회 새벽종 소리가 은은히 고샅에 흐르면 늑대 울음은 잦아들었다. 이에 맞춰 아버지는 개똥 줍기에 나서고 어머니는 우물로 향한다. 샘은 채소밭 모롱이에 있었다. 한 골목 옹기종기 다섯 가구의 식수원이었다. 따뱅이 위에 얹은 어머니 물동이는 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날렵한 솜씨는 서커스단의 묘기를 방불케 했다. 우물가에는 밤새 이웃의 안녕을 묻는 소리, 두레박 부딪치는 소리, 다듬이 소리, 모두가 정다웠다. 우물은 깊었다. 사시사철 물이 철철 넘쳤다. 엄동설한에는 김이 무럭무럭 올랐고, 무더운 여름이면 소름 돋아날 만큼 서늘했다. 한 쪽박 들이키면 오장육부까지 시원했다. 밀·보리가 익어가고, 싱그런 바람이 남촌에서 불어오면 처녀, 총각들이 샘가에 앉아 사랑을 속삭였다. 누나의 치렁치렁한 댕기 머리에 혹해 마을 총각 휘파람 홱홱 불던 장소였다.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난 것처럼.
이른 봄이면 우물가 울타리엔 앵두 대신 골담초가 앙증맞은 꽃잎을 연다. 달짝지근한 꽃은 또래들의 입술을 노랗게 물들였다. 여태 무탈한 관절은 어릴 적, 섭취한 골담초가 한 몫 했을지 모를 일이다. 골담초와 함께 어우러진 쥐똥나무 역시 훌륭한 약초다. 골담초 곧은 가지는 천자문 한 자 한 자를 짚어내리는 책대이며, 훈장님의 회초리였다. 울타리의 한 뼘 땅마저 백분 활용한 선조들의 슬기와 정신이 경외롭다. 이러한 우물에 얽힌 일들이 소년의 머리에 깊이 각인 되었을 터다. 추억 창고인 우물은 상수도가 들어오면서 자취를 감추었다.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귀촌했을 때다. 지난 날 샘터는 교회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다. '이 자리에 우물이 있었는데, 늑대가 울었는데.' 기회가 닿으면 이곳에 아담한 정원을 만들어 지난날의 추억을 들춰내고 싶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처럼 이 땅이 내 손에 들어왔다. 앉은뱅이 소나무로 울타리치고, 여백에 갖가지 꽃을 심었다. 소나무를 심고자 땅을 팔 때다. 날 썬 금속성과 함께 묵직한 철판이 삽날을 가로막았다. '웬 철판일까?' 지렛대로 구조물을 들췄다. 무엇이 묻혔을지 기대 반 설렘 반이었다. 묵직한 철판이 열리는 순간, 파란 물 가득한 원형 우물이 나타나지 않는가. "아, 새미다!" 칠십 년 만에 만났다.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가 이보다 반가울까? 파란 물에 손을 담가본다. 아슴푸레한 옛날, 그때 그대로다. 봄바람에 파란 물이 간간이 일렁인다. 우물 속에는 백발이 성성한 초로의 범부가 물너울 따라 일렁인다. 날 일日자, 때론 가로왈曰로. 물끄러미 내려보며 상념에 잠긴다.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 하지 않았던가. 우물은 70개 성상이 지났건만 변하지 않았다. 물은 인간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어떤 사물도 가리지 않고 삼라만상에 골고루 스며든다. 원효대사가 빈부귀천, 남녀노소, 모든 민중에게 스스럼없이 파고들 듯. 살아오면서 숱한 사람과 연을 맺었다. 인연의 끈은 이어졌다 끊어졌다 반복했다. 여러 단체와 동호인 모임으로 빼꼼한 날이 없었다. 지극히 인간적인 모임도 있지만, 냄새나는 단체도 있었다. 손익계산에 편승하여 발을 담갔음을 고백한다. 속 보이는 처사였다. 이해가 걸린 모임은 오래가지 못한다. 효용 가치에 따라 생성소멸 하였으니. 살아오는 동안 원만한 인간관계를 지탱했는지 돌아봐야 할 일이다. 감탄고토甘呑苦吐가 세상인심 아니던가. '밥 먹고 술 마실 때 친구는 천 사람이 있어도 급하고 어려울 때 친구는 한 사람도 없다'酒食親舊千個有急難之朋一個無' 라는 성현의 말처럼
우물을 바라보며 텔라스의 진리를 새삼 발견한다. 어느덧 나이테는 깊숙이 감기었다. 나머지 삶은 '조코도 그칠 리 없다.' 는 윤선도 오우가 중中, 수水처럼 살고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