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통선의 일년 농사는 김장과 콩타작, 그리고 마늘과 양파를 심고 비닐을 덮으면 끝이다.
12월이 되고보니 이제는 딱히 할 일이 없어지고, 조용히 한 해를 되돌아 본다.
영하 20도까지 내려갔던 동토의 땅에도 4월이 되자 어김없이 진달래가 망울을 터뜨린다.
들녘에는 봄나물로 달래, 냉이에 이어 쑥이 한창이다.
쑥떡, 쑥국, 쑥라면, 도다리 쑥국...
청정지역의 쑥향이 얼마나 강한지 모른다.
봄이 오면 각종 모종을 파는 가게가 문전성시를 이룬다.
고추 부추 호박 상추 박 야콘 수세미 강낭콩 대파 가지 오이 옥수수 수박 참외.......
감자심은 후에 큰 일은 고추농사이다.
객지의 아들들과 농활 일손을 보태본다.
산에도 들에도 봄의 싱그러움이 가득하다.
다음에는 모내기도 큰 일이다. 어느새 5월 중순이다.
못자리에서 모판을 일일에 떼어서 경운기에 싣고서 논으로 옮기는데,
어린아이 손조차도 아쉬울 지경이다.
해마다 같은 곳에서는 찔레꽃이 수줍게 피어난다.
계절의 여왕 5월에 찔레는 명함을 내밀지도 못하지만 우리네 정서와 꼭 닮았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고, 딱따구리의 집짓는 소리가 정겨운 이 즈음에는
해마다 봄 손님을 모시기에 아주 댓낄이다.
숯불을 피우고서 단골 정육점에서 주문한 고리를 기름 쫙 빼고 구워내면 여기가 바로 낙원이 된다.
보리누름을 보면 6월이 익어가는 계절이다.
참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수확하는 농민에게는 상당히 까다로운 일이 된다.
뽕나무와 아이들이라는 단편 소설이 생각난다.
까맣게 익은 오디를 한 줌 따다가 입안에 톡 털어넣으면 얼마나 달콤한지 모른다.
비록 손과 주둥이는 자줏빛으로 물들지만 어디 그게 대수인가?
양봉을 하는 이는 5월의 아카시아 꿀을 따고나면 밤꿀을 따러 대이동을 한다.
저 길쭉한 꽃이 열매를 맺으면 가시가 찔리는 밤송이가 되는데 볼 때마다 신기하다.
우물가의 보리수도 발그레 익어간다.
씨앗이 보리와 꼭 닮아서 보리수라고 했다는데...
이 것도 딸 시기를 놓치면 새들이 모두 잡숴버린다.
2포기 심은 수박도 어느새 자세가 나온다.
자연의 위대한 생명력과 아름다움은 가히 신비스럽기만 하다.
수박은 아들순에서, 참외는 손자순에서 달린다.
7월에 나는 자두가 엄청 크고 잘 익어가고 있네.
보기만 해도 입안에서 침이 고인다.
항암효과가 뛰어나다는 가지도 미끈하고 윤이 반짝거리며 넉넉하게 달리고 있다.
아래쪽의 낡은 잎은 계속 잘라주어야 한다.
완벽한 유기농 고추도 튼실하게 잘 자라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빨간 고추 말리기에 2번을 실패했지만 김장용 고춧가루는 충분히 거두었다.(배추 50포기)
밤송이가 커지면 추석이 다가왔다는 메시지이다.
절기로 말복이 지나면 김장배추와 무우를 심어야 한다.
무우와 배추모종 50포기를 심었다.
시작은 이렇게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동네에는 벌써 두물째 고추를 따서 말리고 있다.
민통선의 주 작물이 고추, 쌀, 들깨, 감자, 양파이며 소위 돈이 되는 것이다.
올해는 유난히 도토리가 대풍이어서 집집마다 도토리 전분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1:6으로 물과 섞어서 끓이기만 하면 되니 도토리 전분은 톡톡히 부수입이 되어준다.
마리아 할머니가 주신 모종에서 따낸 맷돌호박이다.
달고 살집이 두툼해서 먹을 게 많다는 장점이...
씨앗을 잘 받아서 내년에도 잘 키워보리라.
맨드라미는 말려서 차로 마시거나 음식 물감으로 많이 쓰인다고 한다.
같은 모종에서도 어쩌면 저렇게 창조적인 모습으로 재탄생하는지 신기하기 짝이 없다.
2농장에 있는 이 곳 쉼터는 바로 옆 숲에서 사철 새소리가 들려오는 명당이다.
다만 태풍으로 아카시아 거목이 3그루나 운명하셔서 그늘이 없다는게 큰 약점이다.
어묵탕, 삼겹살 구이, 쑥라면, 농주 등이 단골 메뉴이다.
처음으로 도전해 본 들깨 농사가 그런대로 잘 되었다.
조금 더 사 보태서 기름을 짜니 소주병으로 13개나 나와서 마님께 상납하였다.(칭찬받음...ㅋ)
바로 뒤 배 과수원에서도 배를 모두 따서는 선별 작업이 한창이다.
약간의 흠이 있는 배를 한 상자 싸게 사서 잘 먹고 있다.
90이 넘어도 허리가 꼿꼿한 마리아 할머니는 늘 사람이 그립다.
갈 때마다 집앞에 들러 인사를 드리면 그렇게 좋아하시며, 애호박이든 상추든 손에 쥐어 주신다.
들깨를 도리깨로 털면 이제 한 해 농사도 막바지에 이른 것이다.
회장님의 범같은 두 아들이 와서 힘을 쓰기에 농활팀은 들깻단 운반만 열심히 했다.
큰 국화도 아름답지만 작은 꽃이 모여서 내뿜는 향기는 매력이 넘친다.
저 꽃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얼마나 감미로운가.
물빠짐이 좋은 마사토땅에 우분 거름을 듬뿍 넣고 방치했더니 야콘이 이렇게 잘 되었다.
금방 캐면 허연 것이 덤덤하지만 1주일 정도 숙성되면 보라색으로 변하면서 당도가 급격히 올라간다.
8월에 심은 무우 배추가 이렇게 창대하게 잘 자라주었다.
배추와 무우가 하나도 허실이 없으니 그야말로 100점이다.(역시 젖소농장의 우분 거름이 주효....)
처음 심어본 순무도 아주 잘 컸다.
몇 집에 나눔하고서 김치를 담았는데 맛이 아주 그만이다.
내년에는 아예 점빵을 내볼까나???
100% 유기농 당근도 모양새는 거시기하지만 아주 단단하고 맛이 달기만 하다.
수능추위가 몰아치던 주일날 서둘러 무우 배추를 수확해서 김장을 담갔다.
무청 시래기는 잘 엮어서 회장님 댁 처마밑에 걸어 두었고,
무우는 땅에 묻지 않고 장독과 스티로폼 박스에 보관해두었다.
민통선 마을회관은 12월부터 내년 2월까지 어르신들의 사랑방이 된다. 농한기라는 말씀...
이제 민통선도 긴 겨울동안 동면으로 들어간다.
한해동안 풍성한 수확을 내주었던 대지도 휴식모드로 내년 봄을 기약해본다.
첫댓글 선배님, 한 해 동안 농장일기 잘 받아보았습니다. 내년에도 건강하시고 재밌는 소식 많이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 ^
신사동으로 함 나오면 좋겠네. 얼굴도 함 보고 이야기도 나누고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