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기 시작한 1980년대 중반 무렵 시집 한 권과 학교식당의 비빔밥 값은 비슷했다. 난 매일 아침 에즈라 파운드나 스테판 말라르메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비빔밥을 선택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을 해야 했다. (4) 당시 나는 앞길이 캄캄했다. 도대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나를 괴롭혔다. 고등학교 시절 난 이른바 모범생이 아니었다. 자율학습시간에 자리를 지키는 것보다 학교 근처에 있었던 정독도서관에 가서 소설책 읽는 게 더 행복했다. (4) 미국 문학비평계의 거목인 헤럴드 블룸은 “독서는 우리가 달성 할 수 있는 유일한 세속적 초월”이라고 일갈했다. (5) 영화에는 조선인 아나키스트 세르게이를 사랑하는 한 일본 여인이 등장한다. 비운의 사랑인 셈이다. 언제 어떤 운명 앞에 놓일지 모르는 식민지 청년을 사랑하는 그녀의 모습은 담담하고 처연했다. 어느 날 그녀의 집을 방문한 누군가가 침대 머리맡에 아나키스트 관련 책이 놓여 있는 걸 보고 그녀에게 “왜 그런 책을 읽냐?”고 물었다. 곧이어 나온 그녀의 대답은 지금도 내 머릿속에 생생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사상(思想)이니까요.” (12) 아나키즘의 기본 원리를 알려면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 『만물은 서로 돕는다』(르네상스 펴냄)을 읽어야 한다. 해설서인 『세계를 뒤흔든 상호부조론』(하승우 지음, 그린비 펴냄)도 서점에 나와 있다. 아나키즘은 적자생존이나 생존경쟁이 아닌, 상호협력과 연대가 인간 사회를 이끌어온 힘이라고 생각하는 사상이다. (13) 최근 아나키즘을 닮은 사회운동이 고개를 들고 있다. 넓게 보자면 생태주의 환경운동, 대안교육 운동 등이 상호부조론에 바탕에 두고 있는 운동들이다. 무한경쟁에 지친 다수의 대중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는 이 운동들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건 아나키즘이 인간의 근현대를 형성한 중요한 사상이었다는 사실이다. (14) 책에 따르면 체 게바라는 혁명이 성공한 쿠바에서 국립은행 총재를 지내던 시절에도 사탕수수 밭에서 노동을 했다. 이런 게바라를 보고 사르트르는 ‘우리 세기에 가장 성숙한 인간’이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22) 그렇다. 지식은 밥만 먹고는 살 수 없다. 사회와 인간 공동체에 대한 고민, 천박한 권력에 대한 분노,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갈망이 허균으로 하여금 사회 전복을 꿈꾸게 했던 것이다. (25) 영국의 칼럼니스트인 프랜시스 원의 『마르크스 평전』(푸른숲 펴냄)은 사실 그대로의 마르크스를 재현하기 위해서 애쓴 책이다. 마르크스와 관련한 그간의 저작들과 달리 본격적인 평전의 형식으로 마르크스의 인간적인 면모와 생애를 다루고 있다. (28) 철학자 강유원이 자신의 마르크스 해설서를 통해 ‘공산당선언은 좌파를 위한 자기계발서’라고 일갈한 부분이 세삼 신선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세상은 지금보다 나아져야 한다는 믿음이 공감대 속에서 엄존하기 때문이다. (32) 공격용 헬기의 대명사로 불리는 아파치(Aphache)라는 이름은 누구나 알다시피 미연방에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인디언 부족의 이름에서 따왔다. 이라크 전을 비롯한 전쟁에서 초반 공세 때 적을 초토화시킨, 미국이 자랑하는 크루즈 미사일의 이름은 토마호크(Tomahawk)다. 토마호크는 인디언들이 손으로 던져서 상대를 제압하던 손도끼를 의미하는 말이다. 자신들이 자랑하는 신무기에 자신들이 말살시킨 인디언의 상징을 쓴다는 건 그들이 지닌 역사 콤플렉스를 쉽게 보여주는 사례다. (34) 범죄 전문가이자 뉴욕주립대 교수인 루치아노 이오리초는 『암흑가의 대부 알 카포네』(아라크네 펴냄)라는 책을 통해 카포네 신화의 이면을 밝힌다. 미국 주류사회와 미디어는 카포네를 ‘잔인함의 화신’으로 이용했다. 하지만 폭력 조직 두목이었고 범죄자였던 그에게도 다른 면모가 숨겨져 있었다. (34) 『엘비스, 끝나지 않은 전설』(팻 H. 브로스키. 피터 해리 브라운 지음, 이마고 펴냄)에서는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차라리 신성한 한 인간의 일대기를 만날 수 있다. (36) 『타이쿤』에서 다루는 네 인물은 철강왕 카네기. 정유 재벌 록 펠러, 철도 재벌이면서 금융 조작의 귀재였던 제이 굴드, 은행가인 JP모건이다. 책은 이들 삶을 씨줄 날줄로 연결해 보여준다.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개성과 특질을 비교하면서 미국 근대 경제사를 정리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40) 2차 세계대전은 미국을 대공황 그늘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41)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 속의 금붕어’ 재일 조선인이자 일본 도쿄게이자이대학 법학부 교수인 서경식은 재일 조선인들의 처지를 루쉰의 글을 인용해 이렇게 비유한다. (45) 인간은 결코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이지 않다. 단지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이고 싶어 할 뿐이다. 특히 급박한 순간이거나 자신의 이익이 직결되어 있는 문제가 발생할 때 인간은 결코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이지 않다. (52) 미국의 과학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베레비는 자신의 책 『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에코리브르 펴냄)에서 한 술 더 떠 ‘인간은 서로 비슷한 사람들이 한 패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한 패가 되고 나서 비슷해진다’ 고 단언한다.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설득력 있는 논리다. (52)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로렌 슬레이터 지음, 에코의서재 펴냄)는 인간 본성에 대한 통념을 뒤집은 놀라운 심리 실험에 대해 논한다. (55) 심리학 발전 과정에서 학자들이 벌인 실험 결과들은 늘 놀라웠다. 사람은 보상에 쉽게 움직인다. 재미있는 것은 규칙적인 보상보다는 불규칙적이고 간헐적인 보상에 더 강력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이다. 남자들이 카지노에 빠져 빈털터리가 되면서도 도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나, 여자들이 매일 정한 시간에 전화를 해주는 예측이 가능한 착한 남자보다 어쩌다 한 번씩 전화를 거는 못된 남자에게 매달리는 이유도 이런 본성 때문이다. (56) 인간은 소화가 되는 음식이라고 무엇이든 먹지는 않는다. 자신이 속한 사회가 암암리에 작성해 온 ‘먹어도 되는 음식 목록’에 올라 있는 음식만이 식욕의 대상이 된다. 결국 식욕까지도 사회적 요인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57)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부시 행정부에서 언론비서관을 지낸 애리 플래이셔의 저서 『대변인』(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은 일종의 회고록이다. 이 책에는 백악관과 기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숨 가쁜 비사들이 담겨 있다. (63) 1,000쪽에 가까운 방대한 분량으로 출간된 『퓰리쳐』(데니스 브라이언 지음, 작가정신 펴냄)는 대중 언론의 시대를 연 조셉 퓰리처의 전기다. (65) 알 자지라의 활동상을 추적한 책 『알자지라』(모하메드 엘나와워. 아델 이스칸다르 지음. 홍익출판사 펴냄)을 보면 알 자지라에 대한 궁금증은 어느 정도 풀린다. (69) 『논어』에 보면 ‘자공이 재산을 잘 모으는 건 사물 이치에 적중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온다. 공자는 자공의 경제 능력을 사물의 이치를 깨우침으로써 오는 대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74) 프리드먼이 1962년 『자본주의와 자유(Capitalism and Freedom)』라는 저서를 출간했을 때 언론과 학계는 ‘매우 극단적인’ 혹은 ‘매우 도전적인’이라는 수식어를 써가며 프리드먼의 주장을 다소 위험한 것으로 몰아세웠다. 그러나 프리드먼이 승리를 거두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75) 필 듀센베리가 쓴 책 『천만불짜리 아이디어』(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에는 세계 초일류 기업들의 운명을 바꾼 순간들이 소개된다. 기업들의 운명을 바꾼 힘은 통찰력에서 나왔다. 이 책은 기업들의 광고 성공담이라기보다는 통찰력에 관한 책이다. (79) 듀센베리는 ‘통찰력은 머리로만 느끼던 것을 마음으로 느끼게 해주는 능력이 있다’라고 말한다. (81) 미국의 대표적인 시사평론가이자 미국 최고 비즈니스 전기작가인 론 처노는 그가 쓴 『금융제국 J.P.모건』(플래닛 펴냄)을 통해 19세기 중반 런던의 이름 없는 금융회사로 출발해 전무후무한 금융제국을 건설한 모건 가문의 전모를 파헤치고 있다. (81) 월터 블록이 쓴 『디펜딩 더 언디펜더블』(지상사 펴냄)은 암표상을 정당화한다기보다는 이른바 ‘공공의 적’으로 불리는 직업들을 통해 경제의 속성을 드러내 보여주는 책이다. (85) 독일 유력 일간지《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경제부장인 하노 벡은 『사랑의 경제학』(더난출판사 펴냄)이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연애와 결혼, 이혼에 관한 손익계산서를 만들어낸다. (87) 최고의 이익은 자신뿐 아니라 집단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해야만 실현이 되는 거라고. (87) 아이들은 모른다. 아버지가 직장 상사에게 자존심 상할 만큼 욕을 얻어먹고, 혹은 출세한 대학 동창 앞에서 초라함을 느끼고, 못다 이룬 꿈을 가슴에 안은 채 살아가는 존재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모른다. (94) 나 역시 부모에게 샤프펜슬을 사 달라고 몇 날 며칠을 밤낮 없이 졸랐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에게는 하루하루가 힘든 날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샤프펜슬 때문에 잔뜩 독이 오른 3남매가 자는 동안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숨 섞인 대화를 나누었고, 나는 잠결에 그 이야기를 들었다. 약간의 미안함에 시달리다 잠이 들었는데 다음날, 학교에서 필통을 열어본 나는 깜짝 놀랐다. 필통 안에는 어쩌면 그렇게 예쁘게 깎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만큼 잘 깎인 연필들이 들어 있었다. 샤프펜슬을 못 사주는 무능한 아버지는 밤새 3남매의 연필을 깎아주었던 것이다. 샤프펜슬보다 더 뾰족하고 가늘게 말이다. (95) ‘악녀’라고 불리며 국제 지명수배 명단에 올랐던 일본의 전설적인 적군파 간부 시게노부 후사코 역시 팜므 파탈이다. 그의 옥중 수기 『사과나무 애라서 너를 낳으려 했다』(지원북쿨럽 펴냄)는 바랜 흑백사진처럼 잊혔던 한 시대의 전설에 관한 이야기다. (100) 프랑스 최초 여성 장관이자 작가인 프랑수아즈 지루는 이 같은 시각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인간 루 살로메를 분석한다. 그 결과물이 『루 살로메: 자유로운 여자 이야기』(해냄 펴냄)다. 1861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루는 형이상학, 종교학 등을 공부한 후 취리히로 거처를 옮겨 철학, 신학, 예술사를 섭렵했다. 그녀에게는 남자의 의식 세계를 파고드는 비범한 매력이 있었다고 한다. 왜 그녀는 남자의 의식을 흔들 수 있었을까. 루는 자유인이었다. 루는 세 명의 지성 모두에게 매력을 느꼈고 그들과 지내는 시간을 즐거워했다. 그러나 그들과 사는 것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19세기 말 여성에게 결혼은 영혼은 반납하는 일과 동일했기 때문이다. (107) 이왕주는 ‘가장 지혜로운 생의 목표는 진정한 쾌락주의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적인 쾌락, 예술적 감동, 성적 쾌락, 미각과 시각의 쾌락 등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라는 것이다. 그는 공자나 소크라테스 같은 위대한 현자들은 쾌락을 거부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것을 현명하게 추구했던 사람들이라고 단정한다. (111) 행복도 진화한다는 주장을 제기하는 학자가 있다. 프랑스 리옹대학의 역사학 교수인 미셀 포쉐다. 그는 『행복의 역사』(열린 터 펴냄)라는 책에서 행복의 의미는 해당 시대의 패러다임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한다. (114) 이효석 탄생 100주년을 맞아 출간된 산문집 『사랑하는 까닭에』(예옥 펴냄)는 그가 생전에 남긴 산문 42편을 모은 책이다. (115)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명감독 구로자와 아키라의 대표작 중 (데르수 우잘라)라는 영화가 있다. 1976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과 모스크바영화제 그랑프리를 받으며 아시아 영화의 가치를 세상에 알린 이 영화는 사냥꾼 데르수 우잘라가 주인공이다. 데르수 우잘라는 실존 인물로, 그는 시호테 알린 산맥 지역을 탐사한 러시아 인 아르세니에프의 길 안내를 맡았던 퉁구스족 남자다. (117) 철학자 도올 김용옥은 자신의 책에서 ‘장자가 말하는 성인은 데르수 우잘라 같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118) 산(山)이야기를 담은 수기치고 나쁜 책이 없다는 사실이다. 산악인들의 수기는 문장력이나 표현력이 다소 떨어질 수는 있어도 극한의 상황을 겪은 경험담은 손끝으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중량감을 지니고 있다. 죽음의 공포와 외로움 앞에서 자기 자신을 들여다본 인간만이 말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누가 감히 그들의 경험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있으랴. (121) 낚시에서 고기를 잡고 못 잡고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내가 인생의 어느 한 시기에 흐르는 물을 잠자코 지켜봤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이다. (125) ‘낯선 정적이 감돌았다. 새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새들이 먹이를 쪼아 먹던 뒷마당은 버림받은 듯 씁쓸했다. 죽은 듯 고요한 봄이 온 것이다.’ 이렇게 시작하는 여성 생물학자 레이첼 카슨의 책 『침묵의 봄』(에코리브르 펴냄)은 20세기 최고의 환경 도서라는 찬사를 듣는 책이다. (128) 『미생물의 힘』(사이언스북스 펴냄)이라는 책을 쓴 버나드 딕슨은 유럽 문명의 힘은 미생물에서 비롯됐다고 전한다. (130) 미국 와이오밍대학 곤충학 교수 제임스 웽버그가 쓴 『곤충의 유혹』(휘슬러 펴냄)은 곤충의 교미가 얼마나 경이로운 생명 현상인지를 알려준다. 책에 나오는 곤충이 사랑 법은 에로틱하다 못해 엽기적이기까지 하다. (132) 이름 난 환경 책 저자인 존 라이언의 『지구를 살리는 7가지 불가사의한 물건들』(그물코 펴냄)은 읽을수록 고개가 끄덕여진다. 지구를 살리는 대표적인 물건은 자전거다. 자전거는 인류가 발명한 최고 운송 수단이다. 소나 말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되고, 자동차처럼 치명적인 배기가스를 내뿜지도 않으며, 교통사고의 두려움에서 자유롭다. 좋은 운동이 되며 주차 공간이나 도로를 위해 자연을 훼손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속도로 자동차가 계속 늘어난다면 지구의 대기오염은 심각한 지경에 빠질 것이 분명하다. (134)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 장 그르니에가 쓴 『지중해의 영감』(한길사 펴냄)은 삶과 죽음의 밀접한 관계를, 그 사이에 놓인 인간의 숙명을 표현하고 있다. (136) 낮은 모든 것을 나누어 놓는다. 예쁜 것과 추한 것,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나누어 놓는다. 그러나 밤이 찾아오면 모든 것은 어둠 속에 묻힌다. 그래서 밤은 낮에는 깨닫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해준다는 말을 장 그르니에는 하고 싶었던 것이다. (137) 미셸 드 몽테뉴는 ‘죽는 것에 대해 가르치는 사람은 사는 것에 대해 가르치는 사람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캐나다 출신 외과 의사인 스펜서 내들러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는 수없이 많은 죽음을 목격했다. 그리고 언젠가 자기도 죽을 것이라는 걸 안다. 그에게 죽음은 삶의 일부다.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는 『고통과의 화해』(EJB 펴냄)라는 책을 통해 가장 가까이에서 본 죽음에 대해 얘기한다. 책에는 죽음을 앞둔 한 여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137) ‘할머니, 할아버지는 연극에 출연하는 손주를 보기 위해 세 시간 동안 꼬박 앉아서 작가도, 내용도 모르는 그리스 희극을 끝까지 본다.’ 제목이 눈길을 끄는 책 『나이 들어가는 것의 아름다움』(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지음,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 펴냄)을 보다가 발견한 기막힌 구절이다. (139) 『내 안의 빛나는 1%를 믿어 준 사람』(제인 블루스틴 지음, 푸른숲 펴냄)은 영원히 잊지 못할 선생님에 대한 여러 사람의 추억을 모은 책이다. 선생님이 따뜻한 말 한마디, 관심, 신뢰를 통해 건강한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들의 체험들이 실려 있다. (145) 학교로 돌아온 나에게 선생님은 딱 한 마디를 하셨다. “난 네가 좋은 놈이라는 걸 안다.” 그 말 한 마디를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난 잊을 수 없다.(146) 프랑스의 저명한 정신과 의사 파트릭 르무안의 『유혹의 심리학』(북플리오 펴냄)은 이렇게 서로 다른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서로를 유혹하고 세상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지를 탐구한 책이다. 남자는 전반적인 여자의 미모에 반한다. 예쁘면 사족을 못 쓰는 게 남자다. 몇 가지 흠이 있더라고 남자는 예쁘기만 하면 개의치 않는다. 그러나 여자는 특정한 느낌에 유혹된다. 우연히 보게 된 섬세하고 우아한 손가락이나 칼날처럼 다려진 바지 주름, 우연히 마주친 슬픈 눈빛 등 어느 순간 강렬한 느낌을 받은 부분에 여자는 유혹된다. 저자는 남자와 여자의 다른 사랑 법을 멋지게 정의해 낸다. ‘남자는 욕망하는 상대를 사랑하고, 여자는 사랑하는 상대를 욕망한다.’ (148) 대한민국 근대 화단을 대표하는 화가 10인의 아내를 탐색한 독특한 책이 있다. 미술사학도정필주가 쓴 『화가의 빛이 된 아내』(아트북스 펴냄)다. 책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박수근을 비롯해 이중섭, 김환기, 김기창, 이응노, 하인두, 문신, 양수아, 방길웅, 장욱진 등 한국 화단의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아내들이다. (151) 물을 빼앗긴다는 건 곧 자기 자신과 가족, 더 나아가 집단의 죽음을 의미했다. (153) 매일 매일 가스실에서 죽어간 동료들의 시신을 치우면서 언제일지 모를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들에게 하루를 견디는 지혜란 그저 ‘생각하지 않는 것’밖에 없었다. 레비는 수용소 시절의 기록을 『이것이 인간인가』(돌베개 펴냄)라는 책에 남겼다. (163) 알로이스 프린츠가 쓴 『한나 아렌트』(여성신문사 펴냄)는 20세기 중반을 관통한 그녀의 삶과 철학을 정밀하게 분석해 낸다. 여성과 유대인이라는 두 개의 굴레를 쓰고 어린 시절을 보낸 한나 아렌트는 ‘무슨 일이 있어도 머리 숙이지 말고 저항하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가슴에 안고 살았다. 그러나 그녀의 철학적 여정은 쉽지 않았다. (169) 전기 작가 안토니아 펠릭스가 쓴 『콘돌리자 라이스(CONDI)』(일송북 펴냄)는 미국 국가안보 보좌관으로 전 세계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는 콘돌리자 라이스가 주인공이다. 여기서 ‘콘디(Condi)’는 부시 대통령이 지어준 애칭이다. (176) 결국 자신의 시계 유전자에 맞는 일을 찾아서 종사하는 사람일수록 삶이 행복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가 심리적 시간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집중력 조절’밖에 없다. 저자인 슈테판 클라인은 어떻게 집중하고 어떻게 관리하느냐 따라 인간은 시간의 노예일 수도 있고, 시간의 창조자일 수도 있다고 조언한다. (192) 『눈물이란 무엇인가』(태학사 펴냄)는 개인적으로 사서 보는데 그치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까지 한 책이었다. (207) 튀는 맛은 없지만 깊은 맛이 일품이다. (209) 히로히토의 종전조서를 분석한 책 『1945년 8월 15일, 천황 히로히토는 이렇게 말했다.』(고모리 요이치 지음, 뿌리와이파리 펴냄)는 나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일본인이 쓴 책이라 더욱 그랬다. (218) 론 버니의 『독수리의 눈』(우리교육 펴냄)은 호주 원주민 이야기를 담은 동화책이다. 이 책은 ‘구답’과 ‘유당’이라는 두 호주 원주민 어린이들의 눈을 통해 애보리진의 슬픈 역사를 전해준다. (223) 영국사(史)라는 드라마를 가장 훌륭하게 정리했다고 평가 받는 대작 『제국』(민음사 펴냄)은 400년간에 걸쳐 번영한 대영제국의 역사와 세계화를 다루고 있다. 저자인 닐 퍼거슨은 영국에서 태어나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하고 모교 교수를 거쳐 40대 초반에 하버드대 경제학부 교수로 스카웃 된 인물이다. 근대사에 대한 정통 학설을 거부한 수정주의 역사가로 유명한 그는 이 책에서 영국이 어떻게 지배했고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세밀하게 정리하고 있다. (224) 유명한 전기작가인 안토니아 프레이저는 800쪽이 넘는 『마리 앙투아네트』(현대문학 펴냄)라는 책을 통해 그녀에 대한 오해를 벗겨낸다. 오스트리아 인이었던 앙투아네트는 양국의 동맹관계 유지를 위한 정략결혼의 희생양이었다. (229) 작가 이원규가 쓴 『김산 평전』(실천문학사 펴냄)은 민족사의 비운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했던 한 식민지 지식인 청년의 삶을 되살려낸 책이다. (231) 『독살의 세계사』(미즈호 레이코 지음, 해나무 펴냄)라는 책을 보면 나폴레옹이 독살로 죽었다는 설이 상당히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236) 역사 저술가인 이바르 리스너의 『로마 황제의 발견』(살림출산사 펴냄)은 로마 황제를 ‘인간’이라는 측면에서 분석한다. 로마의 황제들은 카리스마를 갖춘 절대 권력자였지만 어느 순간 쫓겨나거나 죽임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는 존재였고, 콤플렉스와 욕망에 사로잡힌 나약한 인간이기도 했다. (239) 세 권짜리 『비잔티움 연대기』(바다출판사 펴냄)는 외교관 출신인 영국의 유명 역사 저술가 존 노리치가 비잔티움 역사를 복원해 낸 책이다. (242) 영국 웨일스의 스완시대학 정치학 교수인 클라이브 폰팅 박사는 20세기는 야만의 역사였다고 평가한다. 그의 저서 『진보와 야만』(돌베개 펴냄)은 사람들이 중단 없는 전진의 시기였다고 굳게 믿고 있는 20세기에 대해 새로운 잣대를 들이댄다. (244) 평등이라는 측면도 봉건시대와 다름없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세기 들어 거의 모든 나라에서 노예제나 인종차별은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그러나 자본이 새로운 계급을 만들어냈고 그것은 귀족제도와 다름없이 세습되고 있다. (245) 페이건의 저서 『기후, 문명의 지도를 바꾸다』(예지 펴냄)는 기후의 대한 인류의 취약성을 지적하고 기후 변화에 적응할 것인가 사멸할 것인가를 논한 책이다. (248) 이휘소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 강주상 고려대 물리학 교수가 쓴 『이휘소 평전』(럭스미디어 펴냄)을 보면 이휘소가 핵무기 개발과 관련됐다는 이야기는 일종의 소설적 허구다. 우선 이휘소는 핵물리학자가 아닌 소립자 물리학자다. (256) 미국의 기자인 어니스트 볼크먼은 자신이 쓴 책 『전쟁과 과학, 그 야합의 역사』(이마고 펴냄)에서 인류의 과학문명은 전쟁을 먹고 자랐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258) 국내에 출감된 책 『장미의 기억』(창해 펴냄)은 생텍쥐베리 부인인 콩쉬엘로가 그와 함께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쓴 회고록이다. (271) 시인은 혼자 술을 마신다. 그러나 혼자가 아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달이 떠 있고, 달빛 때문에 그림자가 생겼다. 달과 그림자 그리고 나, 그러니 셋이서 술을 마시는 것과 마찬가지다. 달에 취하고 술에 취했던 그들 삶은 우리에게 시를 남겨줬다. (278) 손가락 몇 개만 움직이면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늘 기다림에 패배한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그 기다림마저 뛰어넘는 미학을 모르고 살고 있는 것이다. (279) 결론을 내린 것 같지만 결론이 없고, 텅 비어 있는 것 같지만 가득 찬 아름다움은 우리 옛시 특유의 정서다. (280) 평범한 일상에서 깨끗한 정신의 미학을 길어 올렸던 임영조 시인도 2003년 암으로 세상을 뜨기 전에 쓴 <화려한 오독>이라는 시에다 ‘절명시’라는 표현을 그대로 썼다. ‘장마 걷힌 칠월 땡볕에’ 지렁이가 슬슬 세상을 잰다/ 시멘트 길을 온몸으로 긴 자국/ 행서도 아니고 예서도 아닌/ 초서체로 갈겨쓴 일대기 같다/ 한평생 초야에 숨어 굴린 화두를/ 최후로 남긴 한 행 절명시 같다’ (282) 읽으면 읽을수록 감칠맛이 나는 이 문장은 중국의 뛰어난 역사학자이자 예술이론가 위치우위의 책 『중국문화답사기』(미래 M&B 펴냄)에 실린 <폐허예찬>이라는 글의 한 부분이다. 현대 중국을 대표하는 지식인인 위치우위의 글은 ‘흔적의 미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그는 거대한 역사나 웅장한 궁궐을 말하지 않는다.(287) ‘밤비의 매력은 인생이라는 여행길에서 찾을 수 있다. 밤비가 갑자기 솟구치는 야심을 삭혀준 적이 있으며, 들썩거리는 마음을 달래준 적이 있다. 또 일촉즉발의 싸움을 저지해 주거나 흉악한 음모를 사라지게 해준 적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물론 밤비로 인해 웅장한 큰 뜻이나 용감한 전진 또는 강한 열정이 사그라든 적도 있지만 말이다.’(288) 페사지만을 돌아본 여행기 『절터, 그 아름다운 만행』(호미 펴냄)이 눈길을 끈다. 스스로를 ‘다큐멘터리언’이라고 칭하는 이지누는 카메라를 둘러메고 전국의 폐사지를 돌아다녔다. (292) 늘 가득 찬 것만 보며 살다 우연히 폐허를 본다는 것은 순간의 깨달음을 가능하게 해준다. 텅 빈 채 모든 움직임이 정지된 폐허는 그 쓸쓸함으로 내 마음을 다시 들여다보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293) 카르나제스는 『울트라마라톤 맨』(해냄 펴냄)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위해 달리는지, 어디로 달리는지를 얘기한다. 그리하여 어떻게 진정한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었는지를 말해 준다. (295) 달리기는 너무 고독한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끔씩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카르나제스는 바로 그 고독함이 뛰는 사람을 신선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과 보내는 시간의 행복을 알게 해준다고 답한다. 지금 당장이라도 이 책을 내려놓고 달려 나가고 싶다. (296) 저명한 생물학자이자 마라토너인 베른트 하인리히 미국 버몬트대학 교수는 『우리는 왜 달리는가』(이끼북스 펴냄)라는 책에서 이 같은 전율을 느끼는 원인에 대해 ‘달리기는 전혀 잡것이 섞이지 않은 순수하고 강렬한 열정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297) 미네소타주립대 교수인 역사학자 조지프 아마토는 ‘걷는 건 곧 말하기’라고 밝힌다. 걷는 행위 자체가 소통이라는 의미다. 그의 걷기 예찬을 담은 책 『 걷기, 인간과 세상의 대화』(작가정신 펴냄)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걷기’를 통해 인류가 소통하고 이루어온 것이 무엇인지를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다. (298) 작가 박미경이 글을 쓰고 이규철이 사진을 찍은 『같이 왔으니 같이 가야지예』(이른아침 펴냄)는 우리가 잃어버렸던 옛길과 그 길에서 만난 이웃들의 정취를 전해준다. (301) 일본의 대표적인 지성, 다치바나 다카시는 『에게: 영원최귀의 바다』(청어람미디어 펴냄)라는 책에서 아토스 반도를 다녀온 소감을 말했다. (303) 그가 인터넷에서 쓴 글이 『길 위에 서자 비로소 내가 보였다』(김태우 지음, 거름 펴냄)라는 책으로 나왔다. 이 책은 여행의 기록이라기보다는 사색의 기록이다. 그는 낯선 도시의 시계방 앞에서 아버지를 떠올리고, 새벽 기차 안에서 자신의 오만함을 반성하며 홀로 눈물을 흘렸다. 그는 길 위에서 여행은 혼자서 하는 고해성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들어줄 누구도 없이 자신에게 하는 고해성사. (304) 네덜란드 출신의 미국인 헨드릭 빌렘 반 룬은 손꼽히는 문화사학자다. 한국에서 출간되기 시작한 그의 전집 시리즈 중 한 권이 바로 『관용』(서해문집 펴냄)이다. 반 룬은 인간의 역사를 ‘관용과 불관용의 역사’로 평가한다. 일리가 있는 분석이다. (307) 사강 소설의 매력은 한마디로 ‘고독감’이다. 그녀의 네 번째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여백미디어 펴냄)에서도 소설의 주요 모티프는 고독이다. 40대 중년 여성의 고독을 담은 소설의 한 대목을 옮겨보자.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죄로 당신을 고소합니다. 사랑으로 그대로 지나치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등한시한 죄, 핑계와 편법 그리고 체념으로 삶을 영위한 죄로 당신을 고소합니다. 피고를 평생 고독형에 처하는 바입니다.’ (310)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이자 문화인류학자인 클로테르 라파이유는 이 같은 현장을 ‘컬쳐 코드’라는 말로 설명한다. 라파이유는 그가 펴낸 책 『컬쳐 코드』(리더스북 펴냄) 에서 어떤 문화든 고유한 정신적 경향을 가지고 있음을 밝혀낸다. (310) 『세상을 바꾼 법정』(마이클 리프 외 지음, 궁리 펴냄)이라는 책에는 미국 현대사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재판들이 등장한다. (312) 인간은 대개 하루 24시간의 3분의 1은 노동하는 데 쓰고, 3분의 1은 잠자는 데 쓰고, 나머지 3분의 1은 활동하는 데 쓴다. 노동하는 데 쓰는 3분의 1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 사람이 마르크스고, 잠자는 데 3분의 1의 메커니즘을 규명한 사람이 프로이트다. 먹고, 마시고, 만나고, 즐기고, 꾸미고, 사랑하고, 공부하는 나머지 3분의 1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 사람은 프랑스의 세계적인 석학 피에르 부르디외다. 그 외 저서 『구별짓기』(새물결 펴냄)의 한국어 번역서는 1,000쪽에 가까운 방대한 분량이다. (314)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불교 경전 수파니파타에 나오는 구절이다. (318) 예리한 시각으로 한국사회의 병리 현상을 꾸준히 비판해 온 논객 강준만은『고독한 한국인』(인물과사상사 펴냄)에서 이렇게 말한다. ‘한국인은 고독할 겨를이 없을 것 같지만, 사실은 고독을 경험해 볼 기회가 거의 없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역설 같지만 그래서 한국인은 고독하다. 자신보다는 남을 더 의식하고 살아간다. 한국인들은 남들로부터 인정받아야만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는 인정투쟁의 대가들이다.’(319) 일본의 대표적인 역사 저술가 진순신이 쓴 『페이퍼 로드』(예담 펴냄)라는 책은 중국에서 발명된 종이가 유럽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해졌는지를 탐구한 책이다. 흥미로운 건 동양의 종이가 서양에 전해진 결정적 계기의 중심에는 한국인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름 아닌 고선지다. (321) 두 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20년 동안 집 밖을 나오지 못했던 장 의원은 책을 통해 인생을 배웠다. 그의 별명은 ‘만리장서’다. 평생 1만 권의 책을 읽었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장 의원은 독서를 통해 얻은 삶의 진정성을 담아 『깊은 긍정』(지식의 숲 펴냄)이라는 책을 냈다. (322) 책이 나오자 이 정감 넘치는 이야기는 독자들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고, 헬렌 한프는 일약 유명 작가가 됐다. 이 책이 바로 『채링크로스 84번지』(궁리 펴냄)다. 이 이야기는 앤서니 홉킨스 주연의 영화 <84번가의 연인>으로도 만들어졌다. 단순하고 재미없어 보이는 서점이라는 공간이 동적인 매체에 맞지 않을 것 같지만 영화는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었다. 이 영화는 훗날 서점이 등장하는 많은 영화의 원전 역할을 했다. 대표적인 영화가 <노팅힐>,<유브 갓 메일>, <아름다운 세르쥬>, <4월 이야기>등이다. 모두 나름대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이다. 한국 영화도 있다. <국화꽃 향기>, <화이트 발렌타인>, <밀애>등에도 서점이 중요한 공간으로 등장한다. (324) 세계 문단을 쥐고 흔들었던 그들이 그토록 지키려고 했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서점은 어떤 서점이었을까. 국내에 출간된 책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뜨인돌 펴냄)는 이 서점의 창업자인 실비아 비치가 쓴 회고록이다. (324)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1941년 결국 문을 닫았다. 하지만 제 2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가 1964년 문을 열었고 다시 보헤미안들의 휴식처가 됐다. 서점 주인인 조지 휘트먼은 실비아의 장서를 모두 인수했고 서점 이름까지 물려받았다. 영화 <비포선셋>에 등장했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이제 파리의 문화 유산이자 관광명소가 됐다. (327) 토마스 만은 최소치의 실제적, 개인적 경험을 가지고 최대치의 문학을 이끌어낼 줄 알았다. 이처럼 그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도록 가동시킨 에너지야말로 천재성이라 하겠다. (328) 프랑스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피에르 아술린이 쓴 『가스통 갈리마르』(열린책들 펴냄)은 바로 이 갈리마르 출판사의 창업자인 가스통 갈리마르를 조명한 책이다. 갈리마르가 발굴하고 키워낸 작가들은 세계 문학사에 금자탑을 세웠다. 갈리마르가 없었다면 카뮈와 사르트르 외에도 프루스트, 생텍쥐페뤼, 말로, 카프카, 토마스 만, 밀란 쿤데라의 명성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330) 조선으로 돌아온 최부에게 성종은 중국에서 있었던 일을 문서로 보고할 것을 명한다. 명을 받은 최부가 8일 만에 써낸 5만 자 분략의 책이 바로 『표해록(漂海錄)』이다.『표해록』에 남아있는 명나라 전기의 사회, 정치, 군사, 경제, 문화, 교통에 관한 기록들을 보면 현대 중국학자들도 탄복을 금치 못한다고 한다. (333) 규장각 학예연구사인 신병주는 그의 책 『조선 최고의 명저들』(휴머니스트 펴냄)에서 조선 최고 명저들의 역사적 배경과 저자의 사상을 파헤치고 있다. 『표해록』을 필두로 신병주가 거론하는 책들은 모두 수백 년 전에 쓰여 진 책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대단한 것들이다. (333) 『영어의 탄생』(사이먼 윈체스터 지음, 책과함께 펴냄)은 옥스퍼드 영어 사전이 탄생한 70년의 역사를 담은 책이다. 1857년 빅토리아 시대에 시작돼 1928년 초판 10권이 완간되기까지 70년의 역사는 영어가 세계인의 보편어로 재탄생한 역사이기도 하다. 옥스퍼드 사전이 권위를 얻은 것은 완벽성, 정확성과 함께 무엇보다 기존 출판물이나 문서 등에서 인용문을 발췌해 어휘의 뜻을 정의하는 편집 방식을 따랐기 때문이다. (334) 한국기록관리협회장을 지낸 최정태 부산대 명예교수는 그의 책 『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한길사 펴냄)에서 미국 의회도서관을 돌아보고 감탄한 나머지 “연옥이라도 좋다. 도서관만 있으면 된다”는 말을 읊조린다. (335) 『이상한 과일』은 음악평론가 김진묵이 현암사에서 펴낸 책으로, 빌리 홀리데이가 부른 재즈 명곡에서 제목을 따왔다. 김진묵이 재즈에 관한 책 제목을 ‘이상한 과일’로 정한 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이 곡에는 재즈의 모든 것을 웅변해 주는 상징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337)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의 작가이자 방송인인 스터즈 터클은 자신의 책 『재즈, 매혹과 열정의 연대기』(이매진 펴냄)에서 재즈사에 족적을 남긴 열세 명의 뮤지션을 통해 슬프고도 열정적인 재즈의 역사를 들려준다. (339) 구스타프 말러는 마지막 낭만주의 작곡가이자 최초의 근대적인 지휘자였다. 말러의 절친한 친구이자 음악적 동료였던 부르노 발터가 쓴 『사랑과 죽음의 교향곡』(마티 펴냄)은 인간 말러의 내밀한 부분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그는 말러를 처음 만났을 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1894년 6월 그의 교향곡 1번이 초연되었을 때 비평가들은 이 황폐한 분위기의 작품에 혹평을 해댔습니다. 그는 길쭉한 얼굴에 고상한 이마를 칠흑 같은 머리칼로 에워쌌고, 안경 뒤의 눈은 아름다웠습니다. 이 사람이 자로 인상적이고 악마적이며 사람을 오싹하게 만드는 지휘자였습니다.’(342) 영국의 미술사가인 데릭 펠은 고흐의 광기의 원인은 실연(失戀) 때문이었다고 주장한다. 수차례에 걸쳐 사랑에 실패하면서 점점 비 정상인이 되어갔다는 이야기다. 데릭 펠은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고흐의 삶과 작품 세계를 치밀하게 추적한다. 그 결과물이 국내에 출간 된 『반 고흐, 사랑과 광기의 나날』(세미콜론 펴냄)이다. (344) 『노동하는 기타, 천일의 노래』(배윤경 지음, 이후 펴냄)는 남아메리카의 전설적인 저항 가수 빅토르 하라와 그가 주도한 노래운동을 뜻하는 말 ‘누에바 깐시온’에 대해 쓴 책이다. (348) 알파치노가 주연한 영화 <여인의 향기>에는 감미로운 탱고선율이 흘러나온다. 탱고의 황제 카를로스 가르델의 <포르 우나카베차>라는 명곡이다. 우리말로 하면 ‘머리하나 차이로’라는 뜻이다. (349) 음악 칼럼니스트 이용숙이 쓴 『춤에 빠져들다』(열대림 펴냄)는 춤에 담긴 세상사가 감동으로 다가오는 책이다. 우리는 아직도 ‘춤’하면 ‘춤바람’을 떠올리지만 춤을 그렇게 가벼운 대상이 아니다. 인류의 갈망과 좌절이 만들어낸 ‘몸짓’이기 때문이다. 특히 탱고는 그렇다.(350) 독일의 음악 관련 저술가인 헤르베르트 하프너가 쓴 책 『푸르트벵글러』(마티 펴냄)는 제대로 된 평전이다. 저자 하프너는 푸르트벵글러가 예술지상주의자였다고 말한다. 그는 이데올로기나 정치 세계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고, 문화가 정치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외곬의 예술가였다는 것이다. (354) 법학자이자 저술가인 박홍규 영남대 교수가 쓴 『예술, 정치를 만나다』(이다미디어 펴냄)는 위대한 예술가 8명의 정치적 코드를 흥미롭게 정리한 책이다. (357) 『감성지능』대니얼 골먼, 비전코리아 (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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