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으로 들어가서도 성실한 목회자로 최선을 다하라는 권면이 한 동안 이어진 후에야 신도들에게 관심을 돌립니다. 14~18절을 보겠습니다.
14 신도들에게 이것을 일깨우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그들에게 엄숙히 명하여, 말다툼을 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것은 아무 유익이 없고, 듣는 사람들을 파멸에 이르게 할 뿐입니다.
15 그대는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부끄러울 것 없는 일꾼으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기를 힘쓰십시오.
16 속된 허튼 소리를 피하십시오. 그것이 사람을 더욱더 불경건에 빠지게 합니다.
17 그들의 말은 악성 종기처럼 퍼져 나갈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습니다.
18 그들은 진리에서 멀리 떠나 버렸고, 부활은 이미 지나갔다고 말하면서, 사람들의 믿음을 뒤엎습니다.
이단자들과의 토론을 피하랍니다. 영지주의자들을 말하는 것인데, 그들은 부활을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다시 사는 내적 변화를 말하는 것이지 물리적인 현상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여 실현된 종말론을 주장했습니다.
이런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은 현대 진보 신학자들의 생각과 궤를 같이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진보 신학자들 중에는 교리주의자보다 영지주의자가 예수님의 가르침과 가깝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지주의자들의 신념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습니다. 물질적인 것은 악하고 모든 선한 것은 정신의 영역에 있다는 그리스의 이원론적 철학에 기반을 둔 사상이기에, 예수님도 육체로 오시지 않았고 영으로 오셨으며 단지 육체를 가지신 것처럼 보였을 뿐이라는 가현설로 빠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결국 역사적 예수의 실체를 부정하여 기독교의 역사성과 운동성을 모두 소멸시키게 됩니다. 이어지는 본문 가운데 20~21절을 보겠습니다.
20 큰 집에는 금그릇과 은그릇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그릇과 질그릇도 있어서, 어떤 것은 귀하게 쓰이고, 어떤 것은 천하게 쓰입니다.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내가 말한 이러한 것들로부터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그는 주인이 온갖 좋은 일에 요긴하게 쓰는, 귀하고 성별된 그릇이 될 것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영적 지식을 가진 소수의 고귀한 사람만 구원에 참여하게 된다고 생각하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르침은 복음의 정신과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하여 저자는 큰집으로 비유된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그릇의 재료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금그릇과 은그릇도 필요하지만 나무그릇과 질그릇도 각각의 쓰임새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금이냐 은이냐 하는 재료의 문제가 아니라 깨끗이 준비되어 있느냐 하는 마음가짐과 자세의 문제라는 말씀입니다. 스펙과 외모가 중시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도 깊이 새겨들어야 할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