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쑤저우 24 - 중국 4대 명원인 유원에서 중국, 한국과 일본 3국의 정원을 생각하다!
2023년 26일 쑤저우역 북광장 시외버스터미널앞 버스정류소에서 버스를 타고 두번째 정거장인 핑먼(平門)
에 내려서 버스가 온 길로 7~8분을 걸으니 큰 강이 나오고 거기 강 이쪽에 성문이 서 있는데....
현재 쑤저에 하나 남아있다는 성문인, 북문 으로 강(운하) 에서 배를 타고 쑤저우로 들어오는 문인가 봅니다?
그러고는 다시 정류소로 되돌아 와서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 스무 몇 정거장 만에 신민교
(新民桥) 와 다시 광제교 (广济桥) 를 거쳐 버스 전면 모니터에 류위안 留园(유원)
표시가 보여 내려 유원으로 들어가니 평일 아침 일찍은 시간임에도 사람들로 인산인해 입니다.
여기 류위안(유원) 은 쑤저우 줘정위안(졸정원) 과 베이징의 이허위안(이화원) 그리고 청더
피서산장 과 함께 중국 4대 명원으로 불리며.... 정원에는 정자와 각루, 기암과 구불
구불한 복도, 정원 전체의 푸르름과 깊고 푸른 연못까지 있어 매우 우아한 경치를 이룹니다.
류위안 留园(유원) 은 중국 다른 지방의 정원과 마찬가지로 여러 건물이 "담" 으로 분리
되고 길은 "곡선" 으로 연결이 되는지라 방문자들은 다음 경치가 궁금해
지는데.....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 동양 3국은 다양한 방식으로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서양의 정원 문화와 다른 점은 동양은 "정신적인 관점" 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여겨집니다.
"조형미" 를 살린 서양의 정원 과는 다르게 자연 친화적 이며 권위적이기 보다 인간
중심적으로 명상과 함께 자연 을 생각하면서 보는 기쁨을 얻는데 목적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다시 말해 동양 3국의 조경은 "도가" 사상 혹은 "선" 사상의 영향으로 비정형적인 형태 를
띄고 있다는 점에서는 매우 비슷하지만 세부적인 면에서는 차이가 많으며 그리고
3국에서 공통적으로 쓰인 자연적 요소는..... "수목과 물 그리고 암석" 이라고 생각됩니다.
그중에서도 으뜸이라는 소주의 "졸정원" 은 매우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곳으로 명나라의 어사
였던 왕헌신이 벼슬길에서 물러나 낙향하며 조성했으며..... 류위안 은 명나라
만력제 21년 (서기 1593년)에 쉬타이쓰의 사유 정원으로 '동위안(동원)' 으로 불리었습니다.
중국의 전통 정원은 "태호석" 을 사용해 기괴하면서 독특한 암석 가산 과 연못이며
호수를 만들고 주변에 정자나 각, 회랑 등을 세워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합니다.
반면에 일본 의 전통적인 정원을 보자면 정원에서 바위의 배치, 그림자의 형태,
또 식물 상호간의 조화 등에 "상징적이고 비유적" 인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습니다.
또 중국은 정원내에 건물의 숫자가 많고 건물의 규모 도 매우 크니 프랑스 베르사이유
정원에는 바로크 양식의 궁전 만 있을 뿐인데..... 면적이 베르사이유의
3분지 일에 못미치는 이화원에는 50개에 달하는 전각과 정자 가 건립되어 있습니다.
오늘 여기 유원의 정원을 보자니 건물이나 회랑, 내정 등으로 구분이 되어 있으니 방문자는
병풍을 한폭 한폭 을 감상하듯이 정원내를 돌아다니며 연속적으로 감상하도록 하며
폐쇄된 회랑을 거쳐가면 갑자기 확 트인 전망과 시계 를 마주치게하든가 거꾸로 확 트인
시계(示界) 를 보고 나면..... 폐쇄된 회랑을 만나게 한다든지 하여 의외성 을 느끼도록 하네요?
중국에서는 "산은 男, 강, 부동" 을 상징하고 "물은 女, 유(柔)" 를 상징하는데 산과
물이 주가 되고 수목등은 보완하는 요소이니 소나무와 대나무의 푸르름은
덕 을 상징합니다. 또 구부러진 늙은 소나무는 인생을 이겨냈다는 것과
비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진정한 "선비" 에 비유하니 우리나라와 비슷합니다.
중국에서는 호수 를 중심으로 수경을 하니 정자등이 호숫가에 위치해 있고 호수 위로
다리 를 놓아 호수 주위나 호수내를 거닐며 "호수경관" 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며 그리고 중국은 암석을 쌓아서 산을 상징적으로 조성하는 철산기법 을 활용합니다.
암석의 형태가 기묘하고 구멍이 뚫리고 비틀어지며 굴곡이 심한 형태일수록 높이 평가 되는
데, 그렇게 때문에 태호석 이 최고의 암석으로 평가되니... 호남성 북부의 동정호의
바닥에서 채석 된 것을 최고로 치고 다음은 소주 교외에 태호 서산 의 것을 친다고 합니다.
일본 정원의 4대 양식으로는 고산수식 정원, 선정식 수경정원, 문인조 정원 및
다정식 정원 을 들수 있는데 특히 고산수 정원의 대표인
료안지 정원 은 고요한 명상의 장소 이자 추상적이며 축소의 정수 라고 불리웁니다.
교토 료안지 정원은 " 흰 모래와 15개의 돌" 로 구성된 정원으로..... "인간은 불완전
하므로 적당할 때 만족 해야 한다" 는 메세지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해서 일본 정원은 전통적 선사상에 입각하여 "명상(瞑想)" 을 하기 위한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의 전통 정원 양식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데..... 일본 정원
에서는 가나자와의 겐로쿠엔이나 오카야마의 고라쿠엔등 회유식 정원 에는
다실 이 산재되어 있기는 하나...... 그 숫자와 규모에 있어서 중국에는 못미칩니다.
그리고 일본은 정원내의 건물에서 "차경된 바깥 경관" 을 감상할 수 있도록 건물의 동향
혹은 남향에 문이나 창문 을 두는 방식을 많이 이용하는데, 일본은 중국에서는 볼수
없는 기하학적 형태로 전정된 수목 이나 잘 다듬어진 잔디나 이끼종류를 많이 사용합니다.
좁은 공간의 정원에서 수목의 크기를 정원에 맞추기 위함이라? 또 일본
에서는 연못, 폭포, 분천 등의 다양한 수경기법을 도입하는데.....
연못이나 폭포의 형태도 자연스러운 곡선 형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 정원에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수경기법은 물을 상징화 시켜.... 물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수경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고산수기법 입니다. 가장
대표적인게 료안지 정원에 15개의 암석과 왕모래 로 바다속의 섬 을 상징화 합니다.
그 외에도 교토 은각사 나 야마구치시의 조에이지 정원도 그러하지요!
일본의 암석 활용은 암석의 재질, 크기 및 비례등을 고려하여......
암석간에 시각적 균형 을 이루도록 암석을 배치하는 기법을 씁니다.
또 정결한 모래를 나무 밑동이나 바위의 가장자리까지 빈틈 없이 깐후 갈퀴로 긁는데
직선, 유선, 타원과 동심원 등이 나타나면서 의도된 형상이 모래 위에 표현됩니다.
맑고 정숙하여 흐트러짐이 없으니 바라보는 사람들도 자세를 흐트러지게
할수 없으니 교토 료안지나 오사카 사천왕사 마당이 그러하지요!
두 나라에 비해서 우리 한국 의 전통적인 정원은 신선, 유교, 도가, 풍수 등 여러 사상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니 인공적인 연못과 함께 세운 "누와 정자" 가 특징으로 사대부 선비들의 문화
공간으로 자연 경관이 수려한 곳에 누와 정 을 세워 주변 풍광을 감상하면서 풍류 를 즐겼습니다.
또 다른 형태로는 화계 를 들 수 있는데 계단 형태의 화단 으로 풍수사상의 영향 을
받아 배산임수 형태의 집 을 지었던 선조들은 집 후면의 언덕을 계단
으로 하여 화단 을 조성하고 화초나 관목, 소교목 등을 심어 후원을 꾸몄다고 합니다.
한국 전통 조경에서는 공간의 구성이 수평적인 구분보다는 수직적인 공간구분 이 강하다는
것이..... 다른 중국과 일본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특징 이라고 하네요? 특히
궁궐의 후원 에서 "돈대" 를 설치하여 좁은 공간에서 공간의 수직적 변화 를 느끼도록 합니다.
또한 수목이나 석물을 이용하여 수직공간을 장식 하고 있으며 그리고 한국의 전통
정원은 터를 잡을때 부터 주위경관을 고려하니 담장이 낮고 정원내의
정자나 건물에서 주위 경관 을 충분히 감상 할 수 있도록 배치하니 이른바 차경 입니다.
연못의 형태가 중국이나 일본은 자연스러운 곡선 을 띠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의 경우는....
직선형 의 방지 로 되어 있으며 원형의 섬 이 조성되어 음양오행의 원리 를 상징화 시킵니다.
우리나라 암석 활용은 암석을 장식적 요소로 활용하여 형태가 특이한 하나의 암석 즉,
괴석 을 화분에 꽃을 심듯이 석분, 석함, 혹은 석대에 심어서 배치하는 방법을 씁니다.
신라 는 수도 서라벌에 별원 을 호사스럽게 조성하였으니.... 연못가에 지은 건물에 임해전
(臨海殿) 이란 이름을 달았습니다. 정원의 양식 은 이렇듯 지역이나 국가, 시대에 따라
다양한데 이는 각 지역의지연 환경, 종교, 문화 등 다양한 요소가 반영되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의 평면 기하학식 정원 은 프랑스라는 나라의 지형이 비교적 평평
하니 수면이나 파르테르와 같은 평면적 요소를 주로 사용하였습니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후원 이나 일본의 축경식 정원 등은 산이 많은 자연 환경 을 반영하고
상직적 심상의 세계 를 표현했듯 정원의 양식은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한다고 하겠습니다.
동양 3국 정원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동아일보 ‘이준식의 한시 한 수’ 칼럼에 쓴 “이백을 그리며” 라는 글이 떠오릅니다.
이백을 못 본 지 오래, 미친 체하는 그가 참으로 애처롭네.
세상 사람들 모두 그를 죽이려 하지만, 나만은 그 재능을 몹시도 아끼지.
민첩하게 지은 시 일천 수나 되지만, 떠도는 신세 되어 술잔이나 기울이겠지.
광산 옛 마을 그가 공부하던 곳, 머리 희었을 지금이 돌아오기 좋은 때이려니.
(不見李生久, 佯狂眞可哀. 世人皆欲殺, 吾意獨憐才. 敏捷詩千首, 飄零酒一杯.
匡山讀書處, 頭白好歸來.)―‘만나지 못한 이백(불견·不見)’ 두보(杜甫·712∼770)
중국 고전시의 두 거봉 이백과 두보. 두 사람은 당 현종 말년 혼란한 시기에 조우했다.
당시 이백은 황제의 비서 격인 한림공봉 (翰林供奉) 을 지내다 조정에서
쫓겨난 직후였고, 두보는 10년 유랑 생활을 마치고 바야흐로 벼슬길을 모색 하던 중이었다.
하나는 온 나라에 시명을 떨치고 장안에서 영광과 좌절 을 두루 경험한 유명인, 하나는 대망을 펼쳐
보리라 이제 막 관료 세계에 뛰어들려는 신출내기 무명인사. 이백은 11세 어린 후배를 꽤
살갑게 대해준 듯, 둘은 처음부터 의기투합하여 도처를 유람하며 두터운 우정을 쌓았다. 후일
두보가 ‘어느 가을 술 취해 한 이불에서 잠을 잤고, 손잡고 날마다 함께 나다녔지’라 회상할 정도였다.
시는 오래 만나지 못한 선배를 그리는 두보의 간절함이 담긴 노래. “안사의 난” 을 피해 이백의
고향 쓰촨(四川) 지역에 초당(草堂) 을 마련한 두보 는 이백의 소식이 자못 궁금했다.
그가 난리통에 반기를 든 영왕(永王) 의 막료로 들어간 죄로 남쪽 오지로 유배형 을 당했으니....
‘세상 사람들 모두 그를 죽이려 한다’ 는 소식은 이미 들은 터. 당시 이백은 진작 사면되었지만
이 사실을 몰랐던 두보 는 이백의 생사를 걱정하며 그 옛날 공부하던 곳으로
돌아오길 고대하고 있다. 귀향하여 늘그막을 보냈으면 고대하는 후배의 애틋함 이 마음 짠하다.
이백(李白) 의 나이 57세때 역적 죄 를 뒤집어쓰고 심양 감옥에 투옥되었다가 머나먼
장강(長江 양자강) 의 상류 야랑(夜郞)으로 유배 를 떠나라는 명령을
받고는..... 수만리 길을 걸어서 장강 중류의 빼어난 절경인 백제성 에 도착하였습니다.
아직도 유배지인 야랑 까진 갈 길이 까마득 하게 남아 있었으니 가봐야 환영해줄 사람도
없는지라 앞앞이 한숨이고 구석구석이 눈물 이었으니..... 이백은 흰 머리카락을
바람에 나부끼며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저무는 장강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조정에서 보낸 사자가 속달 편지 한통을 들고 이백에게 달려들었으니 편지를 뜯는 이백의 손이 공포와
불안 으로 부들부들 떨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입이 크고도 환하게 벌어졌으니 뜻밖의 사면령 이었습니다.
그는 한꺼번에 열일곱번이나 환호작약(歡呼雀躍)의 뜀박질 을 했다는데 해방이 된 이백 은 다음날 새벽 동이
트자마자 돌아가는 배에다 몸을 실었으니 배 위에서 멀어지는 "백제성을 보며 읊은 시" 는 아래와 같습니다.
朝辭白帝彩雲間(조사백제채운간) 이른 아침 백제성의 채색구름 뚫고 떠나
千里江陵一日還(천리강릉일일환) 천 리라 강릉길을 하루 만에 돌아왔네
兩岸猿聲啼不盡(양안원성제부진) 양쪽 벼랑 파노라마 된 원숭이 울음 뚫고
輕舟已過萬重山(경주이과만중산) 경쾌한 배는 이미 만겹 산을 다 지났네
시인이 탄 일엽편주 는 백제성을 박차고 튀어 나가는데, 배는 갑작스런 병목 현상에
따라 험준하게 치솟은 벼랑 사이로 물결이 미친 듯이 휘돌아 흐르는.....
천하의 절경 삼협(三峽) 을 뚫고 쏜살같이 내달리니 강릉 까지는 천리나 되는데도
걸린 시간이 단 하루 에 불과하니 일사천리 (一瀉千里) 에다 일필휘지 (一筆揮之) 이네요?
3구와 4구는 배의 속도를 좀 더 실감 나게 보여주는 대목이니 장강의 삼협 에는 예로
부터 애달프게 울어대는 원숭이 가 많다지만.... 엄청난 속도로 들입다 내달리는
뱃전에서 들어보면 울음과 울음이 쭉 이어지면서 울음의 파노라마 현상 이 생깁니다.
매미 가 죽자 살자 울어댈 때 가로수 샛길을 달리다 보면 매미 울음소리도 파노라마 가 되는 것과도 같은
현상이니 원숭이들의 애달픈 울음의 파노라마 는.... 아직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시인이 탄 배는
이미 만겹 첩첩산 울음의 터널을 통과 했다는 것이니.... 한마디로 말해 “슬픔 끝, 기쁨 시작” 인가 합니다?
그런데 일본 중부 나고야 동쪽에 이누야마 라는 성 이 있는데 이 성의 별칭이 바로 저 이백 이 보았던
유비가 제갈공명에게 후사 를 부탁하고 죽었다는 하쿠테이성(白帝城 백제성) 이라고 합니다.
유래를 살펴보면 에도 시대에 일본 유학자인 오규 소라이 는 당나라 시인 이백 이 양쯔강
(장강) 연안에 위치한 白帝城 (백제성) 에 관해 남긴 위의 저 "시" 에서 영감을 받아
기소강 연안에 위치한 이 성을 하쿠테이성(白帝城 백제성) 이라고 명명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고는 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와 체크아웃을 하고는 쑤저우 동남쪽에 위치한 옛 수향 마을 인
퉁리(同里 동리) 로 가려고 하는데, 버스를 타도 되지만 더 편리한 지하철 을 타기로 하고는
쑤저우역으로 가서 지하로 내려가 자동발매기 기계에서 표를 끊어 지하철 4호선(청색) 을 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