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으로 신문을 훑어보다가
와닿는 기사가 있어서
뭐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장애가 있지만 비장애인들과 어울리는 것
사실 ,
얕게 만나고 적정거리를 두고서 만나면야
잘 모른다. 두뇌질환은.
난 진정성을 원했다.
그래서 나의 대물림적 유전자질환이기도 한
뇌질환을 오픈하였다. 정원에 풀어버렸다.
대물림 유전의 조울증 그리고 뇌전증 두 가지병을 앓고 있다.
개인병원을 10년가까이 다니다가
대학병원으로 이 달에 옮겨서 검진받는다.
특히 환경에 나는 힘썼다. 애니멀힐링도 큰 치료가 나에게 되었다.(길고양이들과 살기)
산만한 두뇌는 집정리를 못한다. 그래서 동사무소에서 요양사님을 보내주신다.
복지관에서는 고독사를 염려하여 하루에 두번씩 전화를 한다. 친절하시다, 모두...
속이 시원했다.
두뇌질환은 성격 탓도 아니요~ 수행력으로 민간요법으로 낫는 병이 나이었다.
당연히 대인관계가 어려웠다. 이해와 오해사이에서 현실사회인들과 어울리는게 어렵다 .
이 병을 이제는 받아들이면서 나에게 맞는 환경을 만들었고 과도하게 어울려보려고 애쓰지않기로 했다.
때론 약물조절을 반드시 해야만 할 질환이 있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운동으로 유연성을 기르고(약을 오래복용하면 혈관이 굳는다)
특히 스트레스지수를 측정하고 어떤 상황에서 가장 뇌파가 다운되는지
스스로 탐구하며 상황과 사람을 조율해야만 한다.
그것만이 상대방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
이제는 내가 타인들을 직접 만남으로 상담하거나 힐링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10년전과는 퇴화되었고 직접만남의 상담(일적으로 )은 기력소진이 내겐 컸다.
이메일상담으로 전환한 까닭이다.
...
음악이주는 파동의 힐링이 나에게 큰 치료가 되었다.
한국무용은 전신운동이되면서 더불어 음악과 순서를 외우는과정에서
단기기억상실증을 치유하는 방편이되고 있다.
동작치료가되는 춤도 마찬가지이다. 거기에도 음악이 있다.
두뇌에 음악은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전율과 카타르시스..도파민홀몬이 나오고 세로토닌홀몬이 나온다.
정신과적 신경적 뇌적으로 장애가 있다면 춤과 노래를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경험상,,,
내 장애를 부정하기 [2030 세상보기]입력 2021. 08. 20. 19:00 댓글 0개
©게티이미지뱅크
팟캐스트 섭외를 받았다. 장애와 문학을 주제로 하는 방송이었다. 장애 문학을 소개하고 비장애인의 편견을 허물기 위하여 장애를 가진 작가, 장애를 주제로 한 글을 쓰는 작가를 주로 섭외한다고 알렸다. 나는 정신과를 7년 넘게 다니고 있다. 겁이 났다.
이런 종류의 외부 활동은 집구석에서 원고를 쓰는 것보다 경제적으로 매력적이다. 글 쓰는 것에 비해 드는 시간은 적고, 보상은 많다. 책을 쓰다 보면 얻게 되는 일종의 달콤한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말을 흘리고 다니는 게 대단히 무서운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
말은 필터가 없다. 내 뇌가 빚어낸 즉흥적인 생각은 잘 다듬어지기도 전에 성대와 혀를 타고 구체화된다. 주워 담을 수 없는 헛소리야 지금까지 셀 수도 없이 했는데, 거기 또 지독한 업보를 얹고 싶지는 않다. 역시 돈을 받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고 나는 이제 외부 활동이 불안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포의 이유가 그 하나뿐만이 아니었다. 장애를 가진 작가로서 내가 초대되는 것이 두려웠다.
딱히 내 병을 밝히는 것이 불편하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나는 내가 정신적 손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품고 있다. 한때 1년 동안 방구석을 벗어나지 못했는데, 여러 자원이 있고 치료도 빨리 받아서 내가 가진 정신적 문제를 다루는 방법을 나름대로 익혔다. 병은 민망하지 않다.
“내가 장애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나? 내가 장애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식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나름대로 문제를 극복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믿었다. 생각해 보면 말이다. 당장 장애를 생각하면 내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신체적 거동의 손상과 휠체어다. 그다음으로는 와해된 언어 같은 심각한 정신증적 증상들이다. 우울, 불안이나 ADHD 같은 단어는 장애라는 범주에 포섭되기에는 너무 가볍다고 생각했다.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을 감히 이야기한다는 불편감을 안고 녹음실로 향했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녹음을 끝내고 며칠 지난 지금, 불안이 조금 가셨을 때에,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본다. 내가 느꼈던 그 공포와 불안은 내 자신을 장애에서 분리하기 위한, 그러니까 장애를 타자화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나는 나를 비장애의 영역에 두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아니 그렇다.
정신병과 공존하는 법을 익혔다는 자부심도 일정 부분 비슷한 심리에서 발한 듯도 하다. 아무렇지 않게 병을 가졌다고 말하면서, 나는 내가 ‘충분히’ 사회성 있음을 보인다. 병이 민망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용기 있는 고백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내가 비장애인들의 사회에 편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가진 정신적 손상은 평생 지속될 것이다. 계속 향정신성약물을 먹어야 할 거라는 말을 미리 의사에게 들어 알고 있고, 여전히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생각을 한다.
미리 품었던 걱정 중 오직 하나만이 유의했다. 나는 들떠버렸고, 별생각 없이 온갖 헛소리를 했다. 녹음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수면제를 삼키기 직전 내가 한 막말들이 두뇌에 벼락처럼 쏟아졌다. 구업을 쌓은 자를 위한 지옥이 너무 뜨겁지는 않길 바라며, 풀썩 쓰러져 잠들었다.
심너울 SF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