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도 경주 남산에는 천년세월의 풍파 속에 흔적은 닳고 해어졌지만 수많은 불상과 탑들은 불국정토를 꿈꿨던 민초들의 원력을 느끼게 한다.
금오산이라 불리는 남산 최정상 고위산(494m) 아래 자리한 천룡사지. 〈삼국유사〉에 의하면 당나라 사신 악붕구가 “이 절을 파하면 곧 나라가 망한다”고 예언했다. 근세 독립운동의 33인이었던 용성스님은 천룡사지에서 보임(保任:깨친 후의 완전무결한 수행)했고 유훈10사목을 통해 “호국호법도량 신라고도 금오산중 고위산 천룡사지를 잘 가꾸어 수도발원 교화도량의 언덕으로 삼아라”고 당부했다. 그 뜻을 잇고 있는 도문스님(우면산 대성사조실)을 경주 천룡사에서 만났다.
-장수, 구미와 네팔을 순회하며 불교성지를 가꾸시느라 여념이 없을 텐데 요즘 근황은 어떠신지요.
=구미 신라불교 초전지 모례원도 가고, 전북 장수도 가고, 네팔 룸비니도 다녀옵니다. 불사가 진척되고 있는 곳을 못 갈 때는 보고도 받습니다. 군법당도 다닙니다. 육군, 해군, 공군법당을 다니며 법문하고 시간있을 때는 정진합니다. 용성조사님이 내리신 10가지 유훈을 실현하기 위해 그 법을 은사스님이 이으셨고 그 뜻을 제가 받았으니 그 당부를 이어 실현하고 있습니다. 이 일은 백용성조사유훈실현회 후원회가 맡고 군비, 시비, 도비, 국비도 지원받아 일 따라 부름에 따라 몸은 왔다 갔다 하지만 마음자리는 한 곳에 있습니다.
-공무원불자들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지도법사도 맡아주시는데 특별히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언제였는지요.
=1962년에 탄허큰스님과 경산큰스님을 모실 때지요. 경산큰스님은 총무원에 계시면서 건봉사주지를 맡으셨지요. 당시 박경원 도지사라는 분이 계셨는데 부인이 낙산보육원이사장을 맡고 있었을 때 제가 보육원 원장을 맡았습니다. 원래는 경산큰스님이 이사장을 맡았다가 도지사 부인이 맡게 되었지요. 그 도지사분에게 〈육조단경〉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강원지역 19개 시군 공무원들에게도 법문을 하게 되었지요. 1967년에는 분황사주지 할 때 영남불교중고등학생회 만들었어요. 이곳 출신의 안홍부라는 분이 있었는데 저와 맺은 인연으로 공무원불자회 지도법사를 맡아달라며 120명의 대표자들이 천룡사로 와서 부탁해서 허락하게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룸비니에 한국사찰인 대성석가사를 건립하고 계시고 구미 신라불교초전지인 모례원 복원에도 앞장서고 계시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용성큰스님의 유훈실현을 위한 것입니다. 3.1 독립운동할 때는 이천만 동포가 한결같았지만 1939년이나 40년이 되어서는 독립동지가 배반하고 제자와 상좌가 배신하고 친일지도자들이 자기만이 친일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창씨개명을 강요했지요. 큰스님은 1940년 건강한 몸으로 열반에 드시면서 가야불교, 고구려불교, 백제불교, 신라불교 성지를 잘 가꾸라는 등 유훈 10가지를 남기십니다. 불교성지를 가꾸지 않는 나라는 인도와 네팔과 우리나라뿐이며 일본이나 중국이나 미얀마나 실론(스리랑카), 태국 등은 초전지를 잘 가꾸고 있다며 당부하셔서 백용성조사님의 심부름꾼으로서 그 유훈을 잇고 있는 것이지요.
-부처님 법을 접하고도 감화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어떻게 불법의 진리를 배워야 하겠습니까.
=칠불통계(七佛通戒)라는 것이 있어요. 과거의 부처님이 나온다 해도 현재의 부처님이 나온다고 해도, 미래세의 부처님이 나오신다 하더라도 이 가르침이라 하는 것이지요. 모든 악을 짓지 말라는 이야기지요. 용성조사님께서는 3대 생활을 제창하셨는데 악(惡)을 그치고 선(善)을 닦는 지악수선(止惡修善)의 보통생활(普通生活)을 하라는 것이지요. 이는 칠불통계의 “제악막작(諸惡莫作)하라, 중선봉행(衆善奉行)하라”는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지요. 두번째는 낳고 죽는 괴로움을 여의고 열반의 즐거움을 얻는 이고득락(離苦得樂)의 신앙생활을 하라는 것이고 세번째는 어리석음을 굴려 깨달음을 여는 전미개오(轉迷開悟)의 수행생활을 하라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하면(自淨其意), 이것이 불교(是諸佛敎)라는 것입니다. 이 운동이 각성운동이고 대각운동이고 교화운동이지요.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 사람들은 그 핵심요체를 알고 싶어합니다. 스님께서 내리시는 불법의 요체는 무엇입니까.
=부처님이 연기법(緣起法)을 깨달았으니 이를 깨쳐야 하고 법고(法鼓)를 치려하면 실상법을 외쳐야 합니다. 이것이 불법의 요체입니다. 이것이 성불인연을 짓는 것이지요. 이 법은 무상이고 무아이고 공이고 고(苦)라고 설파하시지요. 세상은 생로병사가 괴롭고 애별리고(愛別離苦)이고, 원증회고(怨憎會苦)이고, 구부득고(求不得苦)이고, 오음성고(五陰盛苦)이고 이들 괴로움을 알아야 합니다. 그 근거와 원인은 번뇌이고 이를 끊어야 하며, 이 세계가 멸(涅槃)의 세계인데 여기에 이르기 위해서는 도를 닦아야 하는데 방법은 팔정도를 행하는 것이라 했지요. 연기법이 ‘옳소이다’라고 시인하는 견해가 정견(正見)이고 생각하는 것이 정사유(正思惟)고 말하는 것이 정어(正語)요, 행동하는 것이 정업(正業)이요, 생활화하는 것이 정명(正命)이요, 이를 기초로 정진하는 것이 정정진(正精進)이요, 이를 잊지 않는 것이 정념(正念)이요, 이러한 정념에서 얻어지는 것이 정정(正定)이지요. 이렇게 정진하면 열반의 경지에 이를 수 있지요.
-종교인이 많이 늘어나지만 종교생활은 흐려지고 있다고 합니다. 불법을 흥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고 임제조사께서 말씀하셨지요. 자기가 처해 있는 곳이 다 진리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석가세존 몇세손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듯이 각자가 처해진 자리가 부수적인 자리가 아니고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자신이 하는 일은 주인이 하는 일이라는 마음으로 하면 됩니다.
-스님은 용성스님과 지중한 인연을 맺고 있으면서 ‘백용성조사유훈실현회 후원회’를 이끌어 가고 있는데 용성스님이 우리민족과 불교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요.
=3.1독립선언서에 공약삼장이 있는데 그중 제2장이 불교계가 작성한 것인데 용성조사는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쾌히 밝혀라”는 올곧은 의지를 끝까지 견지하셨습니다. 용성조사는 우리들에게 “마음가는 곳에 부처님이 계시니(心處存佛) 차별현상의 일용범사와 평등본체의 진리와 이치에 불공(理事佛供)하라”는 교훈을 남겼어요. 참선 염불 경(經) 보고 주력하는 것은 이(理)불공이고, 기자같이 일이 있어 오는 분들에게 접빈하는 것은 일(事)불공이라는 것이지요. 용성조사님은 독립운동했으니 일불공하고 불교의 생활화와 대중화에 앞장선 분이지요.
-불교신문 독자들에게 마음법문 한 말씀 해 주십시오.
=불교를 전국민들에 대중화시키기 위해서는 불자들, 특히 불교지성인들은 참선하고 염불하고 간경하고 주력을 해야 합니다. 불자들이 참선 않고 경전 안 보고 주력하지 않으면 불교지성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불교의 대중화와 지성화, 생활화를 위해 위의 수행을 반드시 하는 불자가 됩시다.
*은사스님의 가르침
“은사스님은 동헌 완규대선사이신데 한 마디로 선사이셨습니다.” 도문스님의 은사스님에 대한 첫 마디다. “스님은 불교5대 과제를 강조하셨는데 참선수행으로 의심을 타파하고(疑團獨露), 간경수행으로 지혜의 눈을 얻고(慧眼通察), 염불수행으로 삼매가 나타나게 하고(三昧顯前), 주력수행으로 업장을 소멸시키고, 불사수행으로 복덕을 구족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어 스님은 “불사수행에는 세가지가 있는데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고 부처님을 공경 예배하고 찬탄하라’고 권하는 경전불사(經典佛事)가 있고 ‘부모에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고 스승을 공경하고 중생의 은혜에 감사하라’는 은전불사(恩田佛事)가 있으며 ‘고아나 독거노인 등 어려운 이웃을 돌보라’는 비전불사(悲田佛事)가 있음을 은사스님은 강조하셨다”고 말했다. 스님은 또 “평상심이 도의 마음(平常心 是道心)을 강조한 은사스님은 언제나 둘을 대하여 셋을 다스리는 이치로 살아라(二對三治)는 가르침을 내려주셨다”고 회상했다.
경주=여태동 기자 사진·김형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