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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만남
감옥으로 돌아온 뒤, 헤스터 프린의 신경은 극도로 흥분돼 있었다. 끊임없는 감시가 없다면 자기 몸을 헤치거나 불쌍한 갓난아기에게 미치광이처럼 난폭하게 굴었을지도 몰랐다. 해질 무렵이 되어 흥분은 더욱 심해져 아무리 꾸짖고 벌을 주겠다고 위협해도 전혀 명령을 따르려 하지 않았으므로 브래킷 간수장은 의사를 부르기로 했다. 그 의사는 현대의학에 정통할 뿐 아니라, 숲 속에서 나는 약초에 대해서도 원주민보다 잘 아는 그런 사람이었다. 사실 의사의 간호가 필요한 것은 헤스터 자신보다도 오히려 갓난아기로, 매우 위급한 상태였다. 엄마의 가슴에서 생명의 자양을 흡입하는 동안, 그녀의 온몸에 충만해 있는 혼란과 고뇌와 절망을 모조리 빨아들인 모양이었다. 고통의 발작으로 몸을 뒤틀고 있는 아기의 모습은 헤스터 프린이 종일 견디고 있던 마음의 고통을 그 어린 몸뚱이로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았다.
간수장 뒤를 따라 어두컴컴한 감방으로 들어온 사람은 군중 속에서 유별나게 주홍글씨 여인의 관심을 끌었던 그 이상한 모습의 남자였다. 그는 이 감옥에 머물게 되었다. 특별히 무슨 죄를 범해서가 아니라, 행정관들과 인디언 추장과의 사이에 벌어질 몸값에 대한 회담이 끝날 때까지 가장 편리하고 적당한 장소로써 당분간 이곳에 머물기로 한 것이다. 이 남자의 이름은 로저 칠링워드였다.간수장은 그를 감방으로 안내하고 잠시 그곳에 머뭇거리고 있었는데,갑자기 감방이 아까보다도 조용해진 데 대해 놀라고 있었다.갓난아기는 여전히 괴로워하고 있었으나,헤스터 프린은 죽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갑자기 조용해졌기 때문이다.
미안하지만 자리를 비켜 주지 않겠습니까? 하고 의사가 말했다. 문제 없소,간수 양반. 이제 곧 이 감옥을 조용히 해 드리리다. 프린 부인이 지금까지보다 말을 고분고분 잘 듣도록 해 드리겠소이다.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야 선생님의 의술은 제가 보증해 드리죠! 브래킷 간수장은 말했다. 정말로 이 여자는 신들린 사람 같습니다.채찍으로 악마를 쫓아낼까 했으나 그럴 수도 없어서......
스스로 의사라고 청하는 이 기묘한 사나이는 감방에 들어올 때부터 의사다운 침착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군중 속에서 그를 발견하고,이 여인이 뚫어지게 바라보던 것으로 보아,두사람 사이에는 어떤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 명백하였지만,잠시 뒤 간수장이 나가고 단둘이 남았을 때에도 그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는 우선 아이를 진찰하기 시작했다.손수레 침대 위에서 몸을 뒤틀며 울고 있는 아이의 괴로움을 덜어 주는 일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일이었다.그는 아이를 세밀히 진찰하더니,옷 속에서 가죽 가방을 꺼내어 열었다.그 가방에는 여러 종류의 의약품들이 들어 있었는데,그 중의 하나를 물컵에 타면서 말했다.
연금술을 연구한데다 1년 이상이나 약초의 효험을 잘 아는 사람들 속에서 살았으므로 나는 의학의 대가라고 하는 사람들보다도 훨씬 용한 의사가 되어 버렸지. 자,여기있소.이 아이는 당신 아이지 나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소.
목소리나 얼굴 생김새로 보더라도 나를 아비라고 생각지 않을 것이오. 이 물약을 당신 손으로 먹이시오.
헤스터는 그가 내민 약을 물리치며 두려운 눈초리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 어린 것에게 앙갚음을 하시려는 건가요?
어리석은 여자 같으니! 의사의 대답은 냉담한 것 같기도 하고,상대방을 달래는 것 같기도 했다. 이 불쌍한 아비 없는 자식을 못 살게 굴어 봤자 내게 무슨 소용이 있겠소? 이 약은 잘 듣소.이 애가 내 아기라 할지라도---그렇소, 나와 당신 사이에 태어난 아기라 할지라도---역시 이것 이상의 약은 없을거요.
여인은 사리를 분별한 만한 상태가 아니었으므로 계속 망설이고 있었다.그러자 의사는 아이를 두 팔로 안더니 물약을 먹여 주었다.약은 곧 효력을 나타내어 의사의 말을 확실하게 입증해 주었다.어린 환자의 신음 소리가 멎었다.이어 괴로운 몸부림도 차차 가라앉았다.불과 몇 분 안 되어,고통이 없어진 아이들에게서 흔히 보듯이 아이는 조용히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의사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이 사나이는 이어서 어머니를 진찰하기 시작했다.조용히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면서 맥을 짚고 나더니 상대방의 눈을 들여다보았다.그 시선은 퍽 낯익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서먹서먹하고 냉혹하였기 때문에,그녀는 심장이 움츠려드는 듯하였다.마침내 진찰을 마친 그는 다른 물약을 조제하면서 말했다.
나는 레테도 네펜디도 모르지만,황야에 있는 동안 여러 가지 새로운 비법을 배웠소.이것도 그 중의 하나요.패러셀서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내 학문과의 교환 조건으로 인디언이 가르쳐 준 처방이니까 마셔 보오.깨끗한 양심보다 위로하는 힘은 덜하겠지만.하기야 그런 양심은 나에게도 없소만,하여간 이것을 마시면 날뛰는 파도에 뿌린 기름처럼 당신의 흥분된 격정이 가라앉을 것이오.
그는 헤스터에게 컵을 내밀었고,헤스터는 상대방의 얼굴을 한참 동안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받아들었다. 공포의 표정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도대체 이 사나이의 속셈은 무엇일까 하는 의혹에 찬 표정이었다. 헤스터는 잠든 아이를 바라보았다.
나는 죽을 생각도 해 보았어요. 그냥 죽어 버릴까 하고 말이에요. 나 같은 여자가 기도를 했다는 것은 곧이들리지 않겠지만, 죽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답니다. 그렇지만 이 컵 안에 독이라도 들어 있다면 내가 마시기 전에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세요. 자, 보세요, 이렇게 입술을 댔습니다.
그대로 마셔 두는 게 좋을 거요. 그는 여전히 냉담하고 침착한 태도로 말했다. 뜻밖에도 나라는 사람을 잘 모르고 있군. 헤스터. 내가 하는 일이 늘 그렇게 얄팍한 것이던가? 비록 내가 복수를 회책하고 있다 하더라도 당신을 생명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약을 주는 편이 훨씬 더 그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겠소? 당신을 살려 두어야만 이 낙인 찍힌 치욕의 표시가 언제까지나 당신 가슴에서 불타고 있을 게 아니오?
그러면서 그가 기다란 검지를 주홍색 글씨에 대자 그것은 갑자기 새빨갛게 불타올라서 그녀의 가슴속까지 타들어가는 듯하였다. 그는 헤스터가 자기도 모르게 움찔하는 것을 보자 싱긋이 웃었다.
그러니까 당신은 살아 있어야 하고, 언제까지나 업고를 치르며 살아야 하오.
무사람이 보는 앞에서, 당신이 한 때 남편이라 부른 일이 있던 남자 앞에서, 그리고 저 어린애가 보는 앞에서 말이오, 자. 당신이 오래 살 수 있도록 이 물약을 들어요.
그 이상의 권고를 받을 필요는 없었다. 헤스터 프린은 물약을 쭉 들이키더니 의사의 지시대로 아이가 잠들어 있는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의사는 방안에 놓여 있는 오직 하나의 의자를 끌어당겨 그녀 옆으로 다가앚았는데, 이러한 그의 행동에 헤스터는 몸을 부르르 떨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인간적인 면에서든, 원리원칙에서든, 아니면 세련된 가면을 뒤집어쓴 잔혹성에서든, 하여간 육체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 준 다음, 이번에는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남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응대하려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헤스터, 당신이 왜 이런 꼴이 되었는지, 아까 본 바대로 어쨰서 처형대위에 서게 되었는지 그이유는 묻지 않겠소. 이 이유야 뻔한 노릇 아니겠소? 나의 어리석음과, 당신의 유약함 탓이니까. 나는....사색의 인간이었소. 수많은 큰 도서관의 책벌레였소. 끝도 없는 지식욕을 채우고자 좋은 세월을 다 보내고 이제 늙은 몸이 되었으니, 이런 내가 당신처럼 젊고 아름다운 여인에게 무슨 가치가 있겠소? 날 때부터 불구였던 내가 젊은 여자와 같이 하며 지적인 재능으로 그 모자라는 부분을 덮어 나갈 수 있으리라 믿은게 처음부터 잘못이었소. 남들은 나를 현명하다고 하오. 현명하다는 말이 자신의 일에 괸해서도 적용된다면, 이번 일 역시 예측했어야 옳았던 거요. 어두운 숲 속을 벗어나 이 그리스도 교도의 식민지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이미 나는 확실히 알고 잇었어야만 했소. 즉 내 눈앞에 가장 먼저 나타날 것은 사람들 앞에 치욕의 초상처럼 서 있는 당신이란 것을. 아니, 남편과 아내로서 교회의 들층계를 내려오던 그 순간부터 우리의 인생길에 봉화불처럼 빨갛게 타오르던 주홍 글씨가 보였어야 했던 거요.
당신도 알고 있었을 거예요. 헤스터가 입을 열었다. 몹시 참담한 심경이었지만 자신의 치욕의 표시에 대해 은근히 비꼬는 이 마지막 말은 차마 참고 들을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내겐 당신에 대한 애정 같은 건 없었다는 것을, 또 그런 체한 일도 없었어요.
옳은 말이오! 그는 대답했다. 역시 내가 어리석었었소! 방금도 말했잖소.
그러나 그때까지의 나의 인생은 허송세월의 연속이었소. 세상에 즐거움이라곤 없었소! 나의 마음은 손님을 초대할 객실은 많았지만, 난로 하나 없는 쓸쓸하고 냉랭한 커다란 집이나 다름없었소. 나는 뭔가 거기에 불을 붙여 보고 싶었소.
그다지 허황된 꿈은 아닐 것 같았소. 늙은 데다 불구자인 주제에.... 세상 사람 누구나가 붙잡을 수 있게 온 천지에 흩어져 있는 소박한 행복을 지금부터라도 잡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꿈이었으니 말이오. 그래서 헤스터, 나는 당신을 내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 맞아들여 당신이 그곳에 있으므로 해서 생기는 내 마음의 훈김으로 당신을 따뜻하게 해 주고 싶었던 거요!
내가 당신을 배신했어요.
헤스터는 중얼거렸다.
배신이야 서로 한 셈이지. 그는 대답했다. 애초에 배신한 것은 바로 나요.
꽃봉오리처럼 젊은 당신을 속이고 늙은 나와 어색하고 거짓된 관계를 맺제 했으니 말이오. 지금까지의 사색이나 철학이 헛된 것은 아니었으니 당신에게 복수한다거나 흉계를 꾸민다거나 하는 일은 하지 않겠소. 우리는 아무에게도 서로 잘잘못이 없는 세이오. 다만 헤스터, 우리에게 못할 짓을 한 그남자는 살아 있소! 그 사람이 대체 누구요?
그건 말할 수 없어요! 헤스터 프린은 단호한 태도로 대답하며 상대방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만은 말할 수 없어요!
절대로 안 된다는 말이로군? 그는 음울하고 자기 확신에 찬 미소를 지었다.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고! 이것 보오. 헤스터. 전심전력을 다해 한가지 비밀을 밝히기 위해 몰두하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무슨 일이건 어느 한도까지는-외부의 일이든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의 일이든지간에 비밀은 반드시 밝혀지기 마련이오. 당신은 남의 일을 캐내기 좋아하는 군중으로부터라면 그 비밀을 지킬 수 있을는지 모르오. 목사나 재판관의 눈을 속일 수는 있을 것이오. 오늘 낮에 당신에게서 처형대에 나란히 서야 할 그 남자를 알아내려고 했을 때에도 그러했으니 말이오. 그러나 나는 그들과는 드른 방법으로 그를 찾을 것이오. 책에서 진리를 찾아낸 것처럼 그 남자도 꼭 찾아내고야 말 것이오. 그 남자를 만나게 되면 나도 모르게 갑자기 까닭도 없이 떨게 될 것이고, 나는 그를 위식할 수있을 것이오. 언젠가는 내 손으로 꼭 찾아낼 거요!
주름진 학자의 눈이 불길처럼 번뜩였다. 헤스터 프린은 가슴속에 간직한 비밀을 혹 그가 알아챌까 두려워서 두 손으로 가슴을 끌어안았다.
당신은 끝내 그자의 이름을 못 대겠다는 거요? 아무래도 내가 알아내고 말 텐데. 그는 마치 운명이 자기 편이 되기라도 한 듯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그자는 당신처럼 치욕의 표시를 가슴에 달고 있지 않을진 모르나 내게는 그 표시가 보일 것이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소! 내가 하느님꼐서 그자에게 내리는 처벌에 간섭하거나, 인간이 만든 법률의 손을 빌지도 모른다는 염려는 마오. 그자의 생명을 해치려는 일을 꾸미리라는 생각도 하시오. 명예를 손상시키는 일도 없을 것이오. 필시 평판 높은 사람일 테지만, 살려둘 거요!
결코 죽일 필요는 없는 거이오. 명예의 껍데기 속에 숨어 살게 내버려두겠소.
그래도 필경에는 내 손아귀에 들어올 것이 틀림없으니까!
당신의 행동은 자비러운 것 같지만.... 하고 헤스터는 공포감에 사로잡혀 말했다. 당신 말을 듣고 있으니 당신은 정말 무서운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한 가지만, 나의 아내였던 당신에게 약속해 달랄 것이 있소. 학자는 말을 계속했다. 당신이 사랑하는 남자의 비밀을 지키고 있듯이 내 비밀도 또한 지켜 주시오!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은 이 고장에 아무도 없소. 그러니 과거에 당신이 나를 남편이라 불렀다는 말을 절대로 입 밖에 내지 말아 달란 말이오! 이 황량한 지구의 끝에서 나는 살 작정이오. 어딜 가나 방랑객 신세, 모든 인간사로부터 고립된 내가 아니오? 그렇지만 이곳에는 나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한 사람의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아이가 있소. 사랑하건 미워하건, 옳건 그르건 그것은 문제가 아니오! 헤스터 프린 당신과, 당신에 관련된 모든 것은 나의 것이오. 내가 있는 곳은 당신과 그 남자가 있는 곳이기도 하오. 그러나 나의 정체만은 밝히지 말아 주기를 부탁하오!
왜 그러기를 바라시지요? 무슨 까닭인지는 몰랐으나, 헤스터는 이 비밀의 약속에 대해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당당히 정체를 밝힌 뒤, 나를 버리지 않는 거죠?
그것은 아내에게 배신당한 나편이 받아야 할 수모를 피아기 위해서인지도 모르오.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도 모르지. 어쨌든 남모르게 일생을 보내는 거싱 나의 바람이오. 그러니까 당신 남편은 이미 저 세상에 가버렸는지 소식도 없다고 해 두면 되는 거요. 말로나 몸짓이나 표정 등으로 나를 아는체 마오!
특히 그자에게 비밀을 누설해선 안 되오. 만일 그렇게 한다면 가만 있지 않을 테니까! 그놈의 명성도, 지위도, 생명도 모두 내 손아귀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오!
그 사람의 비밀을 지키듯이 당신의 비밀 역시 지키겠어요. 라고 헤스터는 말했다.
맹세하시오! 하고 그는 다그쳤다. 헤스터는 맹세했다.
자 그럼, 프린 부인. 로저 칠링워드 노인(앞으로는 이 이름으로 통하게 된다)은 말했다. 혼자 있게 해 주리다. 이 아이와 주홍 글씨만을 상대해야 겠군! 어떻소, 헤스터. 당신이 받은 판결은 잘 떄도 그 표적을 달고 있어야 하오? 무서운 꿈을 꾸거나 가위에 눌릴 것이 두렵지 않소? 그는 기묘한 웃음을 지으며 헤스터를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웃으면서 나를 보세요? 헤스터는 그의 펴정에 당황하며 물었다.
당신은 이 마을 가까운 숲 속에 있다는 악마인가요? 나를 속여 내 영혼을 파멸시키자는 약속을 한게 아닌가요?
당신 영혼은 아니오. 그는 또 한 번 싱긋 웃었다. 아니오. 절대로 당신의 영혼은 아니오!
5.삯바느질하는 헤스터
헤스터 프린의 형기가 끝났다. 감옥문이 열리고 햇빛 속에 발을 내디뎠을 때, 누구에게나 골고루 내리쬐고 있는 햇빛이건만 아프로 병든 그녀의 마음에는 마치 햇빛이 자시느이 가슴에 달린 주홍 글씨를 비추는 일만 목적으로 삼고 있는 것샅이 느껴졌다. 앞에서 말한 대로 숱한 사람들이 행렬을 지어 뒤따르고 너나할것없이 몰려들어 손가락질하는 가운데 처형대의 수모를 겪었지만, 그때보다도 지금 이렇게 혼자 감옥문을 걸어나오는 편이 더욱 고통스러웠다.
그때는 부자연스러운 긴장감과, 지지 않으려는 끈질긴 의지가 그녀의 마음을 지탱해 주었다. 그 덕분에 눈앞에 벌어진 괴로운 장면도 일종의 참혹한 승리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 일은 일생을 통해 한 번쯤 있을까말까한, 다른 일과는 무관한 고립된 사건이었던만큼 그때는 앞날의 일은 생각할 수도 없이 오랜 세월을 평온하게 사는 데 소모될 강렬한 생명력을 동원하여 그 수모와 고통에 대결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헤스터를 처벌한 법률은 흡사 무서운 힘을 지닌 거인과도 같았으나, 그 무쇠 같은 팔에는 파멸시키는 힘뿐만 아니라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힘도 내포되어 있어 오히려 그녀의 시련 기간동안 그녀를 지탱시켜 주었었다. 그러나 지금, 감옥문을 혼자 걸어나오는 순간부터 그녀에겐 새로운 일상의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 생활은 지극히 평범한 재기를 동원해 꾸려나가거나, 아니면 그 무서운 짐 밑에 깔려 버리거나, 둘 중의 어느 하나가 되는 것이다.현재의 슬픔을 극복하기 위하여 미래의 힘을 빈다는 것은 이제는 불가능하였다. 내일은 끝도 없이 계속되리라. 나날이 새로운 시련이 닥쳐 올 것이며 그것은 처참하고 고통스럽게 겪고 있는 현재의 시련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먼 미래의 나날들은 그녀가 짊어져야 할 무거운 짐을 싣고 서서히 다가올 것이며, 언제까지나 그 짐을 팽개칠 수는 없을 것아디, 하루하루 날이 가고 해가 거듭됨에 따라, 그녀의 수치더미에는 그만큼의 비참함만이 더 높이 쌓이리라. 그리하여 오랜 세워링 흐르는 동안 헤스터 프린은 자신의 개성을 모조리 잃어버리고 설교가나 도덕가가 지탄하는 죄의 본보기가 될것이며, 여자의 약점이나 죄많은 격정의 갖가지 이미지를 보여 주는 뚜렷한 존재가 외어 버리리라. 가슴에다 주홍 글씨를 불사르고 있는 헤스터, 훌륭한 집안의 자식으로 태어나 헤스터, 머잖아 어엿한 어머니가 될 헤스터, 한 때 청순하기만 했던 헤스터이건만 죄많은 인간, 죄많은 현실의 구체적이 표상으로써 바라보도록 순진한 젊은이들은 배울 것이고 마침내 그 무덤에는 끝까지 지고 가야 할 더럽혀진 이름만이 유일한 비석으로 남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이 자기를 마치 치욕의 전형처럼 생각하는 이 고장을 오직 하나의 마지막 거줒지로 작정한 것은 참으로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눈앞에는 넓은 세상이 활짝 열려 있었다. 이처럼 멀고 보잘것없는 청교도의 식민지 내에서만 살아야 한다는 조항은 판결문에 없었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있고, 아니면 유럽의 어느 나라에라도 가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자유로이 살 수도 있었다. 또 그녀를 처벌한 법률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전혀 다른 생활 습관을 지니 종족들이 살고 있는 깊고 신비로운 술으로 들어가는 길이 그녀 앞에 틔어 있기도 했다. 그녀의 자유분방한 성격은 그들의 생활에 일치하여, 그들 속에서 그녀는 자유롭게 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숙명이라는 거싱 있게 마련이고, 운명의 힘에 이끌려 피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경우가 흔히 있는 법이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은 어떤 특수한 큰 사건이 그들의 일생을 얼룩지게 한 고장 근처를 유령처럼 배회하며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더구나 그 인생을 슬프게 하는 색채가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더욱더 피할 수 없는 힘이 가해지는 법이다.
헤스터의 죄, 헤스터의 치욕은 대지에 깊숙이 뻗어내린 뿌리와 같았다. 새로운 재생의 삶을 사는데 있어,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났을 때보다도 더욱 가앟ㄴ 동화력을 가지게 되었으며, 다른 순례자나 나그네들조차 꺼려하는 숲 소그이 황야가 헤스터 프린에게는 황량하고 쓸쓸하긴 하나 생애를 보내기에 적합한 고향이 된 듯 싶었다. 이에 비하면 이세상의 다른 풍경은 모두 생소하게 느껴졌다. 고생을 모르던 소녀 시절이나 창순했던 처녀 시절이 마치 옛날에 벗어던진 의복처럼 생소했고 아직도 어머니가 그곳에 살아 계신 것샅이 생각되는, 그 영국의 전원도 이미 한낱 타향에 불과했다. 이 쓸쓸한 고장에 그녀를 묶어 놓은 줄은 쇠사슬과 같아서 헤스터는 마음속 깊이 괴로워하면서도 도저히 그 사슬을 끊어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쩌면 이렇게도 숙명적인 산야와 오솔길 속에 헤스터를 가두어 놓은 것은 그녀의 또 다른 감정 떄문인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히 그러했다.
헤스터는 자신의 감정을 감추려 애썼으나, 그것이 마치 뱀이 구멍에서 기어나오듯이 마음속에서 나오려고 할 때마다 그녀의 얼굴빛이 파랗게 질리곤 했다. 그렇다. 이 고장이야말로 헤스터와 숙명적인 인연으로 굳게 맺어진 그 사람이 살고 있으며 거닐고 있는 곳이다. 그 인연은 지상에서는 비록 인정받을 수 없으나, 두사람이 함께 서야 할 최후의 심판대, 그 자리를 결혼의 제단으로 삼아 끝없는 천벌의 업고를 함께 감내할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영혼을 유혹한 악마는 여러 차례 이런 생각을 헤스터에게 품게 하였다. 그리고는 그녀가 그 생각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가는 그것을 쫓아 버리려고 몸부림치는 모양을 지켜보며 재미나다는 듯 비웃는 것이었다. 헤스터는 이런 생각에 정면으로 부닥치는 일이 없도록 급히 서둘러 마음의 토굴속에 그것을 가둬 버리는 것이었다. 헤스터가 자신에게 믿게 하려 했던 것은-뉴잉글랜드에서 살게 된 동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은-반은 진실이었으나, 반은 자기 기만적인 것이었다. 나는 이 고장에서 죄를 지었다. 그러므로 지상에서 받을 형벌은 이곳에서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여 날마다 받아야 할 치욕의 고통이 언젠가는 나의 영혼을 깨끗이 씻어 줄는지도 모르며, 잃어버린 순결과는 색다른 순결이 생겨나서 결국 고난 끝에는 좀더 성녀같은 여자가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이런한 까닭에서 헤스터 프린은 달아나지 않았다. 이 마을 변두리, 반도의 지역 안이긴 하지만 인가와 떨어진 곳에 조그만한 오두막집이 있었다. 이 집은 초기의 개척자가 세운 것이었으나 부근의 땅이 너무 메말라서 농사를 지을 수 없는데다 도심에서 거리가 멀고, 이미 이 주민들의 생활의 일부분이 된 사교 활동의 영역에서도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폐옥이 되어 있었다.
그것은 해변에 자리잡은 서향집이었는데, 만 안쪽 저 멀리로 숲이 우거진 산들이 바라다보였다. 이 반도에는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잡목 숩이 있었는데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이 집을 가려 주고 있었다. 아니, 가리고 있었다기보다 이집이 그 숲 뒤에 숨어 버렸다는 편이 옳을지도 모른다. 또는, 당연히 숨겨 둬야 할 집이 있음을 그 잡목 슾이 나타내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하였다. 그녀는 아직도 성가시게 감시를 하고 있는 행정관들의 허가를 얻어 이 조그마한 외딴집에 가재도구를 옮겨와 아기와 함께 살게 되었다. 그러자 늬혹의 그림자가 곧 이 장소에 위따르게 되었다. 이 여인이 왜 인간적인 자비로운 세상에서 따돌림을 당하거 이것에 와 살게 되었는지 그 영문을 알 리 없는 아이들은 이 집 가까이 몰래 와서, 창가에서 바느질을 하거나, 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거나, 조그마한 뜰에서 일을 하거나, 또는 마을로 통하는 오솔길을 걸어 나오는 그녀를 바라보곤 하였다.
그러나 가슴에 붙은 주홍 글씨가 눈에 띄면 까닭 모를 공포심에 사로잡혀 그들은 모두 와 하고 소리를 지르며 사방으로 도망치는 것이었다.
헤스터의 처지는 쓸쓸했고 누구 한 사람 찾아 주는 친구도 없었으나, 생활의 곤궁은 면할 수 있었다. 그녀에겐 몸에 익힌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뜻 보기에는 그런 기술을 발휘할 만한 고장이 못 되어씾만, 한창 자라는 아이와 자기의 양식을 마련하기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그 기술이란 예나 지금이나 여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기술인 바느질이었다. 헤스터가 자신의 가슴에 붙이고 있는 주홍 색 수 글씨는 그녀의 섬세하고도 상상력이 풍부한 재능을 충분히 나타내 주었다. 궁저에 사는 귀부인들이 그럿을 보았다면 명주실과 금실로 짠 옷감에다 인간의 기교를 더한 풍요하고 정성어린 장식을 가지고자 반색하며 달려들었을 것이다. 이 고장의 여느 쳥교도들이 입는 옷은 상복처럼 수수한 것이 특징이라 헤스터의 수 주문이 여간해서 없었음은 사실이나, 그 당시는 정교한 수예품이 대단히 유행하던 풍조였다. 따라서 많은 풍습과 유행을 고향에 버리고 새 대륙으로 건너온 청교도드르이 선조들 또한,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목사직의 임명식이라든가 행정관의 취임식, 또는 새로운 정부가 백성에게 보여 주는 행사에 위엄을 갖추는 일 등, 모든 공식적인 행사에는 위용과 장엄함이 돋보이도록 하는 것이 정책적으로 고려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깊이 주름 잡힌 옷깃, 정성들여 만든 띠, 화려하게 수놓은 장갑 등은 모든 집권자의 공적인 정식 복장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일반 시민에게는 근검이란 법령으로 이 같은 사치를 금지하고 있었으면서도 높은 신분의 사람이나, 부유한 사람에게는 예외적으로 허용되었다. 장계식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시신에 입히는 수의며, 유가족의 슬픔을 나타내기 위한 검은 천이나 흰 삼베로 된 갖가지 모양의 상복 등, 헤스터 프린의 솜씨를 필요로 하는 일거리는 많았다. 갓난아기의 린네르 제품-그즈음에는 갓난아기에게도 훌륭한 예복을 입혔으므로-또한 돈벌리되는 일거리로 얻을 수 있었다.
이리하여 조금씩, 제법 빠른 속도로 헤스터의 수예품은 요즘 말로 표현하면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불쌍한 운명의 여인에 대한 동정심에서인지, 보잘것없는 물건에까지 터무니없는 가치를 부여하려는 병적인 호기심에서인지, 또는 예나 지금이나 뭔가 알 수 없는 사정으로 남이 구할 수 없었던 것이 선뜻 어느 일부 사람에겐 주어졌던지, 또는 헤스터가 아니었더라면 그대로 방치해 둘 뻔한 불편이 그녀 덕분에 실제로 해결된 때문인지, 그 어떤 이유에서든지 그녀가 하루에 몇 시간이고 일을 하기만 하면 일거리는 얼마든지 있었고 품삯도 꽤 후한 편이었다. 허영심이 강한 사람들은 호화찬란한 의식을 위해 죄많은 헤스터의 손으로 만들어진 옷을 몸에 걸침으로써 허영의 죄를 상쇄하려고 하였는지도 모른다. 하여간에 헤스터의 수 솜씨는 총독의 주름깃에서도 볼 수 있었고, 아기들의 조그만 모자를 장식하기도 했고, 죽은 사람의 관 속에 들어가 곰팡이가 피어 썩기도 했다. 그러나 청순한 신부의 부끄러움을 가려 줄 흰 면사포에 헤스터의 솜씨로 수를 놓은 예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러한 사실은 헤스터의 죄에 대해 사회가 얼마나 냉혹하게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나를 여실히 말해 주는 것이었다.
헤스터는 자기 자신을 위해 최소 한도의 검소하고 금욕적인 생계비 이외에는 바라는 것이 없었다. 그녀의 드레스는 칙칙한 빛깔의 가장 값싼 옷감이었고, 장식품이라고는 평생 달아야 할 운명의 주홍 글씨 하나뿐이었다. 이에 비해 어린아이의 옷에서는 상상을 초월한 기발함이 눈에 띄었는데, 이것은 일찍부터 이 어린 소녀에게 싹트고 있던 뭔가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듯한 환상적인 매력을 한층 돋보이게 했다. 이 점에 대해선 뒤에 더 자세히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어쨋든 이 아이의 옷을 아름답게 꾸며 주는 데 드는 약가느이 비용을 제외한 나머지 돈을 헤스터는 모두 자산사업에 썼다. 처참하기로 따지자면 오히려 자기보다는 처지나 나은, 가나한 사람들을 위해 그녀는 돈을 나눠 주었지만 그들은 자기들을 위해 자선을 베풀어 주는 이 여자에게 자주 모욕을 주었다. 차라리 훌륭한 옷을 만드는 데 솜씨를 발휘했으면 더 보람이 있었을 꽤 많은 시간을 헤스터는 가난한 사람들의 마구잡이 옷을 만드는 데 솜씨를 발휘했으면 더 보람이 있었을 꽤 많은 시간을 헤스터는 가난한 사람들의 마구잡이 옷을 만드는 데 소비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에 힘을 기울이는 것으로 속죄를 할 작정이었는지도 모르며, 많은 시간 동안 이렇게 거친 일을 함으로써 자신의 모든 즐거움을 희생시키려고 하였는지도 모른다. 헤스터의 성품에는 어딘지 모르게 화려하고 요염한, 동양적인 기질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사치스럽고 아름다운 것에 대한 취미는 아름다운 의복을 만들어 내는 일 말고는 아무리 생활의 구석구석을 살펴봐도 그러한 점을 엿볼수 없었다.
여자들은 대개 섬세한 바느질을 통해 남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기쁨을 발견하곤 한다. 헤스터 프린에게 있어 바느질은 인생에 대한 정열을 발산하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며, 또한 그 정열을 진정시키는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인생의 모든 즐거움을 물리친 헤스터는 이러한 기쁨도 죄악시하여 두려워하였다. 이렇게 하찮은 일에까지도 그녀의 병적인 양심이 작용하는 것은 오로지 순수한 희한때문이라기보다 어딘가 의심스러운, 그녀의 내부 깊숙한 곳에 무언가 잘못된 것이 숨겨져 있는 증거였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렇게 하여 헤스터 프린은 이 사회에서 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녀의 열정적인 성격과 뛰어난 재능 탓에, 여인의 가슴에다 카인의 이마에 찍힌 낙인보다도 더 참기 어려운 표시를 달아 준 세상도 이 여자를 완전히 고립시킬 수는 없었다. 그러나 사회와 어떠한 교섭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녀가 그 사화의 일원이라고 느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를 대하는 세상 사람들의 태도나 말씨, 심지어는 그 침묵까지도, 헤스터는 추방된 사람이며 어딘가 별천지에 살고 있는 사람이거나 여느 사람과는 다른 기관이나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고독한 존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으며, 때로는 그것을 노골적으로 나타내는 때도 있었다. 헤스터는 표면적으로는 인간적인 관심사에서 격리돼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바로 그 옆에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그녀는 그리운 난롯가로 돌아와서도 이미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으며, 가족의 즐거움에 함께 웃을 수도 없고, 또는 가족의 슬픔에 눈물을 흘릴 수도 없는 망령과 같은 존재였다. 가령 금지된 동정을 표현해 본댔자 상대방으로 하여금 공포감이나 혐오감 그리고 심한 멸시만이 이 세상 사람들의 마음속에 헤스터가 차지한 유일한 자리였다. 헤스터는 자신의 입장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잊을 리도 없었지만, 사람들이 가장 아픈 곳을 인정사정 없이 건드릴 때마다 새로운 고통처럼 자시느이 처지를 되새기곤 했다. 앞서도 말했듯이 헤스터가 도와주려고 찾아낸 가난한 사람들까지도 자선을 베풀려는 그녀의 손길에 침을 뱉는 경우가 많았다. 일거리 때문에 드나드는 상류 사회의 부인들도 헤스터의 마음에 언제나 고통이 물방울을 떨어뜨렸다. 여자들이란 일상생활의 하찮은 일에도 사람을 해치는 독약을 마즐어 내며, 겉보기엔 태연한 듯하면서도 악의에 찬 감정의 연금술로 그녀를 괴롭히는 수가 있었다. 때로는 노골적인 악담이 곪은 상처에 가해지는 혹독한 일격처럼 아무런 방비도 없는 가슴에 날아와 헤스터를 괴롭히는 일도 있었다. 헤스터는 오랜 시일에 걸쳐 자신을 굳건하게 단련시켜 왔었다. 그러한 공격에 대한 그녀의 반응은 으레, 창백한 볼에 홍조가 가득히 번졌다가는 곧 가슴속 깊은 곳으로 가라앚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마치 순교자와도 같이 강한 인내심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는 없었다. 그들을 용서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였지만, 혹 아무리 참고 억눌러도 기도의 말이 저주의 말로 변할까 보아 두려웠기 때문이다.
헤스터는 끊임없이 그녀의 가슴을 후려치는 수많은 고뇌와 고통에 시달렸다.
그것은 청교도의 법정에서 안겨 준, 그 효력이 언제 다할지 알 수 없는 판결에 의해 교묘하게 만들어진 고통이었다. 길을 가다 그녀와 맞닥뜨린 목사가 한바탕 설교를 늘어 놓으면, 이 불쌍하고 죄많은 여인의 둘레에는 구경꾼들이 모여들어 킥킥대며 웃기도 하고 얼굴을 찡그리기도 했다. 만인의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미소를 한 번 보고 싶어 안식일에 교회에 가면, 공교롭게도 자기 자신이 그날의 설교 주제가 되는 일이 가끔 있었다. 헤스터는 아이들이 무서워졌따. 그서은 아이들이, 언제나 딸 아이 하나만을 데리고 조용히 거리를 걸어가는 이 와로운 여인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을 그들의 부모로부터 암시받아 왔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우선 헤스터 모녀를 지나가게 한 다음 위에서 왁자지껄 떠들어 대며 쫓아오는 것이었다. 이이들의 마음에는 확실한 뜻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 무심결에 함부로 지껄이는 말이 오히려 헤스터를 두렵게 만들었다. 그것은 그녀의 치욕을 모르는 사람이 없이 온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 증거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나뭇잎들이 그 어두운 이야기를 속삭이게 되고 여름철에 부는 산들바람이 그 이야기를 중얼거리고, 겨울철의 삭풍이 큰 소리로 외친다 하더라도 이처럼 가슴속 깊이 고통을 주지는 않았으리라! 또 한 가지 쓰라린 고통을 느끼는 때는 처음 만나는 사람이 호기심에 찬 누빛으로 자신을 쳐다볼 때였다. 낯선 사라밍 주홍 글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누구나 다 그러했지만-헤스터의 마음에는 새삼스레 그 글씨가 타들어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므로 어떤 때는 손으로 가슴의 표시를 가려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늘 그 충동을 꾹 눌러 참았다. 그러나 주홍 글씨에 익숙한 사람들의 눈길 역시 그 나름대로의 괴로움을 안겨 주었다.
그들의 다 알고 있다는 듯한 싸늘한 눈초리는 정녕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말하자면 헤스터 프린은 주홍 글씨에 쏟아지는 사람드르이 눈길을 위식할 떄마다, 언제나 몸서리나는 고통을 겪었다. 가슴에 단 표적 부분은 절대로 무감각해지는 일이 없었으며, 오히려 나날이 더해지는 고통으로 점점 더 민감해지는 듯 하였다.
그러나 때로는 며칠에 한 번, 아니 몇 달에 한 번 정도 어떤 인간적인 눈길이 치욕의 낙인에 멈추어 위안을 주고, 그녀의 고뇌를 덜어 주는 것같이 느끼는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일순간 다시 모든 고통이 왈칵 되살아나 한층 더 심한 고통의 발작을 안겨 주었다. 왜냐하면 그 짧은 순간에 헤스터는 또 새로운 죄를 범한 셈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죄를 지은 것은 헤스터 혼저였을까?
이 여자의 상상력은 조금 기이한 데가 있었다. 정신적으로 도독적으로 약한 기질의 소유자였다면 그것은 고독한 생활의 고통 때문에 좀더 악화되었을지도 모른다. 표면적으로만 연결되어 있는 그녀의 좁다란 세상을 쓸쓸한 발걸음으로 이리저리 걸어다니는 동안에 때때로 헤스터의 머리에는 주홍 글씨 덕분에 자신에게 새로운 감각이 싹튼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것이 모두 공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하기엔 거역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이 감각으로 인해 타인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죄를 직관적으로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끼쳤으나, 그렇게 믿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드러나는 갖가지 사실은 헤스터를 공포로 몰아 넣었다.
도대체 이것은 무엇이었을까? 악마의 흉측한 속삭임일까? 악마는 아직 반밖에 자기의 희생물이 되지 않은 이 불행한 여인에게, 겉으로 순결한 체하는 거승ㄴ 거짓이며 그녀 이외의 수많은 사람의 가슴에도 남모르게 주홍 글씨가 빨랗게 타오르고 있노라고 그녀를 부추기는 것일까? 아니면 이 암시를, 막연하긴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이 암시를 진실로써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헤스터가 겪은 모든 경험을 다 들추어내더라도 이런 의식 만큼 무섭고 지긋지긋한 것은 없었다. 더구나 그와 같은 의식이 얼토당토않은 때에 생생히 떠오르는 데에는 놀라울 뿐 아니라,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무렵 사람들로부터 천사와 친교라도 있는 사람처럼 우러름을 받던, 신앙과 정의의 귀감이라고 할 만큼 훌륭한 목사나 행정관의 옆을 지나갈 때에도 가끔 가슴의 빨간 치욕의 표시가 무엇에 공검한 듯한 아픔을 느끼게 하는 일이 있었다. 이렇게 생각하며 눈을 들면, 그 성인 군자의 모습 이외에는 아무도 눈에 띄는 사람이 없었다! 또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나면서부터 지금까지 가슴에 품고 있는 것은 오로지 희고 차가운 눈뿐이라는 어느 훌륭한 부인의 점잖기 이를 데 없는 찌푸린 얼굴을 대할 때에도, 그 부인과 자기 사이에는 어떤 유사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묘한 의식이 끈덕지게 머리를 쳐들었던 것이다. 그 부인의 가슴 속에 있는 햇빛을 모르는 눈과, 헤스터 프리느이 가슴위에 치욕의 표시로 불타고 있는 주홍 글씨, 이 두 가지 사이에 공통된 것은 대체 무엇일까? 또 어떤 때는 자, 보아라, 헤스터. 여기 네 동료가 있다. 하는 소리에 오싹하는 전율을 느끼며 눈을 들면, 주홍 글씨를 곁눈질로 쳐다보던 처녀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마치 자신의 순결이 그것을 봄으로 해서 더럽혀지기하도 하는 듯이 볼에 홍조를 가득 띠우며 딴청을 부리는 것이었다. 아, 숙명의 주홍 글씨를 부적으로 삼고 있는 악마여, 너는 불쌍하고 죄많은 여인이 존경할 만한 자를 남녀노소 중에서 한 사람이라도 보여 줄 수는 없는가? 이와 같은 신앙의 상실이야말로 죄악이 가져오는 가장 슬픈 결과의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스터 프린이 자기 만큼 죄를 많이 진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라고 믿으려고 했던 사실은, 스스로의 약한 천성과 인간이 만든 엄한 법률에 희생된 이 불쌍한 여인의 마음이 실은 조금도 타락하지 않았다는 증거임을 우리는 받아들여 주어야 하리라.
이 음울한 시대의 일반 대중을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모든 일에 기괴하리만큼 두려움을 느끼는 습성이 있었다. 이 주홍 글씨에 대해서도, 그들은 현대인이라면 쉽사리 무서운 전설로 꾸밀 수도 있을 그러한 해괴한 이야기를 꾸며 댔다. 이 표적은 흔히 볼 수 있는 물감통에서 물들인 단순한 붉은 빛이 아니라 지옥의 겁화로 빨갛게 불타오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두운 한밤이라도 헤스터가 있는 곳은 언제나 환하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주홍 글씨는 헤스터의 가슴에 깊이 타들어가고 있었으므로, 아무래도 어러한 소문에는 회의적인 현대인이 인정하려 들지 않을지라도, 일말의 진실이 내포되어 있으리라는 것을 여기서 밝혀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6.펄
헤스터의 아이에 대해서는 아직 거의 말한 바가 없다. 그 작고 티없는 생명은 헤아릴 수 없는 신의 섭리에 의해 죄 많은 정열의 틈바구니에서 아름다운 불멸의 꽃으로 피어났다. 이 아이의 자라는 모습과, 나날이 밫을 더해 가는 아름다움, 그리고 작은 얼굴에 감도는 총기 등을 지켜보는 가엾은 여인에겐 그것이 얼마나 신기하게 여져졌겠는가! 펄...... 헤스터는 그런 이름을 붙여 주었으나, 그 모습이 진주 같다고 해서 그렇게 붙인 것은 아니었다. 진주를 연상시키는, 온화하고 희고 은은한 광택 등은 조금도 없는 아이였다. 그러나 구태여 펄 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고귀한 것, 즉 엄마의 모든 것을 바쳐 얻은 오직 하나의 보물이라는 뜻이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닌가! 세상은 이 여인의 죄를 나타내기 위해 그녀의 가슴에 주홍글씨를 달아 주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굳게 잠그는 힘을 지니고 있어, 이 여인과 마찬가지로 죄 지은 사람이 아니고는 그 누구의 동정심도 이 여인의 마음의 문을 열 수 없었다.
이처럼 세상에서 따돌림당한 죄악의 직접적인 결과로써 하느님은 헤스터에게 어여쁜 아이를 내려 주신 것이다. 영원히 지워 버릴 수 없는 치욕의 가슴에 안겨 있긴 하나 아이는 엄마를 영원히 인간 가족과 연결시키고, 마침내 천국에 가서 축복받는 영혼이 되게 하려함이 아닐까!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면, 헤스터는 희망보다도 불안이 앞서 초조했다. 자신의 행위가 얼마나 큰 죄악이었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 죄과가 호전되리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날마다 헤스터는 자라나는 아이의 성질을 불안한 마음으로 살펴보았고, 이 아이를 낳게 된 죄에 합당한 어떤 어둡고 격렬한 특징이 나타나는 게 아닌가 하고 가습을 졸였다.
확실히 신체적으로는 아무런 결함이 없었다. 나무랄 데 없는 용모와, 활발한 성겨, 아직 제대로 단련되지도 않은 손발을 신기하리만큼 자유자재로 놀리는 모습 등을 보면 이 아이는 에덴 동산에 태어났다 하여도 전혀 손색이 없을 듯하였다. 인류의 첫 번째 양친인 아담과 이브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뒤에도 낙원에 남아서 천사들과 어울려 논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아이에겐 완벽한 아름다움과 선천적인 품위가 갖추어져 있었으며, 아무리 수수한 옷을 입고 있어도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것이 가장 잘 어울리는 옷으로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펄이 촌스러운 옷을 몸에 걸치는 일은 결코 없었다.
이야기가 차차 진행되는 동안 알게 될 테지만 어머니는 아이에게 병적인 집착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아이의 외출복을 위해 가능한한 비단 옷감을 샀고 디자인과 장식에 최대한의 상상력을 발휘했다. 타고난 미모에다 이렇게 차려 입은 펄의 조그마한 모습은 너무나 눈부셔 어두컴컴한 오두막집 마루는 그야말로 환한 빛이 둥그렇게 비치는 것 같았다. 어린아이답게 기운차게 뛰어 놀아 찢어지고 더러워진 적갈색의 무명옷을 입었을 때도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답기만 했다.
펄의 얼굴은 무한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 한 아이 속에 이를테면 여러 명의 아이가 들어 있는 셈이었으니, 농가의 어린아이에게서만 볼 수 있는 들꽃 같은 가련함으로부터 어린 공주님에게 볼 수 있는 아담한 화려함에 이르기까지 아주 변화무쌍한 자태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정열적인 기질과 심오한 맛을 지니고 있었다. 만일 그러한 여러 가지 변화무쌍한 기질 중에 어느 하나라도 기운을 잃거나 빛이 바래거나 하면 이미 펄이 아닌 딴 존재가 되어 버렸을 것이다.
이런 외면적인 변화무쌍함은 내면적인 생명의 다양한 특성을 암시해 주는 것이었다. 또한 펄의 성질에는 그러한 다양성 뿐아니라 동시에 깊이가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자기가 태어나 이 세상과의 결합이나 순응성은 전혀 볼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헤스터의 두려움은 기우에 불과하였을 것이다. 이 아이에겐 규칙을 따르게 할 수가 없었다. 펄이 태어나므로 해서 이미 큰 율법이 깨어졌던 것이다. 그 결과 이 어린 아이의 자질은 아름답고 화려하긴 하나 도무지 질서가 없었다. 나름대로의 독특한 질서를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변화와 조화의 구별을 지을 수 없는 것이었다. 헤스터가 이 아이의 성질에 대하여 설명할 수 있는 것은 펄이 자신의 영혼과 육신을 각각 정신계와 물질계에서 흡수하던 시개에 헤스터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 생각해 보는 도리밖에 없었다.
어머니의 흥분 상태가 그대로 뱃 속의 아이의 정신 생활에 여러 가지 빛 그림자를 던지는 매개체가 되었던 것이다. 본디는 희고도 맑았던 것이 중간에 낀 매개체 때문에 진홍 색과 금빛, 이글거리는 듯한 광택, 검은 그림자, 게다가 더없이 강렬한 빛을 띠게 되었다. 특히 그 무렵의 헤스터의 정신적 갈들이 그대로 펄에게 전해진 것이다. 반항적이고 격렬한 기질, 그리고 마음속에 어둡게 자리잡고 있던 음울함과 낙담하는 태도까지 그대로 펄에게서 발견되었다. 지금은 아이들다운 모습으로 마침 햇살처럼 빛나고 있지만, 마침내 지상의 생활을 독자적으로 영휘할 날이 되면 휘몰아치는 선풍을 불러 일으킬지도 모를 일이다.
그 당시의 가정교육을 요즘보다 훨씬 엄격했다. 무서운 얼굴, 호된 꾸짖음, 성서의 권위가 명하는 대로 계속 가해지는 매질 등, 그런 것들은 다순히 실제로 저지른 잘못을 벌하는 것뿐 아니라 아리의 모든 미덕을 길러 주고 향상시키기 위한 소중한 정신 교육의 수단이기도 했다. 헤스터 또한 외동딸의 어머니로서 엄격한 태도를 취했다. 자신의 과실과 불행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으므로 자기 손에 맡겨진 아이의 앞날에 대해서 일찌감치 친절하고도 실수 없는 선도자의 역할을 하리라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도저히 헤스터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무서운 얼굴을 지어 보이기도 하고, 상냥하게 달래 보기도 하였으나 도무지 효력이 없다는 것을 알자 헤스터는 마침내 두 손을 들었으며 아이가 하는 대로 내버려둘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물론 육체적으로 위협하거나 구속하는 동안은 효력이 있었다. 그러나 아이의 지성이나 정서에 바탕을 둔, 다른 교육 방법은 그때그때 펄의 기분에 따라 효과가 있기도 하고 효과가 없기도 했다. 펄이 아직 어렸을 때 헤스터는 이 아이의 독특한 표정-어머니가 아무리 타이르고 설득을 하고 애원을 해도 결국은 부질없는 짓이라고 말하는 듯한-을 알아차렸다. 그 표정은 영특하면서 사나울 만큼 고집스럽고, 때로는 개망나니처럼 심술궂은 데도 있었으나 대체로 활기에 넘쳐 있었다. 헤스터는 도대체 펄이 사람의 자식이랄 수 있을까 하고 때때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오두막 마루 위에서 제멋대로 뛰어 놀다가 어느 틈에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짓고 달아나 버리는 정체 모를 요정처럼 생각되었다. 그런 독특한 표정이 침착성을 잃은 아이의 새까맣게 빛나는 눈동자에 떠오를 때는 어딘지 모르게 손이 닿을 수 없는 먼 곳에 있는 사람처럼 여겨졌다. 마치 공중에 떠서 언제 왔다 언제 사라지는지도 모르는 아지랑이처럼 덧없는 모습이었다. 그럴 때면 헤스터는 자기도 모르게 달려가서 늘 도망치고만 있는 요정을 붙잡아 가슴에 꼬옥 끌어안고 힘차게 키스해 주고 싶은 충동이 베면 피가 나오는 인간이란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어머니에게 붙잡힌 펄은 명랑한 음악 소리와도 같은 웃음 소리를 냈으나, 전보다도 더 불안한 느끼믕 안겨 주기만 했다.
헤스터에게 펄은 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은 둘도 없이 귀중한 보물이었으나, 이 펄과 자기와의 사이에 가끔 까닭을 알 수 없는 이런 불안감이 스며드는 데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따금 서러움이 복받쳐 울음을 터뜨리는 일도 있었다. 눈살을 찌푸리고 그럴 때면 조그만 주먹을 불끈 쥐며 그 귀여운 얼굴에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어떤 때는 갑자기 더 한층 높은 소리로 웃어 대기도 하며 인간의 슬픔을 느끼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그런 아이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혹은 또 슬픔에 몸부림치며 어머니에 대한 애정을 띄엄띄엄 눈물섞인 말로 털어 놓고, 눈물로써 자기에게도 인정이 있음을 증명하려는 듯이 보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헤스터는 이런 변덕스러운 애저을 마음놓고 믿을 수가 없었다. 눈깜짝할 사이에 나타났다가는 사라지는 애정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이것저것 곰곰이 생각하고 있노라면 어머니는 요정을 불러 내기는 했지만 주문의 순서가 잘못되는 바람에 이 새롭고 불가사의한 존재를 제어시키는 주문을 찾아내지 못하게 된 사람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말로 안심할 수 있을 때는 아이가 곤하게 잠들어 있을 때였다. 그때ㅏ은 펄을 완전히 붙잡은 것 같았으며, 조용하고 달콤하면서도 슬픈 행복의 몇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펄이 눈까풀 밑에 심술궂은 표정을 지으면서 깨어나기 전 잠깐 동안의 일이다!
늘 미소진 얼굴로 얼러 주던 어머니의 품을 떠나, 펄이 제법 남과 사귈만한 나이에 이른 것은 그야말로 누깜짝할 사이였다! 어쩌면 그렇게도 빨리 다가왔을까? 만일 떠들썩한 아이들 목소리에 섞여 새소리처럼 맑은 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장난에 몰두하고 있는 왁자지껄한 아이들 소리에서 귀여운 딸아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면, 헤스터 프린은 얼마나 행복했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펄은 태어나면서부터 아이들 세계에서 추방당했기 때문이다. 악마의 핏줄이며, 죄를 상징하는 존재였기 때문에 세례를 받은 아이들의 동무가 될 자격이 없엇다. 이 아이에게서 무엇보다도 놀아운 것은 뛰어나 직관력이었다. 자신의 고독한 처지라든가, 사방에 침범할 수 없는 진을 둘러치고 있는 숙명, 즉 여느 아이들하고는 다른 처지가 지니고 있는 특이성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헤스터는 출옥한 이후로 남 앞에 나설 때 언제나 꼭 펄을 데리고 다녔다.
그녀가 거리를 걸을 땐 으레 펄도 함께였다. 처음에는 팔에 안겨 있었으나 마침내 소녀로 자라 어머니의 작은 동반자가 되었으며, 엄마의 집게손가락을 꼭 쥐고 헤스터가 한 발짝 걸으면 종종걸음으로 서너 걸음씩 걸어 쫓아가게 되었다. 펄의 눈에 띈 것은 풀이 우거진 길가나 집의 문지방 근처에서 청교도의 교육이 빚어낸 재미도 없는 놀이를 하고 있는 보스턴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교회놀이를 하거나, 퀘이커 교도를 매질하는 놀이를 하거나, 머리 가죽을 벗겨 내는 인디언 놀이, 또는 마술을 쓰는 흉내를 내며 놀고 있었다. 펄은 우두커니 구경만 할 뿐 함께 어울려 놀려고는 하지 않았으며 말을 붙여도 모르는 척했다.
때로 아이들이 그녀 주위를 뻉 둘러서거나 하면 몹시 화를 냈고, 돌을 집어 단지며 날카로운 고함 소리를 마구 질러 댔다. 그 고함 소리에 어머니는 몸을 떨었는데, 그 소리에는 마치 마녀가 뇌까리는 알 수 없는 저주의 말과 같은 음조가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청교도의 아이들은 그 예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아량이 좁은 개구쟁이뿐이었다. 헤스터 모녀의 모습에 어딘가 색다르고 기분 나쁜, 보통사람과는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있었으므로 두 사람을 경멸하고 때로는 노골적인 말투로 함부로 놀려 대는 일도 흔히 있었다.
펄은 아이들의 그런 마음의 움직임을 아라차리자, 도저히 아이의 마음에 도사리고 있으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무서운 증오심을 갖고 응대하는 것이었다. 이런 격렬한 울분의 폭발은 어머니가 볼 때 의미심장하게 여겨졌고 마음의 위로가 되기도 하였다. 적어도 그럴 때의 펄의 태도에는 늘 엄마를 애타게 하던 변덕스러움 대신 뭔가 착실한 기분이 넘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또한 헤스터 자신 속에 도사리고 있던 악의 그림자가 반영되어 있음을 알고는 소름이 끼쳤다. 펄을 그 거센 증오와 격정을 전적으로 뺴앗길 수 없는 특권으로써 어머니로부터 이어받았다. 모녀는 인간 사회에서 격리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같은 처지에 놓여 있었다. 펄의 성질에 스며 있는 그 불안정한 요소는 사실 펄을 낳기 전부터 헤스터를 괴롭혀 왔던 것으로, 그 뒤로는 줄곧 모성애 특유의 부드러운 마음으로 달래 왔던 것이다.
집에 있을 때의 펄은 집 안파껭 여러 가지 놀이 상대가 있었으므로 심심하지는 않았다. 잠시도 쉬지 않고 활동하는 이 아이의 정신으로부터 넘쳐나오는 생생한 마력은 수많은 사물들과 서로 사귀게 하였는데, 그 모습은 마치 횃불이 닿는 곳마다 불길이 솟는 것과 흡사했다. 막대기라든가 넝마뭉치라든가 한 송이의 풀포기 등, 상상 외의 물건들이 펄의 마술에 걸리면 꼭두각시로 변하여, 아이의 마음속에 마련된 온갖 무대에서 전개되는 연극의 주인공과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이었다. 펄의 어린 목소리는 남녀노소할 것 없이 수많은 가공 인물을 상대로 대화를 나누었다. 바람에 불려 신음 소리를 내거나 침울한 소리를 내는 검고 장엄한 늙은 소나무가, 그 모습을 닮은 쳥교도의 장로역으로 등장한다. 몰골 사나운 뜰의 잡초들은 무자비하게 두들겨서 뿌리채 뽑아 버렸다. 청교도의 아이들이 때문이다. 이 아니가 열중해서 생각해 낸 수많은 형상과 그 풍부한 내용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이것들은 아무런 연결성이 없으면서도 언제나 초자연적인 활동 상태로, 이리 뛰고 저리 뛰는가 하면 마침내는 너무도 격렬하게 넘쳐나는 생기에 기진하여 까부라지고 만다. 그러면 또 다른 야성적인 힘을 지닌 양상이 그 뒤를 쫓는다.
그것은 변화무쌍한 북극광 같았다. 그것은 상상력의 움직임이라든가 성장해 가는 마음의 놀이라는 점에선 재주가 뛰어난 다른 아이들의 경우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는지도 모르나, 다만 펄은 동무가 없었기 때문에 자기가 만들어 낸 가공 인물들 속으로 뛰어드는 일이 잦았다는 점이 달랐을 것이다. 또 한 가지 색다른 점은 이 아이가 자기 마음속이나 머릿속에 그려 낸 모든 것을 적대시했다는 사실이다. 결코 그들은 친구로 만들지 않았다. 용의 이빨(그리스 신화, 페니키아의 카트모스 왕자가 용의 이빨을 땅에 심었더니 거기에서 적병들이 나옴)을 심어 놓고 거기에서 적군이 뛰어나오면 그것을 향해 덤벼드는 식이었다. 이토록 어린 생명이 결국 언젠가는 부딪히고 말 적의에 찬 인간들과의 싸움을 끊임없이 의식하고 최후까지 버티어 나갈 힘을 기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면 누구나, 그 원인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어머니의 마음에 깊은 슬픔이 새겨졌을지 넉넉히 짐작하리라.
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헤스터 프린은 손에 들고 있던 일감을 무릎 위에 떨어뜨리기 일쑤였고 아무리 억눌러도 솟아나는 괴로움이 말인지 신음소리인지 모를 울부짖음이 되어 터져나오는 것이었다.
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 당신이 아직도 저의 아버지시라면 대답해 주십시오, 저 아이는 도대테 무엇입니까?
이런 때의 펄은 어머니의 신음 소리를 들었는지 아니면 더 미묘한 방법을 통해 그녀의 쓰라린 고뇌를 알아차렸는지 그 생기있고 귀여운 얼굴을 어머니 쪽으로 돌려 요정 같은 그 영특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장난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이 아이의 태도에서 뺴놓을 수 없는 또 한 가지 색다른 것이 있다. 펄이 태어나 처음으로 그의 눈에 띈 것은 대체 부엇이었을까? 어머니의 미소였을까?
다른 아이라면 어머니의 미소에 답하여 작은 입가에 살짝 미소를 떠올렸을 것이다. 펄의 눈에 띈 최초의 것은 헤스터의 가슴에 달린 주홍 글씨였다. 어느 날 어머니가 요람 위로 몸을 굽혔을 때 그 어린것의 눈길은 주홍 글씨를 둘러싼 금색 수의 빛나는 광채에 멈췄다. 좀더 자라서는 고사리 같은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으려 하였다. 헤스터 프린은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가슴의 불길한 표시를 잡아 떼려 했다. 펄의 단풍잎 같은 손이 무엇을 알기나 하듯 주홍 글씨에 와 닿는 데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 그러자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어머니의 거동을 자기를 어르는 것으로 알았던지 펄은 엄마의 눈을 들여다보며 생긋 웃는 것이었다. 그 뒤로부터 헤스터는 아이가 잠든 때가 아니고는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잠시도 아이를 평안한 마음으로 귀여워해 줄ㅇ 틈이 없었다. 여러 주일 동안 펄의 눈길이 한 번도 주홍 글씨에 집중되는 일 없이 무사히 지나가는 일도 있기는 했다. 그러나 또 마치 갑작스러운 죽음의 발작이 엄습하듯 뜻하지 않은 그녀의 눈길이 그 독특한 미소와 기묘한 표정을 띠며 엄습해 오는 것이었다.
언젠가 헤스터가 어머니들이 흔히 거러하듯이 아이의 눈에 비친 자기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변덕쟁이 천사와 같은 표정이 아이의 눈동자에 떠오른 일이 있었다. 그 순간 펄의 귀여운 검은 눈에 조그맣게 비친 것은 헤스터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누군가 다른 사람의 얼굴 같았다. 그것은 악마처럼 음흉하게 웃고 있는 악의에 찬 얼굴이었다. 잘 아는 사람의 얼굴과 비슷한 듯했으나 그 사람은 악의는커녕 미소조차도 여간해서 짓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무튼 아이에게 옮아 온 악령이 그때 마침 장난삼아 얼굴을 내민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뒤 몇 번이고 헤스터는 같은 망상으로 괴로움을 겪었지만, 처음만큼 선명하지는 않았다.
펄이 혼자 뛰어다니며 놀 만큼 자랐을 때였다. 어느 여름날 오후, 펄은 들꽃을 두 손에 잔뜩 꺾어 들고 어머니 가슴을 향해 하나씩 던졌는데, 주홍 글씨에 명중할 때마다 작은 요정처럼 깡충깡충 뛰면서 좋아했다. 헤스터는 처음엔 두 손을 모아 가슴을 가리려고 했다. 그러나 자존심에서인지 체념에서인지, 아니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이 고통을 견디는 것도 회개의 하나라는 생각에서였던지, 죽은 사람처럼 창백해지면서도 펄의 기승스러운 눈을 슬프게 들여다본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들꽃의 공격은 그치지 않았고, 날아오는 꽃송이는 거의 다 주홍 글씨를 맞혔다. 그때 이승에선 물론 저승에서도 도저히 그 약을 구할 도리가 없는 그런 상처가 어머니의 온 가슴을 할퀴었다. 드디어 탄환이 떨어지자 펄은 우두커니 선 채로 헤스터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눈동자의 심연 속에서 작은 악마의 웃는 얼굴이 내다보고 있었다. 정말로 내다보았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어머니는 그렇게 느꼈다.
펄, 넌 대체 누구냐?
어머니가 소리쳤다.
참 엄마도, 엄마의 펄이지 누구야?
아이는 대답했다.
그리고는 깔깔거리고 웃으며 그 근처를 팔짝팔짝 뛰어 돌아다녔는데 어린 요정같은 변덕스러운 몸짓은 금방이라도 굴뚝 위까지 뛰어오를 듯한 기세였다.
넌 정말 엄마의 아이냐?
헤스터는 물었다.
실없는 질문이 아니라, 그때만은 다른 생각 없이 정색을 하고 물어본 것이었다. 펄이 뛰어나게 총명했으므로 그녀로서는 펄이, 제가 태어나게 된 비밀을 다 알고서 드디어 어두운 본성을 드러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니까. 난 펄이란 말야!
아이는 여전히 익살맞은 몸짓을 되풀이했다.
넌 엄마의 딸이 아냐! 엄마의 펄이 아니란 말야!
반 농담삼아 어머니가 말했다. 헤스터는 고뇌에 차 있을 때도 가끔 농담을 하고 싶은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런데 넌 누구니? 누가 널 이세상으로 보냈지?
엄마가 가르쳐 줘! 아이는 정색을 하고 헤스터에게로 다가오더니 무릎위로 몸을 기대었다. 내가 누구인지.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보내셨어!
헤스터는 대답했다.
그러나 이러할 때의 망설임은 아이의 예리한 눈길을 속일 수는 없었다. 그저 늘 하듯 장난삼아 한 일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악마의 재촉을 받아서인지 펄은 검지를 내밀어 주홍 글씨를 만졌다.
아냐! 펄은 똑똑히 말했다. 내게는 하늘의 아버지는 안 계셔!
입 다물지 못해, 펄! 그런 말을 하면 못 써! 어머니는 신음 소리를 억누르면서 말했다. 누구나 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이 세상으로 내려보내는 거야. 너의 엄마도 그렇고, 물론 너도 그래! 그렇지 않으면 넌 어디서 왔단 말이니? 정말 이상한 요물 같은 아이구나, 넌.
가르쳐 줘, 가르쳐 달란 말야! 펄은 졸라 댔지만, 이젠 아까처럼 정색으로 묻는 게 아니라 웃으면서 마루 위를 뛰어 돌아다니고 있었다. 엄마가 말해 줘야지!
그러나 의혹의 어둠 속에 파묻힌 미로를 헤매고 있는 헤스터 자신은 그 물음에 대답할 능력이 없었다. 우스운 것도 아니고 두려운 것도 아닌, 이상한 기분이 들면서 이웃 사람들의 말이 생각났다. 펄의 아버지를 알려고 애쓰던 사람들은 이 아이의 기묘한 성질을 보고서 펄이라는 아이는 악마의 자식임에 틀림없다고 떠들어 댔던 것이다. 먼 중세때부터 말해지는 바로는 어머니의 조로 인하여 어떤 흉악한 목적을 위해 쓰여지는 악마의 자식들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이다. 루터조차도 적인 수도사들의 중상 모략에 따르면 같은 지옥 태생인 악귀의 대장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뉴잉글랜드의 청교도 안에도 그처럼 불길한 성품을 지닌 아이는 있는 법이고, 펄 하나만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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