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이씨(全州李氏) 1
시조 이한(李翰)은 신라 문성왕 때 사공(司空) 벼슬을 지냈으며 그 후 대대로 신라시대에 벼슬을 해왔다. 18세손 이안사(李安社)는 대대로 전주에 살아온 호족이었다. 그런데 새로 부임한 지주와 사이가 나빠 그를 피해 강원도 삼척으로 피했다가 다시 함경도를 거처 원나라 간동으로 갔다.
그곳에서 다루가치 벼슬을 지냈고 증손자 되는 이자춘(李子春)이 고려시대에 공을 세워 사복경(司僕卿)에 이르렀다. 이자춘의 아들이자 시조의 22세손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창건, 전주이씨의 중시조가 되었다.
전주이씨는 조선 500년을 이끌어온 왕가였다. 전주이씨의 1백여 파 중 으뜸가는 명가는 밀성군(침=세종의 아들)파로써 6명의 정승과 3대 대제학을 배출했다. 덕천군(후생(厚生)=정종의 아들)파가 부자 대제학 등 3명의 대제학과 영의정 1명을 내어 밀성군파에 버금간다.
덕천군파 다음으로는 3명의 정승을 배출한 광평대군파(廣平大君派), 정승 2명을 배출한 선성군파(宣城君派), 정승 1명과 숱한 문신과 무신을 배출한 효령대군파(孝寧大君派) 등이 빼어나다.
이수광은 1627년에 이조판서가 되었으며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여러 차례 사신으로 명나라에 왕래했다. 당시 명나라에 와 있던 이탈리아 신부에게서 "천주실의(天主實義)" "중우론(重友論)"을 얻어와 1614년(광해군 6년) "지봉유설(芝峰類說)"을 간행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천주교와 서양 문물을 소개함으로써 실학발전의 선구자가 되었다. 시문에도 능했으며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전주이씨는 오리정승으로 많은 일화를 남긴 인조 때 영의정 이원익, 흥선대원군 이하응, 초대 대통령 이승만, 철기 이범석 장군 등 수많은 거목들을 배출했다.
▲ 전주이씨(全州李氏) 2
전주이씨의 분파는 122파이다. 왕자대군(적자)과 왕자군(서자)을 파조로 하고 있으며 시대 구분에 따라 세 갈래로 나눌 수 있다.
이 태조의 고조부 이안사(李安社)의 상계에서 갈라진 파, 이안사 이후 이 태조 이전에 갈라진 파, 이 태조의 후손으로 왕자대군과 왕자군을 파조로 하는 파 등이다.
이안사(18세) 이전의 분파로는 시조 이한(李翰)의 14대 손인 이단신(李端信)을 파조로 하는 ▲문하시중공파, 15대손 이거를 파조로 하는 ▲평장사공파, 17대손 이영습(李英襲)을 파조로 하는 ▲주부동정공파, 이안사의 종손 이윤경(李允卿:목조의 종손)을 파조로 하는 ▲대호군공파, 이한 의 21대손 이귀을(李歸乙)을 파조로 하는 ▲문하평리공파 등이 있다.
이안사(목조) 이후 태조 이전의 분파로는 이안사의 아들인 이안천(李安川), 이안원(李安原), 이안풍(李安豊), 이안창(李安昌), 이안흥(李安興)의 ▲5대군파, 이행리(목조)의 아들인 이함녕(李咸寧), 이함창(李咸昌), 이함원(李咸原), 이함천(李咸川), 이함릉(李咸陵), 이함양(李咸陽), 이함성(李咸城)의 ▲7대군파, 이춘(李椿.도조)의 아들인 이완창(李完昌), 이완원(李完原), 이완천(李完川), 이완성(李完城)의 ▲4대군파, 그리고 이자춘(李子春.환조.이성계 아버지)의 아들이자 태조의 서형제인 ▲완풍대군파 ▲의안대군파 등 18개의 파가 있다.
태조의 후손 분파(고종 이전까지)는 일반적으로 99파(25대군, 74군)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미혼으로 죽었거나, 후사가 없는 대군이 20명 정도가 되므로 실제로는 그 수가 이보다 적다. 주요 인물을 파별로 보면 정종, 태종, 세조, 성종의 후손이 압도적으로 많다.
전주이씨(全州李氏)
시조 이한(李翰)은 신라 문성왕 때 사공(司空) 벼슬을 지냈으며 그 후 대대로 신라시대에 벼슬을 해왔다. 18세손 이안사(李安社)는 대대로 전주에 살아온 호족이었다. 그런데 새로 부임한 지주와 사이가 나빠 그를 피해 강원도 삼척으로 피했다가 다시 함경도를 거처 원나라 간동으로 갔다.
그곳에서 다루가치 벼슬을 지냈고 증손자 되는 이자춘(李子春)이 고려시대에 공을 세워 사복경(司僕卿)에 이르렀다. 이자춘의 아들이자 시조의 22세손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창건, 전주이씨의 중시조가 되었다.
전주이씨는 조선 500년을 이끌어온 왕가였다. 전주이씨의 1백여 파 중 으뜸가는 명가는 밀성군(침=세종의 아들)파로써 6명의 정승과 3대 대제학을 배출했다. 덕천군(후생(厚生)=정종의 아들)파가 부자 대제학 등 3명의 대제학과 영의정 1명을 내어 밀성군파에 버금간다.
덕천군파 다음으로는 3명의 정승을 배출한 광평대군파(廣平大君派), 정승 2명을 배출한 선성군파(宣城君派), 정승 1명과 숱한 문신과 무신을 배출한 효령대군파(孝寧大君派) 등이 빼어나다.
이수광은 1627년에 이조판서가 되었으며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여러 차례 사신으로 명나라에 왕래했다. 당시 명나라에 와 있던 이탈리아 신부에게서 "천주실의(天主實義)" "중우론(重友論)"을 얻어와 1614년(광해군 6년) "지봉유설(芝峰類說)"을 간행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천주교와 서양 문물을 소개함으로써 실학발전의 선구자가 되었다. 시문에도 능했으며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전주이씨는 오리정승으로 많은 일화를 남긴 인조 때 영의정 이원익, 흥선대원군 이하응, 초대 대통령 이승만, 철기 이범석 장군 등 수많은 거목들을 배출했다.
전주이씨의 분파
전주이씨의 분파는 122파이다. 왕자대군(적자)과 왕자군(서자)을 파조로 하고 있으며 시대 구분에 따라 세 갈래로 나눌 수 있다.
이 태조의 고조부 이안사(李安社)의 상계에서 갈라진 파, 이안사 이후 이 태조 이전에 갈라진 파, 이 태조의 후손으로 왕자대군과 왕자군을 파조로 하는 파 등이다.
이안사(18세) 이전의 분파로는 시조 이한(李翰)의 14대 손인 이단신(李端信)을 파조로 하는 ▲문하시중공파, 15대손 이거를 파조로 하는 ▲평장사공파, 17대손 이영습(李英襲)을 파조로 하는 ▲주부동정공파, 이안사의 종손 이윤경(李允卿:목조의 종손)을 파조로 하는 ▲대호군공파, 이한 의 21대손 이귀을(李歸乙)을 파조로 하는 ▲문하평리공파 등이 있다.
이안사(목조) 이후 태조 이전의 분파로는 이안사의 아들인 이안천(李安川), 이안원(李安原), 이안풍(李安豊), 이안창(李安昌), 이안흥(李安興)의 ▲5대군파, 이행리(목조)의 아들인 이함녕(李咸寧), 이함창(李咸昌), 이함원(李咸原), 이함천(李咸川), 이함릉(李咸陵), 이함양(李咸陽), 이함성(李咸城)의 ▲7대군파, 이춘(李椿.도조)의 아들인 이완창(李完昌), 이완원(李完原), 이완천(李完川), 이완성(李完城)의 ▲4대군파, 그리고 이자춘(李子春.환조.이성계 아버지)의 아들이자 태조의 서형제인 ▲완풍대군파 ▲의안대군파 등 18개의 파가 있다.
태조의 후손 분파(고종 이전까지)는 일반적으로 99파(25대군, 74군)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미혼으로 죽었거나, 후사가 없는 대군이 20명 정도가 되므로 실제로는 그 수가 이보다 적다. 주요 인물을 파별로 보면 정종, 태종, 세조, 성종의 후손이 압도적으로 많다.
전주이씨와 이성계
이성계의 직계 선대는 고려 무신정권 초기에 무인이었던 이린(李璘)이다. 그는 시중(侍中)을 지낸 문극겸의 딸과 결혼하였다. 이린은 무신난 주도자의 한 사람인 이의방(李義方)의 동생이다.
이린은 무인집권 초기에 형 이의방과 함께 권력을 장악한 소수 무인에 속했다. 그의 장인인 문극겸이 무신난 직후에도 왕의 측근인 우승선어사중승을 역임했다. 명종3년 김보당의 무인정권에 대한 반대로 일어난 계사(癸巳)의 난에 많은 문신이 살육 당할 때에도 문극겸은 이의방의 두둔으로 무사했다.
이의방은 명종4년 서경에서 일어난 조위총의 반란을 진압하는 도중에 정중부의 아들이 보낸 자객에게 살해되었다. 이 때 형인 이준의도 함께 잡혀 죽었고 곧 이어서 태자빈이 되었던 그의 딸도 쫓겨났다. 이의방이 피살된 뒤 이린의 위치가 어찌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린의 아들 이양무(李陽茂)는 장군(將軍)을 지냈다 하나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뚜렷이 나타난 것이 없다. 이양무의 아들이 바로 이안사(李安社)로 이성계의 고조부이다.
이안사는 당초 전주의 유력한 세력가였다. 이때는 몽고군의 고려 침략이 한창이었던 고종 후반기였다. 이안사는 어느 관기(官妓)의 일로 문제가 생겨 전주에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외가쪽이던 강원도 삼척으로 이주했다.
무예가 뛰어난 그는 여진족의 천호(千戶) 벼슬을 하면서 차차 그 지방에서 기반을 닦기 시작했다. 원에 귀순한 이안사는 차츰 세력을 넓혀 갔다.
이 직책은 그의 아들 이행리(李行里)에게 세습되었다. 이행리의 아들 이춘(李椿)도 역시 아버지의 관직을 세습했다. 공민왕 때 이춘의 아들 이자춘(李子春)은 99년 동안 원에 빼앗긴 땅을 수복하여 공을 세운다. 이자춘이 죽은 뒤 그의 세력은 아들 이성계에게로 이어진다.
전주이씨 파명록 (가나다순)
견성군파/ 경령군파/ 경명군파/ 경창군파/ 경평군파/ 계성군파/ 계양군파/ 광평대군파/ 근녕군파/ 금성대군파/ 금원군파/ 낙선군파/ 능원대군파/ 능창대군파/ 담양군파/ 덕양군파/ 덕원군파/ 덕천군파/ 덕흥대원군파/ 도평군파/ 무림군파/ 무산군파/ 밀성군파/ 봉성군파/ 봉안군파/ 석보군파/ 선성군파/ 성녕대군파/ 소현세자파/ 수도군파/ 수춘군파/ 순평군파/ 순화군파/ 숭선군파/ 시중공파/ 신성군파/ 안양군파/ 안원대군파/ 안창대군파/ 안천대군파/ 안풍대군파/ 안흥대군파/ 양녕대군파/ 양원군파/ 연령군파/ 영산군파/ 영성군파/ 영양군파/ 영왕파/ 영응대군파/ 영풍군파/ 영해군파/ 온녕군파/ 완성대군파/ 완원군파/ 완원대군파/ 완창대군파/ 완천대군파/ 완풍대군파/ 용성대군파/ 운천군파/ 월산대군파/ 의령군파/ 의안대군파/ 의왕파/ 의창군파/ 의평군파/ 은안군파/ 은전군파/ 이성군파/ 익녕군파/ 익안대군파/ 익양군파/ 익현군파/ 인성군파/ 인평대군파/ 인흥군파/ 임성군파/ 임언군파/ 임영대군파/ 임해군파/ 장천군파/ 전성군파/ 정석군파/ 종의군파/ 주부공파/ 진남군파/ 진안대군파/ 창원군파/ 평장사공파/ 한남군파/ 함녕군파/ 함령대군파/ 함릉대군파/ 함성대군파/ 함양대군파/ 함원대군파/ 함창대군파/ 함천대군파/ 함평대군파/ 해안군파/ 혜령군파/ 화의군파/ 회산군파/ 회안대군파/ 효령대군파/ 후령군파/ 흥안군파/ 희령군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