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30년대 한국 모더니즘시의 수사학적 연구
금 동 철 /(서울대학교 강사)
주제어(key word): 정지용(Jeong Jiyong), 김기림(Kim Kirim), 김광균(Kim Kwanggyun), 은유(metaphor), 환유(metonymy), 모더니즘(modernism), 이미지즘(imagism)
1. 서 론
한국 현대 시사에서 1930년대 모더니즘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우리 문학의 현대성을 드러내는 한 지표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라, 그 이후 한국 현대 시문학사 상의 중요한 이정표 구실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20년대의 낭만주의적인 시와 카프 계열의 리얼리즘시를 넘어 본격적으로 현대화된 시문학의 시대를 연 것이 바로 이 시기의 모더니즘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모더니즘에 대한 기존의 논의는 다양한 관점에서 이루어져왔다. 모더니즘시에 대한 기존 논의의 관점 중 하나는 서구 모더니즘과 비교하는 비교문학적 관점1)이며, 또 하나는 문학사적 의의에 대한 연구이다2)
최근에 나타나는 또 다른 한 관점은 모더니즘을 세계관의 차원에서 분석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단순한 기법적 차원에서 모더니즘시를 논의할 경우 이것은 서구의 그것에 형편없이 미달하는 그 무엇이 될 수밖에 없음은 너무나 자명하다.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그들이 지닌 세계관을 분석하고 검토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모더니스트들이 보여주는 시세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먼저 이들 시작품 속에 내재해 있는 본질적인 요소가 무엇인가를 따져내는 일이 필요하다. 이것을 위해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 중의 하나는 이 시기 모더니즘시인들
4이것을 위해 본고에서는 수사학적 방법을 동원하고자 한다. 시의 언어적 차원에서 표출되는 수사학적 특성을 검토함으로써 이들 시인들이 지닌 세계관까지 분석할 수 있다면 이러한 과정에서 이들 시인들의 모더니즘 지향이 지닌 의미망을 새롭게 검토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의 언어는 기호의 차원에서 두 가지 기본적인 수사학을 상정할 수 있다. 은유와 환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에 비해 서정시의 기호는 그것 자체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기호 너머에 존재하는 진리의 세계를 지향한다. 이는 곧 은유적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은유가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에 형성되는 동일성의 세계를 지향한다면 기호의 관점에서 생각할 때 기호와 지시대상 혹은 관념과의 사이에 형성되는 동일성을 상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시의 언어는 언어 기호의 차원을 넘어 사상이나 관념, 정서 혹은 절대의 세계를 담아내는 그릇이 된다. 서정시가 근원 혹은 본질을 지향하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다고 믿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0년대 모더니즘시를 논하는 자리에서 이와 같은 언어의 수사학적 특성에 대해 검토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을 통해 이 시기 모더니즘이 가졌던 상이한 두 흐름 사이의 명확한 구분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이들 시인들의 시세계가 어떠한 세계관에 근거하고 있는지를 선명하게 밝혀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 이미지즘을 통한 근원에의 지향 - 정지용
30년대 모더니즘시의 중심에 서 있는 시인 중의 하나는 정지용이다. 김기림이 이론적인 작업으로 모더니즘시 운동을 일으켰다면, 정지용은 시를 통해 모더니즘을 구체적으로 실천하였던 것이다. 그의 초기시에 나타나는 모더니즘적 요소에 대한 논의는 주로 감각적 인식과 선명한 이미지의 창조라는 측면으로 집중되어 왔다6)
그의 시에서 이미지는 이전의 우리 시에서 보기 힘들었던 새로움과 선명함을 함께 볼 수 있다. 「호수」나 「바다」, 「향수」와 같은 시에 나타나는 선명한 이미지는 그의 시에서 모더니즘적인 요소가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를 분명하게 인식하게 한다. 이들 시에서 사용된 이미지는 20년대적인 애상의 흔적을 걷어내고 이미지 그 자체를 선명하고 투명하게 제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고래가 이제 橫斷 한뒤
海峽이 天幕처럼 퍼덕이오.
……힌물결 피여오르는 아래로 바독돌 자꼬 자꼬 나려가고,
銀방울 날리듯 떠오르는 바다종달새……
한나잘 노려보오 훔켜잡어 고 빩안살 빼스랴고
미억닢새 향기한 바위틈에
진달레꽃빛 노개가 해ㅅ살 쪼이고,
청제비 제날개에 미끄러저 도-네
유리판 같은 하늘에.
바다는 -- 속속 드리 보이오.
청대ㅅ닢 처럼 푸른
바다
봄
-- 정지용, 「바다 6」 중에서
이 시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은 이미지 사용법은 그의 초기시를 특징짓는 매우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정서적인 감정의 표출이 아니라, 비유를 통한 선명한 이미지의 창조를 통해 객관적으로 사물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해협의 파도를 ‘천막’에 비유한다거나 바다종달새의 움직임을 은방울 날리는 모양으로 묘사하고, 하늘을 유리판 같은 것으로 비유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이미지 창조를 통해 시인은 세계를 선명하게 독자들의 눈 앞에 제시한다. 그만큼 그의 초기시에서 이미지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정지용의 시를 평가할 때 두 가지 관점에서 이야기하게 된다. 하나는 초기 모더니즘적인 시세계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30년대 후기에 주로 나타나는 자연시와 관련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초기 모더니즘시에 대한 평가는 서구적인 이미지즘의 미달형태이며, 그 속에 들어갈 사유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필요한 깊이에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는 반면 후기 자연시는 전통성의 세계를 받아들여 시의 사상성을 달성함으로써 훌륭한 경지에 이르렀다는 평가이다
그런데 이러한 입장은 다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30년대 후반에 나타나는 정지용의 자연시에서도 이미지즘적인 요소가 다분히 발견된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그의 시세계에서 기독교성이 차지하는 중요성 때문이다. 「장수산」이나 「옥류동」 같은 작품에서 보면 선명한 이미지를 창조하고자 하는 이미지즘적인 요소의 흔적과 함께 전통적인 세계관만으로는 해명하기 힘든 요소가 함께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그가 후기 자연시를 쓰던 3년대 후반에 발표한 여러 시론에서 기독교적인 관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과 관련된다
수사학적 차원에서 볼 때 이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는 지적이다. 정지용이 주장하는 바 시에 있어서 기독교적인 덕목에 대한 강조는 그의 시가 어디에 근원을 두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시인의 말이나 산문을 그대로 시의 해석이 적용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을 수도 있지만, 이 시기의 정지용의 시에서 이러한 자신의 주장이 입증이 된다면 여기에는 상당한 의의가 부여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시에 나타나는 이미지의 특징을 일반적인 자연시의 세계관과 비교해 본다면 보다 쉽게 확인할 수 있다. 30년대 후반의 그의 자연시에는 기독교적인 세계관이 분명히 내재해 있는 바, 그것을 이미지 사용법에서 간파할 수가 있다. 그의 자연시에 나타나는 이미지는 전통 자연시가 보여주는 풍성하고 완전한 존재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오히려 축소되고 위축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같은 문장파 시인인 이병기나 조지훈과는 선명하게 대비되는 자리라고 하겠다9)
돌에
그늘이 차고
따로 몰리는
소소리 바람
앞 섰거니 하야
꼬리 치날리여 세우고,
죵죵 다리 깟칠한
山새 걸음거리.
여울 지여
수척한 흰 물살,
갈갈히
손가락 펴고.
멎은 듯
새삼 돋는 비ㅅ낯
붉은 닢 닢
소란히 밟고 간다.
-- 정지용, 「비」
여기에도 분명히 이미지즘적인 요소가 존재한다. 그만큼 그의 시에서 모더니즘은 핵심적인 축의 하나라고 하겠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시에 묘사된 자연의 모습이다. 산새의 걸음걸이가 ‘죵죵 다리 깟칠한’ 것으로 묘사된다든가 물살이 ‘수척한 흰’ 것으로 묘사되는 데서 전통적인 자연관과는 다른 그 무엇을 발견한다. 자연 사물들이 삭막한 인간 세상과는 달리 풍성하고 아름다워 언제든지 그곳에 가서 자연과 동화되면 안식을 누리던 세계가 바로 전통적인 유가적 자연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지용의 이 자연시에서는 자연을 매우 중요한 동화의 대상으로 삼고 있기는 하지만, 그 자연은 이 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수척하고 까칠한 모습, 다시 말해 위축되고 축소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자연 속에 살고 있는 생명들도 이러한 위축된 분위기를 함께 지닐 수밖에 없다. 「백록담」에 나타나는 송아지의 모습이나, 「조찬」의 새도 마찬가지이다. 「장수산」의 노승의 이미지와 함께 제시되는 달밤의 이미지 또한 자연 속에 처한 자아의 풍성한 만족감이 아니라 시리도록 아픈 고독감이라는 점도 이러한 위축되고 축소된 자연 이미지와 깊은 관련이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자연을 묘사하는 이미지 너머에 기독교 세계관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있다. 자연 이미지가 하나의 기호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당대의 위축되고 소외된 인간들을 그릴 뿐만 아니라 기독교적인 세계관까지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그의 시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수사학적인 차원에서 문제되는 자리는 바로 이 지점이다. 여기서 정지용은 언어 기호를 단순한 기표의 놀이라는 차원에서 사용하지 않고 그 너머의 세계를 담아내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은유적 차원의 언어 사용법이라고 하겠다. 은유에서 말하는 주지와 매체 사이의 동일성의 세계가 여기에서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자연 이미지를 통해 관념적인 세계를 표현해 내고자 하는 정지용 시인의 시적 특징을 여기서 읽을 수 있다.
은유적 세계관은 초기의 모더니즘시가 지닌 언어 기호의 특징에 대한 설명에서도 매우 유용하다. 이미지즘에서 추구하는 바 견고한 이미지를 통한 시의 창조라는 측면을 수사학적 차원에서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견고한 이미지란 낭만적 감성을 배제한 투명한 이미지의 창조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의 이미지는 실제 세계에 대한 모사적 측면을 지니게 된다. 기호와 지시대상 사이의 관계의 문제로 볼 경우 모사는 이 둘 사이의 동일성을 인정하는 태도임을 알 수 있다.
언어 기호가 외부 세계를 모사하고 재현할 수 있다는 생각이 그 속에 깔려 있고, 이것은 곧 기호가 그 지시대상으로서의 세계를 효과적으로 재현해 낼 수 있다는 은유적 상상력의 중요한 한 측면이 되는 것이다. 결국 견고한 이미지의 창조란 은유적 세계관을 토대로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엘리어트가 말하는 객관적 상관물의 개념 또한 마찬가지이다. 객관적 상관물이라는 개념 속에는 기호로서의 이미지가 거느리고 있는 의미의 세계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나타나 있다.
이러한 수사학적 특징은 흄이나 엘리어트가 카톨리시즘이라는 전통적 세계로의 복귀를 추구한 데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미지즘이 시에서 사용된 언어 기호를 통해 카톨리시즘이라는 관념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시의 이미지가 관념의 세계, 사상의 세계, 정신의 세계를 담아낼 수 있다는 은유적 세계관의 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는 이미지즘이 은유적 세계관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10)
琉璃에 차고 슬픈것이 어린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양 언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디치고,
물먹은 별이, 반짝, 寶石처럼 백힌다.
밤에 홀로 琉璃를 닥는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흔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山ㅅ새처럼 날러 갔구나!
-- 정지용, 「유리창」
유리창의 차가우면서도 투명한 이미지 속에 자신의 정서를 담고자 하는 노력 속에서 이미지를 통해 다른 그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 시인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여기서 이미지들이 재현적 차원의 세계를 담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이미지를 통해 시인의 정서를 담아내는 역할까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의 사용에서 은유적 관점의 언어관을 읽을 수 있다. 「호수」나 「향수」 등에 나타나는 선명한 이미지 또한 이러한 재현적 관점을 유지함으로써 명확한 은유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정지용의 시에 나타나는 이미지들은 그 너머에 항상 관념이나 정서의 덩어리들을 거느리고 나타나는 은유적인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기호와 지시대상 사이의 동일성을 상정하고 기호가 지시대상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은유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것으로, 이미지즘을 지향한 정지용의 세계관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3. 은유적 동일성으로의 회귀 - 김기림
김기림의 시세계에 대한 대부분의 논의는 그의 초기시가 보여주는 문명비판적인 요소에 맞춰진다. 그가 주장하는 모더니즘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이러한 문명비판적인 것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논자들이 인정하는 바 중의 하나는 김기림의 자본주의와 근대 문명에 대한 미숙한 이해는 이러한 문명비판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문명비판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면서도 이국적인 정취의 과도한 사용, 이국적인 지명이나 이름, 영어의 잦은 사용이라는 한계를 드러내게 된다는 것이다.
본고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 중의 하나는 이와 같은 김기림이 보여주는 문명비판의 정당성이나 깊이의 문제가 아니라, 이러한 서툰 문명비판 의식이 가져오는 수사학적 문제이다. 김기림은 자신이 주장하는 문명비판을 위해 풍자라는 기법을 도입한다11)
게다가 그의 시에 과도하게 나타나는 이국적인 이미지와 영어식 표기법12)
山봉오리들의 나즉한 틈과 틈을 새여 藍빛 잔으로 흘러들어오는 어둠의 潮水. 사람들은 마치 지난밤 끝나지 아니한 약속의 계속인 것처럼 그 漆黑의 술잔을 드리켠다. 그러면 해는 할 일이 없이 그의 希望을 던져버리고 그만 山모록으로 돌아선다.
고양이는 山기슭에서 어둠을 입고 쪼그리고 앉어서 密會를 기다리나보다. 우리들이 버리고 온 幸福처럼…… 夕刊新聞의 大英帝國의 地圖 우를 도마배암이처럼 기여가는 별들의 그림자의 발자국들. 「미스터․뽈드윈」의 연설은 암만해도 빛나지 않는 전혀 가엾은 黃昏이다.
집 이층집 江 웃는 얼굴 交通巡査의 모자 그대와의 約束…… 무엇이고 差別할 줄 모르는 無知한 검은 液體의 汎濫속에 녹여버리려는 이 目的이 없는 實驗室 속에서 나의 작은 探險船인 地球가 갑자기 그 航海를 잊어버린다면 나는 대체 어느 구석에서 나의 海圖를 편단 말이냐?
-- 김기림, 「海圖에 대하야」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시가 전체적으로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이미지들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느냐 하는 데 있다. 먼저 첫 연과 둘째연, 셋째연 사이의 연관성이 문제가 된다. 1연에서 묘사된 산봉오리들 사이의 틈으로 흘러들어오는 조수와 2연의 여러 이미지들, 그리고 3연에 묘사된 것들 사이에는 일관성을 찾기 힘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각 연 내에서 사용된 이미지들 사이에서도 일관성을 찾기는 쉽지 않다. 3연을 살펴보자. 집, 웃는 얼굴, 강, 교통순사의 모자와 같은 이미지들 사이의 어떤 내적 연관성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만큼 이 시에서 사물들은 제각각 자기의 영역을 주장하면서 하나로 통합되기를 거부한다.
이러한 측면을 단순히 시적 미성숙 때문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김기림은 이러한 기법을 의도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이미지들이 환유적인 축을 따라 사용되고 있음을 명확하게 볼 수 있다. 산봉우리의 어둠과 그 어둠으로부터 환기되는 칠흑의 술잔, 그 술잔의 검은색으로부터 환기되는 희망의 포기와 같은 이미지의 연쇄고리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들 사이에는 어떤 통합된 논리의 축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들의 인접성에 의해 하나하나 나열될 뿐이다. 이 시에는 전체적으로 ‘나의 해도’라는 그림 속에서 발견하는 여러 가지 다양한 이미지들이 나열되고 있을 뿐, 각 이미지들 사이의 통일성은 사라진다. 여기에 환유의 수사학이 자리잡는다.
이러한 측면이 보다 선명하게 나타나는 것 중의 하나가 장시 「기상도」이다. 「기상도」는 시인 스스로 문명비판을 의도하고 썼다는 것을 밝히고 있듯이 비판적인 관점에서 대상들을 묘사한다. 그런데 여기서 대상에 대한 비판을 수행하는 방법이 특징적이다. 그는 대상의 여러 가지 모습을 재현적인 차원에서 그려내거나 그것이 가진 속성을 하나하나 나열함으로써 통일된 어떤 심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비판할 대상이 되고 있는 근대 문명의 부정적인 단편들을 내적 통일성 없이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통일성 없는 이미지들의 나열은 환유적 수사학의 매우 중요한 한 측면이다13)
넥타이를 한 흰 食人種은
니그로의 料理가 七面鳥보다도 좋답니다
살갗을 희게 하는 검은 고기의 偉力
의사 「콜베-르」씨의 處方입니다
「헬매트」를 쓴 避暑客들은
亂雜한 戰爭競技에 熱中했습니다
슲은 獨唱家인 審判의 號角소리
너무 興奮하였으므로
內服만 입은 파씨스트
그러나 伊太利에서는
泄瀉劑는 일체 禁物이랍니다
필경 洋服을 입는 법을 배워낸 宋美齡女史
아메리카에서는
女子들이 모두 海水浴을 갔으므로
빈 집에서는 望鄕歌를 불으는 니그로와
생쥐가 둘도 없는 동무가 되었읍니다
-- 김기림, 「시민행열」 중에서
「기상도」의 구성방식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가 가능하겠지만, 지금 이 부분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은 환유적 구성방식은 매우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한다. 넥타이를 맨 흰 식인종이 백인을 의미하며, 이들의 흑인 착취라는 문제에 대한 비판이 앞의 네 행이라면, 이들이 가져온 세계대전에 대한 비판이 그 다음에 나온다. 그런데 슬픈 심판이나 파시스트, 이태리에서의 설사제 등등의 이미지들은 개개의 내용을 분석하면 분명히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으로 나타날 수 있겠지만
이미지들의 나열이라는 창작방법론의 이면에는 환유의 수사학이 선명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기법을 갈등과 충돌의 몽타쥬 수법이라고 지적한 논의는 매우 유용하다15)
문제는 이러한 요소들이 그의 초기시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라는 점이다. 물론 그의 초기시가 전부 이러한 환유적 수사학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동일한 「기상도」 내에서도 통일성을 추구하거나 재현적 차원의 은유적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비눌
돛인
海峽은
배암의 잔등
처럼 살아났고
아롱진 「아라비아」의 衣裳을 둘른 젊은, 山脈들
-- 김기림, 「기상도」 중에서
이 구절들 속에서 바다와 산맥에 대한 재현적 차원의 비유적 심상들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해협을 뱀의 잔등으로 비유하고 산맥을 아라비아의 의상을 두른 여인의 모습으로 비유하는데, 여기에는 대상에 대한 비유적 묘사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비유적 묘사는 대상 자체에 대한 재현적 차원의 언어 사용법이라고 할 수 있고, 이것은 곧 언어의 은유적 사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초기시에 나타나는 은유와 환유의 이와 같은 교차는 그만큼 그의 시세계가 혼란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시론을 통해 모더니즘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과학주의와 맞물려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이성을 부정하고 합리적이고 통일된 시의 구조를 부정하는 아방가르드적인 환유적 세계관과는 정반대의 자리에 서 있는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기림은 수사학적 차원에서의 이러한 특징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은유와 환유를 혼합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많은 논자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김기림의 모더니즘시에 대한 이해가 성숙한 단계에 이르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의 시가 이러한 불안함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시집 30년대 후반에 발표한 작품들에서부터이다16)
아모도 그에게 水深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힌 나비는 도모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靑무우밭인가 해서 나려 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저러서
公主처럼 지처서 도라온다.
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푼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 김기림, 「바다와 나비」
이 시에서 서술 대상인 나비와 자아는 완전한 일체감을 형성하고 있으며, 이 점은 수사학적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김기림은 이 시기의 시에 오면 이처럼 자아와 대상 사이의 일체감을 회복하면서 대상에 대한 이해 방식이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아와 대상 사이의 동일성의 세계를 회복하게 될 때, 대상에 대한 풍자나 조소는 사라지고, 자아와 대상 사이에서 달성되는 동일한 정서를 표출하게 되는 것이다. 이 시에서 나비의 정서는 자아의 정서와 무관하지 않다. 자아와 정서와 나비의 정서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동일성 속에서 일체화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에서 ‘바다’는 초기의 김기림이 찾아다녔던 ‘새로운 것’을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나비는 그러한 새로운 것의 추구가 지닌 허망함을 인식하는 주체의 형상화라고 볼 수 있다17)
이것과 함께 고려되는 것이 바로 자아와 대상 사이의 일체감이다. ‘나비’는 시인의 모습을 그대로 대변하는 이미지로 나타난다. 자아와 세계 사이의 이러한 일체감의 확보는 서정적 동일성의 세계, 다시 말해 은유적 동일성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 시기 김기림의 시가 이처럼 은유적 동일성의 세계로 통일되었다는 것은, 그의 시가 신기성을 추구하고 현대문명에 대한 풍자나 비판을 주로 하던 초기의 자세로부터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18)
4. 서정적 동일성의 추구 - 김광균
30년대 모더니즘시를 새로운 기법만의 추구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경우에도 김광균의 시세계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긍정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었다19)20)
모더니즘 자체의 논리로 본다면 이러한 고독과 비애의 정서와 같은 것은 부정적인 측면을 지닐 수 있다. 이미지스트들이 추구한 견고한 이미지의 개념 속에서는 가능한 한 감성적인 표현을 없애고 투명한 이미지들을 사용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과거와의 단절을 주장하는 이들 모더니스트들의 주장 속에는 20년대적인 무절제한 감상에 대한 비판이 자리잡고 있었는바21)
물론 그렇다고 그의 시에 나타나는 감성이 1920년대 낭만주의의 그것과 동일한 것은 결코 아니다22)
하이얀 暮色속에 피여잇는
山峽村의 고독헌 그림속으로
파-란驛燈을다른 馬車가한대잠기어가고
바다를향한 산마루길에
우두커니 서잇는 電信柱우엔
지나가든구름이하나 새빨간노을에 저저있었다
바람에 불니우는 적은집들이 창을나리고
갈대밭에 무치인 돌다리아래선
적은시대가 물방울을 굴니고
안개자욱-한 花園地의 벤취우엔
한낮에 少女들이 남기고간
가벼운우슴과 시들은꽃다발이 흩어저있다
外人墓地의 어두은 수풀뒤엔
밤새도록 가느단 별빛이나리고
空白한하늘에 걸녀있는 村落의時計가
여윈손길을 저어 열시를가르치면
날카로운 古塔같이 언덕우에소사있는
褪色한 聖敎堂의 집웅우에선
噴水처럼 흩어지는 푸른종소래
-- 김광균, 「외인촌」
김광균의 모더니즘적인 특성을 잘 드러내는 시 중의 하나인 이 시에서는 도시적인 소재와 이미지를 통해 당대의 도시적 감성을 드러내는 이들 모더니스트들의 지향을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속에 진하게 묻어나는 감정의 밀도에서 김광균만의 독특한 한 측면을 읽을 수 있다. ‘전신주’나 ‘화원지’, ‘벤취’, ‘외인묘지’, ‘성교당’ 등의 단어들은 당대의 도시적 감성을 드러내는 표지로 사용된다. 그런데 김광균은 이러한 도시적 감성을 드러내는 이미지들을 객관화된 시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주관적인 정서를 덧씌워 표현한다. ‘고독헌 그림’이라든가 ‘우두커니 서잇는’, ‘공백한 하늘’, ‘여윈 손길’ 등과 같은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표현 속에는 시인이 지닌 고독과 비애의 정서가 강하게 묻어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고독이나 비애의 정서가 어떤 의미를 지니느냐 하는 데 있다. 서정시는 본질적으로 자아와 대상 사이의 동일성을 지향하는 장르이다
여기에서 김광균의 시가 추구하는 바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시에 나타나는 모더니즘적인 선명한 이미지의 창조도 궁극적으로는 서정성을 달성하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를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된다. 시인은 이와 같이 이미지의 은유적 사용을 통해 자아와 세계 사이의 동일성을 달성하고 서정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여기에 30년대 모더니즘시의 한 특성을 읽을 수 있다. 정지용이나 김기림의 시에서와 마찬가지로 김광균의 시에서도 은유적 세계관을 발견할 수 있다면, 30년대 모더니즘시 특히 영미 주지주의 계열의 모더니즘시는 본질적으로 은유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여 서정시의 세계를 추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5. 결 론
본고는 1930년대 한국 모더니즘시의 대표적인 시인인 정지용과 김기림, 김광균의 시를 수사학적 관점에서 분석하여 그 세계관을 밝히고자 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모더니즘이 영미 주지주의와 대륙적 아방가르드 두 가지 경향을 지니고 있다면, 본고에서는 모더니즘을 영미 주지주의 계열로 한정하고 출발한다.
주지주의적인 세계관을 본격적인 논의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김기림으로부터 이미지즘적인 특징을 내보이는 정지용, 김광균의 시세계를 분석함으로써 이들이 토대로 하고 있는 수사학적 특징을 추출해 낸 것이다.
정지용의 시에 나타나는 이미지는 재현적 차원의 세계에 대한 모사가 자리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관념적이고 정신적인 사유가 자리잡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기독교성이었다. 이러한 특징은 그가 시의 이미지를 은유적 관점에서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기림의 초기시에는 은유와 환유가 뒤섞여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재현적 차원의 이미지를 통해 은유적 세계를 드러내는가 하면, 풍자나 이미지의 나열과 같은 기법에서는 환유적 세계를 나타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은유와 환유의 혼합적인 사용은 그의 모더니즘시론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제한적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러한 그의 시세계는 30년대 후반에 가면 은유적인 세계로 회귀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김광균의 시에 나타나는 선명한 이미지에는 대부분 시인의 정서가 함유되어 있다. 그것은 시인이 이러한 이미지를 통해 자아와 세계 사이의 은유적 동일성을 달성하고자 하는 서정적 욕망을 드러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은유적 동일성 를 통해 시인은 시의 서정성을 달성하는 것이다.
이 논의를 통해 1930년대 모더니즘시가 은유적 세계관에 근거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김기림의 초기시에서 환유적인 속성을 일부 발견할 수 있었지만, 이러한 모습은 나중에 그가 은유적 세계관으로 회귀함으로써 이 시기 모더니즘의 전체적인 특성과 동일한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은유적 세계관의 확보는 영미 주지주의를 바탕으로 한 모더니즘시가 서정시의 한 부분임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는 이 시기 모더니즘의 또 다른 한 흐름인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주의와 같은 대륙적 아방가르드와는 전혀 상반된 모습이기도 하다. 이러한 두 흐름의 비교 검토를 위해서는 아방가르드가 가진 수사학적 차원에 대한 또다른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참 고 문 헌
김성기 편, 모더니티란 무엇인가, 민음사, 1994.
김신정, 정지용 문학의 현대성, 소명출판, 2000.
김용직 편, 한국 현대시 해석․비판, 시와 시학사, 1994.
----- 편, 모더니즘 연구, 자유세계, 1993.
----- 외, 한국현대시사연구, 일지사, 1983.
김유중, 한국 모더니즘 문학의 세계관과 역사 의식 태학사, 1996.
김윤식, 「모더니티의 파탄과 초월」, <심상> 1974.2.
김준오, 한국 현대 장르 비평론, 문학과지성사, 1990.
---- , 시론제4판, 삼지사, 1997.
문덕수, 한국 모더니즘시 연구, 시문학사, 1981.
문혜원, 「김기림 문학론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0.
---- , 한국 현대시와 모더니즘, 신구문화사, 1996.
오세영, 20세기 한국시 연구, 새문사, 1987.
---- , 한국근대문학과 근대시, 민음사, 1996.
---- , 한국현대시 분석적 읽기, 고려대학교 출판부, 1998.
이미순, 「정지용 시의 수사학적 일 고찰」, 한국의 현대문학 제3집, 한양출판사, 1994.
이숭원, 20세기 한국시인론, 국학자료원, 1997.
---- , 정지용 시의 심층적 탐구, 태학사,1999.
이승훈, 한국현대시론사, 고려원, 1992.
이창배 편역, T. S. 엘리엇 문학비평, 동국대학교 출판부, 1999.
조영복, 한국 현대시와 언어의 풍경, 태학사, 1999.
최승호, 「정지용 자연시의 은유적 상상력」, <한국시학연구> 제1호, 1998. 11.
한계전 외, 한국 현대시론사 연구, 문학과지성사, 1998.
한국현대문학연구회 편, 한국 현대 시론사, 모음사, 1992.
정원용, 은유와 환유, 신지서원, 1996.
김현 편역, 수사학, 문학과지성사, 1985.
디이터 람핑, 서정시 : 이론과 역사, 장영태 역, 문학과지성사, 1994.
레나토 포지올리, 아방가르드 예술론, 박상진 역, 문예출판사, 1996.
슈타이거, 시학의 근본개념, 오현일 외역, 삼중당, 1978.
칼리니스쿠, 모더니티의 다섯 얼굴, 이영옥 외역, 시각과 언어, 1993.
페터 뷔르거, 전위예술의 새로운 이해, 최성만 역, 심설당, 1986.
T. E. 흄, 휴머니즘과 예술철학에 관한 성찰, 박상규 역, 1993.
Bender, J., & Wellberry D. E.(ed.), The End of Rhetoric,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0.
Bloomfield, M. W.(ed.), Allegory, Myth, and Symbol, Harvard University Press, 1981.
Pau de Man, Blindness & Insignt, Methuen & Co., Ltd. 1983.
Ricoeur, P., The Rule of Metaphor, Routledge & Kegan Paul, 1978.
Schleifer, R., Rhetoric and Death,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19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