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코피.
당신이 사는 집 벽에 액자 있어요?
있으면, 그림은 어떤 그림이에요?
내 집에도 풍경화 액자가 몇 개 있는데
그림의 모습이 수시로 바뀝니다.
지금은 안개가 자욱해서 먼 산은 안 보이고
가까운 곳의 나무들과, 땅에 수북이 쌓인 낙엽이 그려져 있어요.
좀 있으면 해가 떠오르고, 자욱했던 안개가 사라지고 나면,
왼쪽으로 꺾인 골짜기와, 앞 산 능선을 따라 빽빽이 늘어선 키 큰 참나무들이 그려지겠죠.
아, 지금 액자를 보니... 높은 나무에서 이파리가 하나 떨어져서... 바람에 조금 날려 가다가...
... 땅에 떨어졌네요!
내 액자는 이렇게 「실시간」액자구요,
나는 이것을 액자라고 부르지, 창문이라고 하지 않아요.
뭔가를 남보다 잘하면, 그것이 무엇이건,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인기」라고 하고, 그 인기가 크면 클수록
엄청난 돈이 따라요.
하지만, 잘하는 것을 넘어서 독보적일 때, 너무 잘해서 상대가 없을 때는
오히려 미움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요, 그 이유는,
사람들이 대부분 「약자의 편」이기 때문입니다.
필리핀의 파퀴아오, 러시아의 하빕.
자국민은 저들이 계속 이기기를 바라겠지만,
나 같은 외국인들은 그렇지 않아요.
너무 잘하고, 계속 이기기만 해서 상대할 만한 선수가 없으면
「누가 저 파퀴아오를, 하빕을, 멋있게 때려눕혀 주었으면!」
속으로 그렇게 바라게 되고, 저들이 시합에 나서면
무조건 상대 선수를 응원하게 됩니다.
아만다 누네스!
브라질 출신의 여자 ufc 선수인데요,
한 마디로, 천하무적입니다.
이 선수는 머리를 기르고 가슴이 나왔을 뿐 여성적인 면이 전혀 없고,
폼을 봐도, 펀치력을 봐도, 싸울 때 스타일을 봐도,
완전한 남자입니다. (얼굴도 마찬가지)
세계 최고의 강타자를 대부분 1라운드에 KO 시키면서
두 체급의 챔피언입니다.
이 아가씨가 88년생으로 나이도 많지 않아서
앞으로 10년, 아니 적어도 5~6 년은 상대가 없을 것으로 짐작했어요.
그래서 나는 누네스가 시합을 하면 무조건 상대 선수가 이기기를 바랐는데
누네스는 나의 이 바람을 무참히 밟아버리더라구요.
특히, 내가 좋아하는 홀리 홈을 샌드백 치듯 하다가
1라운드에 때려눕히는 모습을 보고는
정말이지... 너무 울화통 터져서......
그러던 아만다 누네스가 엊그제 졌습니다.
누네스를 이긴 선수는 줄리아나 페냐인데요,
객관적으로 누네스의 상대가 아니었고, 이제까지 누네스와 맞붙었던 선수들 중
가장 약한 선수로 평가받는 선수라,
막말로 누네스가 한 손만 써도 이길만한 선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페냐에게 얻어맞아 누네스는 코피가 터졌고
페냐의 주짓수에 손으로 땅바닥을 두드리며 항복을 했어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곧 재경기가 이루어지고
챔피언 벨트는 누네스가 다시 찾아오겠지만,
그래도, 누네스가 쓰러지는 모습을
이렇게 빨리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한 가지 이상한 건, 누네스가 큰 대자로 뻗는 모습을 그렇게 원하던 내가
그 모습을 봤는데도, 통쾌하지가 않네요.
2021년. 12월. 16일.
제1차 세계 민중혁명. 강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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