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를 아름답게 만드는 글로벌 강소기업
인탑스 : 김재경 대표이사
1980년대 중반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케이스를 제조하던 인탑스는 한계에 부딪혔다. 오디오 시장이 재편되면서 회사가 점점 어려워진 것. 하지만 우연히 삼성전자의 전화기 케이스 제조라는 행운이 찾아왔다. 인탑스는 이를 놓치지 않았고 이후 30년간 삼성전자와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지난해 1조 원 매출과 3억 달러 수출탑을 수상한 휴대전화 케이스 제조 기업으로 성장했다.
editor 이영주 기자 yrlee1109@naver.com
경북 구미에 공장을 두고 있는 인탑스는 삼성전자에 휴대전화 케이스를 공급하는 협력업체로 휴대전화 외장 부품 분야의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꼽힌다. 삼성전자와는 1984년부터 협력 관계를 맺어 30년간 지속할 정도로 신뢰를 받고 있다.
창업주인 김재경 대표이사(69세)는 “휴대전화의 진화와 함께 휴대전화 케이스 역시 초창기 제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품질 기준이 높아지고 까다로워졌다”면서 “임직원의 노력과 고객사의 적극적인 기술 지원이 뒷받침된 결과, 지금까지 잘 성장해올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휴대전화와 함께해온 30년
인탑스는 생산 제품 전량을 삼성전자로 납품하고 있다. 수출도 삼성전자 해외사업장과 직접 거래하거나 국내 삼성전자를 통한 로컬수출 물량이 거의 전부다. 원활한 제품 공급을 위해 인탑스는 경북 구미를 비롯해 중국의 톈진과 웨이하이, 베트남 박닌 등 국내외 4곳에 공장을 운영 중이다. 프린터 케이스를 생산하는 웨이하이 공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휴대전화 케이스 제조 공장이다.
“휴대전화는 성장 속도와 제품 라이프 사이클이 여타 산업에 비해 빠른 편이에요. 이런 시장에서 매출과 수출을 꾸준히 높일 수 있었던 것은 고객사의 까다로운 품질 수준을 만족시키는 지속적인 기술 개발과 품질관리 시스템, 완벽한 납기 대응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삼성전자의 첫 휴대전화부터 최신 모델의 스마트폰까지 개발과 양산이 거듭되는 것에 맞춰 인탑스도 품질관리 시스템을 고도화해왔다. 최근들어서는 소비자의 취향이 까다로워지는 데다 마케팅 측면에서도 차별화된 제품이 필요해 제품의 난이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김 대표는 “최상의 품질을 구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자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전사 차원의 노력에 힘입어 지난 1분기에는 삼성전자로부터 품질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인탑스를 얘기하면서 삼성전자를 빼놓을 수는 없다. 인탑스는 삼성전자와 30년간의 협력 관계 속에서 2010년 혁신사례 최우수상, 2011년 동반성장 우수사례 대상을 수상하며 성장해 상생경영의 대표 사례로도 손꼽힌다. 중소기업에서 글로벌 부품 업체로 성장하는 데 삼성전자와의
상생협력이 일등 공신 역할을 했다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저희 회사의 상생이라고 하면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객사와 협력사인 저희 회사와의 상생, 그리고 저희와 저희 회사 협력사 간의 상생입니다. 솔직히 지금까지 성장하는 데 있어 고객사인 삼성전자의 지원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품질, 기술, 환경, 조직관리 등 다양한 측면에서 적극적인 지원을 받았지요. 이러한 고객사의 지원을 거울삼아 저희도 저희 협력사에 최대한의 지원을 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휴대전화 케이스를 제조하기 위해서는 사출, 코팅, 증착 등 다양한 공정을 거쳐야 하는 만큼 인탑스 역시 여러 협력회사와 거래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인탑스는 이들 회사에 매월 2회씩 물품대금을 결제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기술적인 애로사항을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지원하고 있다.
최근에는 기업은행과 ‘동반성장 협력대출 협약’을 맺고, 협력사에 저금리의 운영자금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동반성장 협력대출은 인탑스가 제공한 30억 원의 예탁금을 기반으로 기업은행이 시중금리보다 2%포인트 정도 낮은 금리로 최대 60억 원의 대출한도를 제공하는 협력사 대출지원 프로그램이다. 협력사 지원을 비롯한 다양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활동을 인정받아 지난 9월에는 지속가능경영 대상(기업윤리 부문)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상을 받기도 했다.
치약 뚜껑으로 시작해 휴대전화 케이스 생산으로
인탑스는 1981년 설립된 신영화학공업사가 시초다. 전북 임실 출생인 김 대표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내 학비는 내가 벌어서 다니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선생님들 구두를 닦을 때마다 받은 150원으로 학비를 해결했다. 생애 첫 아르바이트였던 셈이다. 대학 시절에는 안 해본 장사가 없을 정도다. 리어카 과일 장수, 공사판 노동일, 오징어·땅콩 장수에 이르기까지 업종도 다양했다. 덕분에 자신의 힘으로 대학을 마칠 수 있었다.
대학 졸업 후 얻은 첫 직장은 신화기계라는 업체였다. 경리와 회계, 수출입 업무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부품을 만드는 일까지 몸을 사리지 않고 배웠다. 몇 년간 현장에서 경험을 쌓고 나자 사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친구들의 도움과 은행 대출로 사출기 2대를 매입한 것이 사업의 시작이었다. 맨 처음 만든 제품은 치약 뚜껑이었다. 영업직원이 따로 없었던 만큼 납품도 직접 가야 했다. 어느 겨울, 호텔 납품용 치약 뚜껑을 박스에 담아 자전거에 싣고 나가다 빙판에 미끄러졌다.
“넘어진 제 자신보다 제품이 더 걱정돼 흩어진 치약 뚜껑들을 정신없이 박스에 주워 담았습니다. 일을 다 수습하고 나서야 허리가 아프더라고요. 그때 후유증인지 아직도 허리가 안 좋습니다.” 신발이 닳도록 뛰어다니며 노력한 결과 1년 후에는 직원이 12명으로 늘어났다. 중원전자의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케이스를 생산하면서 회사는 순조롭게 커가는 듯했다. 하지만 평안도 잠시, 불과 몇 년 만에 위기가 찾아왔다. 덩치가 큰 오디오로 시장이 재편되면서 회사가 점점 어려워졌다.
“중원전자의 위기는 곧바로 저희에게도 위기로 다가왔어요. 그때가 1984년 즈음인데 사업인생을 통틀어 가장 어려운 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뜻하지 않게 삼성전자와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저희 회사 앞을 지나가던 삼성전자 담당자가 유선전화기 케이스 사출을 제안한 겁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던 저희로서는 희망의 끈이었고, 사출 협력회사가 필요했던 삼성전자 입장에서도 반가웠을 겁니다.”
김 대표는 우연히 찾아온 행운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고객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고 실천하는 한편, 실수가 발생하면 대안을 찾아내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어다녔다. 끈기와 성실로 ‘믿을 만한 회사’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인탑스는 삼성전자 안에서 서서히 자리를 잡아나갔다.
그러다 1988년 획기적인 전환점이 찾아왔다. 국내 최초의 휴대전화인 ‘SH-100’ 케이스 부품 양산 업체로 지정된 것이다. 하지만 휴대전화 케이스를 개발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고객사인 삼성전자와 함께 국내외 선진기업과 소재기업을 방문해 기술자문을 구하고, 수많은 시험과 연구를 거치면서 제조공정을 변경하고 설비투자를 병행했다.“초창기 휴대전화 케이스 개발 당시에는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가장 큰 관건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맞춤형 사출설비를 개발한 것은 물론, 새로운 소재와 표면 도장 페인트 재질을 여러 가지 조합으로 바꿔가며 실험을 반복했습니다. 경험과 기술이 미흡하다 보니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요.” 품질과 기술 측면에서도 인정을 받으면서 인탑스는 성장세를 타기 시작했다. 휴대전화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인탑스의 성장커브 역시 가팔라졌다.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탈바꿈한 것은 물론 매출도 매년 20% 이상씩 늘어났다. 최근 3년간 매출을 보면 2011년 6,534억, 2012년9,765억에 이어 지난해에는 1조 527억 원을 기록했다. 말 그대로 눈부신 성장인 셈이다. 수출 비중은 2012년 이후 35% 선을 유지하고 있다.
30년을 한결같이 고수해온 새벽 6시 출근
김 대표는 기본에 충실하라는 얘기를 직원들에게 자주 한다. 기본과 원칙에 충실한 기업만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경영자에게는 ‘사람, 자금, 일’ 세 가지가 모두 안정적인 경영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기본이 확실한 상태에서만이 연구와 개발 투자가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정보와 지식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시대인 만큼 21세기 경영 철학은 경영의 기본 원칙과 덕(德)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본에 충실하기 위해 창업 이후 그야말로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4시간 수면, 새벽 6시 출근’이라는 원칙을 30년 넘게 지켜왔다. 주말에도 쉬어본 적이 거의 없다. 출장에서 돌아와서 주말에 결재하고 다시 출장 가는 업무의 연속이었다.
“기본을 강조하는 것을 두고 자칫 고리타분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경험에 비춰보면, 기본을 무시한 채 눈앞의 이익만 좇는 태도로는 잠깐은 반짝할 수 있겠지만 오래가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그는 현재의 인탑스를 만든 가장 큰 공로자는 그동안 함께해온 임직원들이라고 강조한다. “저는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지난 34년간 그리고 현재도 능력 있고, 성실한 직원들과 함께 일하고 있잖습니까. 좋은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을 함께한다는 건 참으로 멋진 일이지요.”
김 대표는 또한 ‘돈은 벌려고 해서 벌리는 게 아니고 돈이 따라와야 한다”고 말한다. 젊은 시절부터 자신이 돈을 벌고, 형편 되는대로 친구들을 도우면서 돈을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일찌감치 알게 됐다. 회사의 수익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도 젊은 시절의 깨달음 때문이다.
회사 차원에서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단체도 꽃동네, 유니세프 등 20 여곳에 달한다. 지난해부터는 전 직원이 동참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행복나눔 1004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자체적으로 마련한 5억 원의 기금을 기반으로 차상위계층 1,004가구에 매월 생필품을 기부하는 프로그램이다. 1,004개의 생필품을 임직원이 매월 직접 고르고, 포장하고, 전달하는 과정에서 나눔의 기쁨을 느끼도록 배려하고 있다. 또 인탑스가 자랑하는 특별한 기업문화 가운데 하나는 효도수당이다. 직원 부모님이 70세가 넘은 경우 매월 10만 원의 효도수당을 부모님 통장으로 직접 보내준다. 이외에 부부 동반 해외여행, 학자금 지원, 상조서비스 지원 등 직원 복지에도 다각도로 힘쓰고 있다.
김 대표는 인터뷰 도중에 미리 준비했다면서 자필 메모를 건네주었다. “일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태도가 중요합니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합니다. 안 되는 일도 된다고 믿고 밤낮없이 매진하면 어려운 일도 해결된다고 확신합니다”라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역경은 극복하라고 있는 것”
김 대표의 긍정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휴대전화 시장 상황은 녹록지않다. 전체 시장의 성장세는 주춤한 반면 업체 간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추세다. 특히 중국 업체의 추격 속도는 무서울 정도다. 인탑스도 예외가 아니다. 지금까지 승승장구하던 매출이 하락세를 그리면서 지난 상반기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오히려 줄어들었다. 사업초기,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케이스를 생산하다 고비를 맞은 이후 처음이다.
하지만 역경은 극복하는 것이며, 잠시의 부침에 좌절하지 않는다는 것이 김 대표의 소신이다. 새로운 소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디자인과 제조를 아우르는 토털 솔루션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다양한 소재나 표면처리 기술을 지속적으로 개발함으로써 고객사의 변화에 발맞춰 나갈 계획입니다. 원론적일 수도 있지만 경쟁 업체들에 대한 대응전략은 고객사와 부품사 간의 끈끈한 협력과 연구 개발을 통한 혁신밖에 없어요. 앞으로도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해야겠지요.”
30년간 새벽 6시에 출근하면서 기본과 원칙을 지켜왔다는 김 대표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가볍지 않다. 하지만 그동안 축적해온 성장 저력 또한 만만치 않은 만큼 어려운 숙제를 어떻게든 풀어나가지 않을까 하는 믿음이 강하게 전달됐다.
김재경 인탑스 대표이사
1946년 전북 임실 출생
1977~1981년 신화기계, 영신금형 근무
1981~1997년 6월 신영화학공업사 대표
1997년 7월~ 인탑스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