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퐁생떼스프리 근처 들판에서
▶ 2012년 7월 12일(목), 맑음, 불볕
- 프랑스, 고르드(Gordes), 루시용(Roussillon), 생레미드프로방스(Saint-Remy de
Provence)
젊은 새댁인 민박집 주인에게 이곳의 인문지리에 대하여 얘기를 나누고 싶었으나 우리가 사
용할 방을 알려만 주고 자기 거실인 2층으로 올라가버린다. 우리를 배려했음이리라. 언젠가
스위스 베른에서 우리나라 유학생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생면부지임에도 오랫동안 서로 얘
기를 나누었다. 헤어질 때 그는 우리말을 실컷 했더니 입이 모처럼 개운하더라나.
오늘은 아내가 텔레비전 ‘세상은 넓다’ 혹은 책에서 보았다는 그래서 가보고 싶다는 곳을 찾
아가는 맞춤형 여행이다. 프랑스 정부가 선정한 ‘아름다운 마을’ 152개 중 하나인 고르드 마
을을 찾아간다. 론 강 건너고 국도를 달리다 광활하게 펼쳐진 해바라기 밭을 본다. 일제히 화
려한 화판을 들고 우리를 환영한다. 장관이다. 온통 노란 세상이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다가
가 답례하지 않을 수 없다.
산중턱을 빙 둘러 암벽으로 두른 몽트라공(용산 龍山이 아닐까)을 지나고 오랑주 북단에서
고속도로로 들어간다.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맨 앞에 선 여자가 고속도로를 잘못 진입하였는
지 나아가지 않고 뒤로 무른다. 자기는 뒤로 빠져야겠단다. 외길에 길게 늘어선 줄이 어떻게
다 뒤로 무른단 말인가? 누가 이기나 내기하는 것처럼 한참을 버티고 버티다 진행한다.
고르드 마을은 해발 400m대에 위치한 산간마을이다. 아스팔트 포장된 산간 길 따라 올라간
다. 관광객이 많다.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가는 관광버스 뒤를 쫓았더니 과연 경점에서 잠시
멈춘다. 골짜기 건너편에 있는 고르드 마을을 가장 잘 볼 수 있고, 고르드 마을의 전경(全景)
을 대표하는 그림이 나온다.
주차장은 여러 곳에 있다. 관광객 덕분에 살아난 마을이라 빈터마다 주차장이다. 11세기쯤에
본격적으로 조성된 고르드 마을은 한때 코블러(Cobbler, 디저트 일종), 무두질 공장, 비단방
직, 올리브유 생산 등으로 번성한 적도 있으나, 1909년 대지진과 1944년 독일군에 의한 폭격,
전시 도시민의 피난처가 되어 심하게 피폐해졌다.
그러다 1960년대 들어 이 마을을 아낀 예술가들의 힘으로 살아났다고 한다. 특히 로트, 샤갈,
데이롤, 윌 로니, 바자렐리, 폴 마라 등의 공이 컸다(골목길 한쪽에 바자렐리의 미술관도 있
다). 내 눈에는 마을을 버려놓은 것 같다. 관광지의 역기능이 더 크게 보인다. 중세시대 색깔
의 기념품 가게와 먹자골목, 호텔이니.
1. 해바라기
2. 고르드 마을
2-1. 고르드 마을
2-2. 고르드 마을에서 바라본 들녘
3. 세낭크 수도원과 라벤더 밭
4. 라벤더
5. 붉은 마을이라는 루시용 마을
6. 루시용 황톳길
7. 루시용 황톳길
8. 루시용 황톳길
고르드 마을 너머에 있는 세낭크 수도원(Sénanque Abbey)의 라벤더를 보러간다. 산정 지나고
산허리 돌아 골로 내리면 보라색 라벤더 밭으로 둘러싸인 수도원이 나온다. 개개의 라벤더 꽃
은 그리 볼품이 없지만 군락하면 멋진 풍경이 나온다. 프로사진가들도 다수가 라벤더 사진을
찍으러 왔다. 그네들 옆에 서서 나도 카메라 앵글 들이댄다.
다음 목적지로 이동한다. 루시용으로 간다. 해발 500m대(차에 고도계가 장착되어 있다) 산간
도로를 구불구불 돌아내린다. 프랑스 영화 ‘마르셀의 여름’을 간다. 두 대의 내비게이션은 경
쟁하는지 서로 다르게 가는 방향을 안내하는 수가 있지만 최종 도착지는 같다.
루시용 마을. 입자 고운 황토가 숫제 붉다. 붉은 마을로 알려져 있다. 이상한 나라에 온 것 같
다. 붉은 세상이다. 사람의 얼굴도 입은 옷도 적조를 띠고 있다. 여기서는 주민이고 관광객이
고 황달에 걸린 사람들뿐이다.
어디서 무엇을 볼까? 마을 초입 가게에서 전시한 엽서나 사진을 보고 거기를 찾아가면 틀림
이 없다. 봉이 김선달의 후예는 여기에도 있다. 멀쩡한 황톳길을 막아놓고 돈 받는다. 2.50유
로. 황토 입자가 세사(細沙)로 고와도 먼지가 일지 않는다. 한낮 불볕 내리 쬐는 염천의 황톳
길을 가니 노천 황토찜질방에 온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마을이 작아 이곳저곳 다 돌아본다. 고
샅길 동선 따라 전망대에도 올라가본다. 보이는 건 끝없는 평야뿐.
생레미드프로방스로 간다. 론 강 건너 아비뇽 외곽에 위치한 시골이다. 고흐가 스스로 귀를
자르고 정신착란을 일으킨 후 이곳 병원에서도 요양하였다.
관광안내소(Info)부터 찾는다. 관광안내소 앞 주차장은 주차티켓 발급기계가 고장이 나서 무
료다. 안내소 문을 열자 묻지 않았는데 나이 든 여자 안내원이 고흐 팸플릿을 건네며 고흐의
자취를 알아볼 코스라며 자세히 설명해준다.
생레미드프로방스는 네델란드 태생인 고흐(Vincent van Gogh, 1853.3.30.~1890.7.29.)가 말
년에 병원을 전전하며 쓸쓸하게 보낸 곳이다. 그가 병원에 있으면서 틈틈이 나와 주변의 풍경
을 그렸다. 진경 풍경화를 그린 것이다. 그 자리에 그가 그린 그림을 복사하여 전시하고 있다.
진본은 세계의 유수한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고흐의 자취를 쫓아 2㎞ 남짓한 들길을 걷는다. 고흐가 이젤 놓았을 그 때의 주변 환경은 그
간 흐른 세월만큼이나 변했지만 희미한 흔적을 감지할 수는 있다. 그의 그림을 일일이 들여다
보며 그가 감내했을 고독의 일단을 엿본다.
가래질 하는 농부들, 풀과 나비, 생레미 길, 개양귀비 핀 들판, 밀밭, 측백나무 있는 길, 생레
미 풍경, 측백나무와 밀밭, 붓꽃 등등. 우수가 짙게 배어있다.
그가 입원했던 병원은 그의 기념관이 되었다. 그가 누웠던 침대, 창문 열고 바라보았을 들녘
과 산릉. 나도 창문 통해 바라본다.
귀로가 허전하다. 머릿속에 고흐의 잔영이 어른거린 탓이다.
9. 생레미드프로방스에서 고흐의 자취, 고호가 이젤 놓고 그렸을 실경 앞에 전시하였다. 가래
질 하는 농부들. 원본은 미국 디트로이트 예술재단에서 소장하고 있다
10. 풀과 나비
11. 생레미 길
13. ‘생레미 길’은 이렇게 올리브나무 심은 밭으로 변했다
14. 고흐가 요양했던 병원 구내
15. 고흐의 동상
16. 고흐가 기거했던 방과 그가 누웠던 침대
17. 고흐가 요양했던 병원 뒤쪽의 산릉 중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