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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사(喜捨)의 마음에 무량한 복덕이
5월 3일을 눈앞에 둔 어느 날, 야마모토 신이치는 홀로 학회본부에서 깊은 사색을 거듭하고 있었다.
신이치의 머리에는 총본산 대객전의 건립을 비롯해 각지의 사원과 회관의 건설계획 등, 앞으로의 광선유포를 위한 전망이 전개되고 있었다.
어느 하나라도 광포의 진전을 위해서는 필요불가결한 것들뿐이다. 그러나 그것을 실현해 가기 위해서는 재원(財源)을 어떻게 하는가가 최대의 과제였다.
대객전을 건립하기 위해서는 대강당과 마찬가지로 전회원에게 호소하여 공양을 모아야 하겠지만 그래도 정말 괜찮은가 하는 망설임이 그에게는 있었다.
또 그 외의 사원과 회관건설을 위해서는 다시 재무부원의 범위를 넓혀 협력을 요청하지 않으면 안 될 단계에 와 있었지만 그것에도 신이치는 망설임을 느끼고 있었다.
동지는 공덕을 받았다고는 해도 생활고나 병고로 고뇌하다 신심을 시작한 민중이다. 경제적으로 풍부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결코 많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회원에게는 가능한 한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 신이치의 마음이었다.
◇
야마모토 신이치는 학회활동의 비용이 어떻게 조달되어 왔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원래 학회의 재원(財源)은 마키구치회장 시대에는 이사장인 도다 조세이가 일체의 책임을 떠맡아 왔다. 전후, 학회재건이 시작되었을 때도 도다는 자산을 털어 경비로 충당하여 회원에게는 금전적인 부담을 지게 하지 않았다.
그러나 도다가 회장에 취임하고 얼마 안 있어 몇 명의 회원으로부터 자기들도 학회경비의 일부분을 부담하고 싶다는 강한 요청이 있었다. 확실히 미래의 광선유포의 확대를 생각하자 언제까지나 그 혼자서 꾸려갈 수는 없었다.
또 학회활동의 경비를 부담하는 것은 광선유포에 대한 공양이다. 도다는 동지들의 요청에서 그 문호(門戶)를 드디어 열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도다는 지극히 신중했다. 광선유포의 재원(財源)은 어디까지나 진심어린 깨끗한 재원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는 멤버를 엄선했다.
신심이 강성하고 경제력도 있는 78명을 선정하여 재무부원으로서 학회의 재원을 젊어 질 사명을 의탁했던 것이다.
그리고 1951년 7월 3일 재무부(財務部) 결성식이 거행 되었다. 그 후 재무부원은 점차 진용(陣容)을 늘려 학회의 경제적인 기반을 지탱하는 큰 힘이 되었다.
재무부원들은 광포를 위해 정재(淨財)를 거출할 수 있도록 선발되었다는 긍지와 기쁨과 감사의 마음이 있었다. 도다는 재무부원의 생기 넘치는 그 정신이 무엇보다도 기뻤다.
학회의 재무(財務)는 세간의 일반적인 기부(寄附)와는 다르다. 어디까지나 신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불타오르는 신앙이 있는 한 무량한 공덕이 나타나지 않을 리가 없다. 니치렌대성인이 칭찬하시지 않을 리가 없다.
도다는 가능하면 보다 많은 동지에게 공양의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 중에는 경제고와 싸우고 있는 동지도 있다. 그 사람들의 일을 생각하자 그는 공양을 호소하는 것이 가슴 아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전혀 공양의 기회를 줄 수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신앙의 눈으로 보아 오히려 무자비가 되고 만다.
도다는 하는 수 없이 마음을 굳히고 총본산 5중탑 복원과 봉안전(奉安殿)건립 등에 즈음해 일단 모두에게 공양을 호소하기로 했다.
특히 도다의 원업의 하나였던 대강당건립 때에는 지장이 없는 한 전회원이 공양에 참가할 수 있도록 했다.
◇
야마모토 신이치는 도다 조세이가 일찍이 이렇게 말했던 일을 상기했다.
“미토 미쓰쿠니는 대일본사(大日本史)를 편찬했는데 그 때문에 번(藩:일본 에도시대의 지방 행정단위)의 재정상태가 어려웠다고 한다.
미쓰쿠니 정도의 인물이라면, 대사업을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서민의 혈세(血稅)를 쏟아 넣어야만 한다는 사실에 가슴아파하며 마음속으로 울었을 것이다.
나도 가난한 학회원에게 공양을 권하지만 이것을 하지 않으면 공덕을 받을 수 없으며 광선유포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때마다 나는 울고 있다‥.”
신이치는 도다의 그 마음을 잘 알 수 있었다. 그도 똑같은 심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양의 공덕은 헤아릴 수 없다.
◇
그것을 말해 주는 일례(一例)로서 기원정사를 기진했던 수달장자(須達長者), 즉 수달다의 이야기가 있다.
몇몇 불전에서는 수달다는 대장자가 된 후에 석존에게 귀의했다고 되어 있지만 다른 불전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있다.
--- 옛날, 인도에 수달다와 아내가 살고 있었다.
그들의 생활은 매우 어려웠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는 깊은 신앙심이 있었다.
어느 날, 수달다는 약간의 쌀을 손에 넣을 수가 있었다. 아내는 남편이 집에 돌아오면 함께 먹으려고 그 쌀로 밥을 지었다.
그러자 거기에 불제자 중 한사람인 아나율(阿那律)이 탁발하러 왔다. 아내는 아나율을 보자 예배하고 그의 바리때에 지은 밥을 수북하게 담아 건네주었다.
또한 수달다의 집에 석존의 고제(高弟)인 수보리(須菩提), 마하가섭(摩訶迦葉), 목련(目連), 사리불(舍利弗) 등이 잇달아 탁발하러 왔다.
아내는 그 때도 밥을 지어 건네주었다.
마지막에 찾아온 사람은 석존 자신이었다. 석존이 먹을 것을 구하자 아내는 기꺼이 남아 있던 밥을 전부 공양했다. 희사(喜捨)였다. 부처를 구도하고 공경하는 그녀의 신심의 발로였다.
만약 수달다가 집에 있었다면 당연히 그녀는 남편에게 의논했을 것이고 남편도 기꺼이 공양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남편이 부재중(不在中)이었던 만큼 그녀에게는 일말의 불안이 있었다.
잠시 후, 수달다가 집에 돌아왔다. 그는 매우 배고파 있었다.
“배가 고프다. 자, 식사를 하도록 하자.”
아내는 가만히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만약, 석존의 제자인 아나율님이 탁발하러 찾아온다면 당신은 공양을 하시겠습니까?”
“물론 먹을 것이 있으면 공양하겠다. 비록 내가 먹지 못하더라도‥‥‥.”
수달다의 아내는 거듭 남편에게 물었다.
“그럼 수보리님이나 마하가섭님, 게다가 석존 스스로 오시어 먹을 것을 구하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수달다는 대답했다.
“말할 필요도 없다. 당연히 먹을 것이 있으면 공양해 드려야지.”
아내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실은 오늘 석존의 제자분들과 석존께서 잇따라 오셨습니다. 저는 기꺼이 당신이 고생하여 구해온 음식을 전부 공양해 버렸습니다.
그래도 당신이 뭐라고 말씀하실까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신이 자신이 먹지 못하더라도 공양하겠다고 하시니 안심했습니다.”
수달다도 웃으며 말했다.
“그런가. 정말로 좋은 일을 해 주었군. 이것으로 우리들의 죄업도 소멸되었고 반드시 행복하게 될 거야‥‥ ”
이 공양의 공덕에 의해 수달다는 대장자(大長者)가 되었다고 한다.
아내의 한결같은 순수한 결심과 그것을 기뻐하는 남편 --- 거기에는 언제나 변함없는 순진한 신앙에서 나온 부부의 희사(喜捨)의 모습이 있었다. 또한 이 희사의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공양이고 거기에 위대한 복덕의 원천이 있다.
◇
그리고 대장자가 된 수달다의 기원정사(祇園精舍)의 기진(寄進)은 너무나도 유명한데 불전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남아있다.
--- 수달다는 석존을 위해 훌륭한 정사(精舍)를 건립할 것을 결의한다.
그는 장소의 선정에 있어서도 수도인 사위성(舍衛城)에서 너무 멀지도 않고, 또 너무 가깝지도 않은 왕래하기 편하고 조용한 곳으로 하려고 마음먹었다.
생각을 거듭한 끝에 그가 선택한 것은 기타태자(祇陀太子)의 원림(園林)이었다.
수달다는 기다태자와 만나 꼭 그곳에 정사를 세우고 싶다며 그 토지의 양보를 간청했다. 그러나 태자는 그것을 거부했다.
“저 원림은 내가 가장 아끼는 곳이다. 설사 저 땅위에 황금을 깔더라도 넘겨줄 수는 없다.”
그러나 수달다는 단념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입씨름을 하게 되어 이야기는 재판을 담당하는 대신(大臣)에게까지 가지고 가게 되었다. 거기서 두 사람의 주장을 듣고 결론이 내려지게 되었다.
대신은 수달다가 땅위에 황금을 깐만큼 태자는 토지를 양보하라는 결론을 내렸다.
수달다(須達多)는 급히 집으로 돌아와 수레에 황금을 싣고 찾아갔다. 그리고 엄숙히 원림(園林)바닥에 황금을 깔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 수레의 분량으로 얻을 수 있는 토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는 집에 있는 황금을 전부 가져오려고 했다.
기다태자(祈陀太子)는 그 진지한 모습에 놀라 생각했다.
‘왜 수달다는 이렇게 많은 황금을 투자하려고 하는가. 석존이 그 정도로 위대한 분인가. 불타가 출현했다는 말이 진실이었던가.’
태자는 황금을 바닥에 깔고 있는 수달다에게 말했다.
“이제 충분하다. 황금을 깔 필요는 없다. 이 원림은 당신에게 양보하겠다.”
수달다의 진지함과 확고한 신념에 태자의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또한 태자는 원림을 수달다에게 양보할 뿐만 아니라 자신도 그 곳에 장엄한 문(門)을 만들어 기진(寄進)하겠다고 자청했다.
수달다의 희사(喜捨)의 모습에 공감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정사(精舍)가 ‘기수급고독원정사(祈樹給孤獨園精舍)’이다.
수달다는 자주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 주었다고 하여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라 불리고 있었다.
그런 그가 기타태자의 수림(樹林)에 세운 정사(精舍)라고 하여 이 이름이 붙은 것으로 생략해서 기원정사(祈園精舍)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윽고 수달다로부터 완성된 정사(精舍)를 기진하겠다는 간청을 받은 석존은 위의(威儀)를 갖추고 말했다.
“이 정사는 나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널리 승단(僧團)에 공양하여 모든 수행승(修行僧)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이렇게 하여 기원정사는 수행자 전원을 위한 것으로 되었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그 후의 사원(寺院)으로 계승되어 현대에 있어서는 학회의 회관으로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기원정사의 기진은 수달다에게 더욱 큰 공덕과 복운으로 이어졌음에 틀림없다.
희사(喜捨)의 마음은 경애를 높이고 무량한 공덕을 가져올 뿐 아니라 신심의 확신을 더욱 깊게 한다. 거기에 행복의 궤도를 확립하는 불법의 방정식이 있다.
◇
야마모토 신이치는 옆에 있던 어서를 펼쳤다. 공양의 본의(本義)를 다시 한 번 어서에 비추어 숙고(熟考)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먼저 ‘백미일표어서(白米一俵御書)’를 배독했다. 미노부에 계셨던 니치렌대성인에게 한 신도가 백미(白米) 등을 공양한 것에 대한 편지이다.
대성인은 그 진심을 칭찬하시고 “범부는 지(志)라고 하는 문자를 심득(心得)하여 부처가 되느니라.”(어서 1596쪽) 라고 말씀하시고 있다.
요컨대 신심의 마음, 불법에 대한 지성(至誠)의 일념이 성불의 요체라고 교시하시고 있는 것이다.
이 ‘백미일표어서(白米一俵御書)’에서는 목숨을 잇는 음식을 공양한 것은 과거에 설산동자(雪山童子)나 약왕보살, 쇼토쿠태자 등의 현인이나 성인이 불법을 위해 목숨을 바친 공덕에도 뒤지지 않는 일이라고 칭찬하시고 있다.
야마모토 신이치는 또 어서의 다른 페이지를 펼쳤다.
1280년(홍안3년) 12월27일 난조도키미쓰(南條時光)에게 주신 ‘우에노전답서’(어서 1574쪽)였다.
당시 도키미쓰는 아쓰하라법난 때문에 과중한 부역(賦役)을 부담하게 되어 경제적으로 고경에 처해 있었다. 자신이 탈 말(馬)도 아내와 아이들이 입어야 할 옷도 없는 상황에 있으면서 미노부에서 겨울을 지내시는 대성인의 신상을 걱정하여 엽전(돈) 일관문을 공양한 일에 대한 편지이다.
여러 어서에 기록된 도키미쓰의 공양품들을 보면 대부분이 음식이었다. 그러나 이때 돈을 보내온 것은 대성인에게 공양할 것이 이미 떨어져 버렸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마도 유사시를 대비하여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돈을 공양한 것임에 틀림없다.
대성인은 그 진심을 존경하고 칭찬하셨던 것이다.
도키미쓰의 옷차림은 초라하더라도 그 마음은 품격이 높고 금빛을 발하고 있었다. 공양의 근본은 어디까지나 신심의 마음이다.
‘마쓰노전어소식(松野殿御消息)’(어서 1380쪽)에는 석존에게 흙 떡을 공양한 덕승동자가 그 공덕에 의해 아육대왕(阿育大王)으로 태어나 이윽고 성불했다는 것도 쓰여 있다.
아직 어린 덕승동자에게 있어 흙 떡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공양이었다. 힘이 있는 한 진심을 다하여 공양했기 때문에 비록 흙 떡이었다 해도 대왕으로 태어난 것이다.
야마모토 신이치는 계속해서 ‘중생신심어서(衆生身心御書)'를 배독했다.
그 후단(後段)에서 그의 시선이 멈추었다.
그리고 몇 번이나 그곳을 반복해서 읽었다. 그는 깊은 의미를 느꼈다.
“.... 설령 공덕을 쌓았다 해도 진실하지 않은 것을 공양하면 대악(大惡)으로는 되지만 선(善)으로 되지 않으며 설령 마음이 어리석고 조그마한 것이라도 진실한 사람에게 공양하면 공덕이 크니라. 하물며 깊은 뜻이 있어서 진실한 법을 공양하는 사람들에 있어서랴.”(어서 1595쪽)
<비록 공덕선근(功德善根)을 쌓았다 해도 진실하지 않은 사람에게 공양하면 대악으로는 되어도 선으로는 되지 않는다. 비록 신심이 얕고 적은 물건을 공양하더라도 진실한 사람에게 공양하면 공덕은 크다. 하물며 두터운 마음으로 진실한 법을 공양하는 사람들의 공덕은 얼마나 큰지 헤아릴 수 없다>
한마디로 공양이라 해도 무엇에 대해 공양하는가에 따라 선(善)으로도 되고 악(惡)으로도 된다다는 말씀이다. 신이치는 ‘중생신심어서(衆生身心御書)’의 어문에 의거하여 학회의 공양, 재무(財務)에 대해 생각했다.
학회가 추진하는 공양, 재무는 전부 니치렌대성인의 어유명(御遺命)이신 광선유포를 위한 것이다. 대성인이 세우신 대원(大願)을 성취하기 위해 실시하는 공양은 어본불에 대한 공양에 통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보다 더한 공양도 없으며 대선(大善)도 없다. 따라서 이보다 더한 대공덕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신이치 자신 또한 한사람의 학회원으로서 그런 기회를 만날 수 있게 된 사실에 무량한 복운과 기쁨을 느꼈다.
이 어서의 마지막에, 미노부산으로 여러 공양들을 보내 온 한사람의 문하의 마음을 칭찬하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 있다.
“복전(福田)에 선종(善種)을 내리신 것이 아닐까, 눈물도 멎지 않노라.”(어서 1595쪽)
<복전에 훌륭한 선근의 종자를 뿌려주신 것인가. 후의(厚意)에 눈물도 멎지 않는다.>
광선유포에 진력하는 것은 복전에 선근의 종자를 뿌리는 것이다. --- 그것은 신이치가 청춘시절 때부터 강하게 확신해 온 것이기도 했다.
신이치는 도다 조세이의 사업이 궁지에 빠져 급료가 계속 늦어지는 속에서도 열심히 광포의 지휘를 잡은 도다를 지키고 섬겨온 날들을 떠올렸다.
신이치는 광선유포에 홀로 선 사자(獅子)를 지키는 것은 학회를 지키고 광포를 실현하는 길이라고 자각하고 있었다.
그는 극한(極限)까지 자신의 생활비를 절약해 가며 급료는 조금이라도 광포를 위해, 학회를 위해 사용하는 것을 신조로 삼아왔다. 그것은 신이치의 기쁨이고 마음의 긍지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코트도 없이 겨울을 지냈던 적도 있었다. 겨우 받은 급료의 일부를 도다의 광포활동을 위해 썼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 공덕과 복운에 의해 병고(病苦)도 타고 넘어 지금 이렇게 회장으로서 유유히 지휘를 잡을 수 있는 경애가 된 것을 신이치는 강하게 실감했다.
신이치는 남이 시켜서 그렇게 행동해 온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스스로의 의지로 용약환희하며 실천해 온 행위였다. 또 광선유포를 위해 생애를 바치겠다고 정한 신이치의, 신심(信心)의 지성(至誠)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오랜 사색 끝에 어성훈에 비추어 또 스스로의 체험 위에서도 대객전의 건립에 임해서는 전동지에게 생명의 복전에 선근을 쌓는 공양의 문호를 열어가려고 결단을 내린 것이다.
◇
지금 대객전건립의 때를 맞이하여 동지들은 공양에 참가할 것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신이치도 전국의 가는 곳마다 그러한 회원들의 소리를 들어왔다.
동지들은 광선유포를 위해 생활비를 절약하면서까지 공양하려고 결의해주고 있었다.
그것은 일찍이 학회의 재원(財源)을 스스로 뒷받침해 왔던 도다 조세이와 같은 결의, 같은 자각을 가진 동지가 무수히 많이 탄생했음을 의미한다고 해도 좋다.
신이치는 그들에게서 존귀한 보살의 모습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는 맹세했다.
‘그 동지들이야말로 현대의 수달장자이고 덕승동자이며 난조 도키미쓰(甫條時光)라 해도 좋다. 비록 지금은 가난해도 미래에는 틀림없이 대장자가 될 것이다. 또 반드시 그렇게 만들어 갈 것이다.
나는 부처를 공경하듯 이 사람들을 접하여 그 진심을 칭찬하고 격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신이치는 광선유포의 새로운 여명을 상징하는 대객전을 진실로 장엄하게 하는 것은 법우(法友)의 지성(至誠)과 환희라고 하는, 신앙에서 발하는 ‘아름다운 혼의 광채’라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공양의 의의와 정신을 올바르게 알려나가 한 사람 한사람이 광선유포의 사명을 깊이 자각하도록 해야 한다.
신이치는 이 대객전의 공양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이사회에 상의하여 모두의 찬동을 얻게 된다면 5월 3일의 총회에서 발표하려고 생각했다.
☞ 신․ 인간혁명 제4권 개선(凱旋) 에서
희사(喜捨)의 마음에 무량한 복덕이- 4권 개선.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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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유마거사와 문수보살과의 喜捨에 관한 문답
“무엇을 일러 喜라 합니까?”
“중생에게 요익함이 있으면 기뻐하여 뉘우침이 없는 것입니다.”
“거사님, 무엇을 일러서 捨라 합니까?”
“보살은 지어진 복락에 대해 과보를 바라지 않아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노고많으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