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적인 용어로는 ‘유료노인복지주택’과 ‘유료양로시설’이며 흔히 ‘실버타운’으로 불리는 유료노인주거복지시설이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지도 이미 20년 이상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까지 반복되는 부실운영과 제도의 난맥상이 여전해 총체적으로는 ‘실패’에 가깝다는 평가가 앞선다.
우리나라의 노인복지법은 주거복지시설의 공급만을 규정하고 있어 고령자의 주거보장을 위한 법률로서는 크게 미흡한 실정이다. 1993년 노인복지법 개정으로 유료양로시설을 국가나 비영리법인 뿐 아니라 민간기업이나 개인도 설치 운영할 수 있게 바꾼 이래 대체로 사업자의 사업 편의를 위한 방향으로 법과 정책이 바뀌었을 뿐 이러한 시설에 입소한 노인들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 마련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한 면이 많다. 그로인해 일부 시설은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등 한때 실버산업의 기대주였던 실버타운이 고령화 사회 한가운데서 길을 잃어버린 느낌이다.
우리나라 노인주거정책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은 그동안 노인주거문제의 해법을 지나치게 ‘노인복지시설 중심’으로 생각한데 있다. 이 점은 노인복지 문제를 먼저 겪은 선진국들도 마찬가지였는데, 이런 시행착오를 겪은 것은 고령사회(高齡社會)야 말로 아직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진국들이 오랜 시행착오 끝에 찾아낸 새로운 대안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도 처음에는 복지시설이나 실버타운 같은 ‘시설 위주의 정책’에 주력했다. 그러나 결국 노인들만으로 이루어진 다분히 배타적인 노후공동체 모델의 한계에 직면한 서구와 일본에서는 세대통합적 노후공동체, 나아가서 지역 커뮤니티와 통합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찾기 시작했다. 자신이 살아온 지역과 집, 이웃들로부터 분리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여생을 보낼 수 있게 하는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를 노인복지 정책의 모토로 삼는 것이 최근 복지 선진국들의 한결같은 추세다.
WHO가 2007년 첫 번째로 선정한 고령친화도시는 미국 뉴욕이었다. 가장 젊고 역동적인 이미지의 도시가 가장 먼저 노인을 위한 도시로 선정된 것이다. 이는 도시 고령화가 피할 수 없는 추세임을, 그리고 고령화를 제대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지역 공동체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역설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익숙한 얼굴, 익숙한 지형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환경이 갖추어진 도시 공동체, 여기에 덧붙여 자식과 가까운 거리(서양에서는 이를 흔히 '국이 식지 않는 거리'라고 한다)에서 살 수 있다면 굳이 실버타운 같은 노인주거복지시설을 찾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가령, 미국에 거주하는 유태인 집단에서 처음 개발한 NORC(Naturally Occurring Retirement Community; 자연발생적 은퇴자 공동체) 프로그램 같은 경우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동안 이 서구식 실버타운을 정착시키고 그 저변을 확대하기 위한 시도가 있었으나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오히려 소비자들인 노인 스스로 필요한 서비스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기존의 실버타운과는 차별화된 ‘대안’을 개발하는 것이 새로운 활력을 얻는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설이 아닌 집에서 의료, 간호, 요양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며, 시설과 집의 중간 지대라 할 수 있는 ‘시니어 코하우징’, ‘맞춤형 서비스 고령친화주택’ 등 새로운 대안들을 적극 찾아 나서야 할 것이다.
오랜 고민 끝에 아버지는 집에서 가까운 한 유료노인복지주택(실버타운)에 입소하셨고 지금은 비교적 잘 계신다. 결국,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이 되기 위해서는 은퇴 후 삶의 가장 원초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어야만 한다. 그 원초적인 문제들은 단순히 의식주의 해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 공동체, 즉 노인과 젊은이들이 함께 공존하는 자연스런 사회의 모습-초고령 사회 이전에 원래 그렇게 살아왔던 모습-을 복지 시스템을 통해 구현해 내는 것에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