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방이 되는 공간, 길담서원
문을 여는 순간 종소리가 귀를 쨍하게 울린다. 고요한 공기를 가르는 맑은 소리다. 누군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는 것 같기도 하고, 오래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먼저 열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어서 오세요.”
짧은 인사 한마디가 따라온다. 그제야 긴장이 풀린다. 고인돌처럼 둔중하게 굳어 있던 마음도 종소리를 따라 조금씩 말랑해진다. 돌 같은 마음이 종소리에 보시시 웃는다.
길담서원은 얼마 전 봉황동의 정겨운 초록 대문을 뒤로하고 반죽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새로 옮겨온 곳은 오래된 회색 건물이다. 한때 이 자리에는 ‘바흐’라는 이름의 카페가 있었다. 바흐의 음악이 묵직하게 공기를 흔들었을 자리. 이제 그곳에는 책과 사람들이 모여든다. 음악 대신 책장을 넘기는 소리와 사람들의 목소리가 공간을 채운다.
장소는 달라졌지만 길담서원이 품고 있던 따뜻한 기운은 그대로다.
요즘 나는 이곳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함께 읽고 있다. 열 차례에 걸쳐 대여섯 명이 모여 낭독하고, 중요한 부분은 영어 원문으로 소리 내어 읽는다. 한 문장을 붙잡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다 보면 책을 읽는 일이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다.
처음에는 영어 문장 앞에 앉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눈으로 읽을 때는 알 것 같던 문장이 막상 소리를 내려고 하면 낯설어졌다. 오래전 배웠던 예스러운 발음이 입 밖으로 나올 때면 괜히 민망했다. 한 문장을 읽다가 더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여름나기’님이 손을 내밀어준다. 영문을 읽는 목소리는 또렷하고, 문장 사이에 건涅는 말에는 생각할 거리가 있다. 덕분에 나는 조금씩 부끄러움을 내려놓는다. 잘 읽어야 한다는 마음보다 한 문장이라도 끝까지 읽어보자는 마음이 커졌다.
생각해보면 걷는 일도 이와 비슷하다. 처음부터 길을 잘 걷는 사람은 없다. 돌부리에 걸리기도 하고 길을 잘못 들기도 한다. 그래도 한 걸음씩 내딛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걸어온 길이 보인다.
책을 읽다가 잠시 긴장을 푼다. ‘여름나기’님이 손수 만든 케이크가 놓이고, 이어 베짱이님이 정성껏 타주신 말차라테 한 잔이 놓인다. 쌉싸름한 맛이 목을 지나며 마음속에 작은 길 하나를 터준다.
해마다 가을이면 사과 한 상자를 보내주시는 서산의 친구 같은 고객도 있다. 붉은 사과가 책상 위에 놓이는 것만으로도 공간이 환해진다. 책을 읽는 일은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불러들이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은 늘 반겨주던 길고양이 만두 씨가 보이지 않는다. 서원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우리를 맞아주던 녀석이다. 오늘은 어디로 갔을까. 가을바람을 따라 이웃 마실이라도 나간 모양이다.
문밖으로 바람이 스친다.
가을이 쌉싸름하다.
바람이 건네는 안부 같다.
봉황동의 초록 대문에서 반죽동의 회색 건물로 자리를 옮겼지만, 그곳에 쌓인 시간의 결까지 바뀐 것은 아니다. 바흐의 음악이 흘렀던 카페 자리에, 예전처럼 조금씩 책이 세워지던 그곳에 이제 더 많은 책이 놓이고 사람들이 마주 앉는다.
누군가는 영어 문장을 더듬고, 누군가는 차를 내고, 누군가는 케이크를 굽는다. 그렇게 서로의 작은 시간을 내어놓는 동안 하나의 공간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길담서원은 내게 단순한 독립서점이 아니다.
세상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책을 읽으며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곳.
서툰 목소리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내어놓을 수 있는 곳.
사람과 책 사이에서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
울프가 말한 ‘자기만의 방’은 꼭 벽과 문으로 닫힌 방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를 잃지 않고 생각할 수 있는 자리, 내 목소리를 가만히 들어볼 수 있는 자리라면 어디든 자기만의 방이 될 수 있으리라.
길담서원에서 문을 열 때마다 내 마음을 훔쳐 가는 종소리.
그 소리를 따라 나는 오늘도 책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다시 길을 걷는다.
또 하나의 자기만의 방,
나의 길담서원.
2026
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