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질의 식물성 단백질이 풍부하고 소화흡수율이 높다. 다만 두부의 소화흡수율이 '가장' 높은 것은 아니고, 가장 높은 건 간장, 된장 같은 장 종류이다. 그렇지만 간장, 된장 등의 장류는 조미료라 높은 염분 때문에 먹는 양과 방법이 제한되는 걸 감안하면, 콩의 단백질을 가장 건강하며 효과적으로 섭취하는 방법은 두부라고해도 과언은 아니다.
열량은 일반 모두부 형태로 100g에 79kcal, 순두부는 47kcal로 알려져 있다. 순두부보다 모두부가 밀도가 더 높기 때문에 열량도 더 높은 것.
서양에서도 일본식 명칭이 가장 먼저 퍼져나가면서 tofu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있는 콩 요리고, "살찌지 않는 치즈"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페타 치즈와 묘하게 생김새가 똑같다. 겉모습만 보고는 어느 것이 두부고 어떤 것이 치즈인지 구별할 수 없기 때문에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
성분은 두부의 종류에 따라서 차이가 있지만 일반 모두부를 기준으로 100g에 85%정도는 수분, 단백질 7~8%, 지방 4~5%, 탄수화물 2~3%가 일반적이다. 그러므로 두부가 고단백 식품은 맞지만 단백질만 있는 식품이라는 것은 틀린 이야기다. 식물성단백질로 텝타이드 성분이 혈압억제에 도움을 주며, 리놀산 성분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게 해줘서 혈관질환에 도움이 되는 식품이다. 콩보더 흡수율이 높아 소화가 잘 되며, 칼로리도 낮고 단백질이 풍부해서 다이어트로도 많이 이용된다.
장염이나 식중독에 걸린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식품들 중 하나다. 원래 두부 자체가 부드럽고 식물성 음식이기 때문에 소화능력이 떨어지는 장 질환 환자들에게 영양가가 많은 좋은 식품으로 자리매김한다. 게다가 많이 먹어도 비교적 다른 음식들에 비해서 탈이 안난다. 그러나 두부 역시 굽거나 튀기면 기름이 있게 되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장 질환 관련 환자들은 생으로 먹거나 삶아 먹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되는 식품이다.
두부가 탄생한 계기는 몇 가지 학설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중국전한(漢)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연단술을 익히던 도중에 우연히 탄생되었다는 설이다. 하지만 이 설이 맞다고 가정한다면 기원전 2세기 경에 두부가 처음 생겼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10세기 이전까지 편찬된 문헌에서 단 한 번도 두부가 언급된 적이 없던 만큼 곧이곧대로 믿기는 다소 어렵다.[2] 단, The Book of Tofu에 의하면 일본에서는 나라시대에 중국에서 두부가 들어왔다고 한다. 더 옛날에도 두부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3]
유안 발명설 외에는 유난히 콩 음식을 즐겨 먹는 중국 북부 지역에서 두유를 끓이다가 우연하게 발견했다는 중국 북부설[4], 몽골 유목민이 치즈를 만드는 것에서 영감을 얻어서 처음 만들었다는 몽골설, 불교와 함께 인도에서 들어왔다는 인도 유입설 등이 있으나 정확하게 정설화된 것은 없으며, 학계에서도 이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한국 문헌 중에 가장 처음 두부가 등장하는 것은 고려 말기 성리학자인 이색(李穡)이 지은 《목은집(牧隱集)》으로, 목은집의 <대사구두부내향(大舍求豆腐來餉)>이란 시(詩)에서 "나물 죽도 오래 먹으니 맛이 없는데, 두부가 새로운 맛을 돋우어 주어 늙은 몸이 양생하기 더없이 좋다."라는 구절이 등장한다.[5] 한국으로 두부가 전래된 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다만 중국에서 넘어온 것은 분명하다고 본다), 처음 문헌에 등장한 때가 고려 말기인 것으로 미루어 가장 교류가 활발했던 고려 말기에 원(元)으로부터 전래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두부와 관련하여 조선왕조실록 세종10년(1428)과 세종16년(1434)기록에, 두부와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나온다.
工曹判書成達生, 在中朝報: "使臣白彦, 使執饌女, 造酒果豆腐以進, 帝甚嘉之, 卽除彦御用監小監, 賜冠帶。" 공조 판서 성달생(成達生)[6]이 명나라에 있으면서 보고하기를 “사신 백언(白彦)이 찬녀(饌女)를 시켜 술·과일·두부(豆腐)를 만들어 올리니, 황제가 매우 가상(嘉尙)히 여겨 곧 백언을 어용감 소감(御用監小監)으로 제수(除授)하고 관대(冠帶)를 내려 주었습니다.
세종실록 39권, 세종 10년(1428) 2월 11일 계해 4번째 기사 성달생이 사신 백언이 명나라의 어용감 소감에 제수되었음을 보고하다#
쉽게 말하면 사신을 따라간 요리사가 조선식 두부를 만들어 선덕제에게 올리자 선덕제가 그것을 맛보고 크게 감탄하여 사신에게 벼슬까지 내렸다는 훈훈한 이야기.
"王先次所遣來製造饍羞婦女, 皆調和精美, 造辦便捷, 而作豆腐尤精妙。 後次所遣來者雖佳, 然皆不及前者。 勑至, 王可更選巧慧婦女十數人, 令巧習製作饌羞及造豆腐之類, 悉皆精熟如, 前次所遣者, 待後遣中官到國中, 就帶來京。" “왕이 먼젓번에 보내 온 반찬과 음식을 만드는 부녀자들이 모두 음식을 조화(調和)하는 것이 정하고 아름답고, 제조하는 것이 빠르고 민첩하고, 두부(頭腐)를 만드는 것이 더욱 정묘하다. 다음번에 보내 온 사람은 잘하기는 하나 전 사람들에게는 미치지 못하니, 칙서가 이르거든 왕이 다시 공교하고 영리한 여자 10여 인을 뽑아서, 반찬·음식·두부 등류를 만드는 것을 익히게 하여, 모두 다 정하고 숙달하기를 전번에 보낸 사람들과 같게 하였다가, 뒤에 중관을 보내어 국중에 이르거든 경사(京師)로 딸려 보내도록 하라.”
세종실록 66권, 세종 16년(1434년) 12월 24일 정묘 1번째기사 천추사 박신생이 칙서 세 통을 가지고 경사에서 돌아오다#
게다가 여기서 끝나지 않고 6년 후에 다시 조선에 칙서를 보내 '너희 요리사가 만든 두부 참 맛나더라. 그러니 두부 만들 애 좀 더 보내라.'라며 직접 요구를 했다 하니, 선덕제는 그 두부가 어지간히도 맛있었던 모양이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명나라 사람들에게 조선두부가 입에 맞았는지 조선에서 공급하던 식단을 보면 장수부터 병졸까지 모든 식단에 두부가 있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가마쿠라 시대에 중국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온 승려들에서 비롯되어 전파되었다. 기록된 바로는 12세기에 나라 카스가 신사(春日神社)에 唐府가 공물로 바쳐졌다고 하는데, 이를 음독으로 읽으면 토후, 즉 두부다. 그러나 이 당시에는 도시권이라 할 수 있는 긴키(교토, 나라 등) 정도에만 퍼진 음식이었던 것 같다. 임진왜란 당시 토사(土佐, 지금의 고치현)의 다이묘인 쵸소카베 모토치카가 병력을 이끌고 참전했는데, 당시 포로로 잡혔던 박호인(朴好仁)이 만든 두부를 먹고 "이거 뭐야? 처음 먹는 건데 엄청 맛있네!"이라며 그를 토사로 데려왔다. 박호인은 고치 성 옆의 토진마치(唐人町, 외국인 동네)에 머무르며 두부를 만들면서 살게 되었고, 좋은 대우를 받았다 한다. 박호인은 1617년 조선 통신사가 일본에 왔을 때 이들을 따라 조선으로 돌아갔지만 그의 후손들이 남아 두부 제조의 업을 이었으며 지금은 아키츠키(秋月)라는 성을 쓴다고 한다. 지금과 같이 두부가 일본 전국의 여느 식재료로 자리 잡은 것은 에도 시대라고 한다.
지금이야 두부가 서민들의 요긴한 반찬거리이지만, 위 역사적 사례에서 중국 황제가 즐겼던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에는 높으신 분들이 좋아했던 별미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일단 만드는 과정부터가 지금도 그렇지만 결코 간단하지가 않다. 때문에 양반들은 종종 야외에서 '포회(泡會)', 즉 일종의 두부 파티를 열고는 했던 모양. 조선의 연간 풍습을 기록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의 10월 대목에는, 연포탕(軟泡湯)이라고 하여 두부를 가늘게 썰어 꼬챙이에 꿴 후 기름에 지지다가 닭고기로 낸 육수에 넣어 끓이는 전골 비슷한 요리를 먹는다는 기록이 있다.[7] 이 때 두부를 만드는 일은 주로 인근의 절에 맡겨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쇄미록(瑣尾錄)이라는 문헌을 보면 포회에서 사용될 두부 만들기를 거절한 승려들을 관아에 고소하여 발바닥을 맞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숭유억불의 국가 조선에서 감내해야 했던 승려들의 고단함이 느껴지는 대목. 더구나 연포탕의 경우 육수를 내려면 닭을 잡아 그 고기를 삶아야 하는데, 살생을 금하는 불제자의 입장에선 그만큼 난감했던 일이 없었을 것이다.[8][9]
왕릉 근처의 절들이었던 원찰에서도 왕족들의 제사 때 사용하는 두부를 만들기도 했는데, 이런 절들을 조포사(造泡寺)라고 불렀다. 다른 절들과 달리 이 조포사들은 왕실의 영향력이 강한 곳이다 보니, 양반들도 여기서는 함부로 포회를 연다며 간섭할 수 없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조포사로는 정조와 사도세자의 능인 융건릉 옆에 있는 용주사가 있다.
일반적으로 대두(백태)가 원료로 쓰이며 그 외에 쥐눈이콩이나 검은콩이 많이 쓰인다. 이는 이들의 단백질 함량이 매우 높기 때문이며, 콩이라고 해도 녹두나 강낭콩처럼 단백질 함량이 낮으면 두부가 되지 않는다.
제조법은 이렇다. 콩을 잘 씻어 여름에는 7∼8시간, 겨울에는 24시간 물에 담가 불린 후 물을 조금씩 가하면서 분쇄기에 넣고 곱게 간다. 이것을 콩비지라 하며, 솥에서 직접 끓이든지 보일러에서 증기를 뿜어넣어 가열한다. 이 가열로 인하여 콩의 비린내가 제거되는 동시에 단백질이 다량 콩비지 속에 용해된다. 가열이 끝나면 이것을 베주머니에 넣고 걸러짜서 콩물(豆乳)과 비지로 나눈다. 이때 콩비지가 너무 식으면 짜기 어려우므로, 뜨거울 때 걸러서 가능한 한 콩물을 꼭 짠다.
콩물이 어느 정도 식어 70 ℃쯤 되면 응고제를 넣는다. 전에는 응고제로서 간수[10]를 썼으나, 근년에는 황산칼슘을 주성분으로 하는 가루응고제를 사용한다. 응고제가 염화마그네슘이냐 황산칼슘이냐에 따라 두부의 맛이 달라진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중국 남부에서는 주로 황산칼슘을 북부에서는 염화마그네슘을 쓴다.
두부 만들 때 넣는다고 하는 석고가 황산칼슘이다. 괜히 먹는 것에 석고 넣니뭐니하면서 설레발 치지말자. 한국은 물론 일본이나 미국, 유럽에서도 쓰는 물건이며 칼슘 영양제에 들어가는 성분 중 하나이기도 하다. 황산칼슘을 사용하면 두유를 굳히기 쉬워지고 식감이 부드러운 대신 맛이 연해진다. 염화마그네슘을 사용하면 두부가 단단하고 맛이 달고 진하다.
다만 같은 양의 콩을 썼을 때 황산칼슘 쪽이 3~4배 많은 두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은 효율적인 대량생산과 이윤추구를 위해 황산칼슘을 주로 쓴다. 염화마그네슘 100% 사용 두부는 더 비싸며 중국 한국 일본 심지어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염화마그네슘으로 굳힌 두부가 더 맛있다는 이유로 더 비싸다. 황산칼슘이 건강에 문제는 없다지만 일단 맛에서 떨어진다는 건 사실이다. 일부는 바닷물이나 염촛물[11]을 쓰기도 했으며, 위의 대표적인 응고제에는 한참 밀리나 근래에 들어 재조명되고 있다. 바닷물을 응고제로 사용한 대표적인 두부가 강릉시의 초당두부로, 허균의 아버지 허엽이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대량 생산되는 두부에 사용되는 응고제의 성분 및 배합은 제조사에 따라 달라지지만 일반적으로 단단한 두부는 황산 칼슘을 쓰고 부드러운 두부는 황산 칼슘에 글루코노 델타 락톤[12]을 혼합하는 경향이 있다. 조금 더 단단한 두부는 황산 칼슘에 염화 칼슘을 추가해서 만들기도 한다.
NAT GEO people(넷지오 피플) 채널의 프로그램인 Gok's Chinese Takeaway에 따르면 중국, 특히 중국 요리의 유행으로 두부 문화가 퍼진 호주는 가정에서 두부를 만들어 먹기도 하는데 이땐 응고제로 젤라틴을 주로 사용한다고 한다.
응고제를 넣으면 콩물 중의 단백질이 굳어지므로 그대로 잠시 놓아 두었다가 맑은 윗물을 떠서 버리고 밑에 가라앉은 응고물은 사방에 작은 구멍이 뚫린 상자에 무명을 깔고 부은 다음 뚜껑을 닫고 누름돌로 눌러 두면 작은 구멍으로 물기가 빠진다. 두부가 충분히 굳으면 상자째 물에 집어 넣어 물 속에서 상자는 빼내고 두부는 잠시 물에 담가 둔다. 이렇게 하면 여분의 응고제가 모두 빠져서 맛이 좋아진다. 이것을 적당히 자르면 완제품이 되는데, 보통 100g의 대두를 써서 두부 한 모 (300g)을 만들 수 있다.
이 밖에 만드는 방법을 약간 달리한 것으로 연두부와 순두부가 있는데, 연두부는 물을 완전히 빼지 않고 어느 정도 남긴 채 플라스틱 주머니에 넣어 굳힌 것으로, 매우 부드럽고 말랑말랑하다. 순두부는 콩물이 조금 덩어리가 진 상태로 응고 되었을 때 그대로 윗물과 함께 떠서 먹는 것으로 요즘은 폴리에틸렌(반투명 비닐) 주머니에 넣어 시판된다.
두부는 콩물에 응고제를 넣어 단백질을 굳힌 것인데, 이 때 콩물 속에 들어 있는 콩의 기름이 거의 단백질에 싸여서 함께 응고된다. 그러므로 두부는 단백질 외에 지방도 풍부하다. 또한 두부에 포함된 단백질은 필수아미노산을 많이 함유한 질 좋은 단백질로 소화흡수율도 매우 높다. 이렇듯 밭의 고기라고도 하는 콩을 원료로 한 두부는 예로부터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으로 이용되어왔으며 그 조리방법도 100여 종이 넘는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아몬드나 살구씨 등을 사용한 두부라는 것도 볼 수 있는데, 이건 두부라기 보다는, 두부와 비슷한 모양과 색깔 때문에 두부라고 불리는 것 뿐이다. 행인두부 문서 참고.[13]교토에서 유명한 불교식 채식 요리인 정진요리에서 자주 나오는 깨두부(고마도후)도 콩은 전혀 안 들어가지만 두부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는데, 깨 빻은 것과 칡 또는 옥수수의 녹말을 섞어서 두부와 흡사한 모양으로 만든 것이다.
SBS에서 방송한 두부 다큐멘터리 '두부 견문록'에 의하면 한중일 삼국의 두부 취식 형태나 응고제, 맛의 선호도는 약간씩 차이를 보인다. 실제로 미국의 요리 프로그램에서 미국인 진행자가 두부 요리를 만들 경우, 중국식과 일본식의 차이점을 설명하면서 무난한 한국식 두부를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체적으로 한국은 있는 그대로를 가져다쓰면서 두부 자체의 식감이나 형태를 크게 변형하지 않는 쪽에서 요리가 완성되지만[14], 중국이나 일본은 좀 더 적극적으로 변형하고 더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으로 나온다.
원래 조선에서는 두부를 보존식품의 일종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물기를 극한으로 짜내어 만들어서 무지막지하게 단단해 새끼줄에 묶어서 들고 갔다고 하며, 두부를 들고 있는 사람이 시비가 붙어 두부를 휘둘렀더니 철퇴를 맞은 양 머리가 깨져 즉사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현재 조선식 두부는 임진왜란 때 일본 고치 지역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의 후손이 대를 이어가서 만들고 있다고 한다. 보통의 두부와는 다르게 수분을 극한으로 뺐기 때문에 국물 요리에 넣으면 국물을 빨아들여서 국물맛이 두부에 그대로 스며들기 때문에 스키야키 등 전골류 요리의 재료로 제격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순두부, 말린 두부, 훈제한 두부, 취두부나 부유(푸루)같은 발효 두부 등이 있다. 이 중 특이한 것이 발효 두부들인데, 두부를 발효시키면 독특한 향취와 맛이 난다. 다만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삭힌 홍어나 수르스트뢰밍에 맞먹는 암모니아성 악취 때문에 섣불리 입에 댈 생각을 하지 못한다. 일본에서는 연두부, 튀긴 두부, 유바 등으로 먹는다. 유바의 경우에는 두유를 끓여서 그 표면에 얇은 막이 생기면 건져내는 것이라 두부라고 하기는 힘들지만, 일단 두유로 만들기 때문에 두부를 취급하는 상점들에서도 기본적으로 구할 수 있다.
현재 일본의 일부인 오키나와에는 오키나와 요리의 하나인 지마미토후(ジーマーミ豆腐)라고 하는 땅콩으로 만든 두부가 있다. 오키나와어로 지마미는 땅콩이란 뜻. 식감은 일반적으로 아는 두부와 상당히 다른 쫄깃한 식감을 가지며, 나하 국제거리의 마키시 공설시장 같은 곳에 가면 쉽게 살 수 있다.
중국 운남성 지역의 전통 조리법으로는, 짚의 바실러스균을 이용하여 흡사 솜사탕과도 같은 곰팡이를 피워 먹는 모(毛)두부라는 것이 있다. 두부와 순두부를 실컷먹고, 남은것을 이용해 만드는 조리법이라고. 모두부를 이용한 튀김이 특히 별미라고 한다.
미얀마의 두부는 콩을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다른 나라나 지역의 두부와 다를 바 없지만, 특이하게 두유를 만들어 굳히는 방식이 아니라 콩가루를 향신료와 소금 등과 섞어서 물에 푼 뒤 반죽해 만든다. 다른 두부와 마찬가지로 생으로 혹은 기름에 튀겨서 요리에 쓰는 경우가 많고, 얇게 썰어서 말린 뒤 기름에 튀겨 크래커처럼 먹기도 한다.
요즘엔 자극적이지 않은 담백한 맛이고 웰빙이니 뭐니 해서 서양 국가에서도 꽤 먹는다. 페타 치즈와 어느 정도 외관도 흡사하고 물기를 빼고 소금을 치면 맛도 비슷해진다. 한국은 두부의 고소한 맛을 주로 즐기지만, 서양인들은 두부의 담백한 맛을 좋아한다고 한다[15]. 대부분 일본식 발음인 Tofu로 발음한다.
한국에서는 원래 두부 장사가 재래시장에 항상 있지만, 아파트와 주택단지를 찾아가는 이동식 두부 장사도 있었다. 종을 울려서 그 종소리를 들은 주부들이 리어카나 트럭 등으로 두부를 사러 가는 모습을 쉽사리 볼 수 있었으며,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두부, 순두부 한 모에 천원으로 골목 골목을 종소리와 함께 두부 장수들이 누볐으나 지금은 정말 보기 힘들다. 사람들의 식습관이 변한 것도 있으나, 맞벌이 주부가 늘면서 이전처럼 가정주부들이 두부를 사러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고, 또 한 가지 추정되는 이유는 현대의 아파트나 주택들은 방음이 워낙 잘 되는 관계로 종이 울려도 종 소리를 못 듣는 경우가 많다고도 한다. [16] 게다가 최근 지어지는 아파트 단지들은 주차장을 모두 지하에 지어두고 이동식 장사를 하는 차량이 단지 내 지상에서 다니는 걸 통제하는 경우가 많으니 이젠 아예 불가능해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젠 웬만한 슈퍼마켓만 가도 두부를 살 수 있기 때문에 특정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이동식 두부 장사는 점점 없어져가는 추세다. 옆나라 일본에서도 마찬가지.
대형마트 등지에서 파는 포장 두부는 사실상 진짜 두부라기보단 물기가 많이 배어있는 옅은 콩묵에 가깝다. 하지만 아직도 재래시장에 가보면 진짜 제대로 만든 두부를 많이 볼 수 있다. 또한 아파트 내에서 직접 만든 두부를 판매하는 경우도 있다. 보통 이런 두부를 '손두부'로 많이 불리는편이다. 이런 수제 두부는 찍어낸 두부보다 입자가 더 큼직해서 식감에서 확실히 차이가 나며, 포장 두부보다 훨씬 고소하다. 거기다 갓 만든 뜨끈뜨끈한 두부를 썰어서 간장 찍어먹으면 그야말로 천국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시판형 두부와 재래식 두부의 차이가 생기는 가장 큰 이유는, 보통 시판형 포장 두부는 콩기름을 짜고 남은 대두박으로 두부를 만들기 때문이다. 재래식 두부는 온전한 콩을 쓰기 때문에 훨씬 고소한 맛이 날 수밖에 없다.[17] 그 대신 시판 두부는 기름을 짜냈으므로 지방 함량이 매우 적기 때문에 다이어트에는 좀 더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최근엔 보통 시판두부보다 지방함량이 5~6배인 두부도 판매하는 것 같다. 대형마트 등에서도 '손두부' 를 파는 추세이다. 물론 제조사는 대부분 대기업 제품인데 일반 두부와는 그래도 차별성은 있는지 두부가 무르지 않고 단단하며 시장에서 파는 두부처럼 고소한 맛이 큰편. 다만 가격대는 일반두부보다는 2~3배정도 나는편이다
최근에는 cj에서 이러한 맛을 겨냥한 듯 "손두부" 제품을 출시했다. 가격은 하나에 3천원정도. 확실히 두부 조직도 촘촘한게 훨씬 맛있다.
단백질이 풍부한 콩을 쓰는데다 으깨면 다진 고기와 비슷한 질감을 내서인지 고기의 양을 늘릴 때 으깬 두부를 쓰기도 한다. 만두나 완자 등에 넣기도 하며, 한국 전통 요리 중에는 두부와 다진 고기를 섞어 햄버그처럼 부쳐먹는 섭산적이라는 요리[18]와 다진 닭고기와 으깬 두부를 넣어 찜통에 찐 두부선이라는 요리도 있었다.
특히 육식을 금하는 불교의 사찰 요리에서는 버섯과 함께 두부가 빠지질 않는다. 고기를 먹을 수 없어서[19] 단백질이 쉬이 결핍되는데다 스님들도 사람인지라 단백질이 댕기는 건 어쩔 수 없는 고로 고기 대신 단백질이 풍부한 두부와 버섯을 넣어 고기 대신 맛을 내는 것이다. 사찰 요리만큼 두부와 버섯을 가지고 여러 요리를 만드는 것도 없다.
두부의 조리법은 매우 다양하지만, 한중일 통틀어 두부를 주재료로 가장 감칠맛 나게 먹는 법은 역시 기름을 사용하는 것이다. 두부를 기름에 튀기면 특유의 바삭한 식감과 더불어 쉽게 양념이 배어 고기와 다른 풍부한 맛을 낸다. 특히 기름에 튀긴 후 달착지근한 소스를 부어 만드는 탕수두부는 두부를 평소 기피하는 사람들도 선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