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유시민] 소설가의 일, 작가의 일 (下)
2015.06.09 / 까페 쿠마씨
질문6. “<소설가의 일>은 소설 쓰기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유시민
제가 준비한 질문 하나 드리고 싶은데요. (상담자분들 질문은) 거의 다 된 거 같아요. 제가 사실 <글쓰기 특강> 책 쓰는 과정에서 소설 창작에 대한 책을 여러 가지 뒤적거려봤어요. 소설 창작에 관해서 외국작가가 쓴 5권까지 책도 있었고. 스티븐 킹이 자전적으로 쓴 <유혹하는 글쓰기>도 있었고. 그 중에서도 <소설가의 일>이 참 좋았는데. 저도 옛날에 아무 것도 모르고 단편을 하나 써 본 적이 있어요.
김연수
읽었습니다.(웃음)
유시민
27-8년 전에, 그 때 제가 열편을 쓰려고 계획하고 첫 번째 꼭지를 써서 창비에 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잘못이었어요. 10편을 다 써놓고 하나를 골라서 냈어야 했는데. 연작소설로 생각하고 여러 인물 중 몇 명을 첫 꼭지에 내놓고…그 뒤로 소설을 못 썼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소설 쓰는 게 뭔지도 모르고 그때 그걸 쓴 거예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그 이야기가 에세이로는 양에 안 차서 소설로 써봤던 건데요. ‘그럼 지금 소설을 한 번 써볼까’, 어렴풋이 그런 생각이 있어서 여러 작법책들을 읽어 봤는데 <소설가의 일>이 저는 마음에 들더라고요. 소설이 뭐냐? 제가 이해한 결론은 이런 거예요.
주인공이 있는데 뭘 하고 싶은 게 있다. 그걸 하지 못하게 하는 게 많다. 주인공이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서 못하게 하는 것들과 싸우고 그걸 치우면서 되게 고생하는 이야기.
그게 소설이라는 김연수 씨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았어요. 아, 소설은 이렇게 만드나보다. 뭔가를 하고 싶어 하는 인물을 하나 만들고, 그 인물이 처한 환경 속에서 그걸 못하게 만드는 나쁜 환경, 제도, 인물을 만들고, 그래도 인물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하고 싶은 걸 하는. 그 인물이 싸우면서 지기도 하고 이기기도 하고, 그건 별로 상관이 없는 거죠. ‘아, 진짜. 그렇게 하면 소설을 쓸 수 있겠다.’ 느낌이 오더라고요. 처음부터 그런 식으로 소설을 쓰셨어요? 첫 데뷔작부터 이렇게 나름의 소설창작이론을 가지고 쓴 거예요? 아니면 여러 작품을 쓰고 나서 생각해보니 내가 이렇게 쓴 거 같다, 이런 거예요…어느 쪽이에요?
김연수
<소설가의 일>을 쓰고 나서 사람들이 작법책이다, 라고 할 때마다 제가 작법책이 아니라고 했어요. 작법책은 글쓰기 전에 읽어야 될 것들, 알아야할 사실들을 써놓은 책이잖아요. <소설가의 일>은 제가 글 쓰고 나서 알게 된 것들을 쓴 것이어서… 글 쓰고 나서 결론적으로 알게 된 것들에 가깝기 때문에 미리 이렇게 말씀드려요. 이 책을 소설 쓰기 전에 읽고 (따라 하면) 잘 안 될 것이다…(웃음)
유시민
저는 작법책 다섯 권짜리보다 <소설가의 일>이 낫던데요?
김연수
아. 예.(웃음) 저도 처음에 등단할 당시에는 <소설이란 무엇인가> 이런 책을 읽었어요. 소설이 뭔지 몰라서 여기저기 주워듣거나 읽은 책의 영향 안에서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작을 했고요. 그런데 제가 쓴 게 얼마나 한심한 소설인가 깨닫고 몇 년 동안 글을 못 썼어요. 회사 다니다 다시 소설을 써보자, 하고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저 같은 경우에는 마음속에 커다란 질문이 하나 있었어요. 1991년에 분신정국이 있었을 때 그런 의문이 들었거든요. 어떤 사람이 죽는다는 건 그 세계가 없어지는 것인데, 그렇게 한 세계가 없어진다는 게 이토록 무의미하다면 사람들은 왜 사는 걸까? 잘 사는 사람들이야 잘 살아서 그냥 산다고 치고. 힘든 사람들, 가난하거나 몸이 불편하거나 그런 분들 보면…우리가 사는 낙이 없으면 자살해도 그만일 것 같은데 그러지 않잖아요. 살잖아요. 그렇다면 인생이 그냥 무의미한 게 아니고 의미가 있다는 얘기인데… 그럼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그 질문에 답을 구하려고 2007년까지 썼습니다. 그래서 저는 작법 같은 걸 고려할 필요가 없었어요. 제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게 유일한 작법이었어요. 이야기를 다 끝내고 나서 내가, 주인공이 무엇을 얻게 되었나가 중요했죠. 그러다 어느 정도 제 질문에 대한 답을 알게 됐어요. 알고 나서 보니 제가 소설가가 되었더라고요. 운명이란 걸 알았어요.
유시민
소설만 쓰는 게 아니라 소설가가 되었다는 걸 아셨다는 거죠?(웃음)
김연수
그때 제가 평생 소설을 쓰게 되겠구나, 알게 되었고요. 그 때까지는 경제적으로 계속 안정이 안 되었기 때문에 다시 회사를 다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제 경우는 소설가가 되고 나서 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해 생각해본 거죠. 지금까지 소설가들이 썼던 작품들을 보면, 어떤 건 좋은 작품인데 어떤 건 왜 아닐까 생각하게 되고. 왜 소설을 쓰는가 생각해보면…소설이라는 것은 가상의 인생을 하나 만드는 것인데. 인생의 원리를 소설에 넣다 보니까 인생이라는 게 그렇게 구성이 되어 있더라고요. 원하는 게 있는데 장애물이 너무 많더라고요. 그게 갈등이 되는 거고. 장애물이 많은데 단순하게 꺾어버리면 그 사람이 더 이상 못 살고 죽어 버릴 텐데, 또 단순히 꺾지는 않고. 줬다가 안 줬다가. 어떤 사람들은 거기에 체념하고 살고 어떤 사람들은 체념하지 않고 끝까지 가는데, 세게 부딪히고 나면 좀 밀리고. 그런 다음에 거기서 끝나지 않고 더 큰 시련이 오고, 또 부딪혔다 또 밀리고, 거기서 또 더 큰 시련을 주고…
우리가 빠져드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대개 목숨을 걸잖아요. 마지막 대결은 목숨을 걸고 합니다. 사람들이 제일 많이 끌리는 이야기가 그런 거죠. 통속적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다 살아요. 박수치고 환호하면서 이야기가 끝나죠. 하지만 현실적으로 지는 경우가 더 많죠. 결국 죽는 건데, 죽는다고 해서… 쓰다 보니 답을 알게 됐어요. 지고 이기고의 문제가 아닌 거죠. 이야기 자체가 완성이 되었냐가 문제인 거죠. 소설은 인생을 닮아서 그런 게 있구나. 쓰고 나서 알게 되었어요. 인생을 살고 나서 알게 되는 것처럼.
유시민
예전에도 소설가들이 인생을 알고 나서 그렇게 쓴 소설들이 많았을 텐데, 우리는 왜 그런 소설을 다 읽고 나서도 모를까? 왜 직접 써봐야 알까요?(웃음)
1인칭 시점 vs 3인칭 시점
김연수
그래서 제가 요즘 고민하는 건 인칭입니다. 1인칭, 2인칭, 3인칭 할 때 인칭이요. 소설 쓸 때는 제가 주로 1인칭으로 쓰는데요. 작법을 잘 모를 때에는 제가 어떻게 망했냐면, 무조건 주인공이 안 되게 하는 거예요. 그러면 이야기가 생기거든요. 감정이 생기고 악의가 생겨서 싸우고. 그러면 기본적으로 갈등이 생기니까 그렇게 시작을 했는데…주인공한테 막 던지는 거죠. 힘든 걸 던지면서 1인칭으로 쓰지만 사실은 1인칭이 아닌 거죠. 그런데 제가 현실 속에서는 완전한 1인칭으로 제 인생을 살고 있어요. 문제가 생기면 저 혼자 감정이 일어나고 갈등이 벌어지는데… 인생에서는 왜 3인칭으로 갈 수가 없을까? 이게 저한테는 요즘 큰 관심사에요. 선생님처럼 논리적 글쓰기를 하는 분들은 1인칭을 떠나는 게 제일 먼저 해야 될 일이잖아요? 역사에 대해서 쓴다, 했을 때는 1인칭에서 벗어나야 되잖아요.
유시민
개별성을 지워야 되죠.
김연수
예. 거기서 벗어나서 3인칭 시점으로 써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소설가는 그렇게 쓰게 되면 독자들의 감정이입이 전혀 안 돼요. 저한테는 그게 지금 가장 큰 고민입니다. 감정이입을 시키기에는, 독자들을 끌어들이기에는 1인칭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고 1인칭으로 계속 써왔는데, 여기에 3인칭을 접목시키는 것이…3인칭의 세계가 들어오면 소설은 어떻게 바뀌게 될 것인가, 가 저의 고민입니다.
유시민
재미있었어요. <소설가의 일>은 에세이가 아니라 소설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인간 김연수가 뭘 하고 싶은데 걸리적거리는 게 많아서 고생한 이야기로 보였습니다.(웃음) 장르가 작법을 쓴 거 같기도 하고, 어떤 소설가가 일상적 삶이랄까, 자신의 일에 대해서 쓴 것 같은데. 전체를 읽고 나면 소설을 읽고 난 느낌? 소설가의 글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감정이입이 되기도 하고요. 소설이 아닌데 불구하고 소설적 요소들이 있어요. <소설가의 일>에서 다른 소설들이 예로 나오잖아요. 스크루지 같은 경우, 저는 한 번도 이렇게 생각을 안 해봤어요. 조카네 집에 가는 그 장면이 왜 필요하지? 그런데 ‘아, 소설가가 작법을 고민하면서 소설을 보게 되면 이 대목이 이렇게 읽히는구나.’ 그런 느낌도 들었고요.
저도 글을 쓸 때 문장이 얼마나 아름답냐를 보는데요. 오감으로 느끼는 글이 아니고 이성으로, 논리로 느끼는 아름다움이요. 논리도 느끼거든요. 똑같은 느낌이라 하더라도 오감이 작동해서 느낀다기보다는 이성이 작동해서 느끼는? 그런 쪽으로 집중하다 보니까 한 문장, 하나의 표현, 몇 개의 단어가 주는 느낌, 그런… 오감으로 가상을 느끼는 걸 오랫동안 잊고 있었어요. 책에 인용된 어떤 대목들, 밤에 닭 우는 소리를 듣는 장면을 묘사한 거라든가. 이런 글을 읽으면서 ‘내가 오감으로 글 읽는 게 많이 마비되었었구나’ 싶었어요. 요즘도 가끔 문학작품을 읽긴 하는데, ‘나는 소설을 읽을 때조차 사회과학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소설을 보는 거에 갇혀 있었구나.’ 새삼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반성은 아니고요.(웃음) 여기서 좀 벗어나 봐야 하는데. 그런 느낌?
김연수
저는 뭐… 감정이입되는 게 꼭 좋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사람을 감정적으로 만드는 게 좋다고 생각하진 않지만은. 같이 사는 세상에서는 어느 정도 필요한 자세라고 생각하거든요. 보면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남에게 감정이입을 잘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 게 공동체에서 필요한 감정이라고 봅니다. 소설의 효능은 남이 되어보는 경험이잖아요. 저한테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 해도요. 소설이 가장, 어쩌면 영화보다도 더 감정이입을 하게 만드는 장르라고 보는데요. 사회적으로 봤을 때 감정이입하는 연습을 계속 시켜줄 수 있는 장르인 거죠. 그래서 소설 읽는 게 힘든 거죠. 그런데 소설 읽는 것보다 더 힘든 건 다른 사람 말 듣는 거잖아요.(웃음) 살아온 얘기 막 하고 그러면 정말 계속 듣기 어렵잖아요.(웃음) 징징거리는 소리 들으면서도 우리가 속으로는 계속 판단내리잖아요. 자기가 잘못했으니까 그랬겠지. 그래봐야 소설 읽는 사람들은 얼마 안 되지만, 재미없는 소설인데도 불구하고 읽는 이유는 아마도 그런 사회적 효능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어요. 나와 다른 사람에게 감정이입하는 연습. 그런 소설을 써봐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저도 인문책 많이 읽는데요. 인문책 읽으면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바로 얘기를 해주니까요. 그런데 내가 아무리 좋은 것 가지고 있어도 그걸 전달할 방법이 참 없는 거예요. 입장이 다른 사람들 만나면 백날 얘기해도 전달이 안 됩니다.(웃음)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 생각해봤을 때는 감정에 싣는 방식이면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싶은 거예요. 하나의 방편으로, 그런 소설의 효능이 존재할 것이라 생각하고요. 그래서 저는 40대 이상 남자들이 소설을 거의 안 읽는 게 안타까워요.
유시민
40대 이상 남자들이?
김연수
읽을 시간이 없으니까.
유시민
읽을 시간이 왜 없어요? 술도 마시고 골프도 치러 다니고 다 하는데?(웃음) 다른 거 다하는데 왜 소설만?
김연수
안 읽는 이유도 이해가 돼요. 다 아는 이야기니까 안 읽는 거겠죠. 이해는 돼요. 하지만 소설은 알고 모르고의 문제가 아니니까요. 모르는 이야기를 알려고 소설을 읽는 게 아니라 타인에게 감정이입하는 연습을 하려고 소설을 읽는 거니까. 안타까워요.
유시민
저는 기억나는 게, <토지>에서 월선이가 죽는 대목 있잖아요. 20대 때 읽으면서 월선이 죽는 대목에서 눈물이 나는 거예요. 몇 번을 읽는데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나요. 박경리 선생이 어떤 분인지 그때는 잘 몰랐지만. 어떻게 소설 읽으면서 이렇게 눈물이…다시 읽어도 또 눈물이 나고. 눈물이 나는데 또 읽고 싶은 거예요. 소설이 가진 힘은 그런 게 아닐까요? 제가 쓰는 글은 사람을 울릴 수 없어요. 제가 쓰는 글은…(웃음)
김연수
우는 사람들 있을 수도 있을 거 같은데요?(웃음)
질문 7. “사람들에게 글쓰기란 무엇일까요?”
유시민
상담소 방문자 분들이 만족하셨을지 모르겠지만, 제가 오늘 소설가 한 분을 모셔서 저 대신 대답하시도록 여쭤봤는데요. 꽤 많은 분들이 상담소에 오셔서 글을 읽고 가시는데 글 쓰는 법이나 지식을 얻고 가는 것도 있지만. 읽고 나서 그냥 기분이 좋다, 힐링이 된다는 분들이 꽤 있어요. 글쓰기 방법에 대한 얘긴데 왜 읽고 나서 기분이 좋지? 궁금하더라고요. 글 쓰는 게 어떤 장르이든 사람 사는 이야기니까 그런 걸까? 원래 <글쓰기 특강> 내고 독자들과 만나는 자리로 시작했는데, 저도 진행하면서 ‘어, 글이 가지는 또 다른 면을 보네’ 그런 느낌이었어요. 혹시 뉴스펀딩 페이지 방문해보셨어요? 어떠셨어요?
김연수
네. 봤어요.
유시민
댓글들도 보셨어요?
김연수
네. 봤어요. 사람들이 글에 대한 욕망?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많은 것 같아요. 글쓰기라는 게 늘 막연하잖아요. 사실 저는 글을 쓰는 자체에 뭔가 있다는 생각을 해요. 책을 내기 위해 쓸 수도 있고 감정을 털어내기 위해서 쓸 수도 있는데. 기본적으로 그 안에 뭔가가 있어요. 그게 뭘까, 짚이는 바가 있긴 한데……아마도 자기가 세상을 해석한다는 쾌감? 지금은 (세상이) 그냥 눈에 보이는 걸로 존재하고 있지만 글을 쓰는 순간 어쨌든 단어로 확정을 시켜야 하거든요. 그렇게 확정하는 순간의 쾌감? 내가 이 세계를 해석한다는 본능적 쾌감이 있다고 생각해요.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은 글을 쓺으로써 완성되는 거죠.
유시민
글을 쓰지 않고는 도저히 다른 방법이 없죠?(웃음)
김연수
그렇죠. 글을 안 쓰면 아무리 얘기를 듣는다 해도…이루어질 수 없는 욕망이죠.
유시민
오로지 쓰는 행위를 통해서만?
김연수
쓰는 행위로 모든 것은 다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그 다음에 이제 좀 잘 쓸 수도 있겠고 고칠 수도 있겠고. 글쓰기 방법론과 관련된 행위들이 이어질 수 있겠죠. 하지만 글 쓰는 행위 자체는 그것으로 완결이 되니까. 글을 쓰고 싶을 때는 일단 쓰는 게…
유시민
일단 써라?
김연수
일단 쓰는 게 굉장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잘 쓰고 싶어서 지금처럼 물어보면 대답해줄 수도 있고.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하라고 조언을 받고 고치면 더 잘 쓸 수는 있겠지만. 그건 글쓰기에서 차후의 문제고…
유시민
자기가 쓰고 있어야 그런 조언도 도움이 되는 거지, 안 쓰고 있으면 사실 바둑을 안 두고 바둑티비만 보는 것과 비슷할 거 같아요.
김연수
그러니까 지금 그냥 쓰시면 되는 거예요. 축구장에서 축구하고 있으면 누구라도 축구 선수잖아요?
유시민
뭐…급은 다르지만.(웃음) 바르셀로나 팀 선수는 아니라도…
김연수
축구선수 되고 싶어요, 그럴 땐 축구하고 있으면 축구선수가 된 거죠. 작가 같은 경우, 작가복이 없잖아요. 국가대표 작가 뭐 이런 거, 작가 자격증도 없고.(웃음) 확인할 방법은 글을 쓰고 있는 것 밖에 없어요. 쓰고 있으면 작가고 안 쓰고 있으면 아무 것도 아닌 거죠. 글을 안 쓸 때 저는 항상 그런 느낌이 들어요. ‘안 쓸 때는 나는 뭔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글쓰기는 어떻게 하는 건가요? 물어보신다면…‘글을 쓰시면 됩니다.’(웃음)
질문 8 “글이 안 써질 땐 어떻게 하세요?”
유시민
상담자 분들 질문 중에 이런 것도 있었어요. 소설을 열심히 쓰다보면 ‘어, 내가 어디서 본 소설 같은데?’ 그러면서 자신감이 점점 떨어진대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또 하나는…아, 이 질문이 재미있겠네요. “선생님은 글이 안 써지시면 뭘 하세요?”, “소설을 쓰는 데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어디서 보충하세요?”
김연수
어디서 본 소설 같은 건 사실 큰 문제가 안 돼요. 구체적으로 깊이 안 들어갔다는 얘기일 수 있거든요. 사실 사람들 인생도 비슷한 것 같지만 다 다르잖아요. 대개 우리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이야기가 처음에는 다 비슷비슷해요. 그런데 막상 점점 깊숙이 들어가면 달라집니다. 달라질 때까지 계속 들어가야 합니다. 그럼 달라질 수 있어요. 우리가 다 고유한 사람들이듯이 소설 주인공들도 거기까지 갈 수 있거든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그렇다면 더 들어갈 여지가 있는 거죠. 그리고…소설이 안 될 때는요…
유시민
저는 낚시를 가요.(웃음)
김연수
마감이 임박하면 마감 날짜를 맞춰 역산해서 쓰거든요. 하루에 몇 매, 하고 역산해서. 그런데 마감 때가 되면 보내야 하는데 그때까지 다 쓰질 못해요. 60% 정도 쓴 상태에서 마감을 2-3일만 늦춰주면 될 거 같다, 전화를 마감 날 딱 하게 되죠.(웃음) 이게 발표가 되는 건데 날짜 미룬 상태에서 이거 잘못 썼구나 알게 되면. 아, 어떡하지… 마감은 이미 지났는데 다시 써야겠구나, 하면… 그때가 가장 제가… 어떡하지…마음 같아서는 못 하겠다 전화해야 하는데.(웃음) 차마 용기가 안 나고. 마감하겠습니다, 말은 해놓고요. 써놓은 게 앞에 있으니까, 일단 그걸로 무조건 고치는데 딱 막혀요. 딱 막힌 상태에서 생각은 더 이상 안 나고. 그럴 때 저는 소설로 돌아가요. 길게 썼든 짧게 썼든 소설로 돌아가요. 소설 안의 세계가 완벽한 세계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여기 어떤 사람이 들어가면 그 인물이 물리법칙에 따라서 어떤 식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 그 믿음을 가지고… 걸어요. 걸으면서 ‘그 다음에 어떻게 됐단 말이야’를 계속 물어봐요. ‘어떻게 한단 말이야’…이야기를 계속 반복해서 생각하다보면 이야기 속에서 답이 나옵니다.
유시민
걸으면서 생각하는 거예요? 슬로우 롱 디스턴스? 혹시 얼마나 걸어요?
김연수
빠른 속도로 걸어요.(웃음) 산책이 아니고요. 머리를 막 두드리면서 빠르게 걸어요. 뭐지뭐지뭐지?(웃음) 다음에 왜 생각이 안 나지? 가다보면 확 생각이 납니다. 제가 의도했던 이야기 방향이 아니라 소설 안에서 마땅히 가야될 길이 나와요. 나중에 알고 보면 그게 맞아요. 막히는 이유는 제가 의도했던 대로 소설을 쓰면 안 되기 때문에 막힌 것이죠.
비소설의 주인공은 <사실>
유시민
이게 나하고 차이구나. 나는 막히면 자료를 찾는데. 뭐야 이거, 이거 어떻게 된 거야, 하면서 도서관 접속해서 자료검색하고 더 많은 정보를 모으는 거예요. 그러다보면 뚫리는데. 확실히 장르의 차이가 있네요.
김연수
제 의도가 무참하게 없어지는 순간이 있어요. 그럴 때는 제 의도를 버리고 소설의 세계에 맡겨야 해요. 받아들여야 하죠.
유시민
쓰다보면 그런 경우가 있어요. “박정희 정부가 해외차입에 의존한 수출주도경제를 선택했다.” 이렇게 써놓고 진짜 그랬나 안 그랬나, 주장할 근거를 찾아봐야 하는데. 근거를 제가 이미 알고 있는 건 그렇게 쓰면 되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근거가 뭐였지? 할 때는 찾아보거든요. 그 당시 경제수석의 회고록이나 이런 자료를 뒤져보는 거죠. 어떻게 된 거지? 그 때 화폐개혁을 왜 하려고 했지? 왜 실패했지? 찾다 보면 그게 아니고… 이게 자체 자본으로 우선 해보려고 어디에 자본이 있나 찾다가 화교자본이 있구나, 뺏어내야지 작심을 했는데 뒤져보니까 화교자본이 없었던 거예요. 그럼 자본이 없는데 어떡해, 밖에서 가져와야지. 이렇게 된 거 아닐까 싶었는데… 자료를 더 뒤져보니 그게 맞아 보여요. 그렇게 되면 처음 초고를 지우고 새로 쓰는 겁니다. 우리는 자료를 찾아서 합리적 결론이나 근거를 따라갑니다. 역사적 사실, 사람들이 실제 했던 행위, 그런 것들이 주는 구속력이 있거든요. 아무리 내가 해석의 자유를 누린다 해도, 사실관계 자체가 주는 해석의 한계가 있어요. 그럴 땐 어쩔 수 없이 굴복해야 돼요. 예전엔 너무 미웠으니까.(웃음)
김연수
약간 과학자 같네요?
유시민
그렇죠. 예전엔 너무 미웠으니까 나쁜 방향으로만 봤는데, 책을 쓰면서 근거를 제시해야 해서 근거를 찾다 보니까 근거들이 다른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러면 할 수 없이 사실들이 하는 다른 이야기를 어느 정도 따라가야 할 때가 있죠. 소설 쓰는 분들은 막 머리를 두드리면서(웃음) 인물에게 길을 열어주는 방식이라면 역사책을 쓸 때는 사실에게 길을 열어주는 겁니다.
김연수
그 말씀이 재밌는데요. 저는 이런 경험이 있어요. 소설을 쓰다 보니 히로뽕 관련 이야기가 나와 줘야겠는 거예요. 이야기가 한참 진행이 되다가 주인공이 1968년도에 히로뽕 조직을 만나야 해요. 그런데 왠지 만날 수 있을 거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소설은 하나의 근거만 있어도 되어요. 신문을 뒤졌는데 68년도 히로뽕 판매책임 일당이 걸리는 기사가 나오더라고요. 그런 경우는 소설 쓰면서 굉장히 잘 되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죠. 한참 진행이 되는데 아마 역사에서 이런 일이 있었을 거야, 하고 찾아봤는데 진짜로 있으면 그 소설은 정말 잘 되고 있는 거예요. 신문칼럼 보면 ‘소설 쓰냐?’ 그러잖아요. 그러면 소설가들이 발끈하는데. 그 말도 일리가 있어요. 많은 자료를 취합해서 유시민 선생님처럼 엄정한 과학의 논리로 쓰는 게 논리적 글쓰기라면, 소설은 누구나 다 그렇게 하더라도 하나의 예외만 있으면 그걸로 책 한 권을 쓸 수 있으니까.
유시민
예외라야만 소설이 되니까.
김연수
처음에 말씀드린 대로, 예외만 소설이 되니까. ‘소설 쓰냐?’ 하는 말이 소설가들한테는 큰 욕이죠.(웃음) 그렇지만 소설에 대한 정확한 표현이기도 해요. 침소봉대!(웃음)
유시민
소설가들은 예외적인 사건을 쓰지만, 거기서 포착하는 건 보편적인 거 아닌가요?
김연수
그렇죠. 그래서 제가 빠져나올 때는 보편적인 것을 가지고 빠져나와요. 소설은 보편적인 것을 주는 것인데 전달할 방법이 전혀 없기 때문에… 구체적인 것에 실어서 보내는 거죠. (구체적인 것들이?) 재조립이 되어야 하는데 재조립이 안 되면 잘 못 쓴 소설이 되죠.
질문 9 “글 쓰는 유시민, 행복하세요?”
유시민
소설 쓰는 김연수와 글 쓰는 유시민이 만났는데요.(웃음) 정치하는 놈, 이렇게 되어 있는데 글 쓰는 유아무개입니다, 하면 사람들이 아직도 잘 적응이 안 된다고 하세요. 나중에 방문자들이, 장르가 다른 우리 둘이 만나서 이런저런 글 쓰는 문제를 이야기했구나. 읽어보실 텐데요. 전혀 다른 장르의 글을 쓰는 저를 만나신 김에, 소설 쓰는 김연수가 글 쓰는 유시민을 만나신 김에(웃음) 글쓰기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이 재미있게 읽을 만한 질문이나 얘기를 해주신다면?
김연수
다른 일도 하셨었는데요. 그 일도 약간 중요한 일이었잖아요?
유시민
많이 중요한 일이었죠.(웃음)
김연수
저 같은 경우는 전혀 할 수 없는 그런 일이고. 지금 글 쓰는 일 하시면서 좋다고 하시는데… 뭐가 좋으세요?(웃음)
유시민
아하. 첫 번째는 몸이 편해요. 전업작가는 시간을 자기가 전적으로 통제할 수 있잖아요. 정치는 비즈니스여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시간통제가 조금 밖에 없어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걸 제가 잘 못하는데, 일찍 일어나야 하고 수면이 부족하고. 이동하면서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많아요. 그러니 몸이 힘들어요. 글 쓰는 일로 돌아오니까 우선 몸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해요.
두 번째 좋은 점은 정신적인 면인데. 정치가, 관점에 따라서 다를 수는 있지만, 제가 했던 정치는 뭔가 가치를 이루려고 하는 거니까 50.1%의 지지를 염두에 두어야 해요. 이게 너무 괴로운 거예요. 글쓰기는 시장점유율 1%만 되어도 먹고 살잖아요.(웃음) 우리나라 국민 중 아이들 빼고 4천만 명을 잡더라도 0.1%면 4만 명, 그 정도면 밥 먹고 살 수 있잖아요. 50.1%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하면 되니까. 그 스트레스가 적어요. 그전에는 50,1%를 못 얻으면 돌팔매가 날아오고 욕을 먹어요. 지금은 0.1%만 좋아해도 베스트작가라고 해요. 어마어마한 차이에요. 무지무지 편해요. 제일 크게 보면 이 두 가지가 좋고요. 하나 더 추가하자면.
을이 아니라는 거예요. 글 쓰는 사람은 갑도 아니지만 을도 아니에요. 정치하는 사람은 늘 표를 받아야 하니까 어딜 가나, 특히 기자들 만날 때 완전 을이에요. 미디어를 통해서 대중과 만나기 때문에, 대중과 만나는 접촉공간을 장악하고 있는 미디어종사자들에게 비굴하게 굴어야 해요. 진짜로. 이게 큰 스트레스였는데. 이젠 내가 책을 내면 되니까, 신문사에서 기사를 안 실어줘도 독자들과 직접 만날 수 있고. 신문에서 신간 소개 안 내줘도 출판사에서 광고하면 되는 거고. 제가 팟캐스트 하면서 거기서 내 책 냈다고 하면 되니까. 많은 갑들을 상대 안 해도 돼요. 그게 플러스알파로 좋은 점이에요.
다 개인적인 거죠.(웃음)
김연수
그렇게 말씀하시면 매년 책을 내야 하잖아요. 계속 책을 낸다는 것에 대한 걱정? 나중에 쓸 게 없을 것이다…뭐, 그런 걱정 없으세요?
유시민
그런 거 있죠. 매년 내려면 힘들어요. 사회, 경제, 문화 에세이는 계속 공부를 해야 하니까. 1년에 한 권씩 내려면 공부할 시간이 너무 부족해요. 쓰는데 적어도 6개월은 걸리는데, 6개월 공부하고 6개월 써요? 그렇게 안 되잖아요. 그러다보니 옛날에 공부했던 걸 긁어서 쓰는 거죠. 문제가 있어요. 우리나라가 인구가 적고 국민들 독서량이 적은 나라라 도서시장이 작아요. 2-3년 준비하고 한 권 내면 좋은데 매년 내야 하니까 고달픈 거예요. 그래서 해법이, 자, 이제 진지한 책은 내가 품질을 보증하기 어렵고, 자꾸 내면을 긁어서 쓰게 되니까… 지적 긴장도가 낮은 장르로 가야겠다, 그렇게 지적 긴장도가 낮은 장르에서 놀다가 뭐가 많이 쌓여서 진지한 걸 할 수 있으면 그때 하자. 앞으로는 르포르타주처럼 실제 취재를 해서 글을 쓸 수 있는 쪽으로 좀 가야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어쩔 수 없이. <나의 한국현대사> 이런 건 못 써요. 출판사에다가 진지한 책은 당분간 못 써요,라고 얘길 했어요.(웃음)
질문 10. “책이 계속 남는다고 생각하면 힘들지 않나요?”
김연수
힘드신 건 없으세요? 저는 글 쓰는 게, 책으로 남는 거 자체가 힘든 면이 있어요. 쓰는 건 재미있는데 책으로 남는 게 힘들어요. 독자들 질문 중에 “남들에게 보여주기가 부끄러워요”와 비슷한 맥락이죠. 제가 처음에 썼던 책들은 ‘왜 이걸 출판하지?’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쓰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서 쓰긴 했지만…뭔가를 쓸 때마다 이 책은 남는다, 라고 생각을 하면… 저 같은 경우는 그래도 소설책이라 좀 나아요. 상세하게 쓰냐, 안 쓰냐, 그런 기술적 문제니까. 그러나 나의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나중에… 아, 그런 경험이 있었어요. 신문칼럼 비슷한 거 쓴 적 있는데, 내가 얼마나 안다고 이렇게 쓸까, 하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장르가 다르기 때문에 그런 어려움이 있지 않나요?
유시민
있죠, 있는데. 신문칼럼은 지나고 나면 과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죠. 그런데 다행히 사람들이 오래 기억을 안 해요.(웃음) 신문칼럼은 지나가는 거예요, 날마다 새로운 칼럼이 나오니까. 제가 일부러 묶어서 책을 내지 않으면 없어지니까 좀 나아요. 지금은 칼럼 안 써요. 기고를 안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제가 좀 미디어에 삐져있어요. 굳이 쓰고 싶지 않다… 그래서 안 쓰는 거고요. 기고도 안하고요, 인터뷰도 안하고. 솔직히 이건 책임이 있어서 안 하면 좀 그렇지 않나? 안하면 죄책감 느끼는 경우만 제외하면 안해요. 인간관계 때문에 이것까지 거절하면 좀 그렇다, 하는 것만 좀 하고요.
옛날에 쓴 책은 좀 문제에요.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절판시키고 싶은데 출판사에 말을 못하겠어요. 그래도 일 년에 만권은 나간다는데 그걸 팔지 말라고 그러면… 그렇지만 조만간 얘기해야겠죠. 다른 책은 거의 안 나가니까 사실 절판된 거나 다름없는 상황?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퇴출되는… 그러니까 마음이 놓이고요.
그런 부담은 있어요, 진짜. 생각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에 지금 내 생각이 그때와 달라진 경우도 있고요. 다르다, 안 다르다를 떠나서 수준이 좀 낮아요.(웃음) 내가 20대나 30대 초반에 때 쓴 걸 보면 수준이 낮다는 느낌이 들어요. 생각이 지금과 다르기도 하거니와 공부도 덜 되었고 인생경험도 짧고 생각도 짧고. 젊었을 때라 젊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정서적인 것도 있고.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보고 지금의 나와 비교를 하니까요. 부담이 되긴 해요. 그래서 몇 권은 절판시켜야 할 것 같아요. 조만간 출판사에 얘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다시쓰기(rewriting)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거꾸로 읽는 세계사> 같은 책은 유용한 정보가 많은 책이라서 그냥 절판시키기엔 아까운 면이 있으니까. 열네 꼭지를 다 다시쓰기해보는 건 어떨까. 그런 생각도 한 편으로 해요. 다행히 <나의 한국현대사>는 5년마다 다시쓰기(resriting)을 하기로 출판사와 얘기를 했어요. 근거 자료나 수치들이 낡아버리니까. 2019년이나 2020년에 다시쓰기를 할 거에요. 그 뒤의 5년을 더 집어넣고 앞의 것은 재해석하고. 그래서 그 책은 괜찮은데 옛날 책들은 맞아요, 그런 문제가 좀 있어요.
김연수
지금은 전업으로 쓰시는 거죠?
유시민
네.
김연수
시작하실 때부터, 그러니까…정치하시다가 그만 두시고 나서 처음부터 전업으로 하셨던 거죠?
유시민
네.
김연수
굉장히 행복하시겠어요?(웃음)
유시민
진짜. 드디어 내가 아무 다른 생각 없이 남은 생애와 더불어 지낼 수 있는 그런 일로 왔다고 생각해요.
김연수
요즘은 보통 10년, 15년 정도로 봐요. 내가 처음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해서 전업을 할 수 있을 때까지의 입문기간을. 그 15년 동안 계속 버텨야하는 거거든요. 가장 큰 질문은 그거에요. 저한테도 아까 비슷한 질문이 있었는데요. “어떻게 돈 버세요?” 입문기간이 하도 길어서 그게 가장 큰 문제에요. 실질적인 팁도 있고 정신적 팁도 있고. 여러 가지 사람들마다 말하는 팁이 있긴 하지만…저도 그게 궁금했는데…굉장히 행복하시겠어요…(웃음)
유시민
어저께 팟캐스트 게시판에 누가…제가 일주일에 한 번 팟캐스트 하잖아요. 의리 때문에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재미있더라고요. 돈은 안 벌리지만. 제가 일주일동안 ‘이 세상에 살면서 이건 사람들이 알면 좋을 거 같아’ 라고 생각하는 주제로 정보를 다 조사해서 진행하는 중인데요. 내가 이해한 수준에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메르스에 대해서 했는데, 어젯밤 업로드되고 나니까 댓글에 누가 ‘유아무개 요새 얼마쯤 벌까, 연봉?’ 이렇게 올렸더라고요.(웃음)
김연수
저도 궁금한데요?(웃음)
유시민
저는 그 기간은 없었어요. <거꾸로 읽는 세계사>가 바로 베스트셀러가 되었기 때문에 글을 써서 돈을 벌게 되기까지의 입문기간 없이 등장한 경우에요. 그 뒤로 꾸준히 어떤 매체를 통해서든 글을 썼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글쓰기로 바로 들어온 경우죠. ‘지금 얼마 버냐?’ 물으면 대기업 과장 정도는 버는 것 같아요. 제 생애 처음으로 저축도 해보고. 그 전까지는 저축을 안 해봤었거든요. 돈을 벌 수 있는 기간도 얼마 남지 않았고 노년은 길고 애들은 커가고 저도 그러니까… 당장 쓰는 돈 말고도 비축을 해야만 민폐 안 끼치고 살 수 있으니까. 앞으로 10년 지금처럼 이렇게 살면 노후자금은 될 것 같아요. 저는 운이 좋은 거죠. 20대 때 학생운동하면서 크게 다친 적도 없고 죽지도 않았고 징역도 오래 안 살았고 그랬으니까… 뭐 그렇잖아요.
질문 11. “전업작가 유시민, 앞으로 무슨 이야기를 쓰고 싶으세요?”
김연수
그러니까 지금 쓰시고 싶은 걸 마음껏 쓰실 수 있게 된 거잖아요? 쓰시고 싶은 최종적인 게 있다면 혹시?
유시민
최종적인 건 없어요. 나이가 더 많이 들면… 저는 앞으로 7-8년 정도 지적긴장이 있는 글을 쓸 수 있을 거라 보고요. 7-8년 지나면 은퇴하고 시골로 갈 거예요.
김연수
(웃음)은퇴가 너무 빠르신 거 아녜요?
유시민
한창훈 선생님처럼 물고기 잡아서 먹는 이야기를 쓸 수도 있고. 보통 태어난 고장 이야기로 향토사 연구하는 분들이 있는데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곳, 살고 싶은 곳에 살면서 그 동네 이야기를 조사 연구해서, 별 돈도 안 되고 긴장도도 높지 않지만 나한테 의미 있는 글을 쓰면 좋을 것 같아요. 나이 들면. 그 전까지 7-8년 정도는 뭐할 거냐 하면… 지금은 여행? 세계도시기행 쪽으로 계획하고 있어요.
김연수
그럼 질문을 바꾸어볼게요. 그런 책들을 쓰시려는 이유? 목적?
유시민
저한테는 매우 자연스러운데요. 살면서 느끼고 생각하다보면, 사람들한테 이 이야기 해주면 좋아할 것 같아, 이런 느낌이 와요. 그럼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한테 얘기를 해줘요. 얘기해주면 막 재밌다고 해요. 예컨대, 2002년 <경제학 까페> 같은 책이 어떻게 나왔나 하면. 독일유학하면서 제가 가까이 지내는 유학생들 우리집에 초대해서 밥을 자주 해줬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수육, 샤브샤브. 이런 걸 즐겨 했어요. 그러면 그걸 먹으면서 사람들이 제가 경제학 전공이니까 자꾸 물어봐요, 경제학에 대해서. 그러면 제가 이래저래 얘기를 해주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 나중에 이런 책을 내면 좋겠다. 내가 독일에서 몇 년간 경제학 공부를 새로 했으니. 사람들이 물어보는 걸 대답해주니까 사람들이 이해도 잘하고 재미있어 하고. 아, 이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면 다른 사람들도 재미있는 거 아니겠어?’ 그렇게 기획한 책이 2002년도에 나온 <경제학 까페>에요. 저는 주로 그런 식으로 책을 써왔거든요.
요즘 먹방이 유행이라고 하는데, 제가 몇 년 전부터 사람들이 음식이나 여행에 관심이 많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 얘기를 한 번 써보려고요. 시국에 맞을지는 모르겠는데.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좋았던 순간, 행복을 느끼는 시간이 몇 가지 있잖아요. 그 중 하나가, 좋아하는 사람과 모여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 건데. 내가 해서 주면 더 좋더라고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맛있는 음식을 해서 사람들이 맛있게 먹고 행복해하는 걸 보면서 좋은 얘기를 나누고 싶다면. 음식을 할 줄 알아야 하잖아요. 그 얘기를 한 번 써보고 싶은 거예요. 그렇게 한 적이 많기 때문에.
김연수
레시피같이요?
유시민
레시피는 아니고요. 제 음식의 레시피는 아주 단순한 거예요. 복잡하게 훈련하거나 하지 않아도 누구든 마음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음식으로. 실제로 음식을 만들고 사람들과 먹고 놀면서 그 얘기를 책으로 써볼까? 예컨대 그런 거죠.
작년 초, 그리스 산토리니섬을 갔어요. 빌라라고 하죠, 민박도 아니고 호텔도 아니고 산비탈에 주욱 지어져있는 거. 빌라에서 바다를 보는데 ‘사람들이 여길 왜 올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일본 사람도 오고 많이 오는데. 사람들이 와서 빌라 베란다에 앉으면 비탈이니까 어느 높이에 있더라도 바다밖에 안 보여요, 밑의 층은 안 보이니까. 왜 여길 오지? 산토리니에 왜 올까, 사람들이? 그 생각도 한 번 해봤어요. 나는 왜 왔지? 뭣 때문에 여길 온 거야, 도대체? 그런 거죠. 그 얘기도 한 번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람들이 여행을 많이 가는데. 왜 여행을 갈까? 뭘 찾아가는 거야? 뭘 보고 오는 거지? 뭘 느끼고 오는 거야?
나도 가보고 싶은 곳이 있거든요. 소설책, 역사책에서 읽었던 공간들에 가보고 싶은데… 그럼 막 도서관에 가서 자료검색하면서 누가 욕하지 않을까, 이거 누구 명예훼손이 아닐까, 이런 걱정 안하고(웃음) 책을 쓸 수 있잖아요.
김연수
그럼 진짜로 오감을 이용하셔야겠네요. 연습을 많이 하셔야겠어요.(웃음) 묘사하는 연습. 도서관은 그다지 안 가셔도 되겠네요.
유시민
그렇죠. 아, 그런데 도서관도 가긴 가야 해요. 여행을 가려면 미리 그 대상을 연구하고 가야 죠. 연구를 하고 간다 해도 전혀 다른 얼굴을 만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연구를 안 하고 가면… 제가 지금 김연수씨 만나러 나오면서도, 책도 읽어보고 고향이 어딘 지도 보고 최근에 무슨 책 나왔나도 보고 옛날에 내가 읽은 책은 뭐 있지 찾아보기도 하고 이러고 나와야 대화가 되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만나봤더니, 어 책을 통해서 보던 거랑 좀 다른 내용이 있더라(웃음) 이런 느낌이 오는 것처럼 여행도 그렇다고 봐요. 내가 여행을 해보고…여행을 이렇게 하면 참 좋더라. 이런 글을 쓰고 싶어요. 그런 쪽으로 관심이 있어서…
김연수
관심사가 좀 많이 달라지셨네요?
유시민
원래 좋아하던 건데 내가 시대에 묶여서. 누가 묶은 것도 아닌데 나 혼자 묶여서.(웃음) 못하고 있었던 것들이죠. 그런데… 짧은 인생인데 나도 내가 하고 싶은 거 해봐야 하지 않나? 싶은 거죠.
김연수
어쩔 수 없는 게… 독자들이 있잖아요? 독자들이 있고…독자들은 저도 마찬가지인데 약간 특성이 있어서 작가한테 계속 요구하는 게 있습니다. 작가들도 신경 전혀 안 쓴다고 말을 할 수는 없는 거라 어느 정도 신경이 쓰이기도 하고…그런데…아마 유시민 선생님 독자들이 요구하는 방향과 약간 다른 글쓰기가 아닐까요?
유시민
다르죠. 그런데 내 인생 내가 살지, 뭐 독자가 살아주는 건 아니니까…(웃음)
김연수
(웃음) 그렇긴 하죠.
유시민
그런 생각도 있고. 내가 너무 얽매여서 살았다, 이런 저런 것에…그렇게 얽매여서 산 시간들에 대해서 억울한 느낌도 있고 그래요, 개인적으로…꼭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건 아니었는데. 그렇게 살면서도 더 해볼 수 있는 것들이 있었는데. 어떤 대의명분이나 이념이나 도덕적 규범에 묶여서 더 해볼 수 있는 걸 못 해 본 것들도 많지 않았나. 그런 생각도 좀 들어서.
질문 12. “독자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요?”
김연수
마지막으로 여쭤보면 독자는 어떤 존재인가요, 선생님께?
유시민
독자는 저에게 그런 분들이에요.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세상에는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좀 있구나. 그런 거예요. 책이 나가서 사람들이 그 책을 보면 내가 이 책에 쓴 정보, 이야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그런 사람들이 좀 있다는 걸 미루어볼 때 내가 세상에서 이런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도 약간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나에게 독자는 나의 존재의미를 확인시켜주는 사람들? 자기중심적으로 볼 때.(웃음) 이런 사람들이 있다면 나의 활동, 내가 살아가는 방식, 나의 존재가 그래도 아주 쓸모없는 건 아니지 않나?
김연수
확인시켜주는.
유시민
네. 그런 의미가 있어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질지 몰라도…그런 독자들이 없으면 내가 좀 하기 싫은 걸 하고 살아야 해요.
김연수
그렇죠.
유시민
누군가의 자서전을 대필해준다든가….그런 게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고. 누군가에게 의존하게 되잖아요. 많은 독자들이 있지만 제가 독자들에게 의존하진 않아요. 왜냐하면 그 분들 개인 개인은 그냥 내 책 한 권을 구입해서 읽는 분들이잖아요. 집합으로서 독자는 있지만 내가 독자들에게 의존할 필요는 없어요. 그런데 그게 안 되면 돈 주는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해요. 그러면 약간 슬퍼지잖아요. 그것도 뭐 그렇게 되어야 하면 그렇게 살아가는 게 또 정답이지만. 그래도 약간 슬퍼질 것 같아요.
김연수
그렇게 안되도록 도와주는 분들이 독자다?
유시민
네, 네. 내가 제공하는 정보를 필요로 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 때문에 나는 나의 삶의 독립성을 또 얻는 거예요. 무지무지 고맙죠. 내가 이렇게 살 수 있게 해주는 분들이에요.
김연수
그러니까 뭐 어쨌든, 소액주주 비슷한 거 아닐까요?
유시민
네. 그렇죠. 제 인생에 아주 조금씩 권리를 가지고 있는 분들.(웃음) 김연수 선생님도 그런 독자들이 있으니까 지금 계속 글을 쓰고 있는 거 아니에요?
김연수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분명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죠. 그 분들은 작은 의미로 책을 한 권 사는 건데 저한테는 아주 큰…
유시민
그럼요, 그게 모여서. 우리 글 쓰는 사람들, 독립적으로 쓰는 사람들은 그게 없으면 존재를 못해요. 그래서 저는 가끔, 시장이 굉장히 훌륭하다. 신자유주의 이러면서 시장을 무척 나쁘게 얘기하지만. 시장이 존재하지 않을 때 작가들은 누구에게 의지했느냐? 예술가들이 누구에게 의지했느냐? 돈 많은 사람들, 권력 있는 사람들에게 의지했잖아요. 책 써서 권력자에게 헌정사 쓰고, 그림 그려서 갖다 바치고 그렇게 살았잖아요. 그런데 지금 글 쓰는 사람들이 독립성을 얻은 이유가 뭐냐? 익명으로 만나는 이 시장에서 내가 쓴 글을 사주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어떤 권력가진 자, 돈 가진 자에게 우리가 매이지 않고 자유를 누리면서 글을 쓸 수 있잖아요. 위대한 거예요. 우리 인류 문명에서 이런 상황이 왔다는 건 전 정말 위대하다…
김연수
아주 역설적이긴 하죠. 출판은 그런 점에서 재미있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온라인도 정말 재밌고요. 작은 노력이 모이면 큰 효과가 나오는 그런… 특이한, 재미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유시민
뉴스펀딩에 천 원씩, 만 원씩 후원하시는 분들은 사실 책 한 권씩을 선물해주는 거거든요. 한 권의 책이 어떤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어떤 것이 있어요.
김연수
예전에 구호단체를 따라 방글라데시에 갔는데, 2달러짜리 피임키트를 나눠줬어요. 2달러 밖에 안 하는 건데, 그걸로 5분 정도 설명을 해줘요. 그런데 그걸로 앞에 있는 여성은 인생이 바뀌는 겁니다. 피임을 하게 되면 자기 인생을 스스로 결정하게 되는 거니까. 우리가 주는 도움은 사소한 것에 불과하지만 받는 사람에겐 큰 거죠. 내가 내 인생을 바꾸는 건 너무 어렵잖아요. 정말 힘들어요.(웃음) 소설이 잘 팔렸으면 정말 좋겠는데 열심히 써도 안 팔리죠…그런데 누군가 도움을 주면 상황이 바뀝니다. 그렇게 큰 도움이 아니더라도요. 예를 들어서 ‘그 대학은 가지 마’ 그러다가 ‘그래, 네가 정 가고 싶으면 거길 가 봐라’ 해서 인생이 바뀔 수도 있는 거거든요. ‘남의 도움을 받으면 인생이 바뀔 수 있다’는 게 저에게는 굉장히 큰 교훈이었어요. 마찬가지로 내가 누구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 전까지는 ‘책을 쓰면서 책이 뭐 세상을 바꾸겠어요?’ 그랬는데…그 뒤로 바뀌었어요. 세상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유시민
최소한 어떤 한 사람의 정신세계를 열 수 있는 거잖아요, 책 한 권이. <슬쓰기 고민상담소> 뉴스펀딩이 많은 분들이 후원해주셔서 지금 한 2700만 원 정도 모였는데요. 끝날 때까지 조금 더 모이겠죠. 지금 책 보내 달라는 이메일이 몇 십 군데서 왔어요. 어떤 책을 원하시는지 물어보고 원하는 책을 보내드릴 텐데. 아이들이 읽고 싶어 하는 책 목록을 보내주실 것 아니어요. 그럼 (우리가 아이들이) 읽고 싶어 하는 책을 보내주는 거잖아요. 서로가 모르는 사이지만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고 펀딩에 참여한 분들이 책을 읽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책을 주는 거니까. 제가 어렸을 때 책 읽고 느꼈던 감정이나 얻었던 생각을 돌이켜보면 정말 고마운 일이에요. 그렇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