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김용민, 베드로, 정형외과 의사)
유아 영세자 중에 종종 볼 수 있듯이 저도 사춘기를 지나며 냉담이 시작되어 소록도에서 근무하게 될 때까지 약 10년간 이어졌습니다. 소록도는 그 존재의 특별함 때문인지 매우 종교적인 섬으로, 직원들의 약 3분의 2가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같이 지내던 동료들이 수요일 저녁에는 모두 성당으로 모였기에, 저도 자연스럽게 성당을 기웃거리게 되었습니다.
당시 소록도성당의 주임이었던 한조룡 신부님의 모습은 냉담 중이던 저조차도 ‘종교란, 성직자란 저래야지…’라는 마음이 들게 하였고, 주일 미사 때 서로에게 유럽식 볼 키스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마리안나-마가렛 할매의 모습은 사람 간 관계의 가장 아름다운 모델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소록도성당의 특별한 은총 덕에, 그리고 그해에 만남을 시작한 아내 덕에 저는 자연스럽게 냉담을 풀고 성당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서울에서의 전공의 시절, 성탄절이나 부활절이 다가오면 저의 마음은 늘 소록도로 향하였습니다. 아내와 함께 몇 번 그곳 미사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모처럼 소록도성당을 향하는 길은 그러나 너무나 멀고 험하였지요. 그리움 속에 출발할 때와 달리 힘든 여정 중에는, ‘굳이 소록도까지 가서 미사 해야 하나? 이렇게 오랜 시간 고생스럽게 가야 하나?’라는 회의가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소록도성당에 들어가 앉고, 미사가 시작되고 나면 마치도 고향에 온 것처럼 마음이 푸근해지고 행복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드디어 영성체 시간, 저는 깨닫습니다. 힘겹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내가, 길 고생해서 이 먼 곳까지 찾아와준 게’ 아니라, 그분이 그곳에서 저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임을. 저는 그저 ‘예, 제가 왔습니다’ 하고 작은 대답을 드린 것뿐임을.
2018년 10월 저는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로 에티오피아의 서남단 오지 감벨라에서 파견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천주교 성당이 있는지조차도 알 수 없어서 ‘주일 미사는 포기해야 하나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한 달이 흐를 즈음 숙소에서 약 5㎞ 떨어진 곳에 성당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파견 6주 차에 어렵사리 주일 미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성당 문을 들어서서 보니 그곳은 십자가 대신에 큰 성화에 십자가 위의 예수님이 그려져 있었는데 현지인들과 같은 검은 피부의 예수님이었습니다. 저는 소록도에서와 똑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예수님은 저에게 “나는 여기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라고 이야기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학회 등으로 짧은 기간 외국에 다녀올 때도 가능한 현지 성당 미사에 참여합니다. 낯선 도시에서 혼자서 성당을 찾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게 해서 찾아간 미사에서 받는 느낌은 매번 한결같습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수고를 통해 제가 성당을 찾아간 게 아니라, 예수님이 저를 기다리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너희는 언제나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공동번역성서 요한 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