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 사회의 문제점
정보화 사회(Informationized Society, Telemarique Society)를 하나의 새로운 문명 사회로 본다면 이 문명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인류는 많은 노력과 투자를 해왔다.좧제3의 물결좩의 저자 앨빈 토플러는“ 인류 사회는 수천년간 제1의 물결(농경 사회)을 타왔으며 그 후 수백년간 제2의 물결(공업 사회)을 지나왔다. 이제 인류 사회는 고도 정보 사회로 일컬어지는 제3의 물결에 빠른 속도로 휩싸여지고 있다.”라고 말한다. 또 정보화 사회에 대해서 벨(D. Bell)은 고도의 기술이 중요시되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로서 물질이나 에너지보다는 정보가 주도하는‘ 지식 및 서비스 지향의 사회’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이것은 인간의 잘 살기 위한 노력으로 받아 들일 수 있다. 이렇듯 우리는 잘 사는 사회, 좋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노력해왔지만 가끔은 우리가 만들어놓은 물건들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후회에 빠질 때도 있다.
각종 교통 사고로 죽는 사람, 불구가 된 사람, 전인류를 파멸시킬 수 있는 많은 핵무기들, 일을 편리하게 하기 위하여 만들어놓은 안전 장치가 미흡한 기계들, 이제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한 가지 문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컴퓨터로 이루어지는 정보화 사회이다. 과연 성경 요한계시록 13장18절의‘ 666’을 컴퓨터라고 말할 법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우려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컴퓨터의 기능과 활용성에 대하여 말하기 이전에 문제점부터 이야기하게 된 것을 매우 애석하게 생각하지만, 컴퓨터가 잘 사용되게 하기 위해서 특히 기독교인들에게 정보화 사회의 문제점을 알게 함으로 각자의 일터에서 사명을 다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의 기업과 정부 그리고 우리들까지 컴퓨터를 선전하기에 급급하다. 컴퓨터를 사용하면 이런 것이 좋다, 컴퓨터는 모든 것을 편리하게 해준다는 사고에 충분히 빠져들 수 있도록 컴퓨터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칭찬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일례로 컴퓨터를 직접적으로 다루어본 사람이 아니면 컴퓨터가 도깨비 방망이나 요술 냄비 정도로 생각되게 만들었다.
컴퓨터와 관계된 일을 하다보면 가끔은 컴퓨터의 기능이나 우수성에 대하여 이야기하게 되는데, 이때마다 필자는 막연히 컴퓨터의 우수성에 대하여 말하기보다는“ 컴퓨터를 알기 전에 하나님을!!”이라는 말을 하게 된다. 컴퓨터의 우수성을 말할 때 자칫 인간의 교만한 우를 하나님 앞에서 범치 말아야 한다는 것과 컴퓨터가 무조건 좋다는 식의 교육은 지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컴퓨터를 시대적 구분으로 말할 때 현재 제4세대 컴퓨터 시대에 있지만, 앞으로 인공 지능 컴퓨터를 만들어낸다는 제5세대를 향해 가고 있는 시점에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류를 편리하게 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기계 때문에 오히려 불편을 준다든가 우리의 생활에 해를 끼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19세기 말엽부터 20세기 초엽에 과학을 잘 연구해서 과학적인 진리를 발견하면 온 인류가 행복하고 평화롭게 잘 살게 되는 유토피아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던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생각하던 그런 시대가 우리 앞에 와 있으며, 공상으로만 그리던 일들이 이루어져가고 있다. 컴퓨터는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을 바로 사용하지 못하면 오히려 우리에게 더 큰 피해를 가져올 것이 틀림없다.
언제나 그렇듯이 에덴 동산의 선악과가 문제가 아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은 왜 그런 과일을 만들어놓아서 문제를 일으키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그것이 꼭 선악과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선악과 자체가 문제이기보다는 하나님께서 따먹지 말라고 하신 것을 거역하고 따먹은 불순종이 더 큰 죄인 것이다. 오늘 우리 앞에 컴퓨터가 있다는 사실이 죄가 될 수는 없다. 잘만 사용된다면 하나님께서 오히려 기뻐하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 우리는 에덴 동산의 선악과가 아닌 컴퓨터와 정보화 사회 앞에 와 있다.
정보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컴퓨토피아(Computopia)가 될 수 있고 디스토피아(Distopia)가 될 수도 있다.
정보화 사회는 매우 긍정적인 사회이며 민주주의적 사고가 뿌리내릴 수 있는 사회이다. 정보가 한 곳에 모이게 되면 독재가 가능할 수 있으나 정보가 분산되면 독재가 불가능하며 특권 계층이 없어져가고 그 벽이 얇아진다. 그러나 정보 혁명은 인류에게 유익한 많은 것들을 제공하는가 하면 인류에게 피해를 초래하는 역기능적 측면도 있다. 그 하나로서 소위 신종 범죄 제1호라고 불리우는‘ 컴퓨터 범죄’이다.
컴퓨터를 이용한 범죄의 유형은 컴퓨터가 많이 사용되고 있는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선진 국가에서 빈번히 발생되고 있으며 기존의 범죄들에 비하여 피해가 훨씬 크다.
87년 12월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 개표 방송에서 취재 송고에서부터 컴퓨터에 입력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잦은 실수로 일단 방송되었던 개표 내용이 뒤늦게 정정됨으로‘ 컴퓨터의 조작설’이 나왔으며 심각한 정치 문제로까지 비화되었던 적이 있다. 고의적인 조작이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컴퓨터 사용의 큰 실수를 막기 위한 기술적, 제도적 안전 장치가 미흡했었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증권 거래에 컴퓨터가 많이 이용되는 미국에서는 고객들이 매입의 결정에서 컴퓨터를 이용하고 있다. 동일한 컴퓨터가 여러 고객들의 매입 매도를 결정하기 때문에 파는 것이 유리하다고 컴퓨터가 판단하는 경우 모든 고객들에게 팔라는 지시를 동시에 내리게 된다. 이 사태로 대공황 이래 최대 대폭락을 불러왔던 일이 있었다. 이 사건에서도 컴퓨터 안전 장치의 미흡이 지적되었다.
컴퓨터 범죄(Computerkriminalitat;Computer Crime)는 범죄의 유형이 종래의 범죄 유형과는 다르기 때문에 새로운 범죄 개념이 요구된다. 컴퓨터 범죄는 컴퓨터 자체가 독립적으로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고 범죄의 수단이나 방법이 되기 때문에‘ 컴퓨터 범죄’라는 용어는 옳지 않다고도 생각된다. 그러나 용어의 표현은 일종의 약속이므로 컴퓨터 범죄라고 부르고자 한다.
컴퓨터를 범죄의 도구로 사용할 때 기존의 방법과 틀리다는 것은 범죄의 수단과 심리적 상태로도 구분할수 있다. 특히 심리적인 영향에서 기존의 범죄 방법은 피해자가 눈에 보일 수 있기 때문에 범죄 현장에서 아무리 악한 사람일지라도 최소한의 양심의 가책은 느끼게 된다. 때문에 범죄의 현장에서나 그 후에도 회심의 기회를 가지도록 인간의 마음속에서 끊임없는 죄책감에 얽매이게 된다. 그러나 컴퓨터 범죄의 경우 담을 넘어 남의 집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고 위급한 상황이 닥쳐도 범죄자 자신이 직접적으로 피해를 당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존의 범죄보다 피해는 오히려 큰 데 비하여 범죄자는 양심의 가책을 적게 받는다. 이 점에서 더욱 컴퓨터 범죄를 발생케 한다.
‘ 컴퓨터 범죄’라는 단어 앞에서 예수님의 교육 방법이 더욱 간절히 요구되고 있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욕)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 5:21-22).“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마 5:2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