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박태원)
민근홍 국어교실
[줄거리]
구보는 동경 유학까지 하고 돌아와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다. 그의 어머니는 글쟁이보다는 월급쟁이가 몇 갑절 낫다고 생각한다. 직업과 아내를 갖지 않은 스물 여섯 살짜리 아들이 외출을 하면 어머니는 온갖 종류의 근심 걱정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구보는 집을 나와서 천변 길을 걷다가 한낮의 거리 위에서 두통을 느끼다가 왼편 귀의 기능에 스스로 의혹을 품는다. 전차 선로를 두 번 횡단하여 화산싱회 백화점을 들어가다가 어떤 부부를 보고 자신은 어디에서 행복을 찾을 지를 생각해 본다. 밖으로 나온 그는 동대문행 전차를 타고 가면서 자신이 고독을 지독히 싫어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전에 맛선을 본 여인이 막 전차에 오르는 것을 본다. 아는 체를 할까말까 갈등을 느끼는 사이에 그 여인은 청량리행 전차를 타기 위해 내린다.
조선은행 앞에서 전차를 내린 그는 한 잔의 홍차를 즐기기 위해 장곡천장의 다방으로 향한다. 커피를 청해 구석진 등탁자로 가서 쉬던 그는 다방을 나와 걷다가 건장한 장년을 보고 소년시절의 무리한 독서를 후회한다. 목적없이 태평동까지 갔다가 길에서 옛친구를 만난다. 그의 초라한 행색을 보고 친구는 무색하게도 가 버린다. 그는 고독을 느끼고 경성역으로 가나 대중들이 서로를 불신하는 것을 보고 더 큰 고독을 느낀다.
중학시대 열등생이던 벗에게도 애인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는 불쾌감을 느낀다. 다방에 가자는 것을 뿌리친 그는 거리를 거닐다가 시인인 벗에게 다방으로 나와달라고 전화를 한다. 다방에 앉아 강아지를 뜨다듬다가 도망치는 강아지에게 분노를 느낀다. 창밖 길가에서 나는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은 그는 누가 또 죄악의 자식을 낳았느냐고 반문한다.
그는 벗과 헤어져 황혼과 황혼을 타서 거리로 나온 계집의 무리들을 보다가 다료에 들린다. 주인인 벗이 없자 그는 고독과 권태 이상의 애처로움을 느낀다. 동경 유학시절을 생각하다 벗이 돌아오자 같이 대창옥으로 향한다. 그는 동경 어느 까페에서 만난 중학시절 벗의 약혼녀와의 로맨스를 생각하고 자신이 위선자가 아니었는가를 생각한다. 가엾은 어느 벗의 조카 아이들을 만나 집으로 자꾸 가자는 것을 수박만 사서 보낸다.
다방에 들러 생명보험회사의 외교원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벗과 함께 나온 그는 춘부의 일행시를 읊다가 낙원정으로 여급을 찾아간다. 거기에서 그는 모든 사람을 정신병자로 관찰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가 속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 관찰한 바를 초하자 벗이 그것을 소리내어 읽는다. 그는 창밖 어둠을 응시하면서 한 아낙네를 여급과 비교해 본다. 늦게까지 자지 않고 기다릴 어머니를 생각하고 어머니의 혼인 이야기를 물리치지 않기로 작정한 그는 벗에게 좋은 소설을 쓰겠다면서 헤어진다.
[인물의 성격]
@ 구보 → 무명작가로 무위도식하면서 서울의 이곳 저곳을 전전하는 식민지 지식인이다. 타락한 세상에서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하다가 병적 현상까지 보이는 그는 소설 마지막 부분에서 어머니의 소망을 만족시켜 드리기 위해 결혼을 하고 소설을 써서 조그만 행복을 찾기로 작정한다.
@ 어머니 → 무위도식하며 살아가는 자식이 동경 유학까지 하고도 일정한 직장을 잡지 못한 현상을 이해하지 못한다. 또한 그녀는 아들이 결혼해서 자식낳고 원만하게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한국의 전형적인 어머니상을 보여줌.
[구성 단계]
이 소설은 일반적인 소설의 구성단계를 취하기 보다, 오전에 집을 나와 새벽 2시 경에 귀가하기까지의 그 여정(여로)에 의해 내용이 구성되어 있다.
< 집→천변길→종로 네거리→화신상회→전차 안→조선은행 앞→다방→거리→경성역→조선은행 앞→다방→거리→다방→거리→식당→거리→다방→거리→술집→카페→종로 네거리→집 >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소설가 구보씨의 매일같이 반복되는 하루의 일과를 통해, 당대의 타락한 현실에 대항하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한 지식인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구보씨는 시력장애, 신경쇠약, 두통, 중이질환 등의 증세를 지닌 신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인물이며, 일정한 보수를 받는 직업도 없고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불건전한 독신자이다. 그는 늘 일상적 행복을 갈구한다. 그가 틈만 나면 외출을 하는 것은 발 행복의 길찾기에 다름 아니다.
이 작품의 '산책'이라는 배회의 형식은 '관찰'과 '의식의 흐름'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장치이다. 관찰되고 있는 것은 당시 경성의 여러 풍물, 경성역을 중심으로 한 지게꾼, 유랑민, 시골노파, 바세도우씨 병에 걸린 노동자 등 암울한 풍경과, 다른 한편으로 종로통의 카페를 중심으로 한 휘황한 풍경을 보여주면서 근대화의 양면성을 드러내 주고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내면 의식의 흐름이다. 그것은 여러 풍경에서 발견하고 있는 그러나 자신에게는 결여된 '일상적인 행복'과 '지식인의 고독'이 두 축을 이루고 있다.
구보의 내면세계는 단적으로 회의에 젖어 있다. 만사를 회의적으로, 상반된 의식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은 자의식의 과잉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지나치게 자신을 들여다보며 스스로 고통에 빠지는 것이다. 현상적 자아와 반성적 자아의 대면에서 그 둘의 간극이 클 때 자의식의 크기는 커지고, 그로 인하여 내적 번민은 심화되는 것이다. 이 소설은 구보의 이런 심리 추이를 서술하는 심리소설인 것이다.
작품의 끝부분에 이르게 되면 번민과 방황의 긴 수렁에서 스스로 벗어나 새로운 길을 찾는 자기 극복의 모습이 구체화된다. 좀 더 빠른 걸음으로 집을 향하는 구보는 이제 새롭게 자신을 정리하고 갈 곳을 찾았다. 갈 곳을 몰라 방황하는 것에서 시작된 이 작품은, 이어 그 방황의 도정이 전개되고, 마지막에는 갈 곳을 찾는 것으로 끝나는 구조를 속으로 품은 소설이 된다.
[핵심사항 정리]
● 갈래 : 중편소설, 심리소설, 세태소설 (자전적 성격)
● 배경 : 타락한 식민지 시대 서울(남대문, 경성역, 종로…)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실질적으론 1인칭 주인공 시점이나 다름없다.)
● 표현상 특징 : 1일 동안의 여로 형식을 취함(원점 회귀적 여로의 구조)
무기력한 지식인의 일상 묘사
심리묘사와 관찰의 조화
만연체 문장
● 주제 ⇒ 일상성의 회복을 꿈꾸는 지식인의 고독
지식인의 무기력한 삶과 행복찾기
[생각해 볼 문제]
1. 작가가 그리려고 한 세계는 결국 무엇이었는지 말해 보자.
⇒ 지식인 소설가의 내적 방황과 그것의 극복 태도
2. 이 작품의 형식상 두드러진 특징을 찾고 그것의 효과를 말해 보자.
⇒ 장, 절 구분을 함에 있어 소제목을 달아주고, 긴 문장에 적절한 쉼표를 부여하여 문법성을 가지게 함과 동시에 장면의 전환, 사건의 전이를 꾀한다. 그리고 특이한 시점 선택을 통해서 내면의식을 표출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3. 구보는 어떤 대상을 파악할 때 일정한 패턴의 의식을 보인다. 그 점을 말해 보자.
⇒ 구보는 한 가지 사태에서 양면을 보고 상반된 판단을 내린다. 예컨대 행복하다고 생각하다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깨닫는 진실은 없다. 그저 그런 회의에 빠질 뿐이다. 이런 것은 모든 사태에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 구보의 사고는 이런 단순한 패턴에 의한 것이다.
4. 구보가 방황을 끝내고 귀가하게 되는 것은, 구보가 무엇을 발견했기 때문인가?
⇒ 많은 사람들이 자신처럼 피로와 슬픈 기다림에 시달리고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즉 삶의 진실이란 애환과 연민의 그것으로 구체화되어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자신도 자신을 긍정하는 것이다.
[더 알아 봅시다]
■ '고현학'의 방법론
박태원은 자신의 창작 방법을 '고현학'이라 이름 붙였다. 고현학이란 현대인의 생활을 조직적으로 조사, 연구하여 현대의 풍속을 분석 해설하는 학문을 일컫는데, 박태원이 자기가 쓰는 소설을 고현학이라고 했다면, 응당 거기에는 합당한 방법론이 있을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고현학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하나는 공적인 인간의 사생활을 소설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소설작법을 겉으로 직접 드러내는 것이다. 전자는 이 작품이 이상과 김기림이라는 실제 인물의 사생활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후자는 대학 노트를 끼고 경성을 배회하면서 관찰 기록하고 있음을 작품상으로 드러내고 있음에서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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