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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김운성목사/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본문/마 4:17-22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 인생에 어느 정도의 비중을 갖는 것일까요? 신앙생활은 우리 삶에 어느 정도의 중요성을 가지고 다가오는 것일까요?
어떤 사람에게는 예수를 믿는 것이 새털처럼 가볍습니다. 신앙생활을 취미생활 정도로 생각하거나, 혹은 액세서리 하나 정도 사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교회에나 다녀볼까> 하는 정도의 생각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정반대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신앙이 생명의 문제가 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다른 어떤 것도 신앙보다 우선하지 않습니다. 그것에 인생을 전체를 걸고 삽니다. 예를 들어서 이번에 아프카니스탄에서 순교한 배형규 목사님 같은 분이 그런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분은 떠나기 전에 혹시 돌아오지 못할 경우에 대비하여 유서까지 써놓았다고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신앙은 어느 정도 중요성을 가진 것입니까? 새 옷을 한 벌 사서 입는 정도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인생의 전부입니까? 성경을 보면 신앙을 가지는 것은 우리 인생에 무엇인가를 덧붙이는 정도가 아니라, 인생을 통째로 바꾸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 대표적 예가 본문의 말씀입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사람을 부르신 일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을 부르셨습니다. 불러서 제자를 삼으셨습니다. 그들은 전에는 평범한 어부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불러 고기잡는 데 필요한 기술을 가르쳐준 정도가 아닙니다. 생선 요리 비법을 전수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제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 말씀을 읽을 때 <그 때 그들의 이야기>로 읽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도 제자입니다.
흔히 <제자>라고 할 때 좁은 의미로는 예수님을 따르던 열 두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모든 성도>를 제자라고 말씀합니다. 사도행전 6장 7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란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 전부를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제자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제자입니다.
그렇다면 제자가 되는 과정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부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세요. 베드로를 비롯한 그들이 예수님께 찾아간 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본문의 네 사람만 그런 게 아닙니다. 세무공무원이었던 마태도 예수님께서 직접 세관으로 찾아가서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나 불러 제자를 삼으신 것은 아닙니다. 당시 예수님의 능력에 반한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절하셨습니다. 마태복음 8장 18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려고 하실 때, 한 서기관이 와서 예수님을 따라가길 원했습니다.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여러분, 서기관은 당시에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유지입니다. 우리 같으면 이런 사람이 따라온다고 하면 기뻐하면서 환영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냉정하게 말씀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이 말씀은 <날 따라와 봤댔자, 네게 원하는 달콤한 것은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고생만 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돌아가라>는 거절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사실에 대하여 감사하십니까? 주님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주님이 부르시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믿음은 사람의 결심으로 되는 게 아니라, 성령님께서 택한 백성들의 마음에 감동과 은혜를 주셔야 가능합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부름 받은 사람들만의 특권입니다. 부름 받은 사람의 감격이 우리 안에 충만하길 기원합니다.
또 주님은 불러모으기로 작정한 사람은 반드시 포기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도망가려고 해도 도망갈 수 없습니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불러내십니다. 심지어 때려서라도 부르십니다. 사울을 보세요.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원수였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거꾸러뜨리셨습니다. 태양보다 더 밝은 빛이 그를 눕혔습니다. 그는 도망할 수 없었습니다. 주님의 그물에 잡힌 한 마리 물고기였습니다. 지금도 예수 믿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절대 예수님을 믿지 않을 거라고 말씀하는 분들 중에도 언젠가는 꼭 오게 될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잘 오셨습니다. 기왕에 택함을 받아 주님의 사람이 되었다면 기쁨과 감사로 주님을 따르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제자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말씀드렸는데, 그렇다면 교회란 어떤 곳일까요? 교회를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에크칼레오>란 말에서 왔습니다. 에크칼레오란 <안에서 밖으로 불러모은다>, <~로부터 불러모은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밖으로 불러모으셨습니다. 우리는 본래 죄악의 구덩이에 살고 있었는데, 주님이 우리를 그 밖으로 나오도록 불러모으신 것입니다. 교회란 <불러모아주신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부름 받은 제자들의 모임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성도들은 <나는 주님께서 부르신 사람>이란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이게 바로 루터가 말씀하는 기본적인 <소명, 부름>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아야 할 한 가지 사실은 여기엔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목사와 일반 교인까지 모두 포함하여 교회를 이룹니다. 목사도 부름받은 제자요, 여러분도 부름 받으신 제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교인들이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직자들은 제자이며, 나머지 교인들은 제자가 아니어도 좋다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우리 모두가 제자이며, 제자답게 훈련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왜 제자들을 부르셨을까요? 그것은 당신께서 하시는 일을 함께 하게 하려는 목적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본문 17절을 보세요. 제자들을 부르시기 전에 먼저 하신 일이 있습니다.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천국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천국을 건설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천국이 무엇입니까? 문자 그대로 천국은 하늘나라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건국 작업을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나라를 세우는 것이 쉽습니까? 요즘 <대조영>이란 드라마를 아시지요? 대조영이란 분이 <발해>를 건국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숱한 전쟁과 가슴아픈 사연들이 등장합니다. 한 나라를 세우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주님은 바로 그 일을 위해 제자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주님은 이 일을 결코 혼자 하시지 않았습니다. 주님 혼자서 불가능해서가 아닙니다.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함께 하는 것>이 인간 존재의 가장 기본적인 양태이기 때문입니다.
에덴 동산을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은 에덴 동산에 아담을 두셨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그의 갈빗대로 하와를 창조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간단했습니다. <아담이 독처하는 것,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이란 함께 할 때 행복합니다.
하나님은 독존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존재 양태를 아시지요? 하나님께서는 <삼위일체>란 독특한 존재 양태를 가지고 계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께서 하나가 되어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함께 하는 원리로 우리가 살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함께 하는 법을 터득하지 못하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재산이 많고, 여건이 좋아도 함께 사는 법을 모르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부부가 함께 하고,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하고, 이웃과 함께 해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성도들과 함께 해야 합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여러분, <함께 함의 원리>를 깨닫는 우리 모두가 되길 원합니다.
주님께서 부르신 제자의 앞길에는 험난한 일이 많습니다. 나라를 세우는 일이 쉽겠습니까? 그러나 그 험난한 과정을 통과한 후에는 놀라운 영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조영의 곁에는 미모사, 걸사비우, 흑수돌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 모두가 새 나라 건국을 위해 고난을 함께 합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영광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도 대권을 노리는 후보들 캠프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를 불러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 함께 하게 하신 것, 이것은 영광의 초청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가 제자라는 것이 분명해졌고, 제자라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는 것도 분명해졌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세우는 것입니까?
주님은 이미 그 방법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전파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전파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불러 그들도 이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사람 낚는 어부, 이게 바로 제자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세요. 그들은 본래부터 어부였습니다. 그러나 과거엔 살아있는 물고기를 잡아 죽여서 파는 어부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복음을 전파하여 천국의 어부가 되면 죽은 영혼들을 살려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되게 하는 <생명의 어부>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이 가을에 우리도 어부가 되어 보려고 합니다. 오늘 주보 사이에 <안드레 작정 VIP카드>를 나눠드렸습니다. 10월에 <부산 그래함 페스티벌>이 열리는 것을 모르는 분은 없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 거대한 축제와 연계하여 천국의 복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여러분, 저쪽에 걸린 현수막을 보십시오. 우리는 두 단계로 나눠서 진행하고자 합니다. 우선은 9월 16일, 23일, 30일, 세 주간에 걸쳐 모시고 올 분을 정하고자 합니다. 이게 <안드레 작정 주일>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전과는 달리합니다. 전에는 우리 각자가 알아서 작정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구역 단위로 합니다. 그래서 <구역전도주일>이라고 정했습니다. 전에는 혼자 기도하고, 혼자 그 분을 모셔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작정한 분을 구역에 보고합니다. 구역 식구들이 함께 기도합니다. 예컨대 봉래1구역 구역식구가 10명이라면, 두 사람씩만 작정해도 20명입니다. 그 20명이 봉래1구역의 작정이 됩니다. 그 숫자를 다음주일부터 게시판에 표시할 것입니다. 그리고 구역예배를 모일 때마다 합심하여 기도합니다. 공동으로 영적 전투를 하는 것입니다.
그 후 10월 네 주간에 걸쳐서 그 분들을 접촉하는 기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것이 <관계전도주일>입니다. 이 때에 할 일은 우리 마음에 작정한 분들과 사귀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작정한 분들에게 연락을 합니다. 만나기도 합니다. 작은 선물을 드리기도 합니다. 이 일을 구역 식구들이 함께 협력해서 합니다.
그리고 10월 18일이나, 19일에 아시아드 경기장으로 그 분들을 모시고 가서 <프랭클랜 그레엄> 목사님의 말씀을 듣게 합니다. 그 분은 20세기 최대의 전도자인 빌리그레엄 목사님의 아들입니다. 아버지보다 더 능력있는 설교자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 다음 주간에는 구역에서 준비한 따뜻한 파티로 초대합니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차 한 잔에 쿠키 한 조각이라도 좋습니다. 마음으로 여러분의 정성을 그 분들이 느끼시도록 하면 됩니다. 인테리어가 예쁜 집으로 초대해도 좋습니다. 모처럼 음식 솜씨를 발휘해도 좋습니다. 아니면 경치 좋은 찻집도 좋습니다.
그렇게 여러분 마음의 사랑을 전하고, 마지막 단계는 추수감사주일인 11월 4일 4부 예배시간에 교회로 초대하는 것입니다. 그 날 기존 교우들은 가급적이면 1-3부 예배에 참석합니다. 그리고 4부엔 귀한 분들을 모십니다. 그 날 1시 30분에는 교회학교가 총동원 전도를 하게 될 것입니다. 이 가을 제자로서, 천국의 어부로서 천국의 건설을 위해 해야 할 일을 잘 감당해 주시길 바랍니다.
구약에는 어부가 별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대개 농부였고, 목축을 했습니다. 그런데 신약에서는 어부를 부르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KBS에서 방영한 <그 곳에 가고 싶다>란 시리즈물이 있습니다. 어느 날 백령도 편이 나왔는데, 한 어부가 한 말이 기억납니다. <난 부자야. 언제나 나가기만 하면 건져올 수 있거든!>
농부는 씨를 뿌려 거둘 것을 준비해야 합니다. 목자도 새끼를 배도록 해서 낳아 키워야 합니다. 그러나 어부는 건져 올리기만 하면 됩니다. 물고기는 이미 바다 속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건지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구약의 하나님의 종들 보다 신약의 제자들은 훨씬 쉬운 과업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본문의 제자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모든 것을 버려 두고 따랐습니다. 여러분, 이 가을 천국 복음을 증거하는 제자의 사명에 우리 모두 참여하길 원합니다.
무엇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겠습니까? 나중에 천국에 가시면 무엇을 내놓으시겠습니까? 어떤 남자가 죽은 후 천국 문에 도착했습니다. 베드로가 이 사람이 땅위에서 행한 모든 일을 기록한 보고서를 읽고서는 <너는 특별히 좋은 일도 안 했고 그렇다고 해서 딱히 나쁜 일도 하지 않았구나. 그러나 만일 네가 땅위에서 행한 정말로 좋은 일이 하나 있어 지금 나에게 말해줄 수 있다면 천국에 머무르게 허락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저도 좋은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번은 제가 처를 몰고 가는데, 자전거를 탄 불량배들이 한 젊은 여자를 희롱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당장 차를 세우고 우두머리 앞에 걸어갔습니다. 그 녀석은 덩치가 크고 온 몸에 무시무시한 문신을 새기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만두지 못해?'하고 고함을 친 뒤 녀석들을 노려보았지요> 베드로는 그의 말에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나이에게 묻기를 <그런데 이 일이 언제 일어났지?> 그가 대답했습니다. <약 2분전입니다> 알고 보니 이 남자는 대들었다가 그 길로 얻어 터져 결국 죽어서 천국에 오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좋은 기회가 왔을 때 다른 이들이 힘쓸 때, 함께 할 수 있길 원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의 길에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은 복음전도자로 파송하시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함께 하시는 축복을 누리려면 전도자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제자의 길에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