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조단경六祖壇經 돈황본敦煌本
5-2 정게呈偈
*게송을 받치다,
혜능이 대답하기를 나는 여기 와서 방아 찧기를 여덟 달 남짓 하였으나 아직 조사당 앞에 가보지를 못했으니, 바라건대 그대는 나를 남쪽 복도로 인도하여 게송을 보고 예배하게 하여 주게나, 또한 바라건대 이 게송을 외워서 내생의 인연을 맺어 부처님 나라에 나기를 바라네 하였다, 동자가 혜능을 인도하여 남쪽 복도에 이르렀다, 혜능은 곧 이 게송에 예배하였고, 글자를 알지 못하므로 어느 사람에게 읽어 주기를 청하였다, 혜능은 곧 듣고서 곧 게송의 뜻을 대강 알았다, 혜능은 또한 게송을 지어 다시 글을 쓸줄 아는 이에게 청하여 서쪽 벽위에 쓰게 하여 자신의 본래 마음을 나타 내여 보였다, 본래 마음을 모르면 법을 배워도 이익이 없으니, 마음을 알아 자성을 보아야만 곧 큰 뜻을 깨닫니라, 혜능은 게송으로 말하였다,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 또한 받침대 없네, 부처의 성품은 항상 깨끗하거니,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가 있겠는가?, 또 게송에서 말하였다, 마음은 보리의 나무요, 몸은 밝은 받침대라, 밝은 거울은 본래 깨끗하거니 어느 곳이 티끌과 먼지에 물들겠는가? 절 안에 대중들이 혜능이 지은 게송을 보고 다들 괴이하게 여기므로, 혜능은 방앗간으로 돌아갔다, 오조스님이 문득 혜능의 게송을 보시고, 곧 큰 뜻을 잘 알았으나 여러 사람들이 알까 두려워하시어 대중들에게 말씀 하셨다, 이 또한 아니라고
하셨다,
<惠能答曰 我此踏碓八個月 未至堂前 望上人 引惠能而南廊下 見此偈禮拜 亦願誦取 結來生緣 願生佛地 童子引能至南廊下 能卽禮拜此偈 爲不識字 請一人讀 惠能聞已 卽識大意 惠能亦作一偈 又請得一解書人 於西間壁上 題著 呈自本心 不識本心 學法無益 識心見性 卽悟大意 惠能偈曰 菩提本無樹 明鏡亦無臺 佛性常淸淨 何處有塵埃 又偈曰心是菩提樹 身爲明鏡臺 明鏡本淸淨 何處染塵埃 院內徒衆 見能作此偈 盡恠 惠能却入碓房 五祖忽見惠能偈 卽善知識大意 恐衆人知 五祖乃謂衆人曰 此亦未得了>
*해설
*방아만 찧던 노 행자가 동자가 인도해준 신수대사 게송 앞에 와서 예배하고, 자기는 글자를 모르니, 자기도 게송을 지을 테니, 글자를 알면 서쪽 벽에다가 써달라고 하고 게송을 짓게 되었는데, 신수대사의 게송을 부정하고, 확 뒤 짚는 말로 짓게 되었다. 게송 내용은 돈황 본과 다른 본 내용이 글자가 조금 틀리나, 뜻은 같은 내용이다. 신수대사는 몸은 보리수라고 했는데, 보리는 본래 나무가 아니라고 뒤집었다. 마음은 명경대라고 했는데, 명경은 대가 없다고 부정을 했다. 신수대사는 때때로 닦고 닦아 마음의 때가 일어나지 않게 하라고 하였는데, 노 행자는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느 곳에서 먼지 티끌이 일어나겠느냐고 게송을 지었다. 노행 자의 게송을 보고 대중들은 괴이하게 생각을 했기 때문에 오조 스님은 대중들에게 이 게송도 큰 뜻에 계합(契合)한 게송이 아니라고 했다는 내용이다. 절에 온지 팔 개월밖에 안 된 행자가 깨쳤다고 하면 문제가 있을 것 같아서 방편으로 그렇게 하신 것이다. 절집수행은 출가 발심은 선후가 있으나 깨달음은 선후가 없다고 했다. 신수대사와 노행자의 선화를 봐도 딱 맞는 말이다. 수행은 밥그릇 숫자가 아니라, 깨침이라는 말이다. 깨닫지 못하면 천년만년 수행을 해도 중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