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5,1-7; 필리 4,6-9; 마태 21,33-43
+ 찬미 예수님
한 주간 동안 안녕하셨어요? 아침저녁으로 매우 쌀쌀한데요, 환절기에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건강 유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따뜻하게 입고 무리해서 일하지 마시고 잘 주무셔야 합니다. 자녀와 손자가 군에 있는 분들은 또 마음이 많이 애틋하실텐데요, 모든 군인 또한 건강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3주 연속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보내신 마지막 일주일에 하신 말씀을 듣고 있는데요,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회개시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자,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그리고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예수님께서는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시고, 대신 세 가지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는 지난 주일 복음 말씀에 나온 두 아들의 비유입니다. 포도밭에 가서 일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가겠습니다, 주님’이라고 대답했지만 가지 않았던 둘째 아들은 수석 사제와 원로들의 상징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오늘 복음 말씀인데요, 포도밭의 소작인들 역시 수석 사제와 원로들을 상징합니다. 세 번째는 다음 주일 복음인데요, 혼인 잔치에 초대받았지만 응하지 않은 이들 역시 같은 이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1독서 말씀과 깊이 연관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집트에서 고통받던 이스라엘 백성을 빼내어 약속한 땅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화답송: 당신이 이집트에서 포도나무 하나를 뽑아 오시어, 민족들을 몰아내고 심으셨나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은혜를 잊고, 맺어야 할 열매가 아니라 정반대의 열매를 맺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 상황을 포도밭에 비유하며 노래합니다. “그분께서는 공정을 바라셨는데 피 흘림이 웬 말이냐? 정의를 바라셨는데 울부짖음이 웬 말이냐?”
예수님께서는 이사야서의 이 비유를 인용하며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어떤 밭 임자가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울타리는 동물로부터 포도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고, 확은 포도주를 만들기 위한 도구입니다. 또한 탑은 원두막이라 볼 수 있는데요, 포도밭을 지키면서 관리인이 쉬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밭 임자는 이처럼 모든 것을 마련해 준 다음, 포도밭을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떠났습니다. 포도 철이 가까워지자, 소출을 받아 오라고 종들을 보냈는데 소작인들은 종들을 붙잡아 매질하고 죽이고 돌을 던졌습니다. 이 종들은 구약의 예언자들을 상징하는데, 미키야 예언자는 감옥에 갇혔고(1열왕 22,27), 예레미야는 매질을 당하고 기둥에 묶였습니다.(예레 20,2) 또한 즈카르야 예언자는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2역대 24,20-22)
밭 임자는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냅니다. 그러나 그들은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창세기에서 형들이 요셉을 죽이려 할 때 했던 말(창세 37,20과 비슷합니다. 결국 소작인들은 아들을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립니다.
이 아들은 예수님을 상징하는데, 예수님께서 공개적으로 당신께서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오늘이 처음입니다. 베드로가 그렇게 고백했을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수석 사제와 원로들에게 당신께서 포도밭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아들이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포도밭 밖으로 던져져 죽임을 당할 것임을, 곧 성전 밖에서 살해당할 것임을 예고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재판받으실 때,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했다는 이유로, 신성모독죄로 기소되셨는데, 오늘 말씀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이 말씀은 그들의 뇌리에 강렬하게 자리했고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이제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기능을 다했고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을 모퉁이의 머릿돌로 삼아 구원의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이제 교회가 포도밭이고 새로운 소작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제대로 맺고 있을까요?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그것을 묻고 계십니다. 특히 새로운 종교 지도자로 임명받은 사제들이 깊이 숙고하고 성찰해야 할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는 정의와 자비와 착한 행실입니다(호세 10,12; 요한 15,2; 갈라 5,22). 과연 그러한 열매를 맺어 하느님께 소출을 드리고 있는지 반성합니다.
그러는 한편, 우리 각자가 하느님의 포도밭이라고 볼 때, 우리가 좋은 열매를 맺고 있는지 성찰합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예수님께 붙어 있을 때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열매는 조바심 끝에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을 때 맺게 됩니다.
제가 십수 년 전에 토론토에서 지하철을 탔을 때, 이 일 저 일로 걱정이 많았던 제게 지하철의 광고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반복해서 읽다보니 바로 오늘 2독서의 말씀이었습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우리가 걱정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스스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예수님 앞에 가져갈 때, 하느님께서 울타리를 둘러치고 확을 파고 탑을 세워주실 것입니다. 열매는 예수님께서 직접 맺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