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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목사
제게는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물려주신 자그마한 집이 한 채 있었습니다. 교회의 부목사가 되면서부터 교회 사택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사택 생활을 하게 되면서부터 그 집은 다른 사람에게 세를 주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목사가 집주인이 되어 그 집을 관리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목사는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줄 아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거의 사실이었습니다. 아무렇게나 해도 목사는 세상 사람들처럼 그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 채 있는 집 때문에 이런 저런 고민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저의 그와 같은 형편을 하게 된 교인 한 분이 그 집을 팔아 땅을 사두라고 권면해 주었습니다. 그 분은 땅을 사고파는 일에 일가견이 있는 분이셨습니다. 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저는 그 분의 말대로 집을 팔았고, 그 분과 함께 용인에 나아가 그분의 조언을 들으며 집 판 돈으로 땅을 사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1984년도의 일이었습니다.
땅을 계약하고 잔금까지 치룬 후 그 땅을 등기하려고 할 때 그 땅이 농지이기 때문에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이 아니면 그 땅을 등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당황하여 그 교인에게 전화를 하였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목사님이 잠시 주민등록을 그곳으로 옮겼다가 등기를 한 후 다시 옮겨오면 된다.’고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그때 그것이 불법임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했는데, 무엇에 홀린 듯 그렇게 해서 결국 땅을 제 이름으로 등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고도 별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니 보건사회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던 분이 여성이셨는데 저와 똑같은 방법으로 땅을 산 일이 드러나 장관직에서 물러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그 방송을 통하여 저와 그 여성 장관이 한 일이 ‘위장전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차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서야 내가 한 일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사실을 심각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와 같은 위장전입 때문에 제 주민등록이 엉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때는 동회에서 관리하는 주민등록을 수기로 다 기록할 때였습니다. 세대주였던 제가 용인으로 주민등록을 옮기게 되자, 제 이름은 두 줄로 지워지고 옆에 제가 84년도 몇 월 며칠에 용인군 원삼면 사암리로 전출을 하였다고 기록되게 되었습니다. 물론 실제로 제가 그곳으로 거처를 옮기고 전출을 한 것이 아니고 살기는 그냥 서울에 살면서 주민등록만 그곳으로 옮긴 것이었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위장전입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처가 세대주가 되었습니다. ‘처’라고 쓴 글을 역시 두 줄로 지우고 그곳에 ‘세대주’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제가 무사히(?) 땅 등기를 마치고 당연하게 다시 주민등록을 서울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다시 제 이름이 본래 서울에 있는 제 주민등록으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주민등록 맨 밑에 세대주 김동호라고 올리면서 몇 년 몇 월 며칠에 용인군 원산면 사암리에서 전입하였다는 기록이 남았습니다. 제가 다시 세대주가 되면서 잠시 세대주로 기록이 되었던 제 아내 이름 앞의 ‘세대주’가 두 줄로 다시 지워지며 다시 ‘처’라고 적혀졌습니다. 아주 주민등록이 누더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주민등록을 뗄 때마다, 그 복사된 주민등록은 ‘이놈은 위장전입 한 놈’ ‘이놈은 위장전입 한 놈’이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평생 씻을 수 없는 전과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동안교회 담임목사가 되면서 교회의 대표로 제 주민등록을 첨부해야 하는 일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감당할 수 없는 고문이었습니다.
동안교회는 얌전히 가만있는 교회가 아니라 이런 저런 일을 많이 벌리는 교회였는데, 그 때마다 제 주민등록을 떼야만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얼마나 부끄럽고 고통스러웠는지 모릅니다. 물론 그 땅에 제게 작은 것이 아니었지만, 그러나 그 때문에 평생 부끄러운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 너무 억울하고 황당했습니다. 땅을 팔아서라도 그 전과를 없이할 수 있다면 정말 그렇게 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그 전과는 제게 사망의 굴레와 같았고, 저는 그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 때 죄가 참 무섭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요즘도 보니, 국가의 어느 고위직에 위원장으로 임명된 분이 저 보다도 몇 년 전에 용인에 위장전입한 것이 드러나 결국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위장전입은 아니었지만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부동산 투기 때문에 국가의 부총리가 물러나는 것도 보았습니다.
어느 날 또 교회 사무장으로부터 제 주민등록 사본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동회에 가서 주민등록을 떼다가 정말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정부가 모든 주민등록을 전산화하면서 제 주민등록이 비록 겉으로 보기에만 그렇지만 깨끗하게 정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제 이름이 다시 맨 위로 올라가고 저와 제 아내 이름 앞에 죽죽 그어졌던 줄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할렐루야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물론 주민등록이 전산화 되었다고 제 전과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선 겉보기에라도 주민등록이 깨끗해 진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높은 뜻 숭의교회의 목사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세 자녀의 아버지입니다. 높은 뜻 숭의교회 교인들은 제가 괜찮은 목사인 줄 알고 이곳, 저곳에서 찾아 오셨습니다. 저는 제법 이름이 알려진 목사 중에 하나입니다. 집회를 가면 제 설교를 들으려고 본 교회 교인이 아닌데도 집회 참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적지 않은 고정 독자들을 가지고 있는 작가 이기도 합니다.
다행히 저는 직접 보지 못했는데 어느 기독교 방송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제가 앞으로 한국 교회를 대표할 몇 목사 중에 하나로 선정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방송국에서 별 쓸데없는 짓을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은근히 기분이 좋기는 하였습니다. 제 아이들은 아버지인 저를 좋아합니다. 제 아이들은 저를 삶의 모델로 삼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만큼 저를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저들이 모두 다 저를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제 허물과 죄는 용인 위장전입 하나가 아닙니다. 다 밝힐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어서 감추고 살기 때문에 그렇지 제 허물과 죄들이 다 낱낱이 드러나게 된다면 저는 목사 노릇도 할 수 없고, 아비 노릇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저는 죄의 삯이 사망이라는 것을 100% 인정합니다. 죄는 참 치명적입니다. 걸려들기는 쉽지만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힘으로도 못하고, 돈으로도 못하고, 선을 행함으로도 못합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선을 행한다고 하여도 그 선으로 과거의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위장전입 하나만 문제가 되어도 저는 수치를 당하고 명예스러운 모든 자리에서 물러나야만 합니다. 높은 뜻 숭의교회 교인들이 ‘우리 목사가 그런 사람이었어?’ ‘우리는 그런 부끄러운 짓을 한 목사를 우리 교회 목사로 둘 수 없어’라고하며 사임을 요구한다면 아마 저도 최근에 자리에서 물러난 어느 위원장과 같이 교회를 사임해야 할 것입니다.
제 책을 읽는 독자들이 ‘김동호가 그런 인간이었어?’하며 등을 돌리면 앞으로 저는 한 권이 책도 더 쓰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우리 아버지가 그런 사람이었는 줄은 몰랐네’하며 실망한다면 저는 참으로 비참하고 외로운 노년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죄는 무서운 것입니다. 생명과 같은 모든 것을 순식간에 빼앗아 갈 수 있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와 죄를 가지고는 낮 빛보다 더 밝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그래도 그와 같은 허물을 감출 수도 있지만 하나님 나라에는 그와 같은 죄와 허물을 감출 수 있는 곳이 아니니 그와 같은 죄와 허물로 가득한 우리 죄인들은 들어가라고 등을 떠밀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죄인에게 천국은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깝고 불행한 일은 그와 같은 치명적인 죄와 허물이 제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안타깝고 불행한 일은 그 죄와 허물에 대하여 나는 전적으로 무능력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복음 중의 복음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게 하심
으로 그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저의 모든 죄와 허물을 깨끗하게 씻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전산화 작업을 한 제 주민등록은 겉보기만 깨끗해 졌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은 제 영혼의 주민등록은 정말 흰 눈 같이, 양 털 같이 깨끗해 졌습니다.
저는 다윗의 시편 32편을 좋아합니다. 시편 32편 1절과 2절에는 다음과 같은 고백이 있습니다.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 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 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저는 다윗과 같이 ‘허물의 사함과 그 죄의 가리 움’을 복으로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그와 같은 복을 주시기 위하여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대가를 치루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이 스스로 십자가에 달려 죄인과 같이 수치를 당하시고, 고통을 당하시고, 무능한 인간과 같이 죽음을 당하셨습
니다. 그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에, 그와 같은 값을 치루고 속죄함을 받은 우리에게 대하여 사탄이 한 마디도 송사를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도바울은 로마서 8장 31절에서 39절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 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 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 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 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 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아멘.
이와 같은 사실을 오늘 본문의 이사야 선지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 게 담당시키셨도다.”
80년 5월 6일 목사를 안수를 받았습니다. 목사 안수를 받기 전 저는 사탄의 송사를 받았습니다. 사탄이 하나님께는 저를 송사하지 못하고, 저에게 송사를 하였습니다. 저의 죄와 허물을 다 기억나게 하고는, 너 같은 놈이 어떻게 목사가 될 수 있느냐며 제 양심을 통해 저를 송사하였습니다.
참 많은 갈등을 하였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사탄의 송사는 일리가 있었습니다. 심각하게 목사 안수 자체
에 대하여 고민해 보았습니다. 며칠을 고민하며 기도하는 중 제가 사탄에게 속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죄는 다 사실이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그리고 내가 그 모든 죄를 십자가 앞에 다 내어 놓고 회개하였음으로, 다 속죄 받은 죄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내가 목사 안수 받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바로 그 예수님의 보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이 목사가 되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능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바울의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 로라.’는 고린도전서 5장 10절의 고백과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 하니라’는 갈라디아서 6장 14절의 고백을 나의 고백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축복이 이루말로 다할 수 없지만, 저는 최고의 은혜와 복은 속죄의 은혜와 복이라고 확신합니다. 저는 그와 같은 복이 그냥 값없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엄청난 대가를 치루시고 저에게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저는 목사도 될 수 있었고,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아비도 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채찍에 맞으셨기 때문에 제가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입었다는 사실을 저는 전적으로 확신합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새로운 주민등록을 주셨습니다.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넘어지고 자빠지며, 부끄러운 얼룩으로 더럽힌 내 인생의 주민등록을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 주시고 언제나 새로운 삶의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하나님의 귀한 것들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사용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시편 116편 12절 이하의 말씀으로 제 마음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싶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 할꼬,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 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나음을 입고 평화를 누리게 되었으니, 사탄의 송사로 인하여 갈등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신 구원의 은총을 누리며 마음껏 하나님의 일을 하며, 마음껏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 땅에서도 천국을 살다가 죽어서도 천국 가는 삶을 살려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다 저와 같이 이 한 주간 나의 죄와 허물로 인하여 고난 받으신 예수님을 묵상하며, 감사하며, 주님이 주신 구원의 은혜와 은총을 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누릴 뿐만 아니라 평생 그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