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3-7
떠나라 / 엄기호 목사
예언서는 대부분 그 첫머리에 누구의 아들, 어느 지파, 어디 출신인지 등 예언자의 혈통에 대 해 언급합니다. 그러나 엘리야의 경우 하늘에서 떨어진 것 같이 그 존재의 뿌리가 언급되어있지 않습 니다. 마치 멜기세덱처럼 부모도, 자식에 대한 언급도 없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엘리야를 하늘로부터 파송된 천사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우리가 잘 알다시피 엘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구국공신이요, 위대한 하나님 의 종입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당시 이스라엘은 멸망의 딸 이세벨 왕후로 인해 많은 하나 님의 선지자, 제사장들이 죽임을 당했고, 추방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 대신 이방신 상을 모시고 수많은 거짓 선지자이 활동한 흑암이 가득한 때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이스라엘 백성은 여전히 아브라함이 자기들의 조상이라고 자랑했으며, 그 들의 제사(예배)에는 형식과 외식으로 가득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빛을 잃은 등대, 불 없는 화로, 맛 잃은 소금, 물 없는 샘, 열매 없 는 가을나무였습니다. 이 민족은 하나님의 심판밖에 기대할 것이 없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이나, 혁명위원이나, 종파를 세우지 않고 단 한 사람, 디셉사람 엘리야를 택하셨습니다. 그에게 능력을 부어 세우시사 우상을 제거하고 백 성을 회개시키고 나라를 건지게 했습니다. 이에 본문을 통해 엘리야를 택하신 하나님의 부르심과 그 숨은 하나님의 뜻을 살펴봄 으로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한 오늘날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 지 생각하는 시간 을 갖고자 합니다.
먼저 엘리야는 “여기서 떠나라”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떠나라”는 말씀은 단순하고도 명확한 명령입니다. 이는 믿음으로 한 걸음씩 하나 님과 동행하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이 말씀은 이론으로 생각하면 쉬운 말씀이지만 행동하기는 어려운 말씀입니다. 엘리야는 디셉을 떠나 사마리아 길르앗에 살면서 하나님의 비상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3년 6개월 동안 이스라엘에 우로를 내리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 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아합 왕처럼 담대하게 죄를 지은 왕이 없듯, 죄악으로 오는 한재( 旱災)를 예언하는 엘리야만큼 담대하게 책망하고 경고하는 선지자도 결코 없습니다.
야고보서 5장 17절에 엘리야를 “우리와 같은 성정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그 역시 예언을 한 후의 결과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후일을 생각하지 않고 주님 명령에 순종하여 동행하는 길을 걸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함으로 실천 했습니다(욥 23:10).
이처럼 우리도 내일의 운명을 두고 염려, 근심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지금 한걸음부 터 출발하는 신앙의 자세, 엘리야의 신앙을 본받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엘리야의 신앙은 오직 쉼 없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전진의 신앙‘이었습니다. 나아 갈 때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실감하면서 그를 진정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보응을 믿 는 신앙이었습니다(히 11:6).
많은 크리스천이 있지만 앞을 향한 전진하는 신앙을 보기 힘듭니다. 이론으로는 하나 님의 임재를 믿으나 생활에서 하나님 없이 생활을 하는 때가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 하지만 엘리야는 앞날의 운명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믿고 순종했습 니다. 그는 거대한 산같이 엄위하고, 요동치 않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메신저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엘리야처럼 오늘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순종 하며, 담대하게 전진함으로 주와 동행하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엘리야는 그릿 시냇가에 숨을 줄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아합 왕 앞에서 담대히 예언한 후, 엘리야에게 여호와의 말씀 이 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다음 일을 계시하셨습니다.
“이곳을 떠나 동으로 가서”라는 명백한 지시, “요단 앞 그릴 시냇가에 숨고”라는 때 맞은 지시, 그 “시냇물을 마시라”는 분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에 엘리야는 그 말씀을 따라 그릿 시냇가로 가서 지금까지의 일을 반성하며 자신의 동기와 능력을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여호와의 은총을 구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도 그릿 시냇가에 숨을 것을 명령하십니다. 여기에는 자신 의 우월감, 교만할 수 있는 자아를 그릿 시냇가에 장사지내고 새로운 하나님의 능력 으로 재무장시키려는 뜻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계시하시는 신령한 그릿 시냇가를 생각해봅시다.
떠들썩한 세상 영광과 물질의 유혹, 열정에 찬 공의감을 충분히 발휘한 후, 하나님께 서는 병실이라는 그릿 시내, 실망으로 메마르는 그릿 시내, 적막과 죽음에 이별을 고 하는 그릿 시내를 준비하시고 여기 숨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은 엘리야처럼 그릿 시냇가에서 새 힘을 얻고 하나님께서 숨으라 하실 때 숨고 (왕상 17:3, 시 37:23, 시 62:5), 나타나 보이라 할 때 나타나는 자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나사렛이라는 그릿 시내, 베다니 감람원이라는 그릿 시내, 갈릴리 적막한 곳을 그릿 시냇가로 삼으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으셨으며, 그 모범을 우리에게 남 기셨습니다. 따라서 우리 역시 지금까지의 요란한 환경을 떠나 그릿 시내로 가야합니다. 가서 그 곳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능력을 얻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엘리야는 약속을 믿는 절대적인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말라가는 그릿 시냇가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비록, 말라가는 시내라도 그곳으로 가라는 말씀에는 하나님의 숨은 약속이 있음을 엘 리야는 알았습니다. 우리가 가정, 환경, 생활, 사업, 직장, 자녀의 문제에 응답을 받았어도, 변화가 없고 시내가 말라가듯 더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라가는 시냇가에 숨으라 하 신 명령에는 하나님의 공급이 약속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에 순종해 말라가는 그릿 시냇가에 갔던 엘리야는 그곳에서 까마귀를 통해 하나 님의 신비스런 약속된 공급을 받았습니다.
시편기자는 시편 34편 10절에서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찌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소유한 자에게는 신비스런 약속이 공급되며, 하나님 의 상급이 주어집니다(히 11:6). 그러므로 어떤 시련 중에서도 하나님 가운데서 담대 하며, 하나님을 불신하지 말아야 합니다. 원래 사람이 몸을 숨기려면, 깊은 산중이나 골짜기에 숨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하나님의 보호를 믿었기에 언제든 노출될 수 있는 시냇가에 숨으라는 말씀 에도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하나님은 엘리야를 그릿 시냇가에서 보호하 시고, 멸망의 딸 이세벨의 눈길에서 건지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있는 곳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곳인가?”입니다.
“가라“하신 그 그릿 시냇가가 말라 갔지만 그 가운데서도 엘리야는 하나님의 지시 를 기다렸습니다. 아마도 엘리야는 이때 하나님께서 자기를 버리셨는가, 의심하고 낙 심하기 쉬웠을 것입니다.
때로 우리가 유일하게 믿는 물줄기가 말라 갈 때가 있습니다. 인정이라는 물줄기, 능 력과 기쁨이라는 물줄기, 사랑과 위로와 위안을 주던 물줄기가 말라가는 현실을 만나 면 낙심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극단은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기회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현실의 물줄기가 말라가고 있습니까?
생명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이 되시는 예수님께 깊이 뿌리내린 나무가 되십시오.
우리와 같은 성정을 지는 엘리야가 그 믿음의 본을 보였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지시를 기다리고 그 명령을 따르는 성도가 됩시다.
비록 주변의 생명 물줄기가 마른다 해도 주님의 약속만 믿고 기다리는 성도에게는 하 나님께서 필요를 공급하시고, 성령으로 채우시는 복을 주십니다(요 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