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즙 — 암세포의 위장막을 벗기다
녹즙의 주요 성분은 클로로필, 설포라판, 인돌-3-카비놀, 그리고 각종 폴리페놀이다. 이것들이 항암 맥락에서 작동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갈래다.
첫 번째는 해독과 예방의 층위다. 녹즙 속 설포라판은 Nrf2라는 전사인자를 활성화한다. Nrf2가 켜지면 간에서 Phase II 해독효소가 대량 생산되고, 이 효소들이 발암물질을 무력화하거나 체외로 배출시킨다. 암이 생기기 전에 원료를 차단하는 셈이다.
두 번째는 후성유전학적 재프로그래밍이다.
암세포는 종양억제유전자를 히스톤 아세틸화라는 방식으로 꺼버린다. 유전자 자체를 변이시키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가 읽히지 못하도록 물리적으로 감아버리는 것이다. 설포라판은 이 히스톤 탈아세틸화 억제효소를 차단함으로써, 암세포가 꺼놓은 종양억제유전자를 다시 켠다. 동시에 이 과정에서 암세포가 억눌러놓았던 MHC-I 항원 제시 기능이 부분적으로 회복된다.
즉, 암세포가 내려놓았던 "나를 보라"는 표지판이 다시 올라오는 것이다. T세포 입장에서 보면 숨어있던 적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인돌-3-카비놀은 암세포의 증식신호를 억제하고, 클로로필 대사체는 NK세포 활성에 관여한다는 연구들도 있다.
녹즙의 역할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암세포가 구축해놓은 위장막의 분자적 기반을 교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