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시오, 월남은 끝났구먼” 키신저 정색케 한 박정희 말 (57)
김종필 증언록: 소이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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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월맹 간 휴전협상이 한창이던 1972년 10월이었다. 미국은 10년 넘게 끌어온 전쟁을 끝내려 했다. 월남에서 미군을 철수하고 월남군의 전력을 강화해 독자적으로 방어케 하는 이른바 ‘월남화(Vietnamization·월남전은 월남인에게 맡긴다)’에 박차를 가했다. 어느 날 필립 하비브 주한 미국대사가 국무총리실로 나를 찾아왔다.
하비브 대사는 내게 “월남의 공군력 증강을 위해 미국이 한국에 대여한 F-5A 전투기 3개 대대를 빼서 월남에 줘야겠습니다”고 말했다. 일종의 통보에 가까웠다. 나는 그의 요청을 단번에 거절했다.
“미국은 월남만 중요하고 한국은 중요하지 않습니까. 3개 대대를 가지고 가면 하늘에 구멍이 뻥 뚫리는데 안 됩니다. 내줄 수 없소.” 전투기 3개 대대면 54대다. 그때 한국이 보유한 F-5A 전투기는 모두 76대였다. 내 말에 아랑곳없이 하비브 대사는 “미국이 정한 방침이니 고려해 달라”며 돌아갔다. 며칠 뒤 그가 “월남으로 전투기를 보낼 준비가 됐느냐”며 다시 찾아왔다. 나는 “아무 준비도 안 했소. 우린 월남에 한 대도 보낼 생각이 없소”라고 답했다. 자신의 말을 들은 척 만 척한 게 기분이 상했던지 하비브 대사가 “이건 한국 게 아니라 미국 소유 전투기입니다. 주인이 달라는데 못 주겠다고 하는 게 말이 됩니까”라고 따졌다. 나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전투기 소유주가 미국임은 나도 분명히 동의합니다. 그러나 일단 한국 땅에 온 이상, 주인이 한국으로 바뀌었소. 우리가 못 주겠다고 하면 그만입니다.” 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내가 막무가내로 버티자 하비브 대사는 청와대로 올라갔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총리가 되지도 않는 말만 합니다”라며 하소연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총리하고 협상을 시작했으면 거기서 끝내야지, 왜 여기 오느냐”며 그를 돌려보냈다.
박 대통령이 나를 불러 무슨 일인지를 묻기에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다. 내가 “미군 전투기도 한국에 온 이상 한국이 주인이다”고 대꾸했다고 했더니 “그래서 나한테 왔구먼”이라며 껄껄 웃었다.
“이승만 모셔라” 특명 받은 JP, 하와이 요양원에서 목격한 것 (58)
김종필 증언록: 소이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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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건국 대통령 우남(雩南) 이승만(李承晩·1875~1965)은 1960년 4·19혁명으로 하야한 뒤 미국 하와이로 망명해 호놀룰루에서 5년을 살았다.
65년 7월 19일 마우날라니 요양원에서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와 양자 이인수(당시 34세)씨가 지켜보는 가운데 쓸쓸히 여생을 마감했다.
박정희와 이승만의 ‘역사적 만남’. 1955년 11월 3일 이승만 대통령(오른쪽)이 강원도 인제군의 3군단을 찾아 예하 5사단장이던 박정희 준장과 악수하고 있다. 2015년 중앙일보가 김종필 증언록을 연재하며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을 발굴, 신문 지상에 처음으로 공개했다. 사진 대한뉴스 캡처
62년 11월 중앙정보부장이던 나는 국무부와 중앙정보국(CIA)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할 때 하와이에 들렀다.
호놀룰루 공항에 내리자마자 태평양사령부의 안내를 받아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 때 침몰한 전함 애리조나호에 가서 헌화하고 이승만 전 대통령을 찾아갔다.
그는 호놀룰루 동쪽 산기슭에 있는 요양원에 입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