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환경과 건강Environment and Health』에 "모발 연장제의 건강 우려 화학물질 규명"이라는 논문이 발표되었다. 44개 샘플을 분석하여 169종의 화학물질을 검출했는데, 그중 48종은 유해물질 목록에 등재된 것이다. 여기에는 염료 성분, 합성 섬유를 부드럽고 유연하게 만드는 프탈레이트, 폴리염화비닐(PVC)을 안정화시키는 주석 화합물, 그리고 농약 잔류물이 포함되어 있다. 연구진은 모발 연장제가 피부와 지속적으로 접촉하고, 손에서 입으로의 접촉 가능성이 있으며, 휘발성 성분이 흡입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연구진이 하지 않은, 중요한 것이 있다. 모발 연장제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혈액이나 소변에서 실제로 이 화학물질들을 검출하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위험성'(hazard)과 '위해성'(risk)의 차이다. '위험성'은 해를 끼칠 가능성을 의미하고, '위해성'은 용량, 노출 경로(흡입, 섭취, 피부 접촉), 노출 정도를 고려한 후 실제로 해가 발생할 가능성을 뜻한다. 예컨대 일산화탄소를 밀폐된 방에서 흡입하면 치명적이지만 야외에서는 빠르게 희석되므로 문제가 안된다. 알코올은 고용량에서는 독성을 보이지만 와인 한 잔 수준에서는 그렇지 않다. 사과 씨에는 청산배당체가 들어 있어 시안화물을 방출하지만, 사과를 먹다가 씨 몇 알 삼키는 정도로는 아무런 위해도 없다.
우리가 매일 노출되는 화학물질의 수를 추정하기는 어렵지만, 최대 100,000종에 이르며 대부분은 자연 발생 물질이다. 커피 한 잔에만도 1,000종 이상의 개별 화합물이 검출될 수 있는데, 여기에는 아크릴아마이드, 퓨란,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처럼 실험실 연구에서 발암물질로 분류된 것들도 포함된다. 그럼에도 커피가 암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다.
이런 화학물질의 함유량은 극히 미미하여 우리 몸의 해독효소들이 쉽게 처리한다. 과일과 채소에도 수천 종의 화합물이 들어 있다. 감자의 솔라닌처럼 독성물질로 분류된 것도 있고, 히스타민 같은 생체 아민이나 발암성 니트로사민으로 대사되는 것도 있다. 요리를 하면 아크롤레인, 헤테로고리아민, 최종당화산물(AGE) 등 수많은 화합물이 생성되는데, 이것들도 고용량이면 독성을 나타낸다.
수돗물, 치약, 세제, 화장품, 의약품, 향수, 의류, 플라스틱, 식품 포장재 등으로부터 수천 종의 화합물이 우리 몸속으로 유입될 수 있다. 식품 포장재에 사용되는 화합물만 해도 약 14,000종에 달하며, 그중 3,600종은 인간의 혈액, 모발, 모유 샘플에서 검출된 바 있다. 우리는 수많은 유해 화학물질을 식별할 수는 있지만, 위해성을 평가하기는 극히 어려운 복잡한 화학적 환경 속에 살고 있다. 특히 혼합물은 개별 화합물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일 수 있어 더욱 그러하다.
독성학에는 세 가지 기본 원칙이 있다.
첫째, '오직 용량만이 독을 만든다'는 원칙으로, 16세기 의사∙연금술사인 파라켈수스가 한 말이다. '로라제팜'을 소량 복용하면 수면을 유도하지만, 대량 복용하면 영원한 잠에 빠지게 된다.
둘째, '연관성은 인과관계가 아니다'이다. 수탉이 울면 해가 뜨는 건 연관성이 있는 거지만, 수탉의 울음이 해를 뜨게 하지는 않는다.
셋째, 앞의 두 원칙에는 예외가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원칙의 주목할 만한 예외는 '비단조 반응'non-monotonic response이다. 체내 화학물질 농도가 높아진다고 해서 그 효과도 꾸준히 증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낮은 농도에서는 강한 생물학적 반응이 나타나지만, 농도가 높아지면 오히려 반응이 약해지기도 한다. 이 양상은 에스트로겐과 같은 호르몬을 모방하거나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작용을 차단하는 이른바 '내분비계 교란물질'에서 관찰된다. 폴리카보네이트 플라스틱과 캔 내부 코팅에 사용되는 비스페놀 A(BPA)는 약한 에스트로겐 모방 물질이다. 향수의 가소제 및 향 증진제로 사용되는 프탈레이트는 남성 호르몬 억제 효과를 나타낸다. 호르몬은 극히 낮은 농도에서 작용하는데, 이와 비슷하게 극히 낮은 농도의 화학물질에 의해서도 교란이 나타날 수 있다. 낮은 농도에서는 세포 수용체를 차단하거나 활성화하지만, 농도가 높아지면 수용체 감수성이 떨어지고, 더 높은 농도에서는 해독 효소가 가동되어 이 물질들을 분해한다. 용량-반응 곡선은 U자를 뒤집은 모양을 띤다.
반대로 '호르메시스'hormesis라는 현상도 있다. 낮은 용량에서는 유익한 효과를 보이다가 용량이 증가하면 유해한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비타민 A가 대표적인 사례다. 낮은 용량에서는 시력∙면역∙세포분화에 필수적이지만, 고용량에서는 간손상∙기형∙골손실을 유발한다. 호르메시스는 U자형 용량-반응 곡선을 만들어낸다.
우리 환경에 존재하는 내분비계 교란물질, 특히 BPA, 프탈레이트, 식품 포장재와 섬유·실내 장식재에서 발견되는 과불화알킬물질(PFAS)은 특히 우려스럽다. 혈중 농도가 비단조 반응 곡선의 상승 구간에 해당하는 수준에서 검출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프탈레이트는 낮은 용량에서도 남성 불임, 비만, 심지어 심장 질환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8년의 한 연구는 전 세계 55~64세 심혈관 사망자 중 13.497%에 해당하는 356,238명의 사망이 플라스틱에서 용출된 DEHP(디에틸헥실프탈레이트)에 기인한 것으로 추정했다. 추정값임에도 소수점 세 자리까지 표기한 것은 우스운 일이다. 교란 요인confounding factor도 존재한다. DEHP는 심장 질환의 알려진 위험 요인으로 알려진, 포장된 고도가공식품에서 더 많이 발견된다.
요약하자면, 수천, 수만 종의 합성 및 천연 화학물질이 항상 우리 몸 속을 떠돌아다니고 있다. 개별 물질의 위험성은 실험실 및 동물 연구를 통해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지만, 위해성을 평가하기는 훨씬 더 어렵다. 혈중에 존재하는 복잡한 혼합물은 개별 성분들의 단순한 합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몸에는 각종 해독 효소, 천연 항산화제, 면역세포가 갖춰져 있어 어느 정도 방어가 이루어진다. 그러니 식품이나 소비재에서 미량의 위험 물질이 발견되었다는 뉴스에 놀라거나 지나치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분비계가 발달하는 임신 중이나 영유아기에는 내분비계 교란물질에 대한 노출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제조업체들이 이런 내분비 교란물질의 대체재를 개발하도록 압박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