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 아니 무생물까지도 불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불교를 민족이나 국가라는 테두리로 제한시킬 수 없는 이유다. 호국불교나 반공 또는 민족주의는 불교의 목표가 될 수 없다. 불교계는 호국이나 반공 또는 민족주의라는 특정 영역이나 어떤 사상과 주의를 지키려고 하기 보다는 호법이라는 보다 큰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호국불교라는 개념은 (불교의) 근본교리와 배치되지만 더 큰 문제는 호국불교를 빌미로 교단지도부가 정권과 결탁하여 그들의 신변의 안전을 도모하려 하였다는 점이다.” <김순석 한국국학진흥원 목판연구소장>
8월 9일 열린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 주최 '호국불교 재조명' 세미나에 참석, 발제와 토론을 벌인 학자들. 왼쪽부터 박희승 불사연 사무국장, 조준호 교수, 김호성 교수, 김용태 교수, 김상영 교수, 김순석 소장, 박한용 실장.
호국불교는 불교의 이상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호법불교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됐다.
김순석 한국국학진흥원 목판연구소장은 9일 불교사회연구소 주최로 총무원 국제회의장에서 개최된 ‘한국불교사에서 호국불교 전통의 재조명’ 학술세미나에서 “호국불교는 한국불교의 독특한 현상으로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많았다”면서 “이젠 호국불교가 아닌 호법불교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호국불교의 사상은 지배계급의 논리를 옹호하고 인명을 살상하는 살육 전쟁까지 정당화하는 역할을 담당하면서 살생유택(殺生有擇)이라는 비불교적인 개념이 성립된다. 이러한 사상은 불교의 근본교리와 배치된다”고 김 소장은 덧붙였다.
김순석 소장은 발제를 통해 호국불교에 대한 대안으로 ▲엄정한 수행풍토를 확립하는 불교다운 불교 지향 ▲한국 현대불교사의 분규, 법난으로 얼룩진 역사에서 화합하는 불교계 ▲수행자와 중생들이 소통하는 불교 지향 ▲불법을 알고 바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을 키우는 불교 지향 ▲현대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과 보급 ▲현장을 찾아나서는 불교 ▲미래 사회를 준비하는 불교를 제안했다.
이날 세미나가 열린 국제회의장에는 200여 사부대중이 동참, 호국불교에 대한 평가에 큰 관심을 보여주었다.
김순석 소장의 발제에 지정 토론자로 나선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호국불교는 전통사회에서는 왕실 또는 지배계급과 유착한 불교의 권력과의 유착관계에 다름 아니다”면서 “이러한 것이 곧 호국불교라고 불러야 할 것인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박 실장은 이어 “사실 호국불교는 독재정권을 정당화하는 데 기여한 하나의 정치이데올로기 또는 종교의 외피를 쓴 안보이데올로기”라고 폄하했다.
박 실장은 또 “현대 한국 불교계가 안고 있는 병폐를 호국불교, 기복불교, 조폭불교, 문중불교”로 정의하면서 “호국불교는 현대 한국불교의 발전을 좀먹는 요소이기도 했다”고 비판했다. 박 실장은 특히 “승려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나선 것을 하나의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그것을 호국불교라는 용어를 붙여 고정된 실체이자 한국불교의 전통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고 주장했다.
호국불교에 대한 재조명을 통해 한국 역사에서 불교의 역할과 기여를 밝힘으로써 역사를 바로 기록하고, 특히 1700년 불교의 문화와 문학, 정치, 시회 등 제반분야에서 끼친 영향을 파악하고자 하는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의 시도는 첫 세미나에서부터 ‘호국불교에 대한 강한 비판’이라는 ‘난관’에 봉착했다.
이날 학술세미나는 박희승 불교사회연구소 사무국장의 사회로 ▷경전상에 나타난 호국불교의 검토(조준호 고려대 연구교수) ▷한국불교사의 ‘호국’ 사례 검토와 호국불교 개념의 재고(김용태 동국대 연구교수) ▷한국 근현대사에 호국불교의 재검토:역사적 사례와 이론(김순석 한국국학진흥원 목판연구소장)을 주제 발표했다.
토론자로는 김호성 동국대 교수, 김상영 중앙승가대 교수,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이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