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척慘慽
열왕기하 4:18~37
자식을 잃은 어미의 고통과 슬픔을 ‘참척(慘慽)’이라고 합니다. 참혹하고 비통하여서 가늠할 수 없는 슬픔이라는 뜻입니다. 옛날 중국 진(晋)나라 제후 환공이 유람 차 뱃길을 나섰는데 하인이 원숭이 새끼 한 마리를 붙잡았습니다. 그러자 어미가 슬피 울며 뒤를 쫓아오는데 무려 백 리를 따라왔습니다. 그러다가 어미가 더 이상 새끼를 구할 길이 없다고 판단하여 제 머리를 뱃머리에 들이받고 죽었습니다. 사람들이 어미의 배를 갈라보았더니 창자가 다 끊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나온 말이 ‘단장지애(斷腸之愛)’입니다. 자식을 떠나보낸 고통을 ‘상명지통(喪明之痛)’이라고도 하는데 공자의 제자 자하(子夏)가 아들이 죽자 밤낮 울다가 눈이 멀었다고 전해집니다. 생명을 가진 자는 누구나 한번은 죽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품부된 생명을 누리지 못하고 어린 시절에 죽는 일은 자신에게는 애석하고 가족에게는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수넴 여인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지성껏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집에 하나님의 사람을 위한 거처를 마련하여 잠시라도 쉬어갈 수 있게 하였습니다. 지나갈 때마다 음식을 제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침상을 마련하고 탁자와 의자와 등잔을 준비하여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에게 소홀하지 않았습니다. 이들 부부가 그렇게 한 것은 어떤 대가를 기대하거나 공명심으로 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위한 일이 곧 하나님을 향한 경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종교를 위하여 죽는 사람은 있어도 신앙을 위하여 사는 사람이 드문 시대에 귀감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모름지기 하나님의 사람이 누리는 호사란 이런 것 같아 부럽습니다. 이들 부부의 사랑에 화답이라도 하듯 엘리사는 이 가정에 아들을 얻는 기쁨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어느 정도 자라다가 갑자기 죽고 말았습니다. 애초에 주지 않았더라면 이런 큰 슬픔도 없었을텐데 야속하고 안타깝기만 합니다. 복을 받을 사람에게 왜 고통을 주시는 걸까요?
오늘도 이 땅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아니 어른들의 탐욕으로 수많은 어린이가 생명을 잃고 있습니다. 못돼먹은 어른들은 어린이와 약자들의 생명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주님, 세계 곳곳에서 생명을 유린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 땅에도 증오와 대결을 부추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이들을 벌하여 주십시오.
Navi Choi https://cyw.pe.kr/xe/index.php?mid=a1&document_srl=11327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