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계 2:1∼7
제목: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 기독교는 귀 있는 자가 성령께서 책망하신 말씀을 듣고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는 신앙입니다.
계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
계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구원파와 그런 계열의 이단들은 아예 회개를 하지 않으므로 당연한 이단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정통교회에 다니는 분들 중에 입술로만 립 서비스로 회개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지 않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회개는 회개‘기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는 것입니다. 술주정뱅이가 말로는 술 마신 것에 대해서 회개‘기도’하고, 회개기도를 마친 후에는 계속 술을 마시며, 술 마시기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고 회개했다고 주장하는 것을 생각하면 계2:5이 잘 이해될 것 같습니다. 간음을 한 자가 회개기도만 하고 간음하기 이전의 단정한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그것을 어찌 회개라고 하겠습니까? 기독교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영화 중에 ‘투캅스’가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부패 경찰인 안성기는 횡령∙독직∙간음 등을 일삼고 교회에 가서는 눈물을 질질 짜며 회개기도를 합니다. 회개기도는 하지만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지’ 않는 것은 조롱 받는 코미디가 되고 회개하지 않은 것이 됩니다. 계2:5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
②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
③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
①을 하지 않으면 ②회개하지 아니한 것이 되고 ③주님이 교회에 가서 그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시겠다는 것입니다.
● 계 2:1∼7을 전반적으로 살펴봅니다. 서두의 인사말
계2: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
은 계 1:12, 20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계1:12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
계1:20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
주님은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계십니다. 이 말은 주님이 교회에게 영적인 삶을 요구하고 계신 것을 시사합니다. 주님이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신다는 것은 주님은 모든 교회에 임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권세는 교회를 붙잡아 유지하시는 권세와 버려버리는 권세를 모두 포함합니다. 주님은 교회가 잘한 것을 다 아시고 칭찬하십니다.
계2:2.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
에베소 교인의 ‘행위’('한 일', 새번역)는 ‘수고’와 ‘인내’입니다. 수고는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고 거짓 사도들을 적발하여 폭로한 것입니다. 이는 에베소 교회가 이단∙거짓 선지자 등 악한 자들을 참고 내버려 두지 못하는 진리를 가지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새번역) 나는 네가 한 일과 네 수고와 인내를 알고 있다. 또 나는, 네가 악한 자들을 참고 내버려 둘 수 없었던 것과, 사도가 아니면서 사도라고 자칭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그들이 거짓말쟁이임을 밝혀 낸 것도, 알고 있다. |
‘악한 자들’은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이고 6절에서 ‘니골라당’으로 불리는 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이는 주님이 미워하는 자들입니다.
계2: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
정상적이고 건전한 복음주의와 개혁주의는 사도는 사도 시대 이후로 그 직분이 종결되었다고 보는데, 이단∙사이비∙신비주의는 현재에도 사도가 있다고 어거지를 쓰고 거짓말을 합니다. 믿음과 은사에서 훌륭한 분들이 현 시대에도 있을 수 있지만 그런 분들이 존경받을 사역자는 될지라도 좁은 의미의 진정한 사도는 아닙니다. 사도와 선지자는 교회의 직원들 중 비상 직원(非常 職員, extraordinary officers)입니다. 현대 교회에도 현재까지 존재하는 통상 직원(通常 職員, ordinary officers)은 장로∙집사∙교사입니다. 위대한 종교개혁자 루터∙칼빈∙쯔빙글리도 비상 직원이 아니라 통상 직원입니다. 장로와 교사의 직분으로 교회를 잘 섬긴 분들이지요.
● 주님은 에베소 교회의 잘한 것을 칭찬하셨지만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엄중히 지적하고 책망하십니다.
계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
교회를 영적이고 추상적인 단체로만 보면 안 됩니다. 교회에 소속하고 구성원이 된 성도들 모두의 실제적인 집합이기도 합니다. 계2:4의 책망은 성도들을 향한 것이고 이 말씀을 읽고 듣는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성도들은 모두 거듭나고 회심할 때 주님을 처음으로 사랑했을 것입니다. 그 처음 사랑이 식은 것도 모자라 버리기까지 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의 깊은 의미는 잘못의 고백을 넘어서 첫 사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계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
이 회개의 촉구는 성도들을 사랑하시는 주님이 회복의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회개하여 처음 사랑을 회복해야 하고, 혹시 처음 사랑이 처음 믿을 때 전혀 없었다면 주님을 진심으로 믿고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본디 교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부름 받아 모인 모임입니다. 이것이 참 교회이며 주님의 몸이 된 지체들(엡1:23)입니다.
롬8: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위 구원의 서정(황금사슬)에 나오는 성도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롬8:28)이고, 이들은 여러 명의 복수(複數, 성도들)인데, 참 교회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롬8:29)이고 미리 정하신 그들이며 의롭다 하신 그들(롬8:30)입니다. 이 성도들에게 주님은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회개를 촉구하시는데, 그 회개는 회복의 기회이고 축복입니다. 주님께서 주의를 주시고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지 않게 하는 기회를 주신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2:7)라는 명령은 일곱 편지 모두에서 믿음의 과정과 싸움에서 극복하고 이기는 자들에 대한 약속 가운데 등장합니다. 주님께 진정으로 충성하고 승리한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시는 약속인 것입니다.
계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
이것은 예수님이 이전에 전하신 가르침과 전적으로 일치합니다. ‘이기는’ 성도는 모든 악의 권세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로 말미암아 이깁니다. 성도는 주님의 승리를 공유하는 자들입니다. 이기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할 것입니다. 직접적으로는 에베소 교회, 넓게는 현대 교회의 성도들에게도 주어진 이 약속의 말씀은 하나님의 낙원의 영원한 생명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성도들의 것이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계2:7의 생명나무(크실론)는 십자가(죽은 생명의 나무)를 의미한다고 합니다(베이커 주석). 이는 복음적으로 수용할만한 좋은 설명이라고 생각합니다.
● 계2:1∼7은 한 문단(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말씀)입니다. 묵상자가 보기에 이 문단의 핵심은, 성도가 중생∙회심할 때 가졌던 처음 사랑(계2:4)을 회복하도록 참된 회개를 하는 것(계2:5)이고, 이렇게 회개하고 처음 사랑을 회복한 성도들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는다는 것(계2:7)입니다. 비록 계2:5에서 주님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말씀하셨지만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회개하지 말고 촛대를 뺏기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면 촛대가 그 자리에 계속 있을 것이라는 강력한 권고이기 때문입니다. 성도와 교회는 성화의 진전을 하지만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그 완벽하지 못한 부분을 주님이 아시기에 회개하라고 사랑의 경고 겸 격려를 하시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계2:1∼7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인데요. 회개의 깊은 수준은 잘잘못만 자아비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축복된 회개를 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첫댓글 요한계시록에서 보면(전승에 의하면 요한은 생애의 말년을 에베소에서 보냈다고 한다).
에베소 교회가 바른 교리를 지키기 위하여 수고하고 여러 시련 중에도 인내하였으나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냉랭한 교회로 변해 버린 것 같다(계 2:2-4).
<GODpia 성경: 아가페출판사>, “에베소”
아시아의 로마 관할령 안에 있던 항구 도시. 사모스섬 맞은편에 있으며 카이스터강 남쪽 5.5km 지점에 자리 잡고 있었다.
A. 기독교 이전 시대 : 이 지역 최초의 정착민인 카리아인들을 추방하고 에베소를 이오니아 동맹 안에 포함시킨 사람은 아테네의 안드로클루스였다(B.C. 약1044년).
주요 무역로가 교차되는 위치에 자리잡은 에베소는, 상업의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아르테미스(아데미) 여신 승배의 중심지였다. 아데미 여신은 고대 근동 풍요의 신이며, 에베소에 있던 아데미 신전은 '고대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아데미[Artemis]) B.C. 555년경 에베소를 정복한 리디아 왕 크로에수스는 에베소 도시 전체를 아데미 여신에게 헌납하였다(혜로도투스의 역사. i. 26).
B.C. 546년에는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크로에수스를 물리치고 에베소를 페르시아의 영토로 복속시켰다. 그후 B.C. 334년 알렉산더 대제가 페르시아를 무찌름으로 인하여 이 도시에 대한 약2세기 동안의 페르시아 통치는 막을 내렸다. 알렉산더의 부하 장군이었 던 후계자 리시마쿠스는 뷜뷜다그 언덕과 파나일 언덕을 잇는 견고한 성벽을 쌓았으며 또한 북쪽 해인에 새로운 항구를 건설하였다. 그리고 그 항구를 통하여 애굽의 프톨레미 1세와 무역 거래를 하였다. B.C. 281면 리시마쿠스는 수리아의 셀류쿠스 1세에게 패하였다. 그리하여 그 후 약 150여년 동안은 에베소가 수리아의 지배하에 있었다. 그러나 B.C. 133년에는 에베소가 로마의 통치 하에 들어갔다. B.C. 88년 로마의 치하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반란을 일으켰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로마 치하에서 에베소는 주요 요새지가 되었으며 초기 기독교 시대에는 매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B. 사도 시대 : 가이사 아구스도시대 부터 번영을 누리기 시작하던 에베소는 점차적으로 국제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또한 고대 종교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로도 널리 알려졌다. 아데미 신전에는 약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신전 뜰이 있었으며, 많은 유방을 달고있는 거대한 아데미 여신상이 있었다. 사도 바울 당시 이 신전 앞에는 은으로 아데미 여신의 신전과 신상을 축소하여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팔던 장인(匠人)들이 있었다(행 19:24).
그리고 이 도시는 자체적인 민회가 있었으며(19:32, 35), 또한 민회의 의장 격인 서기장도 있었(19:35).
바울은 에베소를 두 차례 방문하였다. 그는 A.D. 52년 가을 제2차 전도 여행도중,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에 잠시 방문하였으나 곧 떠났다(18:19-21).
그후 A.D. 54년 제3차 전도 여행 때 이곳을 다시 방문하여 회당에서 3개월(19:8) 그리고 두란노 서원에서 약 2년(19:9,10) 동안 강론하였다. 이곳에서 바울의 사역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으며 또한 사랑을 행함으로 자기들의 신앙을 나타내 보여주었다(19:18).
바울이 제3차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던 도중, 에베소 근처 밀레도에서 특별히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여 작별 인사를 하고 교회를 잘 돌보라고 당부하였다(20:26-37).
에베소서의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그당시 에베소 교회 안에는, 서로 순수한 사랑을 나누지 못하여 가족 관계와 주종관계에 심각한 갈둥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다(엡 5:1; 6:9).
또한 요한계시록에서 보면(전승에 의하면 요한은 생애의 말년을 에베소에서 보냈다고 한다).
에베소 교회가 바른 교리를 지키기 위하여 수고하고 여러 시련 중에도 인내하였으나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냉랭한 교회로 변해 버린 것 같다(계 2:2-4).
C. 사도 시대 이후 : 티베리우스 황제때(A.D. 14-37년) 일어난 지진으로 인하여 큰 재해를 입었던 에베소는, 설상가상으로 B.C. 130년경에 건설한 방파제 때문에 항구 전체가 진흙 침전물로 메꿔져 버렸다. 그리하여 이 도시가 둘로 나눠져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세워진 교회는 크게 부홍 하였으며 A.D. 431년에는 그리스도의 양성(신성과 인성)에 관해 논쟁을 벌였던 교회 회의가 이곳에서 열렸다.
오늘날 고대 에베소의 유적지는 계속되는 침전으로 인하여 바다로부터 6-8km 내륙에 자리 잡고 있다.
※ 참고 문헌J.T. Wood,Discoveriesat Ephesus(1890; repr.Hildesheim, N.Y.:1975); O.F.A. Meinardus, St. Paul in Ephesus and the Cities of Galatia and Cyprus(New Rochelle 1978)
@장코뱅 에베소에 사도 요한이 구금되어 있었나 보군요. 에베소에 대해 폭넓게 알려주는 좋은 설명입니다.
@장코뱅
@노베 공감합니다.
회개에는 지름길은 없으며, 때로 맨 처음에 해야 하는 일인 언제 믿음이 딴 길로 빗나가기 시작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초인적 노력을 요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또 죄로 말미암아 사람의 기억력은 왜곡되기 때문이다(참고. 민 11:18~20; 14:2~4). 하지만 에베소 신자들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증언의 빛을 잃어버릴 것이다(2:5b).
그들이 회개한다면, 그리스도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낙원에서 생명나무 열매를 먹을 권리를 주실 것이다(2:7). 이 마지막 이미지는 되찾은 낙원을 가리킬 뿐 아니라(창 2:8~15), 또한 아데미 숭배에 직접 도전을 가한다. 죄인들의 참된 피난처는 아데미의 나무가 아니라 십자가다. 헬라어에서 '나무'를 나타내기 위해 흔히 사용되는 말은 덴드론(dendron)이다. 하지만 2장 7절은 잘린 나무, 나무로 만든 것, 또는 살아있지 않은 나무를 말하는 크실론(xyl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래서 2장 7절에 나오는 "생명나무"는 문자적으로는 "죽은 생명의 나무", 또는 십자가다(예를 들어, "나무[크실론]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나니", 갈 3:13; NASB; NRSV[=신21:23]; 참고. 행 10:39; 벧전 2:24). 얼마나 강력한 초대인가! 십자가로 돌아가라. 그리고 너의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
『베이커 성경주석: 신약편』, “에베소서 2장”, p.716.
@장코뱅 십자가에 대한 심도 있는 설명에서 은혜와 지식 모두를 얻습니다.
@장코뱅 헬라어로 보면 분명히 다른 용어를 썼군요. 잘려나가 죽은 나무로 만든 십자가가 바로 생명나무라는 것을요.
베이커 주석이 정확하고 의미 깊게 짚어주었네요.
감사합니다.
@코람데오 네, 공감합니다. 좋은 주석은 구비해 놓는 게 좋겠습니다.
"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본문은 예수께서 지상 사역 중 반복해서 내리신 명령이며(마 11:15;13:9, 43;막4:9, 23;눅 8:8;14:35), 본서에서 일곱 교회를 향한 서신의 결론적 어구로 반복된다(11, 17, 29절;3:6,13, 22). '귀 있는 자' 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에콘 우스'는 개교회 전체에 속한 청중들 모두를 가리키는 것으로(11, 17, 29절;3:6,13,22) 여기서 '귀'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통역하시는(Swete) 그리스도의 영이요(Beckwith) 예언의 영인(Kiddle) 성령의 권면을 들을 수 있는 귀를 나타낸다. 한편 '교회들에게'(타이스 엑클레시아이스)는 복수로 각 교회들에게 보내진 서신 맨 끝에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문구이다. 이는 이 편지들이 특정한 한 지역 교회에 보내진 것이 아니라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보편적인 교회를 향해 보내진 것임을 시사한다(Lenski, Hughes). 이기는 그에게는 본문은 그리스도의 권면대로 행하여 승리한 자들에게 주어진 약속이다.
'이기는 그에게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토 니콘티'는 관사가 있는 현재 능동태 분사로 계속해서 이기는 자를 가리키며 본서와 복음서에서 여러 번 반복되는 문구이다(17, 26절;3:5, 12,21;5:5;12:11;15:2;17:14;요 16:33;요일 2:13). 또한 이 말은 군사적인 용어로 그리스도와 사단의 타협 없는 대결상을 잘 묘사한다. 즉 사단과 대결하여 끝까지 그리스도에게 충성한 자를 나타낸다(Mounce).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낙원'의 헬라어 '토 파라데이소'는 페르시아에서 유래된 말로 일차적으로는 인류 최초의 거주지였던 에덴 동산을 암시하며(창 2:8-10) 궁극적으로는 구원의 백성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될 하나님 나라 자체를 의미한다(22:14, 14,눅23:43, Morris, Robertson, Johnson). 한편 '생명나무의 과실은 죽음과 고난이 존재하지 않는(22:2 )영생(生)을 상징한다(Johnson, Mounce, Ladd, Beasley-Murray).
그리스도의 권면대로 회개하여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에베소 교인들은 첫 창조 때에 에덴 동산이라 했으며 종말론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할 예루살렘 즉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게 되며,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접근조차 할 수 없었던 생명나무 즉 영생을 영원히 누리게 될 것이다.
『뉴 호크마 주석: 계시록』, “계시록 2장”, p.3004∼3005.
@장코뱅 낙원과 생명나무에 대해서 깊게 설명해 주니 저도 도움을 받았었습니다.
@장코뱅 아멘 🙏 🙏 🙏
좋은 묵상입니다. 은혜와 교리가 버무려져 시너지 효과를 내주는 것 같습니다.
공감합니다.
<GODpia 성경: 아가페츨판사>, “니골라당”
에베소와 버가모 교회에 나타났던 이단의 무리(계 2 : 6, 15).
설경 이외의 자료에서는 니골라당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어떤 학자들은 니골라당과 발람의 추종자들을 같은 무리로 본다. 그 근거는 이 두 단어의 어원상 의미가 모두 '백성들을 정복함'(헬. '니카 라온' ; 히. '발라 암'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70인역에서도 히. '발라'를 헬. '니카오'로번역하지 않았다. 다른 학자들은 니골라당이 일곱 집사 가운데 한 사람인 안디옥의 니골라를 추종하던 무리일 것이라고 추측한다(행 6 : 5).
그러나 이 견해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는 없으며, 아마도 동명이인임이 틀림없는 것 같다. 니골라당은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나(계 2 : 14) 이세벨의 추종자들(2 : 20-24)처럼, 우상 숭배와(특별히 우상에게 제물로 바친 음식을 먹었음), 부도덕한 행동을(참조. 터툴리안, 클레멘트)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니골라당과 후기 영지주의자들을 서로 연관시키고 있다(참조. 히폴리투스, 유세비우스).
성경이 직접 기록한 이단이군요. 집사가 이단을 만든 게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에이프릴 맞아요. 공감합니다.
이 묵상을 통해서 마지막 시대의 교회나 개인적 종말에나 정말로 꼭 필요한 것이 회개라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처음 행위를 회복하는 것, 곧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것인데 이게 말 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는 게 많은 사람들을 딜레마에 빠지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계속해서 마귀와 싸워서 죄를 이겨내고 끝내는 승리하는 것이 관건이기 때문에 분투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것을 잘 짚어주셔서 처음 사랑을 회복하고 회개를 사랑하는 성도의 길을 가도록 격려해주시네요. 감사합니다.
네, 쉽지 않죠. 공감합니다.
그럴지라도 율법폐기론자들처럼 아예 회개를 안 하는 것과, 말로만 회개'기도'를 올리고 반복적으로 계속적으로 죄악을 행하며 실질적 회개는 하지 않는 죽은 믿음은, 엄히 경계해야 합니다.
율법폐기론과 말로만 회개'기도'는 기독교를 장난감과 코미디로 만들 수 있습니다.ㅠㅠ
@장코뱅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