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에 대하여
우리 사회에서 선물이 가장 넘쳐나는 시기는 연말과 오월의 ‘가정의 달’이다. 거리에는 꽃다발이 오가고, 화려한 포장지에 싸인 상자들이 사람들의 손을 거쳐 분주히 이동한다. 누군가는 부모에게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누군가는 자녀의 손을 잡고 작은 장난감을 사준다. 선물은 인간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오래된 의식인지도 모른다.
어버이날 아침, 나는 어머니의 영정 사진 앞에 작은 꽃 한 송이를 놓고 조용히 『어머니의 마음』 노래를 불러드렸다. 살아계실 때는 미처 다 표현하지 못했던 감사와 그리움이 뒤늦게 가슴 깊이 차올랐다. 하늘나라에서 평안하시고 자손들을 굽어살펴 주시도록 기도하였다. 어리석은 자식은 뒤늦게야 비로소 그 소중한 존재의 무게를 깨닫는다.
이른 아침에는 미국에 사는 딸 가족과 화상통화를 했다. 학업과 운동에 열중하는 외손들은 몰라보게 자라 있었다. 우리말로 “할아버지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목소리 그 자체가 기쁜 선물이었다.
엊그제 어린이날에는 친손들과 점심을 함께하며 오누이가 오목을 두라고 바둑판을 선물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집안 가득 봄 햇살처럼 번지면서 소시민에게 소박한 즐거움을 안겨 주었다.
그런데 오후가 되자 두 개의 선물이 도착하였다. 하나는 운동이나 열심히 하길 바라는 아내의 선물이었고, 다른 하나는 며느리가 보낸 떡과 각종 생선이었다. 이는 아이들이 예전의 꽃다발 대신에 보낸 것으로 생활인다운 조치였다. 모두 선물 그 자체보다도 세심한 배려의 마음이 고마웠다.
그러나 기쁨 한편에는 깊은 부끄러움도 밀려왔다. 돌이켜보면 부모님 생전에 나는 변변한 선물 하나 제대로 드리지 못했다. 겨우 생활비 몇 푼 보태드린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효도란 형편이 좋아진 뒤에 하는 일이 아니라 마음이 살아 있을 때 해야 하는 일이었다. 모든 부모는 귀한 선물을 원한 것이 아니라, 자식의 따뜻한 말 한마디와 함께하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선물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흔히 값비싼 물건일수록 좋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한 선물은 가격이 아니라 기억과 정성 속에 존재한다.
오래전 누군가가 건네준 작은 손수건 하나가 평생 마음속에 남기도 하고, 무심히 건넨 위로의 한마디가 절망 속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도 한다.
엊그제 스승의 날에는 오랜 옛 제자의 조그만 선물을 받았다. 결국 선물이란 물건이 아니라 “당신을 잊지 않았습니다”라는 마음의 표현이다.
그래서 물건보다 더 소중한 선물은 시간과 관심이다. 바쁜 세상 속에서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내어 함께 걸어주는 일은 쉽지 않다.
병든 부모 곁에서 말없이 손을 잡아주는 일, 어린 자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일, 외로운 사람의 이름을 기억해주는 일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선물이다.
독일의 사상가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이란 “주는 행위”라고 말했다. 인간은 줄 때 비로소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는 뜻일 것이다.
또한 「빈센트 반 고흐」는 동생 「테오」가 보내준 생활비와 편지라는 선물이 없었다면 끝내 그림그리기를 지속하지 못했을 것이다. 때로 인간의 삶을 움직이는 것은 거대한 부와 권력이 아니라 누군가의 조용한 지지와 믿음이다.
문학 속에서도 선물은 자주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상징으로 등장한다. 미국 작가인 「오 헨리」의 『동방박사의 선물』(The Gift of the Magi)에서 가난한 부부는 서로를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을 포기한다. 아내인 「델라」는 머리카락을 잘라 남편의 시곗줄을 사고, 남편인 「짐」은 시계를 팔아 아내의 머리빗을 산다. 결과적으로 선물은 쓸모없게 되었지만, 서로를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준 그들의 사랑은 오히려 최고로 빛나는 선물이 되었다.
또한 『어린 왕자』에서는 “길들인다는 것” 자체가 서로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임을 말한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서로의 시간을 선물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인간관계와 사랑, 우정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관심과 기다림과 책임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오늘날 아이들은 너무 많은 선물 속에서 살아간다. 생일, 입학, 졸업, 어린이날, 크리스마스마다 온갖 물건들이 쏟아진다. 그러나 풍요가 반드시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쉽게 얻은 물건은 쉽게 잊힌다.
부족했던 시절의 사람들은 연필 한 자루와 공책 한 권도 오래 간직하며 아껴 썼다. 기다림 끝에 받은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선물은 많을수록 가치가 커지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는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그렇다면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은 무엇일까. 그것은 올바른 인격과 살아가는 태도일 것이다. 많은 재산을 남겨주지 못하더라도 정직하게 살아가는 모습, 어려운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마음,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용기를 보여주는 부모는 자녀에게 평생 사라지지 않는 유산을 남긴다.
반대로 자식이 부모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효도라는 이름의 거창한 행위가 아니라 “당신 덕분에 잘살고 있습니다”라는 ‘안도의 확신’일지도 모른다. 부모는 자식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큰 위안을 얻는다.
인간은 결국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간다. 마지막 순간까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렇다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우리가 남길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누군가의 마음속에 남는 따뜻한 기억일 것이다. 재산은 세월이 지나면 흩어지고, 물건은 낡아 사라진다. 그러나 선한 말 한마디, 힘겨운 시절에 건네준 위로, 누군가를 위해 흘린 눈물은 오래도록 사람의 가슴 속에 남는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두 이미 수많은 선물을 받고 살아왔다. 부모에게서는 생명을, 자연으로부터는 계절을, 친구로부터는 위로를, 자녀에게서는 살아갈 이유를 선물 받았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이란 거대한 선물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받았는가가 아니라, 받은 것을 다시 누구에게 어떻게 돌려주며 살아가는가 하는 점이다.
어머니의 사진 앞에서 다시 한번 생각한다. 살아 있는 오늘이야말로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선물은 내일로 미루면 늦어진다. 사랑도 감사도 결국 지금 전해야 한다. 인간이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결국 “당신이 있어 내 삶이 따뜻했습니다”라는 한마디이기 때문이다.
(2026.5.8.작성/5.27.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