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에 나타난 근대 의식
* 불합리한 계층 구조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에는 신분적 차별위에 구축된 봉건적 현실에 대한 부정이 전제되어 있다. 천민신분인 기생도 양반자제와 인격적으로 대등하게 사랑을 나눌 수 있음을 제기한 것은 곧 현실에 있어 존재하는 신분관계를 부정한 것이었다. 양반과 천민 사이에는 넓고 깊은 신분의 강물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것은 천민으로서는 좀처럼 뛰어넘을 수 없는 강이었다. 신분의 차별과 천민에 대한 학대가 심할수록 그 강을 뛰어넘고자 하는 야심은 더욱 불타올랐을 것이다. 특히 아버지는 양반이며 미와 재능면에서 모자랄 것이 없었던 춘향에게는 그 야심은 훨씬 컸을 것이다. 이처럼 신분적 현실의 부정과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의 실천으로서 춘향의 이도령에 대한 사랑은 성립되고 있기에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그 신분적 현실의 부정을 다시 부정하는 변학도에 대한 춘향의 필사적인 항거는 당연한 것이었다. 즉 춘향은 당대 민중을 이도령은 양반층 내부의 양심적인 부분을 변학도는 디시 그 내부에 있어 반민중적인 부패한 부분을 전형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므로 이것은 민중과 양심적 양반과 결합하여 부패하고 민중수탈적인 부분을 제거함으로써 봉건적 현실을 개조하고 자신의 사회경제적 처지를 향상시킬 수 있을 거라는 당대 민중의 정치적 이상이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 성과 저항 정신
조선시대는 철저한 유교중심 사회로써 될 수 있는 한 애정을 억제하게끔 했으며 금욕을 권장했다. <춘향전>은 그러한 전통윤리를 깨뜨리고 대담하게 애정을 행동으로 표현하였다. 당시 깊고 깊은 으슥한 안방 구석에 갇힌 채 햇볕도 잘 보지 못하는 부녀자들이 억제당한 애정의 욕구불만을 달래 보려고 <춘향전>을 탐독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처럼 <춘향전>은 애정소설로서 당시 남녀의 애정 생활을 계몽해 주었다. 애정의 대담한 표현은 사회 문화의 발전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 이렇게 금욕이 미덕이 되고 남녀의 격리가 관습화된 까닭에 육체는 그 효용과 기능의 일부를 상실해 버리게 된다. <춘향전>은 유교의 금욕주의적 구속 때문에 두터운 장막 속에 갇혔던 육체를 해방시켜 주었다. 인간 생활 중 가장 중요한 애정의 표현을 극히 리얼하게 표현한 성적 유희도 하나의 지식이요 문화이기에 제일 먼저 지식의 소유자인 양반들 사이에서 보급되었을 것이고 그것이 차차 서민층에까지 퍼져 갔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생활의 보급과 평준화는 서민층이 차차 사회의 중심으로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춘향전>에서는 정숙한 열녀의 정렬과 요염한 기첩의 음탕한 관능을 한데 모아서 춘향을 그렸다. 춘향에게는 퇴기 월매의 요염한 기방의 유희 기법이 그림자처럼 드리우고 이 도령에게도 아버지가 속하는 상층 양반층의 속물적이 관능에 탐닉하는 풍습의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다. 즉 <춘향전>은 그 속에 기성 윤리에 저항하는 정신을 담고 있는 내적 혁명, 의식 혁명의 글이라고 하겠다.
* 민중의 정치 의식
<춘향전>에서는 외관상 결연을 주도해 나가는 자가 이도령인 것처럼 나타나지만 그러한 외관과는 달리 양인의 연대 관계는 실질적으로 춘향 쪽의 주도에 의해 성립되고 있다. 즉 유희를 위해 접근하였던 이도령을 변화시켜 마침내 상호신뢰의 관계 위에서 연대를 구축한 것은 바로 춘향 쪽에 의한 것이라는 것이다. 곧 이도령과 봉건 군주의 일방적 시혜에 의해 춘향이 신데렐라처럼 신분이 상승되는 것이 아니라 춘향 쪽에서의 그 동안의 주체적 노력과 고통스런 항거의 결과 이도령과의 연대관계가 달성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친민중적 양반과의 연합에 의해 그 공동의 적인 탐관오리를 제거해 버리고 나면 부당한 신분적 차별에 입각해 잇는 봉건적 현실이 개조되고 자신의 사회적 처지가 향상되어 그 삶의 조겅이 개선될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당대 민중의 정치적 입장의 표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변학도가 제거된 마당에서 봉건군주의 축복 속에 춘향과 이도령이 정식부부로 맺어지는 것은 확고한 동반자 관계를 이룩한 민중과 양심적 양반에 의한 새로운 시대의 출발을, 그에 대한 민중의 염원을 표현한 것이라고 보겠다. 이도령과 춘향의 대등한 결합을 위해 이도령을 미혼으로 남겨두었다는 것이 그것을 반영한다. 그러므로 <춘향전>의 결말을 양반 지배층의 일방적 시헤에 의한 춘향의 양반계급으로의 편입이라고 해석해서는 안 되며, 이는 오히려 민중 쪽에서의 쟁취라고 보는 것이 옳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