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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청약에 당첨됐을 때 부모님께 아까운 청약통장을 왜 낭비했냐는 핀잔을 들었어요. 2018년 입주할 때도 주변에서 얼마나 말렸는지 몰라요. 당시에도 미분양인 아파트가 조금 남아 있었으니까요. 부동산 관련 커뮤니티에서 ‘한숨시티’라며 조롱하는 글도 많이 봤죠. 이제는 아파트값이 분양가보다도 2배는 뛰었으니 마음 편하게 삽니다.” (용인 처인구 ‘e편한세상용인한숲시티’ 주민)
유치원생 자녀를 둔 주부 박 모 씨의 얘기다. 그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읍 일대 ‘e편한세상용인한숲시티(6800가구)’ 아파트를 결혼 전 분양받아 입주 때부터 살고 있다. 남사지구로 불리는 이곳에는 유치원, 초등학교를 비롯해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지난해 개교하면서 자녀 학교 걱정도 덜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최근 e편한세상용인한숲시티 전용 84㎡ 실거래가는 5억원을 넘었다. 5단지에서 지난 4월 5억200만원(16층)에 매매 거래가 나왔고, 앞서 지난해 10월에는 선호도 높은 20층 매물이 5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는 용인 3개구(기흥구·수지구·처인구) 가운데 면적이 457.55㎢로 가장 넓은데도 인구는 25만명 남짓에 불과하다. 용인에서 최남단에 위치해 서울에서 가장 멀다는 단점, 도농복합지역이어서 개발 소외 지역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용인 처인구 부동산 시장이 모처럼 기대에 부풀고 있다. 지난 1월 용인시가 ‘특례시’로 격상된 데 이어 5월에는 SK하이닉스가 약 120조원을 투자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이 착공에 들어간 덕분이다. 허허벌판이던 땅에 반도체 공장이 들어서 인구가 대거 유입되면 일대 부동산 시장이 활기를 띨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용인시는 최근 세계 최대 규모의 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용인반도체산단)가 5월 착공한다는 소식에 떠들썩했다. 2019년 개발계획이 발표된 지 3년 1개월 만이다. 토지 보상이 70% 이상 완료되면서 공사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가 조성될 용인 처인구 원삼면 일대. (용인시 제공)
지난 2월 용인 처인구에서 분양한 ‘힐스테이트 몬테로이’ 조감도. (현대건설 제공)
용인플랫폼시티가 조성될 예정인 용인 보정·마북동 일대 전경. (용인시 제공)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본궤도
▷SK하이닉스 등 10년간 120兆 투자
사업시행사인 용인일반산업단지㈜가 지난 4월 말 제출한 착공계에 따르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용인시 원삼면 죽능리 일원에 415만㎡ 규모로 조성하는 반도체 중심 일반산업단지다. 여기에 SK하이닉스가 투자하는 120조원, 용인일반산업단지㈜가 기반 인프라 조성에 쓸 1조7903억원 등을 포함해 약 122조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용인반도체산단은 2019년 3월 개발계획이 확정됐지만 환경영향평가 등 각종 행정 절차가 지연되면서 발목이 잡혔다. 게다가 개발계획 발표 후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주민들이 토지 보상을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착공이 다섯 차례나 연기될 만큼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제야 각종 행정 절차가 마무리되고 토지 보상도 70% 이상 완료되면서 본격적인 공사에 돌입할 수 있게 됐다.
공사가 계획대로 진행되면 산업단지 조성은 2025년께 마무리될 전망. 산업단지가 완공되면 개별 회사가 각각의 부지를 분양받아 반도체 관련 시설을 운영하게 된다.
여기서 SK하이닉스는 차세대 메모리 생산 기지를 확보하기 위해 10년간 120조원을 투자해 메모리 반도체 공장 4곳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한 달에 웨이퍼 최대 80만장을 생산하는 핵심 생산 거점으로 용인 반도체 공장을 운영한다는 그림을 그린다. 공사가 계획대로 진행되면 산업단지 조성은 2025년께 마무리되고, 이후 SK하이닉스가 반도체 팹(FAB·생산시설)을 건설할 경우 2027년부터는 팹 1기에서 반도체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4기의 팹은 2036년까지 차례로 준공된다.
SK하이닉스뿐 아니라 반도체와 관련된 소재·부품·장비 협력화단지에 50개 기업도 입주한다. 이에 따라 3만1000여명의 일자리 창출과 514조원의 생산 유발 효과, 189조원의 부가가치 창출 효과가 기대된다. 서울대 경제연구소는 이곳 반도체 클러스터의 직간접적인 고용 유발 효과가 37만명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소외 지역이던 처인구 집값 ‘쑥’
▷한숲시티 84㎡ 분양가 대비 2배 올라
이런 기대감 덕분에 그동안 용인시 집값은 꾸준히 올랐다.
KB리브온 월간 통계에 따르면 올 4월 말 기준 용인시 아파트 3.3㎡당 평균 매매 가격은 2662만원이다. 지역별로는 분당과 가까운 수지구가 3.3㎡당 2980만원, 기흥구 2343만원, 처인구 1196만원 등으로 시세가 형성돼 있다. 용인시 아파트값은 반도체 클러스터 개발계획이 발표되기 전인 2019년 1월(3.3㎡당 1448만원) 이후 83.8% 급등했다.
처인구 핵심 지역은 역북동이다. 입주 10년 이하 아파트가 밀집한 데다 분당선 기흥역까지 30분 정도 걸리는 경전철 에버라인이 지나는 동네라서다. 최근 이곳 역북동 주요 아파트값은 1억~2억원 정도 뛰었다. ‘우미린센트럴파크(총 1260가구)’에서는 지난 4월 전용 84㎡ 2층, 26층짜리 아파트가 각각 6억5000만원에 연달아 팔렸다. 지난해 8월 고점(6억7700만원)보다는 떨어졌지만 2020년부터 지난해 초까지 5억원대에 거래되던 아파트다. 시세가 비슷하던 ‘역북지웰푸르지오(1259가구)’ 전용 84㎡도 지난 4월 6억7500만~6억8000만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e편한세상용인한숲시티’의 경우 5단지뿐 아니라 나머지 단지도 5억원 초반대에 거래가 이뤄지면서 5억원 하한선을 거의 굳혔다. 올 들어서는 전용 59㎡의 실거래가도 4억원을 웃돈다. 입주 당시만 해도 전용 84㎡ 시세가 2억원 초중반대, 전용 59㎡는 1억원 후반~2억원 초반대였던 점을 감안하면 시세가 두 배가량 올랐다. 인근 공인중개업계에 따르면 1단지 격인 테라스하우스 ‘e편한세상용인파크카운티’의 경우 전용 103㎡ 매물이 호가 7억8000만~8억9000만원에도 나와 있다.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2018년 입주 시점만 해도 웃돈이 붙은 아파트가 거의 없었지만 SK하이닉스가 용인에 들어온다는 소식에 교통망까지 확충되면서 집값이 올랐다”며 “서울을 비롯해 분당, 위례, 동탄 등 수도권 인기 지역 전셋값이 급등한 것을 피해 저렴한 가격에 내집마련을 하려는 젊은 수요자가 많이 몰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최근에는 새 아파트 공급도 속속 이어지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처인구 모현읍 인근에 3700가구 넘는 대단지가 새 아파트 공급에 나서면서 흥행몰이에 성공했다.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지난 2월 1순위 해당·기타지역 청약 접수를 받은 ‘힐스테이트몬테로이(총 3731가구)’는 2107가구(특별공급 제외) 모집에 청약통장 2만9926개가 몰리면서 평균 14.2 대 1의 경쟁률로 전 주택형 모집 가구 수를 채웠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4월 처인구 양지면에서 청약자를 모집한 ‘용인 경남아너스빌 디센트(총 1164가구)’가 1순위에서 평균 11.22 대 1, 최고 18.11 대 1의 경쟁률로 청약 접수를 마감했다.
B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수도권에서 몇 안 되는 비규제지역인 데다 최근에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같은 굵직한 개발 호재가 터지면서 청약 흥행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특례시에 유통단지·플랫폼시티
▷GTX-A 예정…3호선 연장 공약 속속
과거 집값이 하염없이 치솟은 다른 지역과 비교했을 때 용인 부동산 시장은 조용한 편이었다. 완만하게 상승하기는 했지만 이마저도 전국적인 상승세를 따라가는 것이라는 시선이 컸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의 용산은 반도체 등 대규모 산업체가 들어서면서 일대 아파트값이 상승한 것으로 분석된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서는 처인구는 용인 중심에서 벗어난 변두리로 그간 소외 지역이었다”며 “일자리가 생기면 근방에 상주하는 인원이 많아지면서 지역 내 소비도 늘고, 출생 인구도 증가하면서 교육을 비롯해 교통, 편의시설 등 전반적인 인프라에 변화가 생긴다”고 말했다. 앞서 반도체 공장이 들어선 이천이나 평택 등이 논밭이 대부분인 허허벌판이었다가 일자리가 생기면서 자연스레 인구가 밀집한 소규모 도시로 탈바꿈한 사례와 비교해볼 만하다는 설명이다. 또 “수요가 늘어나면 일대 집값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지난해 말 기준 용인시 인구는 107만1474명으로 수원시(117만7170명)에 이어 경기도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다. 판교, 분당 등이 있는 성남시(92만3097명)보다도 인구가 많다. 비단 반도체 클러스터가 아니더라도 용인시 인구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처인구 고림동 일원에 물류시설과 지원·복합시설 등으로 구성되는 ‘용인국제물류 4.0 유통단지’가 내년 완공을 앞두고 있는 데다 기흥구 보정·신갈·마북동 일원 275만㎡에서 진행되는 도시개발사업 ‘용인플랫폼시티’도 최근 개발계획이 고시됐다.
여기에 용인시가 지난 1월 경기 수원, 고양, 경남 창원 등과 함께 특례시로 지정된 것도 용인 부동산에는 호재로 꼽힌다. 특례시로 지정되면 대규모 공모사업 등 각종 개발사업을 유치할 수 있다. 정부의 재정 분권 추진을 통해 재정이 증가할 것으로 기대되는 데다 신속한 정책 결정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또 늘어난 예산으로 교통, 문화, 교육, 복지시설 등 인프라 확충이 가능해지고 51층 미만 건물 인허가를 비롯해 산업단지 개발, 리모델링 계획 수립 등 개발사업에 관한 자치 권한이 커진다.
그간 최대 단점으로 꼽혔던 서울 접근성도 잇따른 교통 호재 덕에 한층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A노선 용인역이 2025년 개통을 목표로 공사 중이다. GTX A노선 용인역이 개통(2025년 예정)하면 서울 강남 수서동과 삼성동까지 10분대 이동도 가능해진다. ‘제2경부고속도로’라고 불리는 서울~세종고속도로도 2025년 개통을 목표로 공사 중이다. 이 도로는 영동고속도로와 연결돼 개통하면 서울 강남 접근성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제2수도권외곽순환고속도로도 2026년이면 완공된다.
최근에는 여야에서 용인시장 후보로 나온 인사들이 지하철 3호선을 용인까지 연장하겠다는 공약을 내걸면서 용인 지역 교통 인프라 확충에 더욱 기대감이 모이고 있다.
이상일 국민의힘 후보는 철도 분야 공약으로 “지하철 3호선을 수서~서판교~신봉~성복~GTX용인역~동백~김량장동~양지~원삼으로 확장하는 방안을 중앙정부와 협의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신설을 추진해온 도시철도 동백~신봉 구간에 지하철 3호선을 잇고, 그것이 원삼까지 연결되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외에 ▲광주 삼동~에버랜드~용인 이동·남사 간 경간선 연장 ▲수서~부산 간 SRT 수지·분당 정차역 신설 등도 공약으로 제시했다. 재선에 도전하는 백군기 용인시장도 지하철 3호선 연장을 차질 없이 진행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최근 용인 아파트값에 SK하이닉스를 포함해 주요 개발·교통 호재가 이미 반영됐고 수도권 주택 시장이 대부분 지역에서 관망세로 돌아선 만큼 섣부른 투자는 금물이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김광석 리얼하우스 대표는 “각종 개발이 실제로 완공돼 일자리 창출 효과를 내기까지는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사이 시장은 ‘묻지마 투자’가 사라지고 ‘옥석 가리기’에 돌입하는 모습”이라며 “처인구 아파트는 어디까지나 용인, 넓게는 성남·수원에 일자리를 둔 실수요자가 장기적으로 접근할 만한 시장”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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