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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소 시대의 신앙 (사경회 6일차) 오재호 목사
오노다 히로라고 하는 일본군 소위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2차 세계대전 때 1구백사십사년에 필리핀에 있는 루방이라고 하는 한 섬에 명령을 받고 군대와 함께 그곳으로 갑니다.
미군의 공격을 지연시키기 위해서 비행장 활주로를 파괴하고 유격전 게릴라전을 벌이라는 상부의 명령을 받고 갑니다.
훈련 을 그렇게 많이 받지 않은 이백오십 명의 부하를 데리고 가는데 상관이 명령을 내리기를 항복도 하지 말고 자살도 하지 말고 끝까지 버티라 반드시 데리러 갈 것이다 그 약속을 하나를 믿고 갑니다.
그런데 동료도 부하도 다 죽습니다. 혼자 살아남아요.
일본이 폐망합니다. 천구백사십오 년에 이듬해에 그런데 이 필리핀 그 섬의 숲에서 몰골이 희한한 사람이 발견이 된 겁니다.
그 사람들이 전쟁이 끝났다라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거짓말 하지 마라고 나오지 않아요.
이게 일본에도 알려지고 그래서 그전에 계속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연합군이 전단지에 삐라를 뿌려서 전쟁이 끝났으니 혹 섬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나오라고 자유를 보장하고 살려주겠다고 나오지 않아요.
필리핀 정부가 그래도 나오지 않고 나중에 이 사람의 가족을 수소문해서 가족이 섬에 들어가도 나오질 않아요.
한 탐험가가 작심을 하고 들어갑니다. 그래서 진지하게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정말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럼 이 사람이 조건을 겁니다. 나에게 이 섬으로 들어오도록 명령을 내린 내 상관이 전쟁이 끝나고 나 보고 나오라는 그 문서를 가지고 오면 나가겠대.
그 상관이 있나요? 다 제대하고 죽고 했는데 수소문 수소문에서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상관을 만납니다.
그 사람이 육군 현직 육군 대장의 명령으로 서명이 된 문서를 가지고 들어갑니다.
그 문서를 바꿔서 항복을 하고 나옵니다. 그때가 천구백칠십사 년이었어요.
그러니까 사십사 년에 들어가 가지고
일 년 뒤에 해방이 되었고 그 전쟁이 끝났고 칠십사 년에 나왔으니까 이십구 년 동안 그렇게 있었던 거 들어간 지 삼십 년이 일본에서는 졸지의 영웅이 됩니다.
제가 이 사람의 기사를 읽으면서 어떻게 보면 굉장히 우직하고 충성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한편으로 보면 굉장히 세월이 아까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오늘날은 사탄이 이 세상을 장악하고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가 마련한 그분의 공로로 희생으로 마련된 새로운 세상이 있음을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저 돈 벌고 그저 이런 세상 이거니 관계가 맞지 않고 마음이 맞지 않은 사람과는 싸우고 미워하고 그러면서 그리스도를 통한 새로운 세상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세상으로 그 사람들을 나오게 하여서 그리스도와 화목하게 하도록 우리가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럼 우리는 성경에서 고린도 후서 어 보면 하나님의 대사가 되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근데 그 대사는 아무나 대사가 되지 않습니다. 여기 김남준 목사라고 개신교회 목사가 쓴 전도사들 신학생들에게 쓴 책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 목회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쓴 책이에 누구든지 그 시대에 태어나면 그 시대의 아들이 되는 법입니다.
그리고 그 시대의 아들로 살아가기를 거부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그 시대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들 이상의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이 시대에 태어나면 전부 이 시대의 사람이에요.
비슷하게 먹고 비슷하게 교육 받고 비슷하게 생각하고 비슷하게 돈 벌고 그렇게 살아요.
근데 그렇게 비슷한 사람들을 구원을 하려면 인도를 하려면 비슷하게 생각하고 비슷하게 먹고 비슷하게 교육을 받아서는 그 사람들을 인도할
없다는 거예요.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줄 수가 없다는 거예요.
왜 그 사람이나 나나 비슷한데 뭔 특별한 메시지를 들려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 세상 사람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려면 다르게 생각해야 되고 다르게 먹어야 되고 다르게 교육을 받아야 되고 다른 루트의 하나님의 통로로서 음성을 들어야 그들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여러분 성경에 보면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없다라고 나와요.
양이 양을 인도할 수 없어요. 양을 인도하는 사람은 누구예요?
목자에요 소경을 맹인을 시각 장애인을 인도하는 사람은 보는 사람이죠.
만약에 우리가 세상의 사람들과 똑같이 살거나 혹은 개신 교인들과 똑같이 살아야 한다면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는 존재할 없어요.
뭐 하러 존재하겠어요 왜 하나님께서 요한 계시록 십이장 십칠절에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을 왜 준비를 시키셨겠느냐는 거예요.
우리가 다시 한 번 이번 한 주간 또 새해를 맞이하여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한 해가 더 가까워졌는데 우리는 어떤 자세로 신앙을 하고 있고 살아가는지를 좀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마지막 시간으로 지성소에 한 번 들어가 보는 경험을 하겠습니다.
제가 첫째 날에는 떨의 경험에서 본재단 십자가를 이야기했다면 둘째 날은 성소의 첫째 칸 일곱 등대 떡상 그 다음에 분향단 살펴보았습니다.
생명의 빚 대신 그리스도
생명의 떡 되신 그리스도 우리의 기도를 중보하시는 그리스도 그걸 경험하고 살아야 성 성소 첫째 칸을 경험하고 사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고 오늘은 성소 두 번째 칸을 어떻게 경험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구절에서 이십이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뭐를 얻었다 다 압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오 휘장은 곧 그의 육체이니라.
곧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에 계심에 우리가 마음의 부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어디 가자?
하나님께 나가자. 여러분 이 본문은 하나님께 나가는 거 하고 성소에 들어가는 것을 같은 의미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소에 들어가는 게 누구한테 가는 거예요?
하나님께 나가는 거예요. 근데 우리가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고 바울이 말하는 두 가지 이유가 나와요.
첫 번째가 뭐예요? 예수의 피를 힘입어서 예수님의 희생에 피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성소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거예요.
두 번째 그 피를 믿지만 넘어지고 무너지고 실족하고 또 죄 짓고 연약하게 돼요.
그러면 우리가 또 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나 두려움이 생겨.
근데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하나님 아버지께 나가고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이유는 대제사장이 계셔서 우리를 정보하고 계시니까 다시 회계하고 다시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다시 관계가 회복되어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그분이 마련하고 계시니까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지금 나가고 하늘 성소에 나갈 수 있는 담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이 두 가지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이 있었고 예수님이 제사장으로서 대제사장으로서 중보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늘 하나님 앞에 나가야 돼.
성소에 들어가는 경험을 하고 살아야 돼. 여러분 그게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가 존재하는 오늘은 제가 이 본문을 깊이 다루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지 성소 이야기를 할 거기 때문에. 자 성소의 두 번째 칸에 들어가면 항상 뜰에도 세 가지가 있었고 성소의 첫째 칸에도 세 가지가 있었고 성소의 두 번째 칸인 지성소에도 세 가지 기물이 있습니다.
뜰에는 번제소 양의 희생 재물을 잡는 번재단 물두멍 제가 다 설명을 드리지 못했지만 번제단을 중심으로 십자가의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성소의 첫 번째 칸에는 일곱 등대 떡상 분향단이 있었다고 그랬습니다.
자 이제 두 번째 칸 휘장을 열고 들어가면 속죄소가 있습니다.
시은 좌 속죄가 베풀어지는 자리 은혜가 베풀어지는 자리라는 의미고 두 천사가 조각이 돼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언약계가 있습니다. 말씀을 좀 드렸죠 두 천사와 속죄소는 붙어 있습니다.
이것이 금 한 달란트
약 한 삼십사 킬로그램의 금으로 조각된 에 기구물입니다.
자 제가 오늘 이 부분을 가지고 세 가지 신앙 지 성소 시대에는 어떤 신앙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지를 말씀을 드립니다.
첫 번째는 해바라기 신앙이 요한 계시록 14장에 보면 1절부터 5절까지는 13만 4천 의 무리가 나와 있고 그다음 밑에는 십사장 육절부터 십이절까지는 세천사의 기별이 나와 있습니다.
제가 시간이 없어서 이 부분을 다루지는 못했어요.
그러나 우리 재림 신자가 이 세천사의 기별은 반드시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개신교인들은 이거 여러분 이 기별은 누구만 이해해요?
이건 재림교회만 이해해요 이게 이해가 안 되면 재림 교인으로서 살아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근데 십삼만 사천의 무리의 특징이 나오는데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이며 13만 이게 실수냐 상징수냐 몰라도 됩니다.
그러나 십삼만 사천의 무리의 특성은 알아야
십사만 사천의 중요한 특징이 하나가 뭐냐 하면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뭐 하는 자다 따라가는 자다.
어린 양이 누구죠? 예수 그리스도의 예수 그리스도가 가는 데를 계속 끝까지 따라가면 그 십사만 사천 근데 지금 이 예수 그리스도가 어디 가 있냐 이 말이에요.
어디 계셔요 성소에 두 번째 칸에 가 있다 이 말이지 그러면 이 예수를 계속 바라보고 따라가면 우리도 어디 가 있어요 우리도 지성 속에 들어가야 돼.
믿음으로 몸은 못 가지만 요즘 내비게이션이 있어서 운전하는 데 참 많은 도움을 받습니다.
특별히 모르는 길을 갈 때는 근데 인도에서 작년 10월 달에 무슨 기사가 보도됐는데 구글 지도를 보고 운전을 하던 남자 세 명이 구글 지도가 가리키는 길을 보고 따라가다가 끊어진 다리에서 떨어져 가지고 추락해서 죽었어요.
결혼식에 가는데
구글 지도를 찍고 내비게이션을 찍고 가는데 이리로 가라 저리로 가니까 계속 운전한 거예요.
가다 보니까 다리가 끊어진 곳이 있었고 거기 밑으로 추락해가 다 죽었어요.
3명이. 여러분 누구를 인도한다는 것은 기계든지 사람이든지 그건 굉장한 책임감이 있는 거예요.
그렇게 따라오라 보고 따라간다면 책임을 져야 돼.
그 사람을 안전한 곳으로 목적지까지 잘 데리고 가도록.
물론 내비게이션이 거의 이런 일은 없어요. 근데 인간이 만든 기계가 이런 오작동이 생겨 가지고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여러분 누구를 따라간다는 것은 우리가 누구를 대상으로 보고 따라간다는 것은 그건 굉장히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진짜 내가 저 대상을 올바로 따라갈 만한 존재인가?
근데 예수 그리스도는 그런 분 맞아요 맞아요. 왜?
자기를 희생하고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기 때문에.
근데 예수님이 우리를 인도하는 길 따라가는 길이 좀 쉬운 길 같아요.
여러분의 적성과 여러분의 욕망하고 좀 맞는 길 같아요 좀 다른 길 같아요.
제가 전에 한 번 말씀드렸죠 이번 주에 제가 별로 안 좋아하는 말이 있다고.
꽃길만 걸으세요.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를 꽃길로만 인도해요.
그러면 따라가는데 별로 문제 없을 거 같은데 복음 교역제라는 책이 있습니다.
복음 교역제는 몇 장으로 돼 있는가 하면 백 여덟 장으로 돼 있습니다.
여기 58장의 제목이 뭐냐 하면 하나님이 일꾼을 훈련시키는 방법이 나옵니다.
한 다섯 가지가 나와요. 한 여섯 가지가 나올 수도 있는데 간단하게 좀 설명을 드릴게요.
빨간 글자 만 보셔요. 좋아하지 않는 임무를 맡기신다.
혹은 어떤 때는 그들이 택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임무를 그들에게 맡기실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즐겨 하나님의 지도하심을 따르면 복종과 남을 돕는 정신으로서 그 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은혜와 힘을 주실 것이다.
이래 하여 그들은 의무를 감당할 자격을 구비하게 되며 이렇게 훈련받은 재능을 가지고 큰 사업을 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러 하나님은 우리를 따라오라고 그러는데 우리를 데리고 가는데 좋아하지 않는 일을 시킨대.
여러분 선거위원회 만들어지고 새해 직분을 맡길 때 하고 싶지 않고 하기 싫은 일도 교회에서 맡겨요 다 좋은 일만 맡겨요 그렇지 않은 일 맡겨요 여러분 그러면 어떻게 받으셔요?
왜 나한테 이런 일을 맡기냐고 왜 저런 일 안 주냐고 그러셔요?
하나님이 좋아하지 않는 인물을 맡기신대. 두 번째 보세요 자신의 뜻과 상반되는 일을 맡기신대.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병든 마음에 양약처럼 치료제가 될 수 있는 일을 맡기신대.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자기의 뜻대로 하려는 이기적인 욕망을 없이 하도록 인도하시는데 만일 이러한 욕망을 만족시키면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대.
그러나 만일 그들이 그 시키시는 직무를 받아 행하면 그 병든 마음이 고쳐질 것이대.
그렇지 아니하고 이를 거절하면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항상 분쟁하는 일이 남아 있게 될 것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 데 맡기고, 하고 싶은데 못하게 하고 하나님이 그렇게 일을 맡기는데 그렇게 맡기면 내 병든 마음이 고쳐질 거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는 방법은 굉장히 특이해요.
세 번째 절 실망과 실패를 겪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자들에게는 실망과 또는 실패에 빠진 듯한 형편을 당하게 하심으로 훈련하신데 그것은 그들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법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다.
네 번째 평탄한 삶을 방해하고 친한 사람과 헤어지게 하신대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섭리 가운데서 품성 건설의 성취를 위해 변화가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을 보실 때는 더욱 평탄한 생애를 방해하신다.
그리고 또 하나님께서 어떤 교역자에게서 당신과 더욱 친밀히 교재하여야 할 필요가 있음을 보실 때에는 이것을 이루시기 위해서 그를 친구와 친지들과 헤어지게 하신다.
아브라함처럼 고향을 떠나라 그래 다섯 번째 안정된 생활을 방해하신대.
잠시도 고요히 안정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오늘 저녁에는 이곳에 내일 저녁은 또 다른 곳에 장막을 치며 항상 이동하여 다니지 않으면 안 되는 자들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시며 이런 방법으로 그들로 완전한 성품을 형성하시도록 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제가 다섯 가지 말씀드렸어요. 좋아하지 않는 임무를 맡기신다.
자신의 뜻과 상반되는 일을 맡기신다. 실망과 실패를 겪게 하신대.
평탄한 삶을 방해하고 친한 사람과 헤어지게 하신다.
안정단 생활을 방해하신다. 요렇게 인도를 받고 싶은 사람 손 한번 들어보셔요.
예수님 따라가면 요런 길로 인도하신대요. 우리 생각하고 다르죠 그래서 중간에 안 따라가는 사람 많아요.
가다가 곁길로 셉니다. 예수님이. 그런데 십사만 사천 원은 어떤 물이라고요 그 길이 어디로 가든지 따라가는 자들 여러분 그래야 우리가 어디까지 가요 지송소까지 가고 하늘까지 가요.
저는 천구백구십칠 년에 영남화폐 부산중앙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서정주 목사님이 담임 목사님이셨어요. 서정주 목사님이 동네 교회도 담임하셨죠.
아버지 같은 담임 목사님을 모시고 전도사로서 1년 동안 사역했습니다.
많이 배웠고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일년이 맞춰져 갈 무렵에 보통 전도사 이 년 차가 되면 단독으로 교회를 발령을 내었습니다.
그때는 그랬어요. 그래서 이제 이제 어느 교회 아마 조그마한 교회로 보낼 거니까 거기서 어떻게 내가 목회를 하나님 바라보며 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과 기도를 하고 있는데 전화 한 통이 왔어요.
에스테이 삼육 학원의 모 목사님이 학원에서 목회를 한 번 해보지 않겠느냐 그래요.
그래서 제가 전혀 생각을 안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정중하게 거절했어요.
아니요 목사님 저는 생각이 없고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전화를 끊었어요. 아 그렇습니까? 며칠 뒤에 전화를 또 하셨어요.
하 학원에서 목회를 한 번 해보지 않겠네요. 여기 젊은 이들도 많고 할 일이 정말 많은데 목사님 정말로 저는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도 거절했어요. 며칠 뒤에 전화가 또 왔어요.
세 번째 하원에서 목회를 해보지 않겠느냐 목사님 제가 정말 생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전화를 또 하셔도 제 대답은 똑같을 겁니다.
끊었어요. 알았다고 정말 생각이 없는 것 같네요.
끊었습니다. 그다음에 보니까 발령이 났어요. 삼육 외국어 학원으로 와 화가 나는 거 전도사 의견은 의견이 아닌가 정말 예의 있게 정중하게 세 번을 거절했는데 이게 왜 발령이 났을까 그래서 제가 간 데가 소면 학원이에요.
한신 벤 육층 내가 여기를 왜 와야 했을까 굉장히 혼란스러웠어요.
그리고 여기서 잠시 그냥 그러면 배우고 목회하다가 나는 다시 영남아페로 돌아가야지.
그렇게 제가 학원에 십오 년을 있었어요.
저는 학교 다닐 때 제일 싫어했던 과목이 영어였습니다.
저는 과학이 재미있었고 수학이 재미있었지 그래서 제가 공대를 갔거든요.
하 그래서 제가 여러분 영어 통역 할 때요 사우스 아프리카이 한 번 미션데이 강사를 하는데 원고가 타이타닉에 관한 거예요.
무슨 조선 공학을 전공했는지 막 배의 구조를 얼마나 상세히 설명했는지 단어를 찾아도 원고를 미리 주거든요.
단어를 찾아도 무슨 뜻인지를 모르겠어요. 제가 전공이 기계 공학인데도 근데 원고대로 또 설교를 안 해요.
엉뚱한 소리 막 하는 거예요. 그니까 저는 영혼을 짜죠.
제가 통역을 해야 되는데 제가 통역을 못 하고 있는데 혼자서 막 해요.
저는 얼굴이 확 밝개지고 그래서 제가 통역하다 내려와 버렸어요.
와 내가 여기서 어떻게 목회를 할까 여러분 그래서 저는 영어를 배웠어요.
거기서 가만히 돌아보면 하나님 나를 왜 이 내가 그렇게 세 번이나 종종하게 거절했는데 나를 이 길로 인도하셨을까
지금 돌아보면 그게 하나님의 은혜였어요. 그럼 제가 그렇게 영어를 안 배웠으면 나이 늦은 나이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겠냐고요 여러분 제가 학원에 가가지고 그때 학원이 잘 될 때였어요.
학원만 세우면 학생들이 밀려 들어왔어요. 그래서 저는 뭐 했느냐 맨날 아침에 출근하면 사무실에서 성경 공부 가르쳐줬습니다.
개인 성경 공부 하루에 많으면 열 몇 명씩 적어도 몇 사람씩 하 제일의 성경 가르쳤습니다.
그다음에 시간 나면 설교 준비하고 그 가만히 돌아보면 아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 저는 굉장히 창의적이어서 막 없는 걸 만들어서 이런 걸 잘 못 해요.
근데 저한테 딱 주어지는 임무는 저는 뭔 수를 써서라도 그걸 쇼브를 봅니다.
아 하나님께서 죄송합니다. 이상한 말을 써서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이 나한테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셨다는 생각이 지금 돌아보면 그 생각이 들어요.
여러분
여러분이 인도하신 어떤 하나님의 그 섭리들을 그때는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고 다시 돌아보면 그게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사실이 깨달아지죠.
근데 그 당시는 어땠어요? 그러니 그게 안 깨달아져요.
저도 그랬어요. 그래서 이 교육 치료 봉사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닐지라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택해 주신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을 기억하자.
이거 굉장히 중요한 말이에요. 여러분 이게 순종이에요.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를 다 아는 것처럼 보이지만 잘 몰라요.
부모가 우리를 다 아는 것처럼 물론 우리보다 더 잘 알 수 있어.
근데 잘 몰라. 하나님이 우리를 잘 아셔요. 그래서 나 그거 하기 싫은데 나 그 길 가기 싫은데 근데 그 길을 맡겨요.
그 길로 인도하고 그럼 그때 우리는 어떤 자세로 그걸 받아들여야 되겠느냐 이 말이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닐지라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택해 주신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을 기억하자.
여러분이 집 사기 싫고 무슨 암목에 뭐 어떤 일을 맡기시는데 하나님 이거 맡기셨어요.
아 이거 하나님께서 주신 일이다 라고 그 일을 성심껏 수행하면 반드시 그 일을 맡기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해바라기 신앙은 어떤 신앙이냐 여러분 해바라기는 뭐 하는 거예요?
해가 뜨면 그 해를 따라 가는 거예요. 비 오면 어떻게 될까요?
비 오면 해바라기는 어떨 것 같아요? 물론 고기를 숙이고 있어요.
근데요 비 와도 따라 가요. 왜냐하면 완전히 그 구름이 해를 차단을 못 시키기 때문에 이런 노래 있죠 어린이 성경학교 제가 노래를 잘 못합니다.
우리 목사님 노래 굉장히 잘 하시는데 고무신 신고 아장아장 느린 걸음 걸을지라도 해바라기에 따라가듯 나도 예수님 따라갈 테야.
옛날에 어느 성경학교 면 막 부르잖아요.
해바라기 해 따라가듯이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가는 신앙이 14만 4천 의 신앙이고 그렇게 따라가면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면 지성소에 머물러요.
왜? 그분이 그것까지 갔기 때문에 각 시대 대쟁투에 마틴 루터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제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나는 알지 못하며 구태어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왜? 종교 개혁이 시작되었는데 자기가 비텐베르크 성당에 9다5 개 로마 가톨릭 교회의 면죄부 그거에 대해서 막 반박을 하고 자기가 생각할 수 없는 일이 막 상상이 막 벌어지는 거예요.
처음에 루터는 종교 개혁을 염두에 두지 않았어요.
단지 로마 가톨릭 교회가 면죄부를 받고 하는 이게 잘못되었고 이걸 조목조목 해서 붙여놓고 다음 날 이 신학 대학원에 이 신학과에 오면 이게 뭔 뜻인지를 내가 설명해 주겠다라고 그것까지 붙여놨어요.
근데 이게 삽시간에 종교 개혁으로 퍼져 나갑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에요. 강풍이 몰아치려면 쳐보라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남은 입 하나도 우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다.
하물며 그분의 종된 우리를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지 않을 것인가 육신으로 나타나셨던 말씀도 돌아가셨거든 그 말씀을 위해 죽는 것은 별로 중대한 일이 아니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으면 또한 그분과 함께 살 것이다.
빨간 부분 읽겠습니다. 시작. 그분께서 우리보다 앞서 가신 그 길을 따라 가므로 우리는 그분이 계신 곳으로 가서 그분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루트가 이 종교 개혁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몰라요.
결과가 어떻게 될지. 그러나 루트는 뭐라고 결심했는가 하면 그분이 가신 길이다.
이 길이 내가 이 길을 그분이 가신 곳으로 따라가면 나는 그분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이 고백을 하는 거예요. 예 우리가 지성수 시대를 살아가는 이 신앙의 첫 번째 신앙은
내 생각과 내 뜻과 다르더라도 해바라기 신앙 그분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신앙을 중간에 곁길로 딴 길로 가지 마시고 그분을 끝까지 따라가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두 번째는 코람데오의 신앙이 좀 이상한 말을 가지고 와서 죄송합니다.
코람이라는 말은 라틴으로 앞에서 라는 뜻이에요.
데오는 하나님이란 말입니다. 코람 데오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서 이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는 신앙이에요. 늘 이거를 염두에 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지성소는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겠대.
속죄소 위 증거개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내게 이르리라.
그러니까 지성서에 들어가 보면 두 거룩 천사 사이에 하나님이 늘 내가 거기서 너를 만나겠다 거기에 내가 임하겠다 이것입니다.
그러니까 지성소에 들어간다는 것은 늘 누구를 대면한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임재를 대면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분이 늘 하나님 앞에 내 앞에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게 코람 데오의 신앙이에요. 지성소 신앙은 지성소 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은 늘 하나님 아버지가 내 앞에 계신다라는 것입니다.
이 좋은 거예요 두려운 거예요? 좋기도 하고 두렵기도 해요.
왜? 나와 늘 함께 하시니까 그분이 근데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행동을 못 해요.
한 삼육학교 선생님이 이건 한국 선생님이 아니고 미국에 있는 한 삼육학교 선생님 간증문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하나님과 교재하는 헌신의 시간이 기다려집니다.
낮 동안에 성령께서 생각을 주관하시고 대화의 태도의 수업 중에 저를 도와주시기를 묵묵히 강구합니다.
요즘 학생들이 말을 안 듣고 지국게 굴어도 하나님이 힘과 지혜를 주시고 잘 대응하게 하십니다.
근무 시간은 창조주의 인재로 가득합니다. 교실인데 학교 하는데 있는데 여기 지금 누가 임재해 있다고요?
하나님이 임재해 있대요. 그걸 느낀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제 일상 생활을 참으로 도와주십니다.
저는 아침에 기도하고 낮에도 탐 나는 대로 성의 성령의 충만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제 하늘은 아주 가까이 느껴집니다. 저는 하늘을 미리 맛보며 살고 있습니다.
굉장히 부러워요. 하나님의 인재를 늘 느끼며 산다는 거 우리도 이렇게 살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려면 끊임없이 하나님의 빚 가운데서 걸어가라.
하나님의 품성을 범난 뭐 하라 명상하라. 그리하면 그대는 주님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분의 선하심을 기뻐할 것이다.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불타오를 것이다.
그들은 마치 영원한 팔에 안겨 있는 것처럼 높이 들릴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과 빛으로 그대는 그대가 전에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깨닫고 훨씬 더 많은 것을 성취할 것이다.
그러니까 의도적으로 내 생각 속에 자꾸 누구를 명상하는 거예요?
그리스도 그러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하게 될 것이다.
이건 좋은 거예요. 근데 두려운 것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들의 동료들 앞에서도 죄스러워 하지 못하는 그 일을 하나님과 거룩한 천사들이 살펴보는 눈 앞에서 마음대로 자행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위를 보시고 우리가 하는 말을 들으시며 우리의 언행에 대한 세세한 기록을 보존하고 계신다는 사실과 우리가 그 모든 기록을 다 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면 범죄하기를 두려워 할 것이다.
자신이 홀로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모든 행위를 주목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목격자가 있대.
마음의 모든 동기가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 펼쳐져 있다.
노라보면 같이 읽습니다. 시작
모든 행위와 말과 생각이 마치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만 있는 것처럼 분명하게 기록되고 온 하늘이 그를 주목하게 된다.
이 한 사람이 누구예요? 각자예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 아무도 없고 한 사람만 딱 있어서 그 사람이 뭘 하는 걸 온 하늘이 다 보고 있대요.
이 하나님 앞에 있는 거예요. 두려워요. 굉장히 두려워요.
근데 사람들이 이 인식을 하고 생각하고 살아요 안 하고 살아요 여러분 애들 옛날에 순바꼭질 해 보잖아요.
애들 놀 때 순바꼭질 하면 어디다 숨어요 걔들은 눈 가리면 숨은 줄 알아 그래서 몸 다 내놓고 뭐해 눈 가리고 어떤 때는 뭐 머리만 집어넣고 몸둥이 보여도 그 아이들은 그래요.
그러니까 자기가 안 보이면 남도 자기가 안 보인다고 생각해요.
우리도 그래요. 내도 내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거지.
그게 나 혼자 다는 거지. 그래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근데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여기 아무도 없는데 누가 계신다?
하나님이 계신데 왜? 지성 속에 가면 그렇거든요.
지성소는 늘 하나님이 임재해 계시거든요. 여러분 그걸 인식하고 사는 사람이 지성소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부조들이 그렇게 살았고 많은 종교 개혁자들이 그렇게 살았어요.
아무도 안 보는데 하나님이 여기 계시다는 거예요.
여러분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그 미세스 보디발이 유혹을 합니다.
아무도 없었어요. 저런이 찬스 근데 요셉이 뭐라고 말을 해 내가 어떻게 이 큰 악을 해서 하나님 앞에 득죄하리이까 그 여자는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요셉하고 지밖에 없는 줄 알았어요. 근데 요셉은 그 여자도 있지만 여기 누가 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계시대.
그분 앞에서 내가 죄를 지울 수 없대. 여러분 이걸 늘 인식하고 살면 때로는 불편할 수 있어요.
근데 그게 우리를 죄된 길로 가는 걸 막아줍니다. 근데 많은 사람들이 이 생각 안 하고 살아요.
내가 힘들 때 나와 함께 하신다. 그거는 굉장히 좋아해요.
근데 내가 죄를 짓는 그 장면에서도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신다는 생각은 안 하고 살아요.
여러분 이걸 생각하는 사람은 두려울까요? 두렵죠 함부로 말하고 여러분 옛날에 우리 어른들 계실 때 함부로 싸웠어요.
부부들이 어른들이 여러분 뭐예요 말 올라갈라고 그래도 어른이 계시면 그 말 죽인다고 그러니 요즘은 어른이 있었다 싸웁니다.
그러니까 권위를 인정 안 하는 거죠. 내가 그분 앞에서 조심한다는 것은 그분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거예요.
선생님 부모님 그런 분들 어른 연세 많은 분들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 건 그분의 존재를 인식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지성소 시대는 하나님이 늘 지성소는 임대하시는 거예요.
우리는 거기까지 간다면 그분이 늘 계시다는 거지.
그러면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행동할 수 없다는 거예요.
이거 그분 좋아하실까? 내가 이분 앞에서 이 행동 해도 될까?
한머니 저한테 카톡 보낸 카톡 문자에 항상 하나님과 함께 5분이라도 잊지 않고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 인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분은 오분을 머릿 속에서 예수님 생각하는 것을 잊어버린 적이 없다는 거예요.
함인애라고 하는 계신교 사모의 유언 중에 하나요.
딸들에게 남긴 유언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5분이라도 예수님을 잊어버리지 말아요.
이게 그분을 그게 본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이야기해.
이번에도 마음 다친 일이 있었지만 그분의 아픔에 비할 수 있겠나 싶어 모두 용서하는 마음을 갖게 되니 마음이 편해졌답니다.
제가 이야기했잖아요. 우리가 다른 거하고 비교하면 다 불편한데 누구하고 비교하면 예수님이 받으신 대접하고 내가 받는 대접을 비교하면 절대로 엉뚱한 길로 갈 이유가 없습니다.
이분은 뭐라고 하냐면 잠시 오분간이라도 예수님을 내 생각 속에서 잊어버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늘 그분의 인재를 인식하고 사는 그 삶이 지성수 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이에요.
근데 우리가 너무 재미있는 거 많이 보고 즐거운 거 많고 내 세상의 욕망과 갖고 싶은 거 많고 그러면 잊어버려 그 예수님은 자꾸 교회에 와서 한 번 생각하는 거예요.
그리고 예배 끝나고 가면 또 뭐해요 또 예수님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그건 지성수 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이 아니 내가 어디 가 있든지 예수님을 모시고 가는 거야.
자 세 번째 이제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거울 시는 아까 지성소에 들어가면 언약계가 있습니다.
그 언약계 안에는 두 돌판이 있습니다. 만나 항아리 그다음에 아론의 쌍난 지팡이 있다고 그랬는데 여기 그 괴한에는 그 두 돌판 위에는 아무것도 없으니 아마 솔로몬이 지은 성전에는 이 돌판만 있었 거 같아요.
십계명의 두 돌판. 복음 교육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품성의 결함을 밝히 드러내는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보는 일을 등하니 한다.
그러므로 그 결함과 죄가 그대로 있어서 자기는 이를 깨닫지 못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눈에는 뻔히 보인다.
하나님의 사업에 헌신하였다고 하는 자들 중에도 스스로 혐오할 만한 이기적인 죄악이 상당히 존재하고 있다.
만일 그들이 자기의 성품을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에 비추어 본다면 또 그들이 부지런하고 정직하게 자신을 살피는 자라면 자신이 놀랄 만큼 부족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여러분 오늘 교회 오시기 전에 화장하고 옷 잘 입고 거울 보셨죠 그렇죠?
거울 안 보고 오시는 분 거의 없어요. 여러분 하루에 거울 몇 번 보셔요?
여러분 보죠 봐야 돼요. 그죠? 오매 무새가 어떤지 얼굴에 뭐가 묻었는지 봐야 돼.
근데 우리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도 보고 사셔요. 우리의 몸을 비추는 것은 거울이에요.
근데 우리의 마음을 비추는 것은 율법이라는 거예요.
품성의 결점을 밝히 드러내는 거울 이 율법이에요.
그게 어디에 들어가 있냐면 지성소
언약계 안에 들어가 있어요. 그래서 내가 지성소를 들어간다는 것은 그 속죄소에 동편에 피를 한 번 뿌리고 동편의 앞에 속죄소의 앞에 피를 7 번 뿌리는 것은 그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구원은 율법 없이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게 아니고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열의 공로로 우리 육신의 힘으로는 율법을 순종할 수 없는 것을 그분의 성령의 힘으로 율법을 순종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게 구원이에요.
근데 자꾸 우리는 착각해요. 특별히 교회에 계신 교인들
이 한 장로님이 쓴 글 한번 읽어드릴게요.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고난으로 양식을 삼고 인내로 거처를 삼아 결국 죽음으로 그들의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십자가는 생명이었고 고난은 삶이었습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강했습니다. 일제의 칼보다 강했고 공산당의 총보다 강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너무 약합니다. 한국 교회는 너무 유약합니다.
주차 공간만 부족해도 교회를 떠납니다. 산복 더위에 에어컨이 고장이라도 나면 예배에 참석하지 않습니다.
신앙 생활로 인해 사업에 방해가 되면 신앙을 접거나 양심을 저버립니다.
신앙을 위해 손해를 보거나 불편을 참거나 불이익을 감수하는 일을 하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편안함에 길들여진 채 솔로몬의 영광만을 추구합니다.
드레핀 백합화보다 백합보다 더 곱고 아름다웠던 솔로몬의 옷자락과 창고마다 넘쳐났던 그의 부기를 부러워 합니다.
이거 누가 쓴 글이냐 하면 개신교회 순교를 했던 주기철 목사님 아들이에요.
주광조 장로라고 그가 아버지가 순교를 해요. 굉장히 방황합니다.
왜 우리 아버지 안 살려주셨나 하나님 떠나요. 그러다 방황하다가 돌아옵니다.
그러면서 교회의 모습을 보니 옛날 자기 아버지 그리고 믿음의 선배들이 걸어갔던 그 신앙하는 그 모습하고 교회 현재 교회는 너무 다르다라는 거죠.
그러면서 이분의 사명이 뭐냐면 한국 교회를 이전의 믿음의 선배들처럼 만들어 놓고 싶다.
그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분이 한 설교 때 한 말이에요.
이게 제가 보면서 굉장히 찔림을 받았습니다. 재림교회는 다를까 우리 재림교회 신앙의 믿음의 선배들 아니랬어요 그죠 율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한 가지 질문을 드릴게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가능합니까 불가능합니까?
대답을 해 보셔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게 가능해요 불가능해요 네 자 여러분 사탄은 하나님의 율법은 뭐 할 수 없다
그럼 사탄이 이렇게 주장한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주장할까요?
그렇죠 지킬 수 없는 걸 하나님은 주시지 않아요. 근데 우린 자꾸 뭐 할 수 없다 율법은 내가 연약하니까 그러니까 지키려고 노력해요 안 해요 별로 안 합니다.
빨간 글자 이거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더 이상 지킬 의무가 없다는 교리가 계신 게 있습니다.
그렇죠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 피를 흘렸기 때문에 율법은 뭐 했다?
폐했다. 더 이상 지킬 필요 없다. 이게 이게 오늘날 교인들의 신앙의 표준을 떨어뜨리는 이유에요.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는데 세상 사람하고 우리하고 다르겠냐고요 비슷하지요 사탄은 한 단계 더 갑니다.
율법의 결함이 있어서 어떤 특정 부분이 제거되었다고 사탄은 이 주장하고 있대 보면 그러한 주장은 그가 세상에 가져올 마지막 대 기만이 될 것이다.
이제 10개 명 중에 10개 다 안 건드립니다. 안식 일만 건드립니다.
이제는
하나만 어기게 만들면 다 어긴 거거든 지킬 수 없다.
지키지 않아도 된다. 아 다는 못 지킨다. 요거는 바뀌었다.
이게 사단이 하는 일이에요. 노란 부분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그들은 죄의 사유함을 얻을 수 있고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할 힘을 얻을 여러분 율법을 순종할 수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누구 힘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힘으로 그분이 주시는 은혜로 다른 말로 하면 성령의 능력으로 그 이걸 우리가 구하고 살아야 돼.
지성소 신앙은 율법을 순종하는 신앙입니다. 여러분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가지 질문을 드릴게요. 사탄이 재림 신자를 향해 분노할까요 안 할까요?
해요. 여러분을 향하여 할까요 안 할까요? 해요.
어떤 신자인가에 따라서 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해요.
자 여러분 사탄이 어떤 사람을 향하여 분노하는지 보셔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한 영혼이 죄를 섬기기를 단념할 때마다 사탄의 분노는 불붙는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내가 죄를 섬기지 않겠다라고 단념하고 그렇게 살아갈 때 사탄은 분노합니다.
여러분 그렇게 하셔요. 그렇게 해야 사탄이 분노한다니까.
근데 내가 죄를 섬기기를 단 결심하지 않고 죄에 무너지고 넘어지고 에이 뭐 나 연약해서 할 수 없지.
그러면 사탄이 분노할까요 안 할까요? 안 해요. 내 백성인데 무늬만 재림 신자지 무늬만 교회 다니지 내 백성인데 뭐 하러 분노해요 여러분 사탄은 자기 백성한테 분노 안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분노하지. 또 보셔요. 죄의 가정한 성질을 깨닫고 위로부터 오는 능력으로 유혹을 거절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반드시 사탄과 그 부하들의 분노를 일으키게 될 것이다.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부여받아서 그 사탄의 유혹과 시험을 뭐 하는 사람?
거절하는 사람 그 사람을 향하여 사탄과 부하들은 분노합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의 능력과 성령의 능력으로 시험과 사탄의 유혹을 거절하기 위해서 분투 하십니까?
여러분 그때 사탄은 분노해요. 에이 연약해서 살 수 없지 뭐 안식일 적당하게 하지 뭐 다 그렇게 못해 건강 기별 다 그렇게 못하는 거야.
적절하게 적당하게 타협하는 사람한테는 사탄은 분노하지 않아요.
여러분 그러면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가 이 땅에 존재할 이유는 보셔요.
당신의 성령의 가마를 받는 자들은 모두 그분이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할 것이다.
그다음에 읽어 봅시다. 시작. 교회에 나타난 이 사랑이야말로 사탄의 분노를 일으킬 것이다.
이 사랑이 어떤 사랑이냐 하나님이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것처럼 사랑하는 사랑 그 사랑을 교회가 할 때 사탄은 분노합니다.
그럼 다시 질문합니다. 사탄이 여러분에게 분노할까요 안 할까요?
여러분 재림 신자라고 사탄이 도매금으로 다 분노하지 않아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의 증거를 가진 사람 그래서 내 백성이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인 사람이 된 사람은 사탄이 분노해서 다시 끌고 들어옵니다.
싸우려고 여러분 많은 재림 신자가 사탄의 분노를 일으키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왜? 죄와 타협하니까 시험과 유혹에 굴복하니까 예수 그리스도처럼 사랑하려고 몸부림 치고 하나님의 능력을 간구하면서 그 사람을 사랑하려고 하지 않으니까 미워하는 사람 생기면 적당히 미워하고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어라고 생각하면서 적절하게 사니까 타협하니까 여러분 이렇게 살아가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남은 자손의 삶이 아니에요.
요 이야기 하나만 드리고 제가 마치겠습니다. 시간 조금만 더 지나서 죄송합니다.
한 유방암 진단을 받은 여성이 있어요. 장로이 약 십 년을 출석했습니다.
이름은 신자였어요. 형식적인 신앙을 하면서 늘 남편이 미웠습니다.
남편은 술과 친구가 우선이었습니다. 자신과 아이는 뒷전이었죠.
자주 이혼을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근데 아팠어요.
병원에 가니까 암이었습니다. 너무 화가 나서 속이 상하고 이게 다 누구 때문에 걸린 것 같아요?
그 인간 남편도 아니고 그 인간 항암 치료를 받던 중에 재림교회와 연결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재림교회는 몸만 건강하도록 하지 않잖아요.
마음이 건강해야 성경을 깊이 보면서 자신을 깊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깨달았습니다. 자기에게 병이 생긴 게 남편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또 깨닫습니다.
https://youtu.be/54v9IQzZPzg?list=PLWP5B6z6O6reXoqeggPsF5neX8sRjET2C
남편을 미워하는 게 자기가 성경도 보지 않고 그저 형식적인 신앙을 할 때는 남편이 잘못했으니까 남편을 미워하는 것이 당연하다 라고 생각했는데 남편을 미워한 것이 죄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남편을 사랑하지 못했던 것이 죄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어느 날 남편이 퇴근하고 들어옵니다. 마음을 다 하여서 진심으로 고백을 합니다.
여보 나 당신 미워했어 근데 당신이 그렇게 잘 못하고 남편인 당신이 친구하고 술하고 우선으로 살면서 그렇게 하는 게 나는 당신이 그렇게 우리 가족들을 안 돌보니까 나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죄책감이 없었어. 근데 그게 아니었어 그게 죄였어 여보 미안해 용서해줘 전심을 다해서 고백합니다.
여러분 그럼 보통 상대방이 어떻게 나와요? 자기 잘못을 고백하면 그 너 잘못했지 그래요 아니야 여보 내가 잘못했어 그래서 그날 막 부부가 서로 부등쾌 안고 울면서 관계가 회복이 돼요.
아내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한 단계 더 나갑니다.
성경을 보니까 아내들아 남편들에게 순복하라 주 안에서 순복하라 순종하라는 거야.
니가 한번 실천해 봐야 되겠다. 그래서 남편을 정말로 순종하기를 결심합니다.
아 그랬더니 이 아내가 간증을 하는데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 남편이 사랑스러워 보이기 시작하더라는 거예요.
신혼 때도 없었어. 그게 단 한 번도 남편이 사랑스러워 보인 적이 없었는데 내가 성경 말씀에 순종하려고 주 안에서 남편을 순종하려고 하니까 남편이 정말 사랑스러워 보이더라는 거예요.
근데 그게 자기 눈빛이 아니고 자기 속에서 나온 자기의 본성이 아니고 자기 속에 계신 예수님의 눈빛이라는 게 깨달아집니다.
아 예수님이 나를 이렇게 바라보셨겠구나. 내가 남편 원망하고 이렇게 이렇게 살 때 그 불쌍한 나를 미워하지 않고 이런 눈으로 사랑스럽게 보셨겠구나 이게 깨달아져요.
그러면서 완전히 그 마음이 치유가 됩니다. 제가 간증을 듣는데 이 마지막 말이 이 말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게 이렇게 행복하구나.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이렇게 순종하는 게 이렇게 힘들구나.
이게 아니고 뭐예요 행복하구나. 하나님 계명 지킬 수 있어요?
지킬 수 있어요 무슨 능력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은혜로 근데 내가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면 그 은혜를 구할까요 안 구할까요?
안 구해요 그러면 우리나 세상 사람들이나 표준이 똑같고 개신교인들이나 우리나 다를 바가 없다는 거예요.
적어도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그렇게 살지 않았어요.
그렇죠? 안식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 율법을 순종하기 위해서 비록 무너지고 넘어졌더라도 근데 이 재림교회가 계속 무너져요.
이제는 방벽이 우리의 젊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이 없어요.
근데 이제 연세 많으신 분들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이제 무덤으로 떠나고 나면 이 교회는 어떤 모습의 교회가 될까?
정말로 성경이 말하는 남은 자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의 증거를 가진 교회가
우리 사랑하는 독립 교회 성도 여러분 또 그의 손님으로 오신 분들 저는 이번 한 주간 동안 재림교회 신앙의 심장이라는 제목으로 성소 교리를 좀 살폈습니다.
첫째 나는 십자가와 하늘 성소 두 번째 날은 구약의 성소 이야기 세 번째 날은 신약의 대제사장 이야기 그리고 넷째 날 그리스도의 하늘 성소 봉사 어제는 성소와 재림 전 소자 심판에 대해서 오늘은 지성소 시대의 신앙에 대해서 살폈습니다.
지성소는 예수님이 계신 곳에 따라 들어가는 것입니다.
제가 세 가지 신앙 말씀드렸어요. 해바라기 신앙 코람 데오의 신앙 하나님의 늘 인재를 인식하고 살면서 행복하기도 하고 평안하기도 하고 때로는 두렵고 떨리기도 하고 세 번째는 늘 내 마음의 거울 내 마음을 비춰주는 율법 앞에 늘 자신을 노출시키면서 그렇게 살지 못하는 나를 내려놓고 그렇게 살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구하며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살폈습니다.
저는 이제 한 번 이곳을 떠나지만 여러분들은 이 재림 신앙 저는 여러분 제가 제일 잘한 거는 제가 예수님 믿고 물론 어머니를 통해서는 재림씨 신앙을 받아들였지만 저는 제가 제일 잘한 것은 예수님을 믿고 전 제가 재림 신자가 됐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이 신앙은 우리의 모든 희생 우리의 어떤 것을 다 주고도 이 예수님을 믿고 재림을 사모하는 이 신앙을 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이번 한 주간 우리의 마음을 다잡고 우리의 눈을 높이 들어서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예수님 그 오시는 그 순간까지 영광스러운 그 날까지 진실하게 신실하게 충성스럽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