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클라크 게이블과 비비안 리가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가 너무 유명합니다만, 마가렛 밋첼의 원작 소설도 꽤 재미있습니다. 영화에서도 그 장면 나오죠? 불타는 아틀란타에서 스칼렛(비비안 리)을 무사히 안내해 안전한 곳으로 피난시킨 레트 버틀러(클라크 게이블)가 느닷없이 패잔병 무리들인 남군에 자원 입대하는 장면... 사라져가는 남부 귀족문화의 광채와 고상함에 대한 작가 또는 남부 지주계층의 후예들의 어쩔 수 없는 애정을 버틀러에게 투사한 장면이라고 기억합니다.
버틀러야 사실 남부 전체가 애국주의 열정에 휩쓸릴 때에도 냉정함을 잃지 않고 "이 전쟁은 반드시 패할 수밖에 없는 전쟁"이라며 전쟁에 참여하는 순진한 아이(?)들을 비웃죠.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어린 심정에 버틀러의 이런 안목이나 그런 것보다 '아니, 어떻게 저 나라에서는 전쟁중에도 신체 건장한 젊은 남자를 강제로 징발해가지 않나?' 이런 의문이 더 크게 머릿속을 지배했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버틀러의 명언은 또 있습니다. 애국적인 청년들이 개미떼처럼 사세 불리한 남군에 자원입대할 때도 레트 버틀러는 오불관언, 북군 해군의 항구 봉쇄를 뚫고 돈벌이에 집중하죠(그 돈으로 마음껏 향락을 즐기고, 스칼렛에게 '국물'을 나눠주어 그의 환심을 사는 데도 이용합니다). 아무튼 그는 뛰어난 지략과 용기로 돈벌이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합니다. 이때 버틀러가 돈벌이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발언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큰 돈을 벌 기회는 2가지가 있다. 하나는 새로 세워지는 나라에서 돈을 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망해가는 나라에서 돈을 버는 것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 더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는 바로 망해가는 나라에서 돈을 버는 것이다."
경제학적으로 맞는 분석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저런 식의 시각, 아무리 급박하고 복잡한 상황에서도 그 상황의 지엽말단에 매달리지 않고 전체적인 얼개를 본달까... 그런 시각이나 태도는 매력적이었습니다.
별로 내키지도 않으면서 통합신당의 모바일 선거인단에 등록하고, 어제 투표를 했습니다.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투표 연락이 오지 않으니 괜히 짜증이 나고 황당한 의심이 생기더군요.
"이것들이 내 성향을 알고 아예 투표에서 왕따를 시키는 거 아녀?"
참, 이것도 못말릴 왕자병이라고 해얄지...^^ 통합신당 친구들이 내 투표성향을 어떻게 알며, 안다 한들 무슨 관심이 있겠으며, 관심이 있다한들 내 한표 빼기 위해서 온갖 수고를 다하는 그렇게 비경제적인 노력을 그 친구들이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이것도 고문과 미행과 녹화사업과 온갖 음습한 음모와 비리가 판치던 80년대의 사회적 후유증이라고 좋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만...
더욱 웃기는 건 내 스스로도 어제 핸드폰으로 투표 연락을 받을 때까지도 과연 누구를 지지해야 할 것인지 전혀 모르고(말 그대로) 있었다는 것이지요. 실은 전화 받고 비밀번호 입력하는 그 순간까지도 결정을 못하고 있었지요... 누구를 찍어야 할지(지지한다는 것과는 다르죠)... 어쨌든, 나는 이해찬을 찍었습니다.
나도 왜 이해찬을 찍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문득 든 생각이, 80년대의 후예들 그리고 특히나 호남 출신들은 끝내 그놈의 '명분'에서 자유롭지 못하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놈의 명분... 생각해보니 철들고 나서 소위 운동이니, 진보니 어쩌니 하는 개념이 내 머릿속에 자리잡은 이후로는 단 한번도 그 명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놈의 명분 무시하고 내 멋대로 산 적이 전혀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놈의 명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전북과 서울에서 정동영 표가 압도적으로 나온 것을 보면서... 이제 호남 사람들도 그 명분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인가... 그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아니, 노무현과 노빠들에게 온갖 욕은 다 하면서도 정작 명분은 그 쪽에 있다고 생각하는 내가 착각을 하는 것이고, 호남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정확한 판단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말해 레트 버틀러가 끝내 버리지 못했던 남군 패잔병들처럼 장엄한 역사의 황혼 속으로 꽃잎처럼 소멸되는 모습이라도 연출된다면 나 역시 정말 흔쾌히 노빠 무리들과 운명을 같이할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하지만 지금 '호남 니들의 97%는 역시 지역주의의 소산이었어' 이러면서 난리를 피우는 노빠들을 보니 참, 뭐라고 해얄지...^^ 많은 사람들이 전망하는 것처럼 이 친구들은 노무현의 퇴임과 함께 아니 그 이전에라도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에 또 하나의 소왕국을 건설, 장엄한 소멸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구명도생'에 성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어쨌든 시간은 흘러갈 것이고, 12월 19일은 다가올 것이고, 모르기는 해도 나도 아마 어쩔 수 없는 미련처럼 또 한 표를 행사하겠죠. 도덕성이란 기준에서 대한민국 역사상 어떤 대통령이나 또는 후보와도 비교 불가능한, 말 그대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가장 완벽한 쓰레기가 내년 2월에 대통령 선서랍시고 하는 꼴만은 제발 연출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남았을 뿐입니다.
첫댓글神도 인간의 투영이라고 하는데 이명박이야말로 정확히 우리의 투영이 아닐까요? 탁월한 지모로 돈을 벌고 부동산과 정치에 불패의 투자를 한 사람. 그가 청계천 복원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반신반의했습니다. 철거민들이 또 띠두르고 그악스럽게 대들고 그 과정에서 여러가지 악재가 터져 중단될거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환경이라는 단어가 영험한 효과가 있었던지 그는 일사천리로 그 일을 해치웠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거침없는 태도에 반한 듯합니다. 겉으로는 사랑이니 정의니를 표방해도 속으로는 사람들의 절반은 쓸어버리고 싶어하는 우리들의 추악한 속내, 그 반영이 박정희고 이명박이가 아닐까요?
첫댓글 神도 인간의 투영이라고 하는데 이명박이야말로 정확히 우리의 투영이 아닐까요? 탁월한 지모로 돈을 벌고 부동산과 정치에 불패의 투자를 한 사람. 그가 청계천 복원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반신반의했습니다. 철거민들이 또 띠두르고 그악스럽게 대들고 그 과정에서 여러가지 악재가 터져 중단될거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환경이라는 단어가 영험한 효과가 있었던지 그는 일사천리로 그 일을 해치웠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거침없는 태도에 반한 듯합니다. 겉으로는 사랑이니 정의니를 표방해도 속으로는 사람들의 절반은 쓸어버리고 싶어하는 우리들의 추악한 속내, 그 반영이 박정희고 이명박이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