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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군성10회 동기회 원문보기 글쓴이: 박이환
= Lucia di Lammermoor =
- 제 1 막 : 엔리코 집의 성 앞 뜰 -
합창이 벌어지는 가운데 사냥을 알리는 경쾌한 전주로
레이븐스우드 성의 지치관 노르만도와 사냥복을 입은 신하들이 나타난다.
신하들은 말을 탄 이상한 기사가 산림에 숨어 있는 것을 의심하여
그 주변을 수색하기 위해 숲속으로 달려간다.
성주인 엔리코가 루치아의 가정교사인 라이몬드를 데리고 등장한다.
엔리코는 정치적인 야심으로 음모에 가담했기 때문에
자신의 정치적인 야심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전부터 루치아를 사모하고 있는 아르투로와 정얄 결혼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엔리코는 라이몬드에게
루치아가 아르투로와의 결혼을 울면서 거절했다고 화를 내므로
라이몬드는 루치아가 지금까지도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변명한다.
그 소리를 듣고 있던 노르만도는 무서운 비밀이라 하면서
루치아는 대대로 원수인 에드가르도와 비슷한 기사와
비밀리에 만난다고 사실을 폭로한다.
엔리코는 이 말에
'너는 무서운 꿈에도 있을 수 없는 일로 내 가슴의 눈을 뜨게 했도다
(Cruda funesta smania)'하며 격문한다.
바로 이때 부하들이 돌아와
산림에 들어온 괴상한 기사는 에드가르도라고 하여
앞서 노르만도가 한 말을 증명한다.
엔리코는 라미몬드의 만류하는 말도 뿌리치고 신하들과 함께
그의 피로 내 사슴의 분노를 씻어라 하면서 복수할 것을 맹세한다.
장면은 바꾸어 레이벤즈 성 안의 조그만 공원 옆 입구에
시간은 달 밝은 밤이다.
루치아는 시녀 알리사와 함께 에드가르도를 기다린다.
비밀을 알고 있는 알리사는 그 사랑은 위험하다고 말하지만
사랑에 취해 있는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루치아는 분수를 바라 보며
예전에 한 시녀가 성주를 연모하다 뜻을 이루지 못해
저 물에 몸을 던져 죽었는데 그 여인의 흔드는 손이 보인다 하면서
'깊은 침묵은 밤을 덮는다 (Regnava nel silenzio)'
라는 아리아를 부른다.
알리사가 그녀를 위로하자 루치아는
사랑하는 사람이 오면 무섭지 않을 것이라면서 노래하자
에드가도르도가 탄 말이 가까이 오므로 알리사는 먼저 안으로 들어간다.
말을 타고 나타난 에드가르도는 늦은 이유를 말한다.
그리고 오늘밤 정치적인 특별 임무를 띠고
프랑스로 떠나는 것을 그녀에게 알릴 때
루치아는 오빠와 화해하고 두 사람의 결혼을 부탁하자고 해도
에드가르도는 아버지를 죽이고 성마저 뺏앗은 엔리코와
화해핼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가지고 온 결혼 반지를 끼어 주며 분노를 진정시키고
영원히 변함없이 사랑하라는 사랑의 2중창을 부른 후 급히 떠난다.
- 제 2 막 : 람메르무어 성 안의 넓은 방 -
엔리코와 그의 심복인 노르만도가
루치아를 설복시키기 위해 한 꾀를 꾸며낸다.
그것은 프랑스로 간 에드가르도가 사랑을 끊겠다는 뜻의
거짓 글을 보낸 것처럼 그 편지를 루치아에게 주자는 내용이었다.
바로 그 때 루치아가 여읜 얼굴로 들어 오자
엔리코는 몸조심하라고 말하지만 그녀는 근심 띤 얼굴로
'소름끼치는 창백한 빛이 내 얼굴을 덮고 있습니다.
(Il pallor funestoorrendo)'라고 마음의 고통을 오빠에게 호소한다.
엔리코는 오히려 에드가르도와 사랑을 끊으라고 하나
루치아가 듣지 않으므로
엔리코와 노르만도가 만든 거짓 편지를 그녀에게 준다.
루치아는 사랑을 배신한 그 편지를 보고
'눈물에 젖어 괴로움에 시달리면서 희망도 생명도 사랑에 걸고 있었는데
(Soffri va nel pianto)'하면서 비통한 소리로 쓰러져 운다.
이 틈을 탄 엔리코는 루치아에게
궁정의 세력가 아르투로와의 결혼을 거절한다면
나의 정치적 생명을 잃으며 사형을 당하게 된다는 설득시킨다.
그래도 그녀는 듣지 않고 에드가르도와의 결혼을 탄원하므로
엔리코는 거절하면서 나가 버린다.
이 광경을 숨어서 본 라이몬드가 근심어린 빛으로 나와
루치아에게 급히 간다.
그리하여 그는 에드가르도에게서 온 답장을
도중에서 빼앗긴 듯하다는 소식을 전해 주며
이제는 양보할 수 밖에 없다고 루치아에게 권한다.
장면을 바뀌어
람메르무어 성 안의 호화로운 홀에서 벌어지는 파티 장면이다.
기사와 귀족들이 합창으로 아르투로를 환영하는데
그는 '비통의 그늘을 사라지고 별빛은 빛난다.
(Per pocofrale tenebre)'라고 대답한다.
루치아와 아르투로의 결혼식이 열린다.
신부의 몸차림을 한 루치아가
시녀 알리사와 가정교사인 라이몬드의 부축으로
울면서 나오다가 쓰러진다.
이 광경에 당황한 엔리코는
그녀의 탄식은 죽은 어머니 때문이라고 하면서
루치아는 오빠가 처해 있는 어려움과 결혼서약서에 서명할 것을 강요한다.
루치아는 서명해 버리는데 엔리코는 이에 만족해 한다.
이 때 테라스를 통해 검은 망토를 입은 기사가 나타나는데
바로 그가 프랑스에서 돌아온 에드가드로도였다.
그는 이 밤의 결혼식을 방해하고 루치아를 데리고 가려 한 것이었다.
기사들은 이에 분개하여
에드가드로를 에워싸고 칼을 뽑자 라이몬드가
조용히 해결하자고 하면서 말려도
엔리코와 에드가르도는 듣지 않고 서로 칼을 뺀다.
그 순간에
'나를 붙드는 것은 누구인가 (Chimi frenain tal mimento)'
로 시작하여 그 유명한 6중창이 벌어진다.
라이몬드는 이 위기를 피하기 위해
결혼서약서를 에드가르도에게 보여준다.
그는 루치아의 서명을 보고 배신함을 저주하면서 반지를 돌려 보낸다.
두려움과 놀라움에 넋을 잃은 루치아도
자기 손에서 반지를 빼자 에드라르도는 그것을 빼앗는다.
이 때 에드가르도는 격분한 나머지
자기의 반지를 마루에 집어 던지고 칼을 빼들며
루치아와 그녀의 가족들을 저주하며 퇴장한다.
- 제 3 막 : 에드가르도의 레이븐스우드 성 안의 옛 성주의 방 -
밖에는 무서운 천둥이 치는 폭풍우의 밤이다.
막이 열리자 램프불 아래 에드가르도가 앉아서
실연을 회상하며 슬픈 운명을 비탄하고 있다.
그 때 결혼식 침입에 대해 격분한 엔리코는 망토를 입고 찾아와
내일 해 뜰 무렵에 레이븐스우드의 묘지에서 결투할 것을 신청한다.
장면은 다시 결혼식의 밤으로 바뀐다.
신부와 신랑이 퇴장한 후에도 피로연에 참가한
많은 사람들이 즐겨 마시며 축하의 합창을 계속 벌어진다.
그 곳에 참담한 모습으로 라미몬드가 나타나
루치아가 침실에서 아르투로를 칼로 찔러 죽였다는 것을 알린다.
바로 그 때 흰 잠옷을 입은 루치아가 머리를 흐트려 뜨리고
죽은 사람과 같이 창백한 얼굴로 나타난다.
여기서 유명한 아리아인
'님의 목소리 내 마음 속에 스며서 감드네
(Il dolce suono micolpi)'를 부른다.
그녀는 노래를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동정을 갖게 하였고
오빠인 엔리코도 후회하는 빛을 보인다.
그도 루치아의
'사랑의 눈물이 흘러 세상 위에 넘치네
(Spargi d'amaro pianto)'라는 애절한 말을 듣고 그 정경에 괴로워 한다.
장면은 다시 묘지로 변하여 깊은 밤중이다.
에드가르도는
'내 조상의 무덤이여!
불행한 집안에 남겨진 최후의 이 몸도 들여 보내주서서
(Tombe degliavi miei)'라면서 엔리코의 칼에 죽는 것을 각오하고 있다.
계속해서
'세상과 마지막 작별이오.
저 무덤은 나를 맞아 주고 덮어 주리라
(Fra pocoa me ricovero)'라는 아리아를 부른다.
성에서 나온 기사들이 지나가며 루치아가 죽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에드가르도는 루치아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러 가려는데
라이몬드가 와서 그녀의 죽음을 알린다.
그는 자기의 얕은 생각이 이 같은 불행을 낳게 되었다고 슬퍼하며
'날개를 펴고 하늘로 간 그대여 (Tu che Dio spiegasti)'를 노래한다.
그리고 애인의 죽음과 자신의 비운을 탄식하며 자결하고 만다.
이에 에드가르도의 죄를 용서하라는 일동의 합창이 끝난 후 막이 내린다.
= Donizetti, Domenico Gaetano Maria (1797~1848 이탈리아) =
직물업을 하는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J.S.마이어가 주재하는 베르가모의
교회부속음악원에서 공부하고 작곡을 시도하였으며,
18세에 볼로냐음악원에 입학하여 마테이에게 대위법을 공부하면서
가곡, 종교음악, 오페라를 작곡하였다.
1818년 《볼로냐의 엔리코》를 완성,
베네치아에서 공연되어 무대에 오른 최초의 오페라가 되었다.
1822년 《그라나타의 조라이데》로 성공하였으며,
이후 6년간 21편의 오페라를 작곡하는 등 속필로도 유명하다.
1830년 《안나 볼레나》의 성공으로 유럽 전역에 이름이 알려졌다.
1835년에 나폴리음악원 교수· 원장을 2년간 지냈으며,
이후 해마다 몇 작품씩 발표하여 성공을 거두었으나
검열 당국과의 마찰로 파리, 로마, 밀라노 등지에서 여러 작품을 발표하였다.
1844년 마지막으로 《카타리나 코르나도》를 공연한 뒤
이전부터 두통으로 시달려온 신경성마비로 요양생활을 하다가
고향 베르가모에서 세상을 떠났다.
도니제티는 벨리니와 함께 G. A. 로시니의 뒤를 계승하여
19세기 전반기에 활약한 이탈리아 음악계의 3대 거장으로
19세기 전반의 이탈리아 오페라를 대표한다.
초기에는 가수의 기량을 살리기 위해
관현악에 대한 배려가 소홀한 점이 없지않으나,
이후 원숙기에 들어서면서 제재의 폭을 확장시키고
극장 효과를 고려하여,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화려한 성부에 효과적인 관현악을 배치하여,
관객을 열광시키는 절대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의 오페라는 벨칸토 오페라의 공통적 특징인,
성부의 생명감있는 선율과 부드럽고 아름다우며 맑은 음색이 특징이다.
이외에 낭만적인 소재와 가창 기교의 정수를 과시하고 있다.
오페라는 총 64편을 작곡하였고 대표적 작품으로 오페라
《안나 볼레나》 《사랑의 묘약》 《루치아》《돈.파스콸레》
《루크레차 보르차》《연대의 딸》《라 파보리테》 등이 있다.
Donizetti Lucia di Lammermoor Il dolce suono, "The Mad Scene"(Lucia) Edita Gruberova, sop Nicola Rescigno, cond Royal Philharmonic Orch 아, 행복한 오늘! 마침내 나는 당신의 것, 그대는 나의 것(Oh, lieto gio rno! Alfin son tua, alfin sei mio), 크레센도로 솟구치는 노래는 광란 의 장면 아리아 중에서도 극적 생동감으로 요동친다. 도니제티의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3막에서 주인공 루치아가 미쳐서 노래하는 광란의 장면(The Mad Scene)은 오필리아의 아리아 등 숱한 광란 의 아리아를 통틀어 최고 명장면으로 꼽힌다. 원치 않는 남자와의 결혼날 신방에서 남자를 칼로 찌른 뒤 하객들이 담소 하는 축하연에 나타난 루치아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에드가르도의 환영 (幻影)을 좇으며 20분 가까이 부르는 절창(絶唱)이다. Il dolce suono mi colpi di sua voce! 달콤한 소리가 나를 때린다, 그의 목소리! Ah, quella voce m'e qui nel cor discesa! 아, 그 목소리가 나의 마음으로 내려온다! Edgardo! io ti son resa, Edgardo, mio! 에드가르도여! 나는 당신에게 굴복합니다, 나의 에드가르도! fuggita io son de tuoi nemici. 도망쳤소 나는 당신의 적으로부터. Un gelo me serpeggia nel sen! 한기가 올라와요 나의 가슴으로! trema ogni fibra! 떨려요 온몸이! vacilla il pie! 흔들려요 다리가! Presso la fonte meco t'assidi al quanto! 샘 가까운 곳에서 내옆에 잠시 앉아요! Ohime, sorge il tremendo fantasma e ne separa! 아아, 솟아오른다 무서운 유령이 그리고 갈라놓는다 우리를! Qui ricovriamo, Edgardo, a pie dell'ara. 여기서 피난처를 찾아요, 에드가르도, 제단의 아래에서. Sparsa e di rose! 뿌려져 있어요 장미가! Un armonia celeste, di, non ascolti? 천상의 하모니가, 들리지 않아요? Ah, l'inno suona di nozze! 아, 결혼 축가 소리가 들리네! Il rito per noi s'appresta! Oh, me felice! 예식이 우리를 위해 곧 치뤄져요! 오, 나에게 행복을! Oh gioia che si sente, e non si dice! 오, 쾌락을 느끼지만,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네! Ardon gl'incensi! 향을 피우네! Splendon le sacre faci, splendon intorno! 찬란하고 성스러운 횃불이, 비춘다 주변을! Ecco il ministro! 여기에 목사님이 계시네! Porgime la destra! 내게 줘요 당신의 오른 손을! Oh lieto giorno! 오, 즐거운 날! Al fin son tua, al fin sei mia, 마침내 나는 당신의 것, 당신은 나의 것, a me ti dona un Dio. 나에게 당신을 주었어요 하느님께서. Ogni piacer piu grato, 모든 쾌락은 더욱 감사하고, mi fia con te diviso 내가 당신과 함께 누리게 해요 Del ciel clemente un riso 온화한 하늘이, 웃음을 la vita a noi sara. 우리의 삶은 그렇게 되어요.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는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두 가문의 갈등과 사랑이 꼬이고 얽힌다. 애쉬톤가(家)와 다투다 쇠락한 스코틀랜드 레이븐우즈 가의 영주 에드가르도가 복수의 날을 기다린다. 애쉬톤의 영주 엔리코는 여동생 루치아를 재력가와 결혼시키려 든다. 이런 드라마의 정석대로 루치아는 가문의 적 에드가르도를 사랑한다. 갈등의 사이 사이 복수를 맹세하는 엔리코의 극심한 괴로움, 루치아가 에드가르도와의 밀회를 앞두고 부르는 "둘레는 고요한 침묵에 잠기고" 가 흐른다. |
*Edita Gruberova Slovak Soprano
에디타 그루베로바 (Edita Gruberova)
금세기 최고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는 단연 슬로박공화국 출신의 에디타 그루베로바이다.
에디타 그루베로바는 인간으로서 가장 높고 맑은 소리를 가장 아름답고 예술적으로 낼 수
있는 성악가이다. 그는 ‘밤의 여왕’의 대명사이다. 그의 음성은 맑고 깨끗하며 경쾌하고 아
무리 고음이라도 힘이 들어가 있다. 한마디로 위대한 고음이라고 할수 있다. 처음에는 순
수 콜로라투라에 만족하였으나 지금은 벨칸토 스타일의 콜로라투라에 전념하고 있고 한
편 드라미틱 콜로라투라의 경지를 정복하고 있다. 에디타 그루베로바는 오늘날 가장 위대
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서 특히 도니제티, 벨리니와 같은 벨칸토 작품에서 놀라운 재능
을 보여주었다.
그루베로바는 1946년 12월 23일 오늘날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스라바(Bratislava)에서 태어
났다. 아버지는 독일 계통이었고 어머니는 헝가리인이었다. 그루베로바의 모국어는 슬로
바크어이다. 그러므로 그는 독일어, 헝가리어, 체코어를 능숙하게 구사할수 있었다. 그루
베로바는 브라티스라바음악원에서 음악 공부를 했다. 지도 교수는 소프라노 마리아 메드
베츠카(Maria Medvecka)였다. 메드베츠카는 그루베로바를 자기의 후계자로 생각하여
열심히 가르쳤다.
그루베로바는 이어서 브라티스라바 음악연극학교(Vysoka skola muzickych umeni)에 다
녔다. 그루베로바는 학교에 다니면서 유명한 루츠니카(Lucnica) 민속앙상블에서 노래를
불렀고 슬로박 국립극장에서도 여러번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누구도 그루베로바가 세계
최정상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서 위치를 차지할줄은 생각지 못했다. 그저 노래 잘부르
는 귀엽고 동그스럼한 얼굴에 웃음을 띤 소녀라고만 생각했다.
1968년 그루베로바는 브라티스라바에서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로지나로서 오페라 무대
에 데뷔한다. 그루베로바가 22세 때였다. 그후 그루베로바에게는 몇 번의 무대공연이 제
안되었지만 당시 체코슬로바키아는 공산주의 장막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서유럽 진출
이 쉽지 않았다. 1969년 여름, 그루베로바의 음악 선생이었던 메드베츠카는 그루베로바
를 비엔나국립오페라의 오디션에 참가토록 하기 위해 공산주의 경찰의 눈을 피해 그루
베로바를 비엔나로 데려갔다(비엔나에서 자동차로 한시간도 걸리지 않음).
그루베로바의 노래를 들어본 비엔나 슈타츠오퍼는 그 자리에서 그루베로바와 계약을 맺
었다. 그루베로바가 23세 때였다. 이듬해에 그루베로바는 ‘밤의 여왕’으로 화려한 데뷔를
하였다. 비엔나 음악계는 혜성과 같이 나타난 신인 콜로라투라 그루베로바에게 경이로운
박수를 보내며 머지않아 그가 세계 오페라 무대를 석권할 것을 예고하였다.
‘밤의 여왕’으로 성공을 거둔 그루베로바는 음악적 성공을 위해 체코슬로바키아로부터
오스트리아로 이민을 결심하였다. 이후로부터 그루베로바는 비엔나의 중요한 오페라에
는 물론 세계 각자의 오페라 극장으로부터 홍수와 같은 초청을 받기시작했다. 주로 콜로
라투라 역을 맡아 달라는 초청이었다. 그루베로바는 레코드 취입에도 열심을 다했다.
모차르트의 대단히 높은 고음을 요구하는 콜로라투라 콘서트 아리아들은 그루베로바를
위해 작곡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루베로바의 모차르트 콘서트 아리아를 들은 사람들
은 그 어려운 고음을 마치 악기처럼 섬세하게 부르는 솜씨에 자기도 모르게 전율하였다.
그로부터 사람들은 그루베로바를 세계 최고라고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루베로바의 메트로폴리탄 데뷔는 1977년에 이루어졌다. 역시 ‘밤의 여왕’이었다. 같은
해에 그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돈 카를로’의 에볼리역을 맡아 경탄을 받았는다. 좀
처럼 표정이 없기로 유명한 지휘자 허버트 폰 카라얀이 무대로 뛰어 올라와 그루베로바
를 포옹하며 찬사를 보낸것은 바로 이 공연이었다. 그루베로바는 1984년 코벤트 가든과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캬풀레티가와 몬테키가’(벨리니)의 줄리에타역을 맡아 사람들
을 완전히 매료시켰다.
라 스칼라에서는 돈나 안나(돈 조반니), 마리(연대의 딸)로 성공적인 데뷔를 하였고 스
위스 취리히에서는 세미라미데로 갈채를 받았다. 그리고 1990년 비엔나에서 도니제티
의 ‘로베르토 드브로’ 중 엘리자베스 1세역을 맡아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의 최정상임을
다시한번 확인해 주었다. 그루베로바의 주요 레퍼토리는 체르비네타(낙소스의 아리아
드네), 길다(리골레토), 비올레타, 루치아(람메무어의 루치아), 콘스탄체(후궁에서의
도피), 마농, 오스카(가면무도회) 등등 이루 헤아릴수 없을 정도이다.
다른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들, 특히 비벌리 실스와 마찬가지로 그루베로바도 연륜을 더
해 감에 따라 좀더 무거운 역할에 도전하며 스핀토와 수브레토에 정진하는 한편 벨칸토
의 진수를 표현하기에 노력하였다. 그루베로바의 가장 유명한 업적은 튜도왕의 세명의
여왕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한 것이다. 도니제티의 마리아 스투아르다(메리 여왕), 안나
볼레나(앤 왕비), 그리고 로베르토 드브로 (엘리자베스 여왕)이다. 이제 그루베로바는
단순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가 아니라, 드라미틱한 감정을 화려하게 펼치는 벨칸토의
여왕으로서 찬사를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