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에 대하여 / 구용식 - 2019, 40회 근로자문화예술제 금상
삼십대 후반, 조그맣게 하던 제조업이 망하면서 길바닥에 나앉았다. 길바닥에 나앉았다는 문장은 은유나 비유가 아닌 사실적인 표현이다. 지인의 소개로 도로공사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게 되었다. 처가에 피난 가듯 들어간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되는 입장에서 당장 돈이 되는 도로공사 일용직은, 그 당시에는 유용했다. 일은 고되었지만 일이 많았다. 국민임대 아파트에 입주하고 숨을 고를만할 때, 아예 직업이 되었다.
도로공사는 보도(步道)도 포함한다. 경계석을 놓고 측구를 치고 보도블럭을 깐다. 오래되어 터져나간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새로 포장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도로를 걷어내고, 다시 복구를 해야 한다. 낮에도 일을 하지만 밤새 일을 하는 날도 많다. 교통량이 많은 복잡한 도로나 사람의 통행이 많은 도심지는 심야에 작업을 한다. 일반적인 공사 현장처럼 차단막을 쳐놓고 하는 공사가 아니다. 지나는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노출된 현장이다 보니 별일이 다 생긴다. 멀쩡한 도로 맨날 파헤친다고 대통령까지 거들먹이며 시비를 건다. 밤새 작업을 하고 조금이라도 늦어져 차라도 막히면, 세상 욕이란 욕은 다 먹고 경찰이 와서 잡아가기도 한다. 세상에 둘도 없는 을(乙)이 도로공사다.
그렇다고 일 년 내내 바쁜 것은 아니다. 도로공사는 관급공사다. 겨울에는 일이 없다. 그래서 일이 있을 때,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무리를 한다. 아무리 겨울이라고 해도 무턱대고 놀 수는 없다. 일이 있을 만한 곳이면 어디든 얼굴을 내밀어본다. 운이 좋은 날은 날일을 나가기도 하지만 허탕 치는 날이 태반이다. 어느 현장이든 겨울에는 일감이 준다. 공급과 수요의 법칙이 고스란히 반영된다. 일하는 사람은 줄을 서고 일당은 줄어든다. 맛 집의 줄보다 가혹하다. 굶어야 한다.
일이 없는 날에는 집에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다. 집 나가면 돈 만 쓴다. 마흔 중반의 어느 겨울이었다. 집구석에서 숨만 쉬고 있기가 그래서 아이들 책장에서 책을 하나 골라잡았다. 시간이나 때울 겸, 그냥 뒤적거렸다. 돈 들이지 않고 시간을 보내기에는 그것 말고는 딱히 없었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라는 제목의 책을 고른 것은 책이 두껍지 않았고, 낯선 누군가 하루쯤의 이야기야 읽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오랜만에 읽는 것치고는 잘 읽혔다. 혹독하게 추운 수용소의 하루가 찬찬히 이어졌다. 노련한 작가는 일상의 흔한 단어와 문장으로 세세하게 수용소의 겨울 아침을 그려나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책 속으로 완전히 빠져들었다.
벽돌을 조적하는 장면이 나온다. 몰타르를 개고 벽돌을 날랐다. 반장과 기공(技工)이 작업반들에게 고함을 지르며 작업을 재촉한다. 몰타르와 벽돌이 원활하게 올라오고 기공들의 손놀림은 재빠르다. 현장 느낌이 제대로 났다. 내가 하는 일과 별다르지 않아 더욱 공감이 갔다. 그들은 나를 매혹시켰다. 그러다 가슴이 저려왔다. 그들은 일당을 받기 위해 벽돌을 쌓는 것이 아니었다. 수용소의 그들에게 목숨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벽돌을 제대로 많이 쌓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맞춰 집합해서 인원수를 확인하고 복귀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작업을 마무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공감이 가기도 했고 조마조마한 그들의 억척이 무모해보이기도 했다. 집합시간에 늦어 봉변을 당할 뻔했지만, 그들 모두가 무사히 수용소로 복귀했다. 나는 한숨을 내뱉었다. 그들의 하루는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책을 덮고 나서도 쉽사리 잊혀 지지 않았다.
그 해 겨울, 그 책을 열 번 넘게 읽고 또 읽었다.
이른 봄, 공사는 다시 시작되었다. 지나는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를 못마땅하게 바라본다. 멀쩡한 보도블럭과 아스팔트도로를 걷어내냐는 눈치다.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보도블럭이나 수많은 차량이 다니는 도로를 걷어내고 땅을 파면 온갖 종류의 배관이 나온다. 하수와 오수가 흘러가는 흄관이 나온다. 수도관이 나오고 통신선이 지나는 배관이 나온다. 가스관도 지나가야 하고 가로등전기선을 보호하는 배관도 나온다. 거리의 흉물인 전봇대를 뽑아내고 2만2천900볼트의 고압선을 땅으로 집어넣은 굵고 주름진 배관도 나온다. 겉은 멀쩡하더라도 속에 병이 들면 걷어내서 교체를 하고 수리를 해야 한다. 사람의 멀쩡한 배를 가르고 병든 장기를 고치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전쟁이 끝나고 우리는 서둘러 도시를 재건했다. 빨리, 빨리, 우리는 먹고 살만한 나라로 만들었다. 그 부작용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도시의 내장이 뒤죽박죽 엉켜 버린 것은 누구도 탓할 일이 아니다. 우리는 숨 가쁘게 지금을 만들었다.
오래되어 녹슨 수도관을 들어내고 교체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녹슨 물을 마셔야 한다. 값비싼 통신선을 매설한다. 인터넷 없이 하루도 못 사는 세상이 되었다. 낡은 하수관으로 하수가 새어나와 싱크홀이 생기고 땅속이 오염된다. 가스 없이 살 수가 없고, 오래 된 가스배관을 방치하면 도시는 거대한 폭탄을 끌어안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비와 눈이 견디지 못한 아스팔트가 파여 포트홀이 생겼다. 타이어가 찢어지고 차가 전복되기 전에 복구를 해야 했다. 욕을 하고 이의를 제기하더라도 문제가 생기면 보도든 차도든 걷어내고 땅을 파야 한다. 그리고 다시 원상복구를 해야 한다. 그렇게 매일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대책을 만든다고 분주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놀라운 기적은 그 반복되는 일상에서 시작되었다. 고작 소설 책 한권을 읽었을 뿐인데, 일을 하는 내내 책 속의 그들이 떠올랐다. 우리나라도 아닌 먼 나라 수용소에서 벽돌을 쌓은 그들이 나를 이끌었다. 몸은 고되지만 내가 하는 일에 좀 더 신경을 쓰게 되었다. 나는 서서히 깨달아갔다. 왜 그들이 수용소라는 곳에서 강제노역을 하면서도 벽돌을 더 쌓으려고 했는지 말이다. 그것도 신변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노동에 대한 예의를 갖추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격을 그들은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먹고 자는 것뿐만 아니라 숨 쉬고 생각하는 것조차 그들은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했다. 한마디로 짐승만도 못한 수용소의 삶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유일하게인간일 수 있었던 시간은 노동의 시간이었다. 일당도 없고 아무런 혜택도 없는 그들의 노동에서 그들은 스스로가 가치를 만들었고, 그래서 그들은 분명한 인간이었다. 인간의 굴곡진 역사는 그렇게 노동의 과정을 통해서 자유와 평화와 인권을 힘겹게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으로서 일용직 도로공사 일을 15년 넘어 하고 있다. 나는 반장이 되었고 아이들은 대학에 갔다. 노동의 대가가 적고 많고를 넘어,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간에, 나는 내가 해온 노동에 감사한다. 먹고 살았다. 삶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품격을 나는 노동으로 누리고 있다고 믿는다. 세상사람 누가 뭔 말을 하든, 나는 인간적인 삶을 노동으로 해결했다. 그리고 힘이 닿는 한, 노동을 할 것이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격을 가지려면, 나의 노동뿐만 아니라 상대의 노동에도 예의와 품격을 지켜주어야 한다. 땅을 파고 도로를 복구하는 일은 도시의 핏줄과 생명줄을 유지하는 일이다. 심야시간에 도로를 차단하고 공사를 하는 것은 목숨을 건 위험한 일이 되었다. 과속차량과 음주차량에 도로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나 또한 경험자다. 현장으로 돌진한 음주차량에 받혀 3미터를 날아가 떨어졌다. 바로 옆에서 목격한 동료들은 내가 죽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의식을 잃고 구급차로 병원으로 옮겨졌다. 다행히 대퇴부 타박상 말고는 다른 이상이 없었다. 모두가 기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부상과 사망사고는 내 주변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수많은 공사안내 간판을 설치하고 많은 돈을 들여 안전장치를 갖추어도 소용없다. 핸들을 잡고 운전하는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사고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도로공사 현장을 지날 때, 가속페달에서 발을 조금만 떼는 배려가 수많은 돈과 공을 들인 안전대책보다 생명을 살리는 데는 유용하다. 그 얼마나 품격 있는 일인가.
그 겨울, 그 소설을 읽고 또 읽은 후, 내가 하는 노동은 내 얼굴이 되었다. 대충 일을 하면 하자가생기고 사고가 일어난다. 내 얼굴이 뭐가 되겠는가? 일용직이라는 입장을 넘어 사람으로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땅을 파고 메울 때도, 보도블럭 하나를 손에 쥐는 순간에도, 더욱 신경을 쓴다. 의사가 환자의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듯, 땅을 파고 다시 복구하는 일도 그것에 못지않게 신중하게 일을 해야 한다.
길을 걷다, 다른 도로공사 현장을 지날 때가 있다.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본다. 그들이 몹시 처량해 보인다. 늙었고 허름한 작업복 차림이다. 젊은이들은 보기 힘들다. 나와 같이 일하는 작업반도 마찬가지다.
자율주행차량이 다니는 미래에도, 도로도 보도도 존재할 것이다. 당연하다. 우리는 걸어야 하고 차는 다녀야 한다.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과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도로는 늙어가고 도시의 내장은 썩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