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이제이(以夷制夷)
오랑캐로 오랑캐를 무찌른다는 뜻으로, 적을 이용하여 다른 적을 제어함을 일컫는 말이다.
以 : 써 이(人/3)
夷 : 오랑캐 이(大/3)
制 : 절제할 제(刂/6)
夷 : 오랑캐 이(大/3)
(유의어)
이이공이(以夷攻夷)
한 나라를 이용해 다른 나라를 제압한다는 의미로, 옛날 중국 본토 국가들이 주변 국가들을 다스릴 때 사용하던 전략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사방의 여느 민족들이 다 오랑캐였다. 그래서 각각의 오랑캐를 자신들의 힘으로 제압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래서 탄생한 전략이 바로 이것이다. 오랑캐를 이용해 오랑캐를 제압한다는 것이다.
요즘같이 연일 수은주가 치솟는 날이 계속되면 열로써 열을 다스린다는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몸에 열이 있을 때 더욱 덥혀 땀을 내게 한다든지 뜨거운 차를 마셔서 더위를 이긴다든지 할 때다.
날씨가 더울 때는 몸의 열이 안에서 쌓이기 때문에 뜨거운 음식을 섭취하여 더운 기운을 밖으로 배출시킬 수 있다고 한다. 뜨거운 삼계탕이 불티나게 팔리는 것은 모두 열로써 열을 다스리는 지혜인 셈이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이 확장된 뜻은 한 세력을 이용하여 다른 세력을 제어함을 이르는 말이 되었지만 정작 이 때는 오랑캐로 하여금(以夷) 오랑캐를 제압한다(制夷)는 이 성어를 많이 쓴다. 이열치열은 고사가 아닌 조어로 많이 썼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를 동이(東夷)라 했듯이 중국은 자신들만 제일이고 주변의 민족은 모두 오랑캐라 불렀다.
이이제이(以夷制夷)는 후한(後漢)이 펼친 주변국에 대한 외교정책에서 유래했다.
서기 86년 국경지방에서 반란이 일어나 장제(章帝)는 등훈(鄧訓)을 지역태수로 임명했다. 그즈음 장우(張紆)라는 장수가 강족(羌族)의 우두머리들을 살해한 일이 있었다. 조정에선 등훈(鄧訓)으로 하여금 무마하게 했지만 강족(羌族) 여러 부락들은 복수할 날만 노리고 4만여 명의 병사들을 훈련시켜 얼음이 얼기만을 기다렸다.
그 이웃 지역에는 소수민족 호족(胡族)도 있었는데 이들은 용맹한 기병으로 강족(羌族)과의 싸움에서 늘 이겼다. 그래도 한(漢)나라와는 별 원한이 없었고 한(漢)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강족(羌族)이 군대를 이끌고 와서 먼저 호족(胡族)과 싸우자 등훈(鄧訓)은 군대를 보내 호족(胡族)을 도왔다. 주변에서 모두 그들이 서로 싸우면 한나라에 유리한데 오랑캐 싸움을 돕지 않아야 한다(以羌胡相攻 縣官之利 以夷伐夷 不宜禁護)고 했다.
등훈(鄧訓)은 한 쪽이 강대해지면 더 어려워지므로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때 송(宋)나라 범엽(范曄)이 편찬한 후한서(後漢書)의 관구(鄧寇)열전에 전한다.
이이제이(以夷制夷)
병자호란 때 오랑캐만큼 백성에게 욕먹은 인물이 정명수라는 조선 사람이다. 포로가 됐으나 말을 배워 적장(敵將)의 역관(譯官)으로 돌아와 위세를 부렸다. 조선 사정을 밀고해 충신을 죽였고 간신과 결탁해 국정을 농락했다. 조정이 국방에 힘쓰려 하면 달려가 일러바치는 통에 다들 벌벌 떨었다. 그에게 뇌물을 먹였고 처가 친척 관노비까지 벼슬을 줬다. 조선엔 충신이 많았지만 살모사 같은 몇 명을 당해낼 수 없었다. 이웃 강대국을 등에 업었기 때문이다.
을미사변은 일본이 조선 왕후를 살해한 야만적 국가 범죄였다. 그러나 쳐다보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다. 조선인 가담자다. 우범선은 왕실을 지키는 훈련대 대대장이었다. 그런 그가 일본군에게 궁궐 문을 열어주고 살육 현장을 호위했다. 전날 일본 공사에게 만행을 재촉한 것도, 칼을 맞고 헐떡거리는 왕후를 불태운 것도 우범선이라는 기록이 있다. 그래도 정의는 살아 있는 모양이다. 강국에 빌붙어 호의호식하던 정명수·우범선 둘 다 동포 손에 죽었으니.
사실 훨씬 논쟁적인 인물이 흥선대원군이다. 일본군 호위를 받으며 왕후 시해 때 궁궐에 들어왔다. 일본은 그를 이용해 사건을 궁궐 내 암투로 위장하고 싶었다. 강제로 왔다는 설도, 앞장섰다는 설도 있다. 여하튼 그는 결과적으로 일본을 도왔다. 세상 보는 눈은 어두웠을지언정 나라 사랑만은 투철했던 인물이 왜 그랬을까. 나라를 깡그리 잊을 만큼 '우리 안의 적(敵)'이 미웠던 걸까.
구한말 일본은 한국을 손바닥 보듯 알고 있었다. 돈 들여 밀정을 쓰지 않아도 정보가 줄줄 들어왔다. 당파 싸움에서 밀린 사람들이 제 발로 찾아와 내뱉는 하소연만 들으면 훤히 보였다. 일본에 날을 세우던 어제의 친청·친러 세력이 시대가 달라지자 낯빛을 바꾸고 달려왔다. 중국 사상가 량치차오(梁啓超)는 "오직 강한 것을 바라보고 오직 나를 비호해줄 수 있는 것을 따랐다"고 한국을 비판했다. 강국을 뒷배 삼아 서로 물어뜯으니 백성은 나라가 망해도 슬퍼할 수 없었다.
강대국이 조선을 농락하는 방법은 단순했다. 우리 내부 갈등에 기름을 흠뻑 뿌려 서로 할퀴다가 스스로 무너지게 했다. 친일파가 친청파를 죽이고, 친러파가 친일파를 죽이고…. 그러다 애국자의 씨가 마르면 나라를 날로 먹었다. 백여 년 전 일본이 그랬다. 중국의 제국주의 역사는 2000년이 넘는다. 내부 분열을 조장해 다스리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이 몸에 뱄다. 그들이 일본만 못할까. 그런 역사를 뻔히 알면서 우리는 사드 앞에서 다시 쪼개지고 있다. 정말 숙명인가.
이이제이(以夷制夷)
적을 이용하여 다른 적을 제어한다는 뜻입니다.
이이제이(以夷制夷)란 적을 이용하여 적을 격파한다는 말입니다. 이 전술은 중국인들이 즐겨 쓰는 것인데, 이 전술을 사용하기 전에 많은 준비와 연구가 필요합니다. 즉 적군들이 다수 존재할 때 그들 사이에 갈등 요소를 철저히 분석하여 그것을 전술적으로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나관중의 삼국지 내용의 상당 부분은 이이제이 전술의 경연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중국인들은 전쟁이란 용맹(勇猛)으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용맹으로 말하면 중국 주변의 유목민족들을 따라갈 수가 없으므로 꾀로써 이들을 제압하여야만 하는 것이죠. 그래서 중국인들은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거나 적으로서 적으로 제압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묘책(妙策)으로 봅니다.
이이제이라는 말이 과연 어떤 경로를 통해서 사용된 것인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이(夷)라는 말은 우리 민족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말인 것은 분명합니다. 제가 보기에 중국의 동북부 또는 중국의 동부 해안 지대에 다수 거주했던 쥬신족들(중국인식으로 말하면 동이족)을 제압할 때 사용했던 말 같습니다. 이이제이 전술은 쉽게 제압하기 힘든 강자를 제거할 때 사용하는 계책으로 고도의 이간계(離間計)이기 때문이죠.
이 말을 냉정히 따져보면 이들 동이족(쥬신족)들은 이간계에 쉽게 넘어가는 특성을 가졌다는 말은 아닐까요? 동이족(쥬신족)들이 아무리 활을 잘 쏘고 강병(强兵)을 가지고 있으며 호방하지만, 중국인들은 이들이 직선적이어서 남들이 부추겨 세우면 쉽게 우쭐하고 인정에 약하고 남의 말에 잘 속는다는 점을 간파한 듯합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이들을 잘 구슬러서 이간질하면 쉽게 중국에 호응하는 특성을 발견한 것은 아닐까요?
나관중 삼국지에 나타난 전술들은 이이제이(以夷制夷), 즉 이간질을 통하여 적의 내부분열을 꾀하고 서로 싸움을 붙여 적으로 적을 격파하면서 세력이 약화되면 둘 모두를 섬멸하는 중국 고유의 전술이 구체화되어 나타난 것입니다.
적의 세력이 강하면 설령 아군이 절대적인 우위에 있더라도 전쟁 자체로 인하여 많은 피해가 예상되므로 적들을 서로 교란시켜서 어부지리를 취하는 동시에 적이 약화된 틈을 노리는 전술은 어떤 의미에서 가장 고전적인 중국인들의 전술이라고 할 수 있죠.
이상을 통해서 보면 중국인들의 전술을 이해할 수 있는 코드를 어느 정도는 제시할 수 있을 듯도 합니다. 이것을 중국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36계의 개념들을 이용하여 한번 이야기해 봅시다.
중국인들은 자신이 약하다고 판단이 될 때, 또는 자신의 주변에 큰 세력들이 있을 때, ①욕속부달(欲速不達; 절대로 서두르지 말고)이나 선수필승(先手必勝; 어떤 경우라도 상대방보다 앞서서 일을 착수하고 추진한다) ②소리장도(笑裏藏刀; 웃음 뒤에 칼날을 숨긴다. 즉 자신의 책략이 어떤 것인지 철저히 감추고 우호적으로 대한다) ③혼수모어(混水摸魚; 흙탕물을 일으켜 정신이 산란해진 물고기를 잡아 올리는 것) 하거나 지상매괴(指桑罵槐; 뽕나무를 가리키며 홰나무를 욕하다. 즉 상대방에게 들으란 듯 다른 사례로 협박하는 것) ④차계생단(借鷄生蛋; 즉 다른 사람의 닭을 빌려서 알을 낳게 한다) ⑤차도살인(借刀殺人; 남의 칼을 빌려 다른 사람을 죽인다. 즉 남의 힘으로 나의 적을 죽인다) 등의 전략으로 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의 근저에는 한족의 가장 전통적인 외교 전략이 숨어 있습니다. 바로 원교근공(遠交近攻)이죠. 즉 가까이 있는 적은 공격하고 멀리 있는 적들과는 화친정책을 편다는 말이죠. 사실 가까이 있는 나라들은 여러 가지 이해가 교차하기 때문에 사이가 좋기 어렵습니다.
북한과 중국이 혈맹 운운하면서 친한 듯해도 신의주 특구 사건(행정장관 양빈 체포)에서 보듯이 가까워지기에는 한계가 있지요. 군사적으로도 가까운 곳에 적을 둔 상태에서 먼 곳의 적을 공격하기가 어렵죠. 그래서 가까운 적은 공격하고 먼 곳의 적과는 친하게 지낸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 중국과 미국이 매우 가까워지는 것은 우리에게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원교근공의 전략에 따라 가까운 적을 공격할 때 사용하는 하나의 신호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한반도 상황에서도 예외는 아니지요. 중국은 한반도에 대하여 여러 가지 카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남과 북이 나눠져 있으므로 중국은 중국이 가진 고유의 전술들을 유감없이 발휘해 낼 수 있습니다. 즉 중국은 미국, 일본, 러시아, 남북한, 대만이라는 얽히고 설킨 난맥상의 국제정치 현실 속에서 궁극적으로 미국과는 여러 면에 있어서 원만하기가 어렵지만 남북한은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장기적으로 중국은 정치 경제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국제적으로 고립된 북한을 통해 미국과 한국을 견제할 수 있으며 러시아를 통해 일본이나 미국을 견제할 수 있겠죠.
현재의 동북아시아 상황에서 중국은 굴갱대호(堀坑待虎; 굴을 파고 호랑이가 올 때까지 기다려 호랑이가 굴로 들어가면 사로잡는 방법)나 이호경식지계(二虎競食之計; 두 마리의 호랑이가 서로 다투어 잡아먹게 하는 계략. 즉 호랑이 두 마리를 이간질하여 서로 싸우게 만들어 큰 상처를 입으면 즉각 공격하여 두 마리 모두를 죽이는 전술)에 사용할 카드를 많이 확보하고 있습니다.
이이제이(以夷制夷)
중국의 근대를 연 혁명가 쑨원이 1924년 일본에서 한 연설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중국은 왕도(王道)에 의해 그들을 감화시켰고, 감동을 한 그들은 조공했다." 그들은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을 말한다. 스스로 중국을 상국(上邦 상방)으로 숭배했고 중국의 속국(藩屬 번속)이 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때 식민지 한국의 한 신문사 특파원이 "한국의 독립은 왜 언급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쑨원은 "일본에서 그 문제를 거론하고 싶지 않다"고 냉랭하게 답했다. 당시 일본은 대(大)아시아주의를 주장하던 쑨원의 후원자였다.
90년 후 중국 지도자의 역사 인식은 흘러간 세월만큼 달라진 듯하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양국 국민은 적개심을 품고 어깨를 나란히 해 전쟁터로 같이 향했다"고 연설했다. '어깨를 나란히 했다(竝肩 병견)'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쑨원의 연설은 우리를 욱하게 하고 시진핑의 연설은 우리를 들썩이게 하지만, 역사를 읽으면 다른 기분을 느낀다.
시진핑이 '어깨를 나란히 했다'고 말한 임진왜란 당시 우리 임금의 중국관(觀)을 상징하는 사건이 '걸내부(乞內附)' 파동이다. '내부'란 한 나라가 다른 나라 속으로 들러붙는 것을 뜻한다. 백성과 강토를 버리고 중국에 복속하겠다고 요청한 것이다.
그럼에도 중국은 개전 초기 일본과 조선의 결탁을 의심했다. 임금은 정성을 다해 숭배했지만 중국은 조선을 일본과 같은 '이(夷)'의 일부로 본 것이다. 명나라의 파병은 조선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장(戰場)의 요동 확대를 우려해 내린 고육책이었다. 중국은 유구(琉球)국을 통해 일본의 목표가 중국 침략이란 사실을 조선보다 먼저 파악했다.
조선 땅에 진입한 명군(明軍)에 관한 기록은 비참하다. 일국의 재상이라는 영의정이 군량을 제때 못 댄 잘못으로 명나라 장수 이여송 앞에 꿇어앉아 사죄했다. 굶어 죽는 시체가 거리를 덮던 때였다. 영의정 류성룡은 "나랏일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고 기록했다.
시진핑이 '한·중 전우애(戰友愛)'의 상징으로 언급한 장수 진린에 대해 그는 이렇게 적었다. "그 군사가 (조선 관료의) 목을 끈으로 묶고 끌고 다녀 얼굴을 피투성이로 만들었다. 말렸으나 듣지 않았다." 진린과 전우애를 나눴다는 이순신도 명군에 대해 "인명(人命)과 재물을 빼앗으니 백성이 온다는 소문만 듣고 도망갔다"는 기록을 남겼다.
명군이 데려간 조선 여자가 수만 명이었고, 조선 백성 사이에 '왜적은 얼레빗, 명군은 참빗'이란 이야기가 돌았다고 기록한 사서(史書)도 있다. 왜적의 약탈은 부스러기라도 남기지만, 명군의 약탈은 싹 쓸어버린다는 뜻이다. 조선의 임금과 재상과 백성 누구도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한 적이 없었다.
물론 그들이 없었으면 조선은 망했을 것이다. 그래서 조선은 '재조지은(再造之恩; 망하게 된 것을 구해준 은혜)'이란 깃발 아래 썩어 없어진 한족(漢族)의 명나라를 몇 백 년 동안 숭배하다가 결국 내 나라까지 잃었다. 빚잔치는 100년 전에 끝난 것이다.
우리는 일본에 대해선 시시콜콜 과거를 따지지만 중국엔 관대하다. 중국의 침략사를 북방 오랑캐로 한정하고 한족의 중국을 우리와 일치시키는 소중화(小中華) 이념이 남아 있기 때문이란 관점도 있다. 특히 미국과 일본에서 이런 한국관(觀)이 확대되고 있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21세기 중국의 화이(華夷) 질서에서 우리는 어디에 위치하고 있을까. 여전히 이(夷)에 위치한다면, 지금 우리는 중·미·일 대립이란 큰 그림 속에서 중국의 전통적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에 장기 말처럼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이이제이(以夷制夷)
북한은 그동안 전쟁 위협을 하더니 이제는 뒤집어 씌우려고 한다. 북한의 대남 정책과 대남 방송은 이중적이며 간교한 트릭을 품고 있다. 누적된 대북 감정대로라면 당장 보복을 해도 속이 풀리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부딪히지 말고 서서히 고사시키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북한의 공포 심리전에 말리면 국가의 품격과 실리를 잃고, 이에는 이라는 식으로 맞받아치면 우리가 잃는 게 더 많다.
북한의 계산된 행위에 조급하게 바로 대응하지 말고 무시 혹은 우회적 대응을 해야 한다. 적과 맞붙는 직접대결보다 간접접근전략 즉 심각한 전투 없이 결정적 승리를 위해 적의 이탈 유도, 주적과 동포 분리, 대북심리전 전개 등과 오랑캐는 오랑캐로 잡는다는 이이제이(以夷制夷)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잡초를 쓰러뜨리는 것은 강풍이 아니라 웃자람이며, 바람을 잠재우는 것은 빛이 아니라 맞바람이다. 기업체의 반칙을 심판하는 것은 경쟁업체가 아니라 고객이듯, 강한 적을 쓰러뜨리는 것은 아군의 물리력이 아니라 적 내부의 혼란과 분열이다. 성질이 느긋하고 우직하게 하나씩 체계와 순서를 밟는 사람이 성공을 하듯, 적이 적을 치도록 작전을 디자인하고 조용하게 기다려야 승리한다.
이이제이(以夷制夷)는 그의 모순으로 그의 모순을 치는 전략이다. 아무리 약한 상대라도 맞상대하면 손에 피를 묻혀야 한다. 기분 나쁜 소리를 들었다고 바로 따지면 품위와 실리를 잃는다. 기다렸다가 허를 쳐야한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지만 솟구치는 풍랑은 배를 뒤집고, 힘은 힘의 방향으로 작동하지만 힘의 방향을 의도적으로 바꾸면 역방향으로 공격할 수 있다.
이이제이(以夷制夷)는 선은 선으로 복을 받게 하고, 악은 악끼리 부딪히게 하여 악을 소멸하는 군사 철학이다. 그의 것을 그에게 주는 것이 정의라면, 그의 모순(모순으로 인한 피해 세력)으로 그의 모순을 치는 것은 책략이다. 파괴할 곳을 계속 집요하게 파괴하는 것(破於破)이 집중이라면, 파괴할 곳을 파괴시킬 대상으로 하여금 파괴하는 것((破所破)은 화엄의 지혜다. 적도 우군으로 만드는 것이 외교라면, 적을 적으로 타파하는 것은 국방이다.
제풀에 쓰러지게 하는 전략을 찾자. 악한 일은 그냥 두어도 멸망한다. 내부에 쌓인 악(惡)을 악(惡)에 피해를 본 자가 치기 때문이다. 약한 부대가 강한 부대를 이긴 전사를 보면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공격을 했거나, 기만전술로 적을 지치게 했다. 적을 직접 제압하려면 적보다 10배의 전투력을 쏟아 붓고도 승리를 장담하지 못한다. 직접 부딪혀서 이기는 것은 하책이다.
내부 모순이 누적되면 그 모순이 언젠가는 폭발한다. 맞상대하지 말고 적의 적을 조정하고 조용히 무너지는 시공간을 관찰해야 한다. 어설픈 자극은 오히려 적이 내부적으로 뭉치게 만든다. 군의 최고의 애국 행위는 국민을 불안하지 않게 하면서 쓰러질 적을 결정적으로 쓰러뜨리는 것이다.
적에 대한 개념을 명확하게 인식하자.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은 적으로 하여금 적을 친다는 개념인데, 그럼, 적(敵)은 뭔가? 원수(怨讐), 적수(敵手), 전쟁의 상대자, 심지어 경쟁자까지 적이라고 명시한 사전이 있다. 적은 국가(조직)의 생존과 발전을 방해, 위협, 멸망시키려고 하는 이념과 조직을 갖춘 세력이다. 적은 현실의 적, 잠재적 적, 가상의 적 등 실존적 위협과 미래 변화 예측에 따라 분류를 할 수 있다.
적의 실체를 분명히 알고 대비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주적(主敵)은 김정은 일가, 북한 노동당과 군부 지휘세력이다. 전체 인구의 3% 미만(2,400만 인구 중 72만명)이다. 3%의 악이 97%의 선량한 동포를 억압하는 모순 구조다. 북한 인구의 97%는 공포와 억압(공개 처형, 수용소)에 길들여있어 저항 자체를 생각하지 못한다. 왕조 시대보다 더 모순적이고 악질적인 폐쇄구조 속에서 다수의 인민이 연명하고 있다.
종북과 친북 세력이 생긴 것은 주적과 북한 동포를 혼동했고 북한 주적을 돕는 게 북한 동포를 돕는 것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주적은 지금도 반인륜적 범죄를 범하고 있는데, 종북 세력들은 주적과 동포를 분리하는 개념이 없어서 반인륜 범죄에 동참을 했고, 그동안 너무 깊게 참여한 종북 세력들은 자신의 행위가 북한 인권 억압에 동참하는 모순을 알면서도 빠져나오지 못한다. 지금이라도 주적과 동포는 다르고 분리되어 있음을 일깨워주고, 주적이 동포에게 가한 만행을 노출시켜서 종북에서 이탈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적으로 적을 치게 하려면 분노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로마와 고구려 멸망사와 기업 폐업의 주연(主演)은 대개가 내부 측근들의 배신 때문에 망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왕조 시대 전쟁사를 보면 전세가 기울면 적의 적장이 적의 주군을 쳐서 쓰러뜨린다.
북한 체제 모순을 내부에서 폭로할 수 있는 인간 정보 세포를 심고, 전단지와 USB(메모리) 살포와 대북 심리전으로 북한 수뇌의 인권유린을 알리고, 북한 체제유지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인식시켜 내부에 동요가 생기게 해야 한다. 북한은 '현재 전쟁수행 능력이 없다'고 북한 전력을 있는 그대로 국민에게 알려서 대북 자신감을 고취시키고, 앞으로 북한의 최후 발악이 예상되므로 이스라엘처럼 똘똘 뭉쳐서 비상 국면을 이겨나가자고 대국민 설득을 해야 한다.
이이제이(以夷制夷)
이이제이(以夷制夷)란 적을 이용하여 적을 격파한다는 말이다. 이 전술은 중국인들이 즐겨 쓰는 것인데 이 전술을 사용하기 전에 많은 준비와 연구가 필요하다.
삼국지(三國志)를 쓴 나관중(羅貫中)의 전술을 살펴보면 적군들이 여럿 존재할 때 그들 사이에 갈등 요소를 철저히 분석하여 그것을 전술적으로 이용하라고 했다. 전술내용의 핵심은 상당 부분이 이이제이전술(以夷制夷戰術)의 경연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중국인들은 전쟁이란 용맹(勇猛)으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용맹으로 말하면 중국 주변의 유목민족들을 따라갈 수가 없었으므로 꾀로써 이들을 제압하여야만 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거나 적과 적끼리 서로 싸움을 시켜서 그들이 서로 세력이 약해졌을 때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묘책(妙策)으로 보았다.
나관중(羅貫中)의 삼국지(三國志)>에 나타난 전술들은 대체로 이이제이(以夷制夷) 전술이 많다. 이간질을 통하여 적의 내부분열을 꾀하고 서로 싸움을 붙여 적으로 적을 격파하면서 세력이 약화되면 둘 모두를 섬멸하는 중국 고유의 전술이 구체화되어 나타났다. 적의 세력이 강하면 설령 아군이 절대적인 우위에 있더라도 전쟁 자체로 인하여 많은 피해가 예상되므로 적들을 서로 교란시켜서 어부지리를 취하는 동시에 적이 약화된 틈을 노리는 전술을 사용하였다.
동아시아는 중국을 상징하는 용(龍)과 유목민(遊牧民)을 상징하는 봉황(鳳凰)의 용쟁봉투(龍爭鳳鬪)의 양상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을 둘러싸고 있는 유목민들은 유목(遊牧)을 하는 관계로 워낙 넓은 지역에 분포했으므로 유목민끼리 공통성이나 단결성을 많이 상실한 상태이기 때문에 유목민끼리도 지리적으로 근접한 민족들조차도 교류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의 한족(漢族)이 중심축이 되어 중원질서의 축을 형성해 왔다.
한족(漢族) 입장에서 보면 중국을 중심으로 하여 사면초가 현상을 이루고 있는 강성한 유목민들에게 포위당한 처지였다. 남방지역과 북쪽의 몽골 동북지역 한반도와 일본 서쪽의 터키 등에 이르는 거대한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중국은 이들의 위협에 대하여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법을 사용하여 이들의 세력이 결집되는 것을 막으려 했던 것은 한(漢)나라 이후 지속적으로 나타난 전략이었다.
이러한 전략적인 판단에 따라 한족(漢族)은 끊임없는 위협을 느낀 나머지 중국의 사방 변경 밖에 사는 이민족을 미개한 오랑캐라고 총칭하며 비하했다. 동쪽에 위치한 유목민인 여진족을 동이(東夷)라 불렀고, 서쪽에 장창을 들고 갑옷을 입은 용맹한 터키족을 서융(西戎)이라 했고, 중국 남쪽에 위치한 인도 등 남쪽군도를 남만(南蠻)이라 했고, 유목민 몽골족을 북적(北狄)이라 불렀으며 이들을 오랑캐 종족이라고 했다.
이 중에서 공자(孔子)가 '군자의 나라 동이(東夷)에 살고 싶다'라고 말한 동이족의 근본인 한국은 어질고 온화하고 인정 있고 유순한 나라를 말하는데 동이족 곁에 있던 여진족(女眞族)이 자주 중국을 침범하였기 때문에 여진족을 오랑캐나라 동이족이라고 한 것이었다.
제갈량(諸葛亮)의 병서(兵書) 장원(將苑)에서도 이이제이(以夷制夷)에 대한 대목에 대하여 동이(東夷)와 서융(西戎) 등 4개편을 편제해 한족(漢族) 아닌 이민족에 관한 대처방안을 상세히 논하면서 상벌의 기준을 확실히 하여 상을 내리고 먼저 법령을 선포한 연후에 처벌하면 사람들은 가까이 다가오고 외경심을 갖게 되며 명령 없이도 실행을 하게 된다. 상벌이 불공정하면 충신은 무고하게 죽고 간신은 이룬 것 없이 출세하는 것을 경계하라고 했다.
이이제이(以夷制夷)
개요
訓擁衛稽故, 令不得戰. 議者, 咸以羌胡相攻, 縣官之利, 以夷伐夷, 不宜禁護.
등훈은 병사를 보내 호족(胡族)를 보호하여, 강족(羌族)이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주위의 책사(策士)들은, 강족과 호족이 서로 공격하는 것은 한나라 조정에 유리한 것이고 오랑캐로 오랑캐를 치는 것이니, 호족을 공격하는 것을 막아 그들을 지키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처사라고 여겼다.
말 그대로 오랑캐를 오랑캐로 제압한다는 뜻으로, 후한서의 등구열전(鄧寇列傳)의 등훈전(鄧訓傳)에 나오는 구절인 '이이벌이(以夷伐夷)'에서 비롯하였다. 비슷한 사자성어로는 이독제독(以毒制毒)이 있다. 독으로 독을 다스린다는 뜻으로, 이독공독(以毒攻毒)과 같은 말이다.
기미(羈縻)(회유) 정책과 함께 중원에 자리잡은 제국들의 기본적인 대이민족 정책이었다. 원교근공 전략과도 어느 정도 겹치는 부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영어에서 비슷한 의미를 가진 단어는 디바이드 앤 룰인데 차이점은 이이제이가 외교에서 주로 이용되었다면 디바이드 앤 룰은 식민지 내부에 독립역량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사용됬다는 점이다.
상세
중국의 중원 북쪽에 자리잡은 이민족 세력은 엄청난 파괴력을 갖추고 있었으나, 단발적인 약탈은 있어도 제대로 된 중원 침공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이민족들이 하나로 결집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점을 이용해서 중원의 제국들은 이민족들의 분열을 고착시켜 그들을 제어하려 했다. 그 결과 이민족들은 북방에서 자기들끼리 치고 받는 과정에 온 힘을 쏟아 부으며 중원을 위협하는 세력이 되지 못했다. 칭기즈 칸 등장 이전의 몽골이 그랬고 누르하치 이전의 만주가 그랬다.
비단 이민족뿐만이 아니라 나라에 망조가 들면 출몰하는 거대 도적집단들에게도 이이제이를 시전한 경우가 많았는데, 너무 강해서 국가가 당장 진압하기 힘든 도적단의 우두머리 몇몇에게 벼슬자리를 던져주고 다른 도적들과 이간질을 시키는 것이다. 후한에게 평난중랑장 직위를 받은 흑산적 두령 장연이나 원나라에게 태위 벼슬을 받은 장사성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이제이의 사례는 중국에 한정되지 않는다. 고대 로마의 경우에도 북방의 게르만족을 취급할 때 이이제이 방식을 도입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각지에서 사례가 많다.
장점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다는 점에서 정면 대결이 불가능할 것 같은 상대에게는 어찌되었건 대단히 효율적인 책략이다.
○ 위험요소가 성장하는 것을 막는다.
보통 상대방에 위험이 될 만한 세력이 집결하면 곧 강대한 세력으로 성장하게 되는데,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상황에서는 이런 과정이 크게 느려질 뿐 아니라 보통 이런 싸움 중에 해당 세력이 전멸은 아니라도 상당히 손실을 겪으므로 강대해지는 꼴을 보지 않아도 된다. 여기에 이이제이를 실행하는 측에서 적절한 군사개입까지 가하면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으므로 자국의 안전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
○ 직접 싸우는 것보다 물량 및 비용의 소모가 훨씬 적다.
말 그대로 적끼리 서로 싸우게 만드므로 적당하게 적들을 싸움붙일 미끼로서의 전력이나 비용만 소모해서 이득을 볼 수 있고, 외교능력이 높고 언변이 뛰어나며 사교술이 좋은 인재가 있을 경우 극단적으로는 세치 혀를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실행이 가능하다.
○ 전력증강을 위한 시간을 벌 수 있다.
적들이 서로 충돌하는 동안 아군은 병력을 늘리고 훈련시키며 장비를 추가로 생산하고 식량등 군수물자도 많이 비축이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다음에 다시 이이제이를 쓸 경우에도 성공확률이 높을 뿐 아니라, 실패하더라도 충분히 대응이 가능한 전력을 확보할 수 있다.
단점
어디까지나 지속적인 상황파악이 힘들고 사람들이 언제나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개 비롯되는 문제들이다.
○ 기본적으로 자국에 어느 정도의 힘이 없으면 생각하기도 어려운 전략이다.
이이제이를 걸더라도 이들이 서로 싸우지 않고 아군쪽으로 일제히 화살을 돌려버리면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이이제이를 거는 국가의 국력이 약하다고 느끼면 서로 어렵게 싸우기보다는 공격방향을 선회하는 쪽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서로마 제국은 게르만족들을 용병으로 고용해서 군사력을 보충하고 서고트족과 군사동맹을 맺는 등 이이제이를 써서 훈족의 아틸라까지 물리쳤지만, 갈리아, 히스파니아, 아프리카 등지의 속주들이 이민족들의 점령으로 뜯겨져 나가는등 서서히 제국이 해체되면서 자국의 국력이 날로 저하하고 있었던 탓에 자국의 영토에서 준동하는 게르만족을 막을 수 없었고, 결국 훈족의 패배와 서로마 중앙군의 와해로 인해 더 이상 무서울 것이 없어진 게르만족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게 망하게 된다.
○ 실행하려다 역으로 자기가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보통 군웅할거같이 고만고만한 세력들이 난립했던 유럽에서 흔히 벌어진 일로, 이이제이를 사용해서 어떤 세력이 서서히 성장하기 시작하면 위험성을 느낀 주변의 세력들이 일제히 동맹을 맺은 후 그 세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전력을 충실하게 쌓은 세력이라도 중과부적으로 괴멸당한다. 어설프게 하다가 들키면 마찬가지로 털리기 십상이며, 이를 잘 보여주는 예시로는 2015년 5월 기준 여성시대라는 사이트의 해명글 조작 사태가 있다.
○ 상대방도 머리가 있기에 언제까지나 멍청하게 아군의 계략에 속는다는 보장이 없다.
아무리 야만족이라도 지속적으로 혼란상태가 이어지면 그걸 획책하는 거대한 세력이 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며 일단 일이 이렇게 돌아가면 이이제이를 당한 쪽은 서로 싸우느라 전투경험이 엄청나게 축적된다. 이이제이 과정에서 기본적인 국력이 위태로울 정도라거나 애초에 수준 차이가 크다면 몰라도 어중간하게 붙은 경우에는 이이제이가 틀어진 그 순간 상대는 오랜 전쟁으로 단련된 정예병을 이끌고 이이제이에만 치중해서 전쟁 경험이 적을 수밖에 없는 상대에 맹공을 가하게 된다.
○ 잘못하면 여우를 잡자고 호랑이를 불러들이는 격이 된다.
그 예로 남송은 금나라를 물리치기 위해 원나라를 끌어들이다 정복당했으며. 5세기 경 영국 잉글랜드를 주름잡던 켈트족은 스코트족을 물리치려고 앵글로색슨족을 끌어들이다 앵글로색슨족에게 정복당하고 말았다. 다행히도 신라는 그 호랑이를 두들겨 패서 쫓아내는데 성공했지만, 대한제국은 러시아 제국과 일본제국 사이에서 줄다리기 하다가 을미사변을 겪고 러일전쟁(쓰시마 해전) 결과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고 말았다.
○ 둘 중 한 쪽이라도 상대에 대한 적의가 없다면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이순신 자살설의 근거 중 하나로 살아생전 유명수군도독에 임명된 것. 명에 의해 신하가 왕과 계급상 동렬에 서는 상황이 발생했다. 명이 이순신을 이용해 선조를 견제하려 했다고 보는 설인데 기록상으로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다만 세계사적으로 문제될 기록은 제거한 경우가 많다. 니미츠 미 해군 원수도 그러한 편이란 걸 염두하면 자살설 역시 생명력이 연장된 셈이다.
사례
(한국)
○ 고구려 : 신라의 전성기 나제동맹에게 한강유역을 빼앗기고 평양마저도 위기에 빠지자 백제와 신라를 이간질해 싸우게 만든다. 그로인해 나제동맹이 결렬되고 영토는 신라 혼자서 다 가져간다.(관산성 전투)
○ 신라: 멸망한 옛 고구려 유민들을 옛 백제 땅인 금마저(전라북도 익산시)에 정착해 살게 해 반신라 감정이 강한 백제인들을 고구려인으로 제압했으며, 나당전쟁 당시 당나라와 싸우는데 고구려 부흥 세력으로 세운 보덕국을 이용하기도 했다. 나당전쟁에서 당나라를 물리친 이후 보덕국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보덕국과 동족인 고구려 유민들로 구성된 부대인 황금서당(黃衿誓幢)을 투입해 진압했다.
○ 백제: 삼국시대때 가야, 왜와 협력해 신라를 견제했다.
○ 발해: 남북국시대 때 후방의 왜를 전략적으로 이용해 신라의 한반도 독주를 견제했다.
○ 고려: 후삼국시대 때 신라를 이용해 후백제를 견제했으며 후삼국 통일 이후에는 북송과 요나라의 대립을 잘 이용했다.
○ 대한제국: 청간섭기일 때 러시아를 끌어들여 청나라를 멀리 하려 했다.
(중국)
○ 진나라: 이이제이의 대표적인 성공사례. 소진의 6국 합종책을 장의의 연횡책으로 작살낸 후 약해진 나라부터 하나하나 잡아먹어 결과적으로 최후의 승자가 됐다.
○ 위나라: 이릉대전 덕분에 황권 등 촉의 명장을 얻었을 뿐더러, 촉과 오 두 적국의 국력이 쇠퇴하며 상대적으로 이득을 봤다. 허나 이때 위나라 황제 조비는 이릉대전 이후 국력이 약화된 오나라를 치러 친정을 시도했다가 오히려 패퇴하며 그 이익을 제대로 못 살렸다.
○ 송나라: 이이제이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힌다, 앞문에서 짖어대며 으르렁거리는 늑대와 승냥이를 잡으려고 뒷문으로 굶주린 호랑이를 불러들인 셈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송나라의 정책은 전통적인 이이제이와는 거리가 먼데, 전통적인 이이제이는 양세력중 한개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둘 다 남겨서 서로 지속적으로 싸우게 만드는 것이다.
○ 북송: 만리장성 인근 연운 16주를 찾기 위해서 여진족의 금나라와 결탁해 거란족의 요나라를 멸망시켰다. 그런데 금나라가 요나라보다 더 강해졌다. 결국 중원을 잃고 강남으로 쫓겨나서 남송으로 몰락한다.
○ 남송: 장강 이북의 영토를 되찾기 위해서 몽골 제국과 결탁해 금나라를 멸망시켰다. 그런데 몽골 제국이 금나라보다 더 강해지는 바람에 결국 강남까지 잃어버리고 나라가 쫄딱 망해버렸다.
○ 요나라·금나라: 북방민족인 특징상 북방민족의 두려움을 가장 잘 알고 있었고 요나라와 금나라는 각각 여진족과 몽골족의 분열을 획책하면서 힘을 합치지 못하게 만들었고 이를 통하여 간접지배를 공고히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런 장난질이 지속되자 부족 통합의 기운이 일어나게 되었고 요나라는 금나라에게 금나라는 몽골제국에게 멸망하게 되었다. 한편 이 상황을 이용하여 이익을 챙기려던 송나라는 신흥 강자에게 어그로를 끌어 꼬박 꼬박 나라의 반쪽을 넘겨주게 되었다.
○ 명나라: 누르하치 이전 만주족도 그렇게 관리했고 특이하게도 조선에 대해서도 이를 시행한 흔적이 강하게 추정되었다. 이순신의 시호인 유명수군도독이 이것으로 대체역사소설 이순신의 나라에서 이 부분에 대한 선조의 열폭성 주장을 통해 이이제이 가능성이 높다는 걸 가리키고 있다.
(그외 아시아)
○ 현대 일본: 집단자위권을 위시하여 재무장을 하고있지만 이는 미국의 대중국 견제를 위해 일부러 풀어준 면이 클 것일지도 모른다. 일본의 경제력을 군사력으로 전환하여 추가적인 예산투입 없이 대중국 포위망을 강화하는 것이 미국의 의도일지도 모른다.
(유럽)
○ 로마 제국: 게르만족들 가운데 로마에 붙어먹은 부족[5]도 있었는데, 로마제국은 이들을 이용하여 다른 게르만족들을 견제했다.
○ 바티칸: 교황이 프랑크족의 능력자 왕 피핀에 SOS 요청, 경쟁자인 롬바르드 왕국을 견제했다. 피핀도 로마 교황에 환심을 보이고자 오늘의 바티칸을 선물했다. 그리고 후에 캉브레 동맹의 전쟁 때도 비록 오랑캐는 아니라지만 스페인, 프랑스, 신성로마제국과 같은 강대국들을 끌어들여 베네치아 공화국을 공격하였는데, 교황청 자체의 군사력이 약한 편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신성로마제국에 의해 로마가 박살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사코 디 로마. 후에 베네치아가 토해냈던 영토들을 다시 되찾고 이 일을 기점으로 교황청의 세가 많이 약해졌으므로 이이제이의 단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 이탈리아(통일전쟁 당시): 주역은 카밀로 벤소 카보우르. 프랑스를 끌어들여 합스부르크 왕가를 몰아냈다. 물론 그 대가로 사보이 지방을 넘겨주긴 했지만 뭐 이탈리아 전역을 다 먹은 대가로 사보이를 넘겨줬으니 프랑스와 이탈리아 입장에서는 둘 다 이득합스부르크만 쥐어터졌다.
○ 영국, 프랑스(2차 세계대전 직전): 뮌헨 협정으로 독일의 수테텐 병합을 인정해주고, 태생적으로 앙숙이었던 독일과 소련을 서로 싸우게 만들려고 했는데, 정작 소련에게 소흘하는 바람에 독소 불가침조약이라는 희대의 실패를 만든다.
○ 핀란드(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제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을 이용해 소련의 간섭을 물리치려고 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의 전세가 연합국으로 기울자 나치와의 동맹을 끊고 나치 독일을 몰아냈다.
○ 불가리아, 세르비아(러시아-투르크 전쟁):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러시아-투르크 전쟁에서 러시아와 연합하여 오스만 제국을 물리치고 독립을 이뤘다.
(아메리카)
○ 냉전기 미국: 전통적인 우방이었던 중화민국을 버리고 한국전쟁에서 싸운 중화인민공화국을 인정하여 더 큰 적인 소련을 견제했다.
▶️ 以(써 이)는 ❶회의문자이나 상형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사람이 연장을 사용하여 밭을 갈 수 있다는 데서 ~로써, 까닭을 뜻한다. 상형문자일 경우는 쟁기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 ❷회의문자로 以자는 '~로써'나 '~에 따라'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以자는 人(사람 인)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사람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以자의 갑골문을 보면 마치 수저와 같은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을 두고 밭을 가는 도구이거나 또는 탯줄을 뜻하는 것으로 추측하고는 있지만, 아직 명확한 해석은 없다. 다만 무엇을 그렸던 것인지의 유래와는 관계없이 '~로써'나 '~에 따라', '~부터'라는 뜻으로만 쓰이고 있다. 그래서 以(이)는 ①~써, ~로, ~를 가지고, ~를 근거(根據)로 ②~에 따라, ~에 의해서, ~대로 ③~때문에, ~까닭에, ~로 인하여 ④~부터 ⑤~하여, ~함으로써, ~하기 위하여 ⑥~을 ~로 하다 ⑦~에게 ~을 주다 ⑧~라 여기다 ⑨말다 ⑩거느리다 ⑪닮다 ⑫이유(理由), 까닭 ⑬시간, 장소, 방향, 수량의 한계(限界)를 나타냄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일정한 때로부터 그 뒤를 이후(以後), 위치나 차례로 보아 어느 기준보다 위를 이상(以上), 오래 전이나 그 전을 이전(以前), 일정한 한도의 아래를 이하(以下), 그 뒤로나 그러한 뒤로를 이래(以來), 어떤 범위 밖을 이외(以外), 일정한 범위의 안을 이내(以內), 어떤 한계로부터의 남쪽을 이남(以南), 어떤 한계로부터 동쪽을 이동(以東), ~이어야 또는 ~이야를 이사(以沙), 그 동안이나 이전을 이왕(以往), 까닭으로 일이 생기게 된 원인이나 조건을 소이(所以), ~으로 또는 ~으로써를 을이(乙以), 어떠한 목적으로나 어찌할 소용으로를 조이(條以), ~할 양으로나 ~모양으로를 양이(樣以), 석가와 가섭이 마음으로 마음에 전한다는 뜻으로 말로써 설명할 수 없는 심오한 뜻은 마음으로 깨닫는 수밖에 없다는 말 또는 마음과 마음이 통하고, 말을 하지 않아도 의사가 전달됨을 이르는 말을 이심전심(以心傳心),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는 뜻으로 약한 것으로 강한 것을 당해 내려는 어리석은 짓을 일컫는 말을 이란투석(以卵投石), 대롱을 통해 하늘을 봄이란 뜻으로 우물안 개구리를 일컫는 말을 이관규천(以管窺天), 귀중한 구슬로 새를 쏜다는 뜻으로 작은 것을 얻으려다 큰 것을 손해 보게 됨을 이르는 말을 이주탄작(以珠彈雀), 독으로써 독을 친다는 뜻으로 악을 누르는 데 다른 악을 이용함을 이르는 말을 이독공독(以毒攻毒), 열은 열로써 다스린다는 뜻으로 힘에는 힘으로 또는 강한 것에는 강한 것으로 상대함을 이르는 말을 이열치열(以熱治熱), 옛것을 오늘의 거울로 삼는다는 뜻으로 옛 성현의 말씀을 거울로 삼아 행동함을 이르는 말을 이고위감(以古爲鑑), 새우로 잉어를 낚는다는 뜻으로 적은 밑천을 들여 큰 이익을 얻음을 일컫는 말을 이하조리(以蝦釣鯉), 손가락을 가지고 바다의 깊이를 잰다는 뜻으로 양을 헤아릴 줄 모르는 어리석음을 이르는 말을 이지측해(以指測海),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는 뜻으로 사람이 살아가는 데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이식위천(以食爲天), 사슴을 말이라고 우겨댄다는 뜻으로 윗사람을 기만하고 권세를 휘두름을 이르는 말을 이록위마(以鹿爲馬), 하나로써 백을 경계하게 한다는 뜻으로 한 명을 벌하여 백 명을 경계하게 함을 이르는 말을 이일경백(以一警百), 털만으로 말의 좋고 나쁨을 가린다는 뜻으로 겉만 알고 깊은 속은 모름을 이르는 말을 이모상마(以毛相馬), 남의 성공과 실패를 거울삼아 자신을 경계함을 이르는 말을 이인위감(以人爲鑑), 백성을 생각하기를 하늘같이 여긴다는 뜻으로 백성을 소중히 여겨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으로 삼음을 일컫는 말을 이민위천(以民爲天), 피로써 피를 씻으면 더욱 더러워진다는 뜻으로 나쁜 일을 다스리려다 더욱 악을 범함을 이르는 말을 이혈세혈(以血洗血), 양으로 소와 바꾼다는 뜻으로 작은 것을 가지고 큰 것 대신으로 쓰는 일을 이르는 말을 이양역우(以羊易牛), 과거의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미래를 미루어 짐작한다는 말을 이왕찰래(以往察來), 불로써 불을 구한다는 뜻으로 폐해를 구해 준다는 것이 도리어 폐해를 조장함을 이르는 말을 이화구화(以火救火) 등에 쓰인다.
▶️ 夷(오랑캐 이)는 ➊회의문자로 大(대; 사람)와 弓(궁)의 합자(合字)이다. 사람이 활을 들고 있는 모양을 본떴다. 옛날 동방(東方)의 오랑캐를 夷(이)라고 불렀으므로, 음(音)을 빌어 이 글자가 쓰였다. 또 평정하다(平定), 항상 변(變)하지 않다 등의 뜻으로 빌어 쓰인다. ➋회의문자로 夷자는 '오랑캐'나 '동방종족'을 뜻하는 글자이다. 夷자는 大(클 대)자와 弓(활 궁)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갑골문에서의 夷자는 矢(화살 시)자와 己(자기 기)자가 결합한 형태였다. 여기서 己자는 새끼줄을 뜻하는 것으로 夷자는 화살에 새끼줄이 감겨있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夷자는 본래 중국 변방에 거주하던 이민족을 뜻하던 글자였다. 이민족을 뜻하는 글자에 화살과 새끼줄을 그려 넣었던 것은 이들이 유목민족이었기 때문이다. 유목민족들은 활도 잘 쏘았지만 방목한 짐승을 밧줄을 이용해 잡는 것에도 능숙했다. 夷자는 그러한 유목민족의 특징을 묘사한 글자이다. 그래서 夷(이)는 ①오랑캐 ②동방(東方) 종족(種族) ③잘못 ④상(傷)하다 ⑤죽이다 ⑥멸(滅)하다 ⑦평평(平平)하다 ⑧평탄(平坦)하다 ⑨깎다 ⑩온화(溫和)하다 ⑪안온(安穩)하다(조용하고 편안하다) ⑫기뻐하다 ⑬크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오랑캐 흉(匈), 오랑캐 적(狄), 오랑캐 만(蠻), 평탄할 탄(坦)이다. 용례로는 오랑캐 땅을 이계(夷界), 오랑캐 나라나 야만인의 나라를 이국(夷國), 이것만으로써 또는 이 정도로나 이 정도의 말을 이만(夷蠻), 어두움이나 어리석음을 이매(夷昧), 멸망시킴 또는 삼족을 멸함을 이멸(夷滅), 오랑캐의 풍속을 이속(夷俗), 오랑캐를 달리 이르는 말을 이적(夷狄), 음력 칠월을 달리 이르는 말을 이칙(夷則), 평탄함과 험준함을 이험(夷險), 허물어져 무너짐을 이몰(夷沒), 허물어져서 못 쓰게 됨을 이잔(夷殘), 동이의 풍속이라는 뜻으로 우리 나라를 가리켜 이르는 말을 이풍(夷風), 흉포한 무리를 평정함을 이흉(夷凶), 동쪽 오랑캐로 중국이 동쪽 나라의 이민족을 멸시하여 일컫던 말을 동이(東夷), 당나라와 오랑캐라는 뜻으로 중국과 그 이웃나라를 두루 이르는 말을 당이(唐夷), 남만주 지방의 건주에 사는 여진을 이르는 말을 건이(建夷), 부상의 오랑캐라는 뜻으로 일본 사람을 이르는 말을 상이(桑夷), 서양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을 양이(洋夷), 오랑캐를 정벌함을 정이(征夷), 옛날 중국에서 일컫던 동쪽 오랑캐 곧 미개한 나라 및 그 토인을 융이(戎夷), 멀리 떨어져 있는 오랑캐를 하이(遐夷), 태워 버림을 소이(燒夷), 지형의 험난함과 평탄함 또는 언어나 문장에서 어려움과 쉬움을 험이(險夷), 적을 물리치고 난리를 평정함을 감이(戡夷), 모래가 깎이어 평평해짐을 사이(沙夷), 불 살라 없애 버림을 분이(焚夷), 낡고 헐어서 무너짐을 퇴이(頹夷), 쫓아내어 평정함을 소이(掃夷), 해가 돋는 곳을 우이(嵎夷), 아무런 시름이 없이 마음이 진정되어 평탄함을 탄이(坦夷), 구릉이 점점 평평해진다는 뜻으로 처음에는 성하다가 나중에는 점차 쇠퇴함을 이르는 말을 능이(凌夷), 사방의 오랑캐를 일컫는 말을 이만융적(夷蠻戎狄), 임진왜란을 낮게 이르는 말을 도이지란(島夷之亂), 적을 이용하여 다른 적을 제어함을 이르는 말을 이이제이(以夷制夷),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리지 못할 생각이나 평범하지 않는 생각을 일컫는 말을 비이소사(匪夷所思) 등에 쓰인다.
▶️ 制(절제할 제/지을 제)는 ❶회의문자로 製(제)의 간자(簡字)이다. 刀(도; 날붙이)와 未(미; 작은 나뭇가지가 뻗은 나무의 모양)의 합자(合字)이다. 날붙이로 나무의 가지를 쳐서 깨끗이 하다, 베다, 만들다, 누르다, 규칙의 뜻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制자는 '절제하다'나 '억제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制자는 未(아닐 미)자와 刀(칼 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未자는 木(나무 목)자에 획을 하나 그은 것으로 본래는 가지가 무성한 나무를 뜻했었다. 이렇게 가지가 풍성한 나무를 그린 未자에 刀자를 결합한 制자는 나무의 가지를 다듬는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나무의 가지를 치는 것은 모양을 다듬거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制자는 나무가 마음대로 가지를 뻗어 나가지 못하도록 다듬는다는 의미에서 '절제하다'나 '억제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뜻이 확대되어 지금은 '법도'나 '규정'이라는 뜻으로도 쓰이고 있다. 그래서 制(제)는 (1)일부 명사(名詞)에 붙이어, 방법(方法)이나 형태(形態)나 제도(制度) 따위의 뜻을 나타내는 말 (2)제도(制度) 등의 뜻으로 ①절제(節制)하다 ②억제(抑制)하다 ③금(禁)하다 ④마름질하다 ⑤짓다 ⑥만들다 ⑦맡다 ⑧바로잡다 ⑨법도(法度) ⑩규정(規定) ⑪천자(天子)의 말,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제정된 법규나 나라의 법칙을 제도(制度), 정해진 한계 또는 한계를 정함을 제한(制限), 법령이나 규칙 위반자에게 가하여지는 불이익 또는 징벌을 이름을 제재(制裁), 제도 등을 만들어서 정함을 제정(制定), 사물의 성립에 필요한 조건이나 규정을 제약(制約), 통제하여 복종시킴 또는 기계나 설비 등을 목적에 알맞도록 조절함을 제어(制御), 하려고 하는 일을 말리어서 못하게 함을 제지(制止), 운동을 제지함 또는 속력을 떨어뜨림을 제동(制動), 헌법을 제정함을 제헌(制憲), 위력이나 위엄으로 남을 눌러서 통제함을 제압(制壓), 경기 따위에서 우승함을 제패(制覇), 어떤 범위 밖에 두어 한데 셈 치지 아니함을 제외(制外), 끌어 당기어 자유로운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함을 견제(牽制), 어떤 일을 법이나 규정으로 제한하거나 금하는 것을 규제(規制), 위력을 써서 남의 자유 의사를 누르고 무리하게 행함을 강제(强制), 억눌러 제지함을 억제(抑制), 일정한 방침에 따라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진 것을 제한이나 지도함을 통제(統制), 세무에 관한 제도를 세제(稅制), 스스로 자기의 감정과 욕심을 억누름을 자제(自制), 알맞게 조절함으로 방종하지 아니하도록 자기의 욕망을 이성으로써 제어함을 절제(節制), 선수를 써서 자기에게 이롭도록 먼저 상대방의 행동을 견제함을 선제(先制), 학교 또는 교육에 관한 제도와 그에 관한 규정을 학제(學制), 남보다 앞서 일을 도모하면 능히 남을 누를 수 있다는 뜻으로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남보다 앞서 하면 유리함을 이르는 말을 선즉제인(先則制人), 독을 없애는 데 다른 독을 쓴다는 뜻으로 악인을 물리치는 데 다른 악인으로써 한다는 말을 이독제독(以毒制毒), 유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뜻으로 약한 것을 보이고 적의 허술한 틈을 타 능히 강한 것을 제압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유능제강(柔能制剛), 적을 이용하여 다른 적을 제어한다는 말을 이이제이(以夷制夷), 자기자신의 마음을 단속하고 행동을 삼가야 한다는 말을 율기제행(律己制行), 시대의 변함을 따라 그때 알맞도록 해야한다는 말을 인시제의(因時制宜)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