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너더리통신 65/180125]스튜핏! 그뤠잇! 워라밸 & 가성비와 가즈아!
이 나라는, 아주 오래 전부터, 국적(國籍)조차 불불명하거나 국적이 확실한 외국어(결코 외래어가 아니다. 아니 이제 그런 구별조차 아무런 의미가 없는 듯하다)들이 ‘헤드(head)’가 빙빙할 정도록 넘쳐도 너무 넘쳐나고 있다. 글로벌(global)도 좋고, 글로컬(glocal)도 좋은데, 문득 ‘과연 이래도 되는가?’ 싶어 ‘소름’이 끼칠 때가 있다. 영어(英語)가 공용어인가? 요즘이 바로 그렇다. 얼마 전 ‘김생민의 영수증’이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경제생활을 하는 소시민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스튜핏’과 ‘그뤠잇’이라고 이분적(二分的)으로 판단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런 단어가 유행하는 줄도 모르고 있던 나는 처음엔 무척 당황하고 어리둥절했다. 물론 최근 매스컴을 통하여 근검절약(勤儉節約)의 ‘대명사’로 소문난 유명 탤런드를 앞세워, 소시민들의 무분별한 과소비(過消費) 행태에 경종을 울리는 듯한 취지에는 ‘백퍼(100%)’ 동의한다. 그렇다고 그것을 ‘스튜핏(stupid)’와 ‘그뤠잇(great)’으로 딱 잘라 단정해 말해도 되는 것일까? 더구나 한글로 버젓이 표기하고 있지 않은가? ‘스튜핏!’ ‘그뤠잇!’ 이구동성(異口同聲) 외쳐대는 것을 보고 헛웃음,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발음도 좋다. 언제부턴가 신문에서도 대문짝한만 활자로 제목(headline)을 뽑고 있지 않은가. 우리말로 하면 어떻게 될까? ‘멍청해’ ‘대단해’ 이렇게 말할 수 있으리라. 명색이 영문학을 전공한 60대 초반의 나도 이럴진대, 우리의 앞세대 분들은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이건 잘못돼도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본다. 외국어의 생활화, 정말 바람직한 일인가? 아무리 언어(言語)라는 것이 ‘존재(存在)의 집’이고 ‘생물(生物)’이라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또 하나. 날마다 신문 몇 개씩을 보는 데도 ‘가성비’라는 신조어에 대하여 둔감했다. 워낙 많이 나오기에 그 뜻을 짐작할 수는 있었다. ‘가격 대비 성능’. 흔하게 쓴 지가 제법 된 듯하고, 일리도 있다. 그런가하면 ‘가심(心)비’라는 조어도 있다. ‘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감’, 참 말 만들어지는 과정도 재밌다. 뜻을 잘 몰라서 그렇지 나쁠 것은 없겠다는 생각조차 든다. ‘급식체’가 무엇인지 아시는가? 급식을 먹는 10대들의 언어라고 한다. 초성(初聲)으로만 이어지는 알 수 없는 표기를, 소위 ‘초성문자’라고 한다는데, 예를 들면 ‘oo’은 ‘인정’을 뜻하고 ‘oㅋ’는 ‘오케이’를 말한다. 아예, 초성으로만 카톡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참으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따로 없다. 추세(趨勢)라는 어려운 한자어보다 트렌드(trend)라는 영어가 그 의미가 훨씬 더 와닿는다는 데야 무엇라 할 것인가. 단어는 트렌드에 따라 살아남거나 사라지기도 할 것이고, 새로운 단어가 만들어지고, 의미 변화도 뒤따를 것이다. ‘워라밸’은 또 어떤가. ‘일(work)과 개인 삶(life)의 조화(balance)’를 뜻하는 합성어라고 한다. ‘가즈아(gazua)’은 또 무엇인가? 원래는 가상화폐가 오르기를 바라는 마음을 나타낸 것으로 ‘가자(go)!’를 길게 말하는 데서 유래되었다 한다. 참, 희한벅쩍지근한 새로운 말들의 행진이다. 그렇다고 유명 정치인이 건배사를 ‘가즈아’라고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것대로 인정을 한다해도 우리 일상에 엄청나게(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음) 쏟아지는 외국어들은 어찌 할 것인가? 앞을 봐도, 옆을 봐도, 뒤를 보아도 '천지'가 온통 영어(englisch)다. 아무렇지도 않는 일일까? 눈살이 절로 찌푸러진다. 아니, 꼴불견이다.
오늘자 신문의 방송 프로그램 편성표를 유심히 보았다. 명색이 교육방송 프로그램인 호모 이코노미쿠스, 사이언스 맥스, 과학다큐 비욘드, 레인보우 루비, 사이언스타 Q, 스페이스 공감, 슈퍼윙스2 등이 눈에 거슬린다. 도무지 무슨 내용일까,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하기야 ‘내용’도 ‘컨텐츠’라고 해야 직성이 풀릴 판이다. 공중파들도 춤을 추듯 가관이다. 키즈스쿨, 블랙하우스, 애니 갤러리, 해피 시스터즈, 모닝와이드, 다큐 프라임, 터닝메카드R, 레전드 히어로 삼국전, 원나잇 푸드트립 스페셜, 토그몬, 힐링닥터 Q, 메가프로젝트, 트래블 북, 쇼비즈 코리아, 마스터피스 오브 올타임, 트레킹노트, 에어로버, 커버킹 베스트, 베이블레이드 베스트, 글로벌 다큐멘터리-블루 플래닛, 남도지오그래피, 해피 시스터즈, 스페셜 리턴, 월드 트레킹 명산, 라이프 해킹, 마이 시크릿 호텔, 배틀 트립……. 이건 숫제 외국어(외래어 포함)로 ‘도배’를 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 것같다. 나이트 라인과 해피 투게더는 ‘고전적 양반’에 속하리라. 앵커의 ‘입’에 발린 말들은 또 어떤가? 핫 플레이스, 비하인드 스토리, 팩트 체크, 스마트 시티…….
솔직히 이건 너무 심하다. 그래서 매우 핫(hot)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막말로 미국의 식민지도 아닐진대, 이런 외국어를 모르면 국민도 아닐 것인가. 하기야 유치원, 어린이집들이 방과 후 영어수업을 하고, 유아 대상 영어학원의 하루 평균 영어수업시간이 4시간 57분에 달한다는데, 무슨 말을 하랴. 교육부에서 영어유치원 선행학습(유아들에게 중학교 수준의 단어를 가르침)을 내달부터 단속하겠다고 하니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며 거세게 발발, 결국 단속을 유예한다고 했다던가. 좋다. 조기 영어교육이 세계적인 추세라고 치자. 그렇다고 그런 영어학원의 눈치를 보며 보육비 지원을 하네마네 하는 게 옳단 말인가. 그러니 국립국어원에서 아무리 애를 써 말을 다듬어놓으면 무엇 하겠는가? 시정 내지 협조는커녕 되레 앞장을 서는 언론(매스컴)에는 또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스튜핏을 넘어 그뤠잇이 되는 길은 우리말과 우리글을 사랑하는 것이 먼저일 터. 참으로 중요하고(importand) 시급한(urgent) 일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