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마지막 날 / 이임순
추석 연휴 전날 지인한테서 전화가 왔다. 하루쯤 만나서 수다를 떨자는 것이었다. 대답을 하지 않고 머뭇거리니 다른 계획이 있느냐고 물었다. 오늘이 그 쉼의 마지막 날이다. 어제 잠자리에 들기 전 남편한테 관리기 작업을 해달라고 말해 두었다. 그이가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인다. 나도 발이 보이지 않게 돌아다니며 밤을 줍는다. 겨울밤 내 간식거리로 이만한 것도 없다. 빠트리지 않고 줍다 보니 꽤 많다. 함께 수다를 떨지 못한 친구와 나누어도 며칠은 주전부리 감이다.
늦은 아침을 먹고 관리기가 헤집고 다닌 밭으로 간다. 마늘을 심으려고 두둑을 만드는데 전화가 요란스럽게 울어댄다. 남편의 지인이 모친상을 당했다는 알림이다. 친구 중에 제일 나이든 부모님이며 마지막 분이니 모두 함께 조문을 가야 한단다.
둘이 하면 편하게 할 텐데 혼자 하니 왔다갔다 해야 한다. 두둑의 땅을 고른 다음 비닐을 덮으려는데 바람이 살랑거리며 훼방을 놓는다. 깔아놓은 비닐 위 중간중간에 흙을 한 삽씩 떠서 눌러 놓는다. 계속 엎드러 일을 하니 허리가 아프다. 칼에 줄을 매달아 허리춤에 두르고 두둑이 만들어지면 비닐을 자른다. 칼을 드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떠오르는 얼굴도 많아진다. 점심때가 지났다. 배가 고파도 두둑을 마무리 짓고 점심을 먹어야 다음 일의 진행이 순조롭다.
혼자 먹는 밥상이 푸지다. 힘을 쏟은 만큼 에너지를 보충해야 활력이 있다. 땀을 많이 흘려서인지 배가 시원하다. 냉장고 한자리를 차지하던 산적과 생선전 그릇을 비운다. 일은 서둘러도 먹는 것은 느긋하게 맛을 음미한다. 따뜻하게 데운 병어 한 마리와 전복구이 접시가 밥공기와 함께 빈 그릇이 된다. 송편까지 먹고 나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동이 난 접시가 많아 설거지가 쉽다.
손을 닦으며 창고로 간다. 어두워지기 전에 일을 마무리 지으려면 마음 놓고 쉴 시간아 없다. 창문가에 매달아 둔 마늘을 내리는데 제법 무겁다. 전복으로 보충한 에너지를 마늘 세 접 끌차에 실으면서 다 쓴 것 같다.
원룸과 고시원 사이 그늘에 앉아 마늘을 쪼갠다. 여물어 손목에 힘이 들어가고 손톱 밑이 아프다. 잘 관리한 보람이 있다. 한참을 쭈그리고 앉았더니 다리에 쥐가 난다. 서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다 밤밭으로 간다. 아침에 주웠는데 또 늘비하게 떨어져 있다. 시간을 절약하려고 잠바를 벗어 주머니를 만든다. 한 나무에서 주운 것이 제법 많다.
다시 마늘을 쪼갠다. 힘이 들어간다. 지나가던 행인이 말을 붙이며 앉더니 거든다. 그이가 무슨 김장을 벌써 하느냐고 한다. 심을 씨라고 하니 돌처럼 여물다며 한 접 팔라고 한다. 손톱 밑에서 불이 날 것 같다. 다라니에 담아 까불어 껍질을 날려 보내고 작은 것을 골라낸다. 말동무하면서 도와준 그이한테 한 움큼 주니 좋아한다.
벌써 다섯 시다. 손수레에 씨마늘과 삽, 다라니와 걸름망을 싣고 밭으로 간다. 두둑에 앉아 마늘을 심는다. 손을 빠르게 움직인다. 아침에 밭을 갈아 심는 자리가 좋아 수월하다. 한 두둑을 심고 삽으로 흙을 파서 걸름망에 친 다음 다라니에 담아 심은 마늘 위에 한 번 더 덮어준다. 부리로 쪼아대는 새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다. 허리 펴고 편하게 쉴 틈이 없다. 오늘 다 심으려고 부지런히 움직인다. 심고 덮기를 반복하는 사이 해는 서산에 기울고 없다.
인삼 마늘도 심어야 하는데 어둠이 내려앉는다. 창고 선반 바구니에 담겨 있는 씨마늘을 가지고 밭으로 간다. 쪼개기가 쉽다. 가로등이 어둠을 몰아낸다. 인삼마늘은 커서 총총 심을 수가 없어 한 구멍씩 띄어 호미질을 한 다음 깊숙이 눌러 밀어 넣는다. 이웃동네 김씨 아저씨가 지나가다 보고는 호랑이가 다리 건너오고 있다며 그만하라고 한다. 같이 이야기해가면서 심겠다고 하니 너털웃음을 지으며 간다. 심을 자리가 부족해 두둑을 더 만든다. 인삼마늘은 큰 만큼 흙도 많이 덮어주어야 한다. 졸고 있을 가로등이 톡톡히 한몫을 한다. 고마운 것이 어디 가로등뿐이랴. 연장을 정리하면서 삽과 호미한테도 고생했다고 말을 한다. 그들이 말을 듣지 못해도 내 마음은 전달되었을 것이다.
현관을 들어서며 시계를 보니 아홉 시가 훌쩍 넘었다. 연휴 마지막 날까지 옴팡지게 지냈다. 남편이 조문 가면서 다음 주에 같이 심자고 했지만 언젠가 누가 해도 할 일을 마치고 나니 몸은 고단할망정 마음은 가뿐하다.
친정어머니께서 끼니를 놓치면 그 밥은 평생 찾아 먹을 수 없으니 꼭 챙겨 먹으라 하셨다. 시장기가 몰려온다. 라면이 먹고 싶다. 혼자 있으니 내 마음대로다. 라면을 끓이고 닭집에서 달걀을 가져와 지짐을 한다. 빨갛게 옷을 바꿔입은 꽃게가 집게를 벌리고 고생했다며 악수를 청한다. 김치와 밥공기가 놓인 나만의 진수성찬으로 늦도록 가사노동에 지친 내 육신에 답례한다.
밤을 주우면 허리가, 두둑을 만들면 팔이, 마늘을 쪼개 심으면 손가락과 어깨가 아프다. 굽히고 웅크리며 힘을 주다 보면 몸에 무리가 가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일을 안 할 수도 없으니 이래저래 세상사 힘은 들어도 살아볼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