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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서신 1강 요한 서신 소개 이용세 목사 유라소망교회
26.07.27(월)
안녕하십니까? 저는 유라소망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이용세 목사입니다.
요한 서신은 우리가 다 아는 대로 사도 요한이 쓴 편지입니다. 이 편지의 내용은 이단을 논박하는 그런 내용들이 있는데 그 논박하는 내용이 굉장히 압도적으로 그렇게 다가옵니다.
뿐만 아니라 신앙의 본질 하나님과 사귐이라는 그런 핵심 코드를 갖고서 요한이 요한 서신서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신앙의 본질과 신앙의 실제적인 삶이 무엇인가를 생생하게 펼쳐가고 있는 살아있는 그런 책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부터 6번에 걸쳐서 이 강의를 할 때 저와 우리 모든 시청자들에게 은혜가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먼저 요한 서신을 소개하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 요한서신을 우리가 볼 때 세 가지 포인트를 여러분께서 주목하시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첫째는 ㅇ한서신의 배경과 주제는 무엇인가?
그리고 주요 내용은 무엇이고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그러니까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
세 번째는 이 서신이 오늘날에게 주는 의미와 메시지는 무엇인가?
이런 3가지 포인트를 갖고서 함께 시청해 주시면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먼저 그러면 요한 서신을 소개하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도 요한을 요한 일서의 저자로 많은 학자들이 다 봅니다.
그렇게 많은 설명은 필요하지 않지만 그를 저자로 보는 이유는 후세에 그 140년서부터 250년 사이에 활약했던 교부들이 있죠.
이레니우스가 가장 가까운 교부이고 여기는 클레멘트라든지 터틀린 오리겐 이런 분들이 활약했던 그 시대의 사람들인데 이분들이 다 요한 서신서를 요한이 저자다 그렇게 봤던 것이고.
요한복음과의 그런 사상과 용어와 문체가 매우 유사합니다.
요한복음 1장과 요한일서의 내용은 뭐 그 용어나 그 다음에 표현 그런 것들이 재판 같죠 2절처럼 그렇게 느껴집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이렇게 출발하는데 요한일서도 마찬가지로 생명의 말씀으로 출발합니다.
유한 일서의 그 수신자에 대해서도 조금은 우리가 필요한데 편지이기 때문에 누가 썼는가 누구에게 썼는가가 좀 필요하죠.
왜냐하면은 편지는 그들만의 그 코드가 있잖아요. 그들만의 교감할 수 있는 용어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누군가를 아는 거는 조금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친분 관계 돈독한 성도들에게 보내졌어요.
나의 자녀들아 형제들아 이런 애칭을 많이 사용하고 있고 그 다음에 이 소아시아 지역에 흩어져 있는 그리스도인들로 그 수신자들이 추정되는데 그 이유는 사도 요한이 말년에 이거를 썼다
85년에서 95년 사이에 이거를 쓴 걸로 보는데 그때에 사도 요한이 어디 있었냐면 에베소 교회의 감독으로 그렇게 활약할 있었던 때이기 때문에 그때 예베소 교회를 중심으로 한 소아시아 일곱 교회의 성도들에게 이 편지가 윤독되지 않았을까? 그런 추측들을 하게 되는데 합당합니다.
다음으로 요한일서의 기록연대를 보면 ad 85년에서 95년경이죠. 이때가 언제냐 하며는 사도 바울 있지 않습니까? 그다음에 사도 베드로가 있죠. 이분들이 소천 하신 지 20년이 지난 뒤에 일이어요.
그러니까 초대 교회가 그들이 서신서 바울의 서신서를 쓰고서 사도 행전이 진행됐고 그 이후에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서 오래 살도록 하셨는데 그 20년 뒤에 초대교의 모습이 무엇인가 그걸 알 수 있게끔 하는 굉장히 연도가 나름대로 의미가 있어요.
요한 1서의 기록 장소는 에베소 교회로 보고
요한 2서와 요한 3서의 기록 연대도 유사합니다.
그래서 한꺼번에 묶어서 이렇게 요한 서신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고 특별한 배경에 대해서는 유한 이서 삼서라고 할 때 아주 특징적인 것만 그때 가서 소개하도록 하고 오늘은 요한일서에 집중해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유한일서의 독자들의 상황을 보면 유한일서는 이단으로 에베소 교회가 큰 시련을 겪은 뒤에 썼습니다. 이때 등장하는 그 이단은 영지주의였습니다. 영지주의에 대해서는 조금 이따 나오겠는데요.
당시에 교회를 위협하는 아주 잘못된 가르침들이 있었고, 이단 세력이 교회 반대에 저항을 받아가지고, 이제 물러납니다. 이런 이제 내용이 나와요.
근거로다가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다 그러니까 그들이 교회 안에 들어왔어요. 그래서 많은 활약을 했어요. 그런데 그 교회가 저항을 하고 말씀으로 지켜냈어요.
그들이 나갔어요. 그래서 헤어진 겁니다.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겼다
그러니까 교회에서 신학적인 그 다음에 이단과의 교리적인 그러한 싸움이 굉장히 치열했고 이것은 그 교회에 굉장히 아픔을 수반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에 이들이 나간 뒤에도 여전히 그들과의 인맥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있어서 그들을 미혹하려는 그러한 움직임들이 있었고, 그것을 또 방어하고 뒷 감당을 하고 뒤처리를 잘 하기 위해서 사도 요한이 이 말씀을 쓰게 된 것이죠.
요한 일서 독자들의 상황에 대해서 조금 얘기할 필요가 있는데 특별히 모든 성경은 우리가 알다시피 상황 속에서 주어집니다. 상황을 이해해야만 본문 텍스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겠죠.
유한일서는 아까 말한 대로 영지주의가 교회를 어지럽히고 위협했던 시대에 쓰여졌다는 것 그리고 당시 교회는 이 진리를 분별하면서 싸웠기 때문에 아직도 가다듬어지지 않은 사람이 있었고 미혹의 영에 진가민가 애매 모호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또 미혹의 영들이 그 교회는 나갔지만 바깥에 나가서 계속해서 교회를 흔들고 미혹하는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영지주의에 대해서 조금 알겠습니다.
영지주의는 간단하게 요약하기는 어려워요
그런데 여기 본문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정도로 설명하는 것으로 끝내겠습니다.
영지라는말은 신령할 영 자에다가 알 지 자를 써서 신령한 지식을 추구하는 그러한 세계관입니다. 그런 무리들이죠.
그래서 이들은 구원을 비밀스러운 이런 신령한 신비스러운 지식을 얻고 깨달음으로써 구원을 받는다라는 그런 특징이 하나가 있고 또 다른 육체를 악한 것으로 봤어요.
그래서 육체를 굉장히 고통스럽게 만드는 아주 금욕적인 그런 생활도 많이 했겠죠. 그 영과 육을 분리해 보는 이원론적인 영지주의자가 있었는데, 이들은 영적인 것을 선한 것으로 보고 물질적인 것은 악한 것으로 봤어요.
그러다 보니까 이게 큰 전제인데 이들의 큰 관점인데 그러다 보니까 어떤 일이 벌어지겠어요. 예수님이 육신으로 온 것을 인정하기가 어려웠어요.
왜냐하며는 육신이 악한 건데 하나님이 어떻게 육으로 오는가 이거를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가짜로다가 왔다 그게 인제 가현설주의라는 것이고.
그 다음에 예수님의 사회계에 있어서도 세례받을 때까지는 잠시 강림하셨다가 나중에 떠나셨다든지 이런 말도 안 되는 논리를 계속해서 전제가 다르니까 이렇게 흘러갑니다.
이들은 또 육신이 악하고 영혼은 선한 것이기 때문에 이 몸으로다가 어떤 죄를 짓더라도 그것은 죄가 될 수 없다. 죄가 아니다. 이런 주장을 하게 되었죠.
그래서 그들은 율법 패기주의자들이 됩니다.
그래서 나중에 이것에 대한 반박이 사랑해야 된다. 의를 지켜야 된다. 이런 반박으로다가 강력하게 나가죠
그 다음에 사랑이 아닌 이들이 지식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겼기 때문에 사랑에 대한 실천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없었어요.
그냥 지식만 추구하는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에 오늘 사도 요한은 지식만 갖고 우리의 신앙이 되는 게 아니다. 실천이 있어야 된다.
특별히 사랑에 대한 실천이 필요하다 이 부분을 계속해서 반복하면서 강조해 나가고 있죠. 자 영지주의에 대한 대응을 하는데 오늘날 우리가 이단이 있지 않습니까?
어느 시대나 이단이 출몰하는데 이 이단을 대처하는 굉장히 기본적인 대응 두 가지가 있어요. 요한 사도가 참 아주 지혜롭고 노련하게 이 이단을 제압을 합니다.
첫째는 소극적인 대응인데 이단의 잘못된 가르침과 주장을 논박하는 거예요. 이 부분을 하고
두번째는 적극적인 대응인데 이 부분이 더 많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한국 교회가 이 부분을 많이 더 강조해서 이단을 대처해야 되지 않나 그런 힌트와 지혜를 우리에게 통치할력을 줍니다.
뭐냐하며는 말씀을 통해서 진짜를 명확하게 알게 하는 것이죠.
그래서 사도는 이단의 특징에 대해서 몇 가지를 언급하고 그거에 대해서 타겟으로 공격을 하지만 그거는 사실은 몇 개가 안 되고 더 적극적인 방법 뭐냐하면 진짜가 무엇인가 이 부분을 더 명확하게 보여줌으로 인해서 이단의 그러한 공격이라든지. 실체를 폭로할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무력화시키는 이런 것들을 보여줍니다.
마치 이 논박할 때 굉장히 압도적인데 촛불을 켜고서 뭐가 진짜 빛이냐 할 때 태양 빛이 쫙 비치는 것 같은 그런 현상이 이 본문에서 나타나면서 우리에게 큰 시원함과 통쾌함도 같이 주죠
요한일서의 기록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성도를 미혹하는 거짓 가르침을 논박하고 참진리를 가르치기 위함이다.
그 다음에 두 번째는 믿는 자들로 하여금 구원의 확신을 갖고 사김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사귐을 통해서 하나님을 실질적으로 알아가는 것 이게 신앙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면서 그 신앙의 진수를 풀어가러 하는 것이 굉장히 매력적이고 우리에게 이 요한서신서의 그 진수가 여기서 나오는구나 마치 대가의 작품을 만났을 때 오는 감동과 압권 같은 것들을 느끼게 됩니다.
자 그러면 요한 서신의 주제를 알아보죠. 요한 서신서들은 진리와 사랑이라는 공통된 가치를 추구합니다.
1~2강
그래서 요한일서는 진리와 사랑으로 사귀라는 것이고. 요한이서는 진리와 사랑으로 분별해라 그다음에 유한삼서는 진리와 사랑으로 사는 사랑을 본받으라 이렇게 요약할 수가 있습니다.
요한 일서의 내용을 이제 들어가겠습니다.
먼저 빛이신 하나님과의 사귐에 대해서 1장 2장에 대해서 얘기를 해요. 공통된 주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빛 가운데 행하는 것 맨 처음에는 그 주제 아래서 사귐의 기초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우리의 사귐이 쓰려면은 무엇을 근거로 어떻게 시작했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하는 건데 생명의 말씀을 통한 사귐 여기서 생명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죠.
요한일서에서 예수 그리스에 대한 별칭들이 몇 개 나오는데 그중에 하나가 생명의 말씀이다.
그다음에 두 번째가 빛이다. 이런 두 가지 일을 갖고서 전체를 끌고 가고 이끌어가는 그러한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성도의 사귐과 하나님의 사귐을 갖는 것이 인제 빛 가운데서 행하는 것인데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귐과 그 다음에 성도와 하나님과의 사귐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발전한다. 풍성해진다. 이런 내용들입니다.
빛이신 하나님과의 이제 사귐 빛이신 하나님과의 사김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될 것들이 여기서 쭉 나오는데 빛 가운데 행하라
그 다음에 죄를 자백해라 말씀을 순종해라 형제를 사랑해라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적 그리스도와 사귀지 말라 아버지와 아들 안에서 거하라 이것이 요한 일서 1장과 2장의 주된 내용입니다.
이 흐름에 대해서는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은 하나님하고의 동거와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죠.
그때 죄가 드러나면 죄를 고백하는 것이고. 하나님과 사귀기 위해서 말씀 순종하는 것이고.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자 두 번째 강의는 3장 4장인데 사귐의 특성에 대해서 얘기해요. 사귐이 있으면 거기에 그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어떤 분위기가 나오고 특수한 어떠한 결과물들이 나오겠죠.
특수한 어떤 관계의 독특한 특성들이 나오는데 이것이 우리 신앙인들에게 바로 삶의 특징이 되어지고 그리스인들의 특성이 되기도 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 특성이 나에게 있는가 또 우리 교회에 있는가 또 한국 교회에게 있는가 비춰보면서 아 이게 특성이 뭐예요? 하나의 크게 보면 이미지고 또 하나의 교회의 교회다움 신자의 신자다움 그렇게 다른 말로도 표현할 수가 있는 것이죠.
첫째로 하나님과 사귈 때 어떤 특성이 나타나냐하면 그분은 거룩한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과 사귈 때 전제 조건도 깨끗해야 되지만은 사귀면서 진짜 우리가 법적으로다가 신분적으로 깨끗해지는 것만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가 깨끗해진다.
두 번째는 하나님이 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도 의로운 그런 체질을 갖게 되고 그런 삶을 살게 된다.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게 돼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랑이시니까 그분하고 사귈수록 사랑이 우리의 정서에 특성이되죠.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계명을 지키는 거니까 말씀을 지키면서 그분하고 더 깊은 교제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와 동행하고 친해지는 방법이 그의 말을 잘 들어주는 거죠. 하나님은 완벽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듣는 따라갈 때 하나님하고의 아름다운 교제가 이루어지고 그 지킴이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 삶의 특성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죠.
그 다음에 하나님께 속한다라는 그런 특성이 나타나는데 소속감이 분명해져요 세상의 한 발자국 하나님께 한 발자국 하나님 나라의 한 발자국 어둠이 한 발자국 이렇게 있는데 이 사귐을 통해서 성도들이 이제 완전히 하나님께 속한 자라는 사실을 또 자기 정체성과 소속감을 분명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여섯 번째는 하나님 안에 거하게 되죠.
거한다라는 말은 하나님과의 사귐이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고 지속된다.
그러니까 결혼하기 위해서 사귀었던 사람들이 헤어지는 것은 거하는 게 아니죠. 결혼해서 함께 사는 것 그걸 연상하면 좋겠어요.
그 다음에 하나님 사랑 안에 거한다. 사랑을 가끔씩 받고 이렇게 어쩌다가 사랑받고 생각나고 이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 사랑 안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고.
그것이 또 성도의 특성이 되도록 사도 요한은 바라는 것이고. 또 우리에게 그것이 특성이 되기를 축복하고 있습니다.
사귐의 결과에 대해서 5장에서 나오는데 5장에서는 사귐을 통해서 나오는 열매들이 뭔가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승리를 나누는 겁니다.
사귈때 놀고 그 다음에 뭐 지내고 이런 것들이 있지만 거기에는 싸움이라는 것들이 있거든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이루는 것들이 있거든요.
이 부분을 하나님과 함께하면서 하나님께서 이루시기 때문에 우리 입장에서는 같이 그분하고 거하고 함께하는 자들은 우리 입장에서 뭐예요? 그걸 누리게 되죠. 이것이 하나님과의 교제에 있어서 엄청난 축복입니다.
또 하나님과 사귐에 이제 결과를 통해서 볼 때 한 5가지를 6가지로 요약할 수가 있는데
하나는 우리가 계명을 지키며 사랑하는 것을 누려 이거는 계명 지키는 거는 우리에게 의무이고 짐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자신을 죽이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걸 요구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너 나 사랑해 그렇게 하는 것은 짐이 아니라 엄청난 영광이죠.
너 나 사랑해도 돼 마음껏 사랑해도 돼 귀찮게 여기지 않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아 네가 주는 모든 것 마음을 다하고 뜻을 하고 목숨을 다해서 사랑하는 것 내가 다 받아줄 거야 기쁨으로 그런 자리에 가는 것이 이제 사랑하는 것이죠.
믿음으로 세상을 이깁니다. 하나님하고 신뢰관계가 되면서 말씀으로 인해서 이렇게 이론적으로 지식적으로 알았던 믿음의 능력이 하나님하고 사귀면서 많은 일들이 벌어지잖아요. 그럴 때 믿음이 실제적인 믿음이 된다.
아마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것 중의 하나가 뭐냐면 지식적인 그런 내용들이 실제가 되게 하는 거 믿음과 사랑도 실제가 되게 하는 것
하나님도 어디 뭔가에 어딘가에 계신 그런 분이 아니라 나와 여기서 함께 사는 하나님으로 경험하게 만드는 것 그래서 이 부분이 다른 서신서나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그 사도 요한이 오랫동안 90이 넘도록 하나님과 사귀었던 것들이 여기서 우러나오는 것 같아요.
그 다른 데서 느낄 수 없는 엄청난 매력과 아우라가 여기에 펼쳐집니다.
성령의 증거를 통한 구원의 확신을 받습니다.
하나님하고 사귀면서 구원의 확신이 내가 좀 잘 살 때는 구원받은 것 같고 못 살 때는 구원에서 좀 멀어진 것 같고 애매한 것 같고 이럴 때가 있는데 하나님하고 늘 사귀니까 어떤 일이 벌어져요 구원의 확신이 논란의 여지가 없는 거예요.
구원의 확신을 갖고서 살아가게 되고 그걸 성령께서 우리에게 계속해서 증거해 주시지요. 너 하나의 아들이야 너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야 성령께서 우리에게 내재적으로도 계속 우리에게 증거해 주십니다.
또 다른 우리에게 큰 유익이 있는데 사귐의 결과로서 기도의 응답을 확신하게 됩니다. 우리가 기도를 할 때 그것을 들어주시는 분이 누군가가 굉장히 중요한데 그분을 더 알면 알수록 그분의 신실함과 그분의 능력과 그분의 인자하심과 그분의 긍휼하심을 알기 때문에 기도의 응답의 확신이 엄청나게 크게 되죠.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는 그런 고백을 하게 됩니다.영적인 지식을 얻게 돼요.
성경을 통해서 영적인 지식을 얻죠 하나님에 관한 지식도 얻게 되는데 여기서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알게 돼요.
경험적으로 알아갔던 그 하나님 그러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랬을 때 아 사랑 맞지 근데 사랑을 경험해서 사랑을 아는 거랑 다르잖아요.
그런 살아있는 지식을 갖게 되고 어 그래서 나중에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게 뭐냐하면 우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게 되는 그런 결과를 갖게 됩니다.
우상을 이야기를 해서 멀게 하는 것도 있지만 하나님하고 사귀다 보니까 우상은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빛 가운데 있으니까 어둠이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이런 아주 적극적인 그러한 논리와 말씀의 그 명확함들을 갖고서 그 성도들을 설득하고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내고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죠.
자 요한이서의 내용을 잠깐 요약하겠습니다. 요한이서는 그때 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냥 요한서신설을 묶은다는 면에서 간단하게만 하겠습니다.
요한이서는 가장 짧은 서신이에요.
진리와 사랑을 기준으로 분별하라는 그런 내용을 갖고 있고요.
요한 삼서는 진리와 사랑으로 사는 선한 것은 본받고 그 다음에 진리와 사랑으로 살지 않는 악한 것을 본받지 말아라 그런 내용으로 한 장짜리 서신입니다.
자 우리의 삶에 적용할 것들이 있어야 되겠죠.
지식으로 끝나지않고 우리 앎으로만 끝나지 않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때 거기에서 그들에게 말씀했던 메세지죠
그런데 성령님은 그 말씀을 갖고서 오늘 여기서 우리에게 말씀하시죠.
그래서 당시 1차적인 독자들에게만 말씀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죠. 그것이 바로 적용입니다.
몇 가지를 보면 오늘 한국 교회에 기독교의 옷을 입고 온 이단들이 있는데, 샤머니즘도 있겠고 율법주의도 있겠고 유교도 있어요.
그런 것들이 어떤 것인지를 우리가 알고 대응하고 걸러내는 그것은 무엇인가 알 수 있겠고
그 다음에 적용해야 될 것 두 번째는 나의 삶에 하나님과의 삶이 우선되고 있는가
성경은 무엇을 하지 말아야 된다. 활동에 참여하고 안 참여한다.이런 것으로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이에요.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것이 신앙이고 그 다음에 관계가 맺었으면 어떻게 돼요. 사귐이 풍성하게 되는 것이죠. 이게 신앙의 요체죠 이 부분을 계속해서 강조하면서 촛점을 갖고서 끌고 갑니다.
그래서 우리도 오늘날 많은 일에 번잡할 수 있지만 하나님 관계가 확실한가 나는 하나님과 그 관계를 얼만큼 교제하면서 사귀면서 누리고 있는가 이 부분을 적용할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나의 삶을 이끌어가는 핵심 가치는 무엇인가 하나님과의 관계이고 사귐인가 아니면 그 다음 것인가?
나의 필요인가 아니면 하나님하고의 사귐과 만남인가 이 신앙의 본질에 대한 그런 적용을 아마 요한서신서를 통해서 계속해서 자극받고 도전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요한서신서 조금은 수박 겉핧기식 같지만 전체적인 윤곽을 같이 정리해보았습니다.
다음 시간부터는 이제 본문 속으로 들어가는 그런 시간이 되겠습니다. 빛이신 하나님과의 사귐이라는 1장과 2장을 같이 나누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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