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롬 ! (경항공기지역 신우회 예배 말씀)
우리는 주님의 부활 이후의 시간을 하나님의 의로우신 정의에 대해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의로움이란 것이 결국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그 선물은 메시아 이신 예수님 한 사람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생명이 주어지는 놀라운 것입니다.
본문 : 로마서5:15-21(하나님 나라 신약성경)
이 선물은 그 범죄와 같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한 사람의 범죄로 죽었다면, 하나님의 은혜와 메시야 예수님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은혜 안의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더욱 더 풍성했으니 말입니다. 또한 이 선물은 한 사람의 죄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도 않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에 뒤따른 심판은 유죄 판결이라는 결과를 낳았지만, 많은 범죄에 뒤따른 값없는 선물은 무죄 판결이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그 사람을 통해 지배했다면 은혜와 함께 언약의 신분이라는 선물, 곧 ‘의로움’이라는 선물을 풍성하게 받는 사람들은 메시아 예수님 한 사람을 통한 생명 안에서 더욱더 지배할 것이니 말입니다.
한 사람이 죄를 범한 결과 모든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한 사람이 올바른 행위를 한 결과 모든 사람이 의롭다함. 곧 생명에 이르렀습니다. 한 사람의 불순종을 통해 많은 사람이 ‘죄인’의 지위를 얻은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을 통해 많은 사람이 ‘의로운’지위를 얻을 것이니 말입니다.
율법이 함께 들어온 것은 범죄를 최대한도까지 가득 채우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가 늘어난 곳에 은혜가 훨씬 더 넘쳤으니 이는 죄가 죽음 안에서 지배한 것 같이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적 정의를 통해 은혜가 또한 메시아 예수님 우리 주를 통해 오는 시대의 생명에 이르기까지 지배할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제목 : 거룩함을 위한 열매 맺기(Bearing Fruits for Holiness)
성경의 모든 문서들은 분명히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을 향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이를 가리켜 주님 말씀의 보편성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성경에 각각 기록된 말씀들이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 주어졌으며 각 문서들이 성경이라는 최종 형태로 모일 때도 그 문서들을 하나로 모아 형태를 다듬은 사람들의 특별한 삶의 자리에서 이루어진 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로마서를 예로 들어봅시다. 그리스도교 역사의 중요한 인물들이 로마서를 통한 주님의 말씀에 감격하여 교회의 갱신을 이끌었습니다. 서구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머리로는 이해되나 마음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주님 말씀을 로마서 13장을 읽으며 마침내 회심했습니다. 종교개혁의 아버지 마틴 루터는 역시 로마서 말씀을 읽으며 오직 주님 은혜로만 의로움을 입는다는 이신칭의의 중요 교리를 세웠습니다. 이렇게 각 시대마다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로마서가 많은 영향을 끼쳤으나 사도 바울이 정작 로마 교회에 서신을 보냈던 중요 이유는 비유대인 출신 성도들이 황제의 부당한 칙령에 의해 하루아침에 전재산을 잃고 도시 로마에서 추방됐다가 그 칙령이 효력을 잃고 난 뒤에 다시 도시 로마로 돌아온 유대인 출신의 성도들과 반목하지 않고 주님 안에서 한 몸 이뤄야 한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성경에 기록된 주님 말씀은 보편성을 지니나 또한 특정 시대 상황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주님 말씀의 보편성과 특정성을 균형있게 잘 대한다면 정말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전적인 주님 은혜로 구원받아 한 하나님 백성된 대로 거룩한 삶의 결과를 만들 수 있습니다. 왜 주님께서 전적인 은혜로 하나 되기가 매우 어려워 보이는 수많은 이들을 자기 백성 삼으십니까? 전쟁과 폭력, 핍박과 척박함이 가득한 사람들 가운데 전적인 한 주님 은혜의 단일 백성으로서 평화와 번영을 이루며 살아가는 놀라운 구원의 길을 그 백성으로서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처음 이스라엘 민족을 부르실 때부터 행하셨습니다. 첫 하나님 백성이 되었던 이스라엘 민족은 야곱의 후손들과 다른 수많은 종족들이 한몸 되었던 이들이었습니다. 아무리 고대 이집트 신왕조 속에서 노예 생활을 했던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야곱의 후손 외에는 야웨 하나님의 이름을 잘 아는 이들이 없었던 것을 교회가 생각해본다면 주님이 모세를 통해서 그들 모두를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을 행하신 것인지를 부인할 수 있는 성도는 없습니다.
교회는 다양한 수많은 이들이 한 하나님의 은혜에 바탕을 둔 단일 백성으로 거룩하게 사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인지를 잘 압니다. 고대 이스라엘 민족은 2세대가 되서야 한 하나님의 단일 백성으로 주님으로부터 약속받은 팔레스타인 땅으로 행군했습니다. 이스라엘 왕국은 솔로몬 왕 이후 남북으로 갈라졌는데 솔로몬이 자기 왕권 강화를 위해 수많은 이들과 결혼하며 그들 우상을 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갈라진 두 왕국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답게 살지 못했습니다. 예언자 아모스는 주님 백성들끼리 저울을 속이며 폭력으로 가난한 자를 압제하고 평화를 무너뜨리는 모습에 실망하신 주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주후 1세기 교회는 유대인과 비유대인 출신 성도들이 서로 밀어내며 반목했습니다. 정말 한 하나님의 단일 백성으로 수많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것 매우 매우 어렵습니다.
주님은 한 하나님 은혜에 의한 단일 백성이 이루는 거룩한 삶의 열매를 보시는 것을 단 한번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고대 이스라엘이 폭력을 자행하고 창조 세계를 피폐하게 만드는 가운데서도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을 통해 거룩한 자기 백성을 마침내 세우신 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교회는 아모스 예언자가 솔로몬이 지은 건물 성전이 아닌 친히 주님이 온 창조 세계에 자신의 거룩한 성전을 세우실 것을 선언하며 주님이 직접 그 나라에 합당한 백성을 고르실 것이라고 전했던 것이 성취된 증거가 바로 자기라고 확신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영원히 살아계신 거룩한 주춧돌이 되신 예수님 안에서 교회 성도 모두가 택하심을 받은 족속, 왕 같은 제사장, 하나님 소유가 된 백성이라고 전하며 그들 모두가 하나님의 아름다운 자비를 선포하는 사명을 가졌다고 선언했습니다. 주님은 어느 시대든 간에 한 하나님 은혜에 의한 단일 백성을 세우십니다.
고대 이스라엘 민족처럼 교회도 한 하나님 은혜에 의한 단일 백성답게 평화와 번영을 만들지 않고 반목하는 모습을 많이 보입니다. 초대 교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사도들은 한 하나님 은혜에 의한 단일 백성이 맺어내는 거룩한 삶의 열매를 주님이 보시고자 계속해서 열심히 창조하시고 구속하시는 일을 행하심을 잊지 않았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전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사도 바울은 각각의 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거룩한 삶의 열매를 맺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정말 다른 사람들이 주님의 한 공동체를 이룬다는 것 어렵습니다. 교회 안에서 한 사람이 몰랐던 또는 감추고 싶었던 수많은 죄, 즉 모든 사람과 창조 세계에 폭력을 가하고 피폐하게 하는 것들을 봅니다. 그러나 우린 주님의 전적인 은혜로 그분의 백성, 종이 되었습니다. 구세주 예수님이 교회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주님을 붙들고 거룩한 삶의 열매를 맺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