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하가 지난 어느 날,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다가 귀꿈스런 고갯마루에 내려섰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가 쫓기는 봄을 재촉하지만 산록의 여름은 아직 저만치에 있는지 한낮에도 날씨는 산산하다.
길가의 덤불을 헤치고 수 십 걸음을 나아가서 다옥한 솔숲에 섰다. 피톤치드 효과로 삼림욕이 건강에 이롭다던가, 상쾌한 기운에 휘감긴 온 몸이 한순간에 개운해진다. 사방을 둘러봐도 울창한 소나무에다 그 아래 낮게 깔린 잡목들과 솔가지 사이로 희끗희끗 하늘만 뵈는 곳, 조용히 눈을 감으니 뻐꾸기소리 그친 숲에는 오직 바람과 나뭇가지가 어울려 내는 소리만 ‘솨’하고 들려올 뿐이다.
한참동안 솔향기에 취하다가 발걸음을 막 옮기려는데 두 발 사이에서 뭔가 움직이는 듯하다. 동작을 멈추고 가만히 내려다보니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말똥거리며 앉아있는 까투리가 눈에 들어오며 두근거리는 날짐승의 고동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양쪽 발 사이에 정확히 위치한 둥지를 밟지 않게 한 것일까? 두 발을 모으고 섰더라면 영락없이 둥지가 밟혔을 것이나 용케도 넉넉히 벌리고 꽤 오래 서있으면서 밟지 않았다. 까투리가 알을 품고 있음을 짐작하면서도 순간적으로 장난기가 발동하였다. 곁에 쪼그리고 앉아 더 오랫동안 지켜보려고 했던 것이다. 숨을 죽이며 사부자기 한 발짝 뒤로 내딛고 나서 무릎을 천천히 굽히는데 무릎이 완전히 접히려는 순간, 아뿔싸! 까투리가 푸드덕 날아오르고 만다. 솔가리와 부드러운 풀이 깔린 둥지에 옹기옹기 놓여있는 꿩알 아홉 개, 그들이 원망스러운 눈초리를 흘기며 오들오들 떠는 듯하다. 둥지를 떠난 까투리가 안쓰러워 ‘쪼그려 앉지 말고 조용히 물러 설 것을’ 하는 후회가 가슴깊이 박히면서도 거기에 ‘기왕 참을 바에야 끝까지 버틸 것이지 왜 날아오를까’ 하는 이기적인 원망도 뒤섞인다.
양지바른 소나무 아래 도도록한 곳에 마련된 둥지, 많은 비가 내려도 물이 고일 것 같지 않아 꿩의 보금자리로는 제격일 듯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그 자리에 발을 디뎌 헤살꾼이 되었는지 마뜩잖다. 제 몸에서 불과 두 세치 옆에 발을 디딜 때까지도 그대로 있었던 까투리였지만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을 때까지는 차마 버틸 수 없었던 모양이다. 하긴 그것만으로도 목숨을 버릴 각오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니 자지리 두려웠으리라. 그 어마지두에도 알을 품어 새끼를 치려는 까투리의 모성애에 가슴이 뭉클할 따름이다. “불쌍한 새끼들을 어이할꼬!” 라고 흐느끼며 날아올랐을 까투리, 꿩알을 그대로 두고 그 자리를 나서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저 소중한 생명들이 살아남아야 할 텐데……. 집에 와서도 내내 마음속에는 ‘제발, 그 까투리가 다시 돌아와 알을 계속 품었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집에 들어와서 여기저기에 까투리의 습성을 물었더니, “한번 놀라면 그 자리에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라는 절망적인 말에서부터 “나중에 다시 돌아와서 계속 알을 품는다.” 라는 희망적인 말까지 제각각이다. 계절 번식을 하는 꿩은 늦봄에서 초여름 사이에만 알을 낳아 품고 새끼를 친다. 수컷인 장끼는 여러 빛깔이 아름답게 어울려 있으며 하얀 횡대가 촘촘히 박힌 긴 꼬리가 있어 먼 거리에서도 뚜렷이 눈에 띤다. 암컷인 까투리는 짧은 꼬리를 가졌으며 깃털 색깔은 갈색으로 보호색을 띠어 결코 화려함이 없다. 나무 위가 아닌 땅바닥에 둥지를 틀고 알을 품으려면 천적의 눈에 띠지 않아야 할 것이니 보호색으로 위장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까투리가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간절함으로 밤새 잠을 설쳤다.
다음날, 까투리가 알을 품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집에서 50km쯤 떨어진 그 숲으로 향하였다. 새끼낮쯤에 고갯마루에 도착하여 차를 세우고 둥지가 있던 곳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만약 까투리가 돌아왔더라도 불청객의 접근을 거니챈다면 또다시 그곳을 떠나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이기에 머줍은 발걸음을 옮기며 마음을 졸였다.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엎드려 숨을 죽이고 둥지가 있던 곳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그 둥지에 까투리가 앉아 있었다. 어찌나 반가워 하마터면 환호성을 지를 뻔했다.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이 한순간에 거분해진다. 까투리가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조심스럽게 메숲진 그 곳을 빠져나왔다.
장난삼아 저지른 인간의 행동으로 꿩에게는 생명의 위협을 느낄 만큼 고통을 주었으니 그 죄가 어찌 작다하랴. 구사일생이라고 해야 옳을 그 아홉 개의 알이 모두 깨어나 건강한 꿩으로 자라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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