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암집(來庵集) 정인홍(鄭仁弘)생년1536년(중종 31)몰년1623년(인조 1)자덕원(德遠)호내암(來庵)본관서산(瑞山)봉호서령부원군(瑞寧府院君)특기사항조식(曺植)의 문인. 대북(大北)의 영수
來庵先生文集卷之十三 / 碑文 / 安州牧使河公墓碑銘 幷序 *河禹治 1474 1544 晉州 平之
公姓河。諱禹治。字平之。晉州人。遠祖高麗左司郞中諱拱辰。聘于契丹。不屈而死。高麗世有褒封。子孫遂蕃。公其後也。考曰鮪。彰信司果。祖考曰起龍。通禮門通贊。曾祖曰淳敬。登第成均直講。公於甲午。以武出身爲軍器主簿。爲兩親乞監泗川縣務。遷內資主簿,司僕判官,戶曹正郞,年例濟州點馬。必擇郞之有幹局者遣之。公受命不以爲憂。竣事而還。還爲同曹正郞,都摠府經歷。出礪山郡守。湖人皆服其政聲。擒境内強盜二十餘人盡滅之。遷內贍僉正,禮賓副正。陞授安州牧使。國法訓鍊正。例陞堂上。公有方面之資。故朝議忽於陞敍。經授訓鍊正。第以年歉停之。未幾患疾。孤淑與活。扶病還家。將護十五餘年。病少減。甲辰四月二十日易簀。享年七十一。翌年正月。葬于故家之東十五里烏谷山之原。公娶鄕老河敬倫之女。生二子三女。曰淑。娶吾箕箒女。活娶縣監朴坪之女。壻曰李希轍,李公憲,李希績。皆秀才。余與公業雖不同。志則莫逆。且有姻好。欲不諛墓。得乎。銘曰。
孝友於家。淸儉其身。捧檄爲吏。得漢之淳。遺愛在泗。又在於礪。殲盡鼠輩。湖右受惠。褒陞于牧。薩水名州。身雖病退。名與水流。居鄕將理。壽踰七旬。何以遺後。二字淸貧。
내암집 제13권 / 비문(碑文) / 안주 목사 하공 묘비병 병서 〔安州牧使 河公 墓碑銘 幷序〕
공은 성이 하(河), 휘는 우치(禹治), 자는 평지(平之)이며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시조는 고려 좌사낭중을 지낸 휘 하공신(河拱辰)인데 거란에 빙문을 가서 굽히지 않다가 죽었기 때문에 고려에서는 대대로 봉작을 이어받았다. 자손들이 번성하였는데 공은 그 후손이다. 부친 하유(河鮪)는 창신교위로 사과 벼슬을 역임하였고, 조부 하기룡(河起龍)은 통례문 통찬이며 증조부 하순경(河淳敬)은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직강이 되었다. 공은 갑오년(1534, 중종29)에 무과에 합격하여 군기시 주부가 되었는데, 부모 봉양을 위해 사천 현감을 청하였다. 그 후 내자 주부, 사복시 판관 등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호조 정랑이 되었다.
연례적으로 제주에서 말을 점검할 때는 낭관 가운데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을 택하여 보냈는데, 공은 명을 받자 근심거리로 여기지 않고 일을 마치고 돌아왔다. 돌아와서 호조 정랑, 도총부 경력을 지냈다. 여산 군수(礪山郡守)로 나가니 호남 사람들이 모두 그 정성에 감복하였다. 경내의 강도 20여명을 잡아 모조리 없앴다.
내섬시 첨정, 예빈시 부정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승진하여 안주 목사에 제수되었다. 국법에 의하면 훈련정은 관례에 따라 당상관에 오르게 되어 있는데, 공에게는 한 지역의 군정을 맡을 만한 자질이 있어서 조정에서는 계급을 뛰어넘어 벼슬을 제수하고자 의논하여 훈련원 도정에 제수하였으나 흉년이 들어서 그만두었다. 얼마 후에 공이 병이 나자 아들 숙(淑)과 활(活)이 병든 부친을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15년 동안 병구완을 하자 병이 조금 차도가 있었다가 갑진년(1544, 중종39) 4월 20일에 돌아가셨으니 향년 71세였다. 이듬해 1월에 집 동쪽 15리 오곡산 언덕에 장사지냈다.
공은 고을 원로 하경륜(河敬倫)의 따님과 결혼하여 2남3녀를 낳았는데, 숙(淑)은 나의 못난 딸과 결혼하였고 활(活)은 현감 박평(朴坪)의 따님과 결혼하였다. 사위는 이희철(李希轍), 이공헌(李公憲), 이희적(李希績)인데 모두 수재이다. 나는 공과 하는 일이 다르지만, 뜻이 막역하고 혼인으로 맺어진 좋은 사이인지라 무덤 앞에서 아첨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럴 수 있겠는가? 다음과 같이 명을 짓는다.
효성과 우애로 집안을 단속하고 / 孝友於家
청렴과 검소함으로 자신을 다스렸네 / 淸儉其身
사령장을 받고 관리가 되어 / 捧檄爲吏
서한의 순후함을 얻었네 / 得漢之淳
유애비가 사천현에 있고 / 遺愛在泗
또 여산에도 있네 / 又在於礪
쥐새끼 같은 무리를 모두 없애니 / 殲盡鼠輩
호서지방이 은혜를 입었네 / 湖右受惠
업적을 기려 목사로 승진시키니 / 褒陞于牧
살수의 이름난 고을이었네 / 薩水名州
몸은 비록 병으로 물러났으나 / 身雖病退
이름은 강물과 함께 길이 흐르네 / 名與水流
고향에 머물며 병을 조리했으니 / 居鄕將理
연세가 칠순이 넘었네 / 壽踰七旬
무엇을 후손에게 남길까 / 何以遺後
두 글자 ‘청빈’이라네 / 二字淸貧
[주-D001] 하공(河公) : 하우치(河禹治, 1534~1544)로,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평지(平之)이다.[주-D002] 여산 군수(礪山郡守) : 여산은 현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을 말한다.[주-D003] 살수(薩水) : 청천강의 옛날 이름이다.
ⓒ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남명학연구소 | 김익재 양기석 정현섭 (공역)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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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공(河公) : 하우치(河禹治, 1534~1544)로,->河禹治 1474 1544 晉州 平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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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활(河活) 조선 전기의 유학. 본관은 진주(晉州). 노진(盧禛)의 문인(門人)인 하맹보(河孟寶)의 아버지.